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로드리고의 일생은 순탄치 않았다.
대륙 최강국인 제국의 1순위 후계자로 태어났으니 세상의 온갖 축복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원래 세상사 보이는 게 다가 아닌 법이다.
그의 첫 번째 불행은 아버지가 황제라는 점이었다.
너무나도 뛰어난 업적을 세운 황제의 후계자로 태어난 그였기에 그에 버금가는 기대를 받았고 때문에 로드리고는 항상 능력 이상의 과도한 성과를 요구받았다.
범인을 뛰어넘어 수재에 가까운 로드리고였고, 그의 능력 역시 여타의 일반인을 뛰어넘는 것이었지만 비교 대상이 황제이다 보니 그의 노력과 자질은 빛을 보지 못했다.
두 번째의 불행은 역시 아버지가 황제라는 점이었다.
대저 후계자라는 것은 언젠가 자리를 이어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황제가 도통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것이다.
거꾸로 회춘이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으니 점차 나이를 먹어 가는 로드리고와 젊어지는 황제의 모습은 로드리고의 마음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세 번째의 불행 역시 아버지가 황제라는 점이었다.
기나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정략결혼을 맺은 황제는 그만큼 자식들도 많았는데, 황제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지만 그럭저럭 훌륭한 자질을 가진 자식들을 낳았다.
황태자는 존재하지만 황위는 계승되지 않은 상황에서 각자가 세력을 키우고 호시탐탐 로드리고의 자리를 노리기 시작했으니, 로드리고의 인생은 그야말로 불행 그 자체로 보였다.
아랫사람을 잘 챙기는 어진 성품을 보여주었던 로드리고의 얼굴에서 점차 미소가 사라지고, 인형 같은 표정이 되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흠.”
아무런 감정 없는 얼굴로 한 발 앞으로 나서 옥좌를 바라보는 로드리고를 보며 황제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제아무리 사람 같지 않은 황제라고 하지만 혈육에 대한 일말의 정은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로드리고는 아픈 손가락이었으니 천하의 황제라고 하더라도 마음 한편이 아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는 수많은 신하들이 지켜보는 자리.
세속의 정을 마음 깊숙한 곳에 누른 황제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좋지 않습니다.”
주어가 빠진 밑도 끝도 없는 물음이었지만, 현명한 로드리고는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정리 좀 해 봐.”
“그라인드의 대처가 너무 정석적이었습니다. 다른 귀족이었다면 물밑으로 접촉해서 이런저런 이권을 요구하고 사건을 덮었을 겁니다. 어찌되었든 제국이 시끄러워지는 것은 모두에게 좋지 않으니까요.”
로드리고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십 수 년 간 잠잠하기는 했지만 제국은 아직 전쟁 중인 국가이고, 지금도 국경에서는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다.
성인식을 치른 백성은 전쟁 세를 내거나 징집되어서 전쟁터로 향하고, 공방에서는 끊임없이 전쟁 물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전쟁이 위대한 제국을 만들었고, 이제는 전쟁이 없다는 제국이 유지가 될까 의문이 드는 상황.
그런 상황을 아는 귀족들은 어지간하면 내부의 분열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고, 로드리고의 말처럼 대부분의 일은 물밑에서 처리해왔는데, 그라인드가 정면으로 들이박아 일을 수면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비난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큼!”
로드리고의 말에 황제가 불편한 신음을 내뱉었지만 로드리고는 멈추지 않았다.
“봉신관계라는 것은 제국의 근간입니다. 헌데 이것을 일방적으로 무시해버리는 상황을 만들었으니 명분을 완전히 잃었지요.”
인형 같은 얼굴에 죽어 버린 줄 알았던 로드리고의 눈에서 형형한 빛이 튀어 나왔다.
“거기에 한 명이면 어떻게 수습이 가능했겠지만, 무려 세 명의 황자가 연루되었습니다. 이건 수습이 가능한 상황을 넘어서 이후에 무슨 일이 있을지에 대해 걱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로드리고의 시선이 아직도 대전 바닥에 남아 있는 혈흔으로 향했고, 황제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황자들을 느슨하게 풀어준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적으로 황제를 비난하는 말에 대전안의 모두가 헛숨을 들이켰지만, 로드리고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황제도 로드리고를 꾸짖지 않았다.
너무나도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기에 쓴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황제이기에 그의 결정에는 대부분 옳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꽤나 심각한 문제였고, 그런 면에서 로드리고는 황제에게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인 것이다.
거기에 이번일은 근본적으로 로드리고를 완전히 밀어주지 않은 황제 자신이 원인이기도 하니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
“그래. 대책은?”
잠시의 침묵 끝에 황제가 입을 열었고, 로드리고는 주저하지 않았다.
“단호한 모습을 보여 줘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황실이 안하무인이었던 것도 사실이니 채찍질 몇 대로 끝내실 생각은 버리십시오.”
칼 같은 로드리고의 말에 황제가 움찔거렸다.
제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황제라고는 하지만 자기 자식들을 공개적으로 채찍질하는 것에 마음이 상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저 이러한 퍼포먼스를 보여 줌으로써 국면을 전환하고, 황자들을 보호하려했음인데, 정작 장남이 어림없는 소리라고 일축하니 마음이 읽힌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확실히 나를 제일 닮았어.’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능력 면에서 모자람이 없고, 판단력도 뛰어나다.
황제 자리를 선양하고 자신은 뒤로 물러나 대륙통일의 과업에 도전하는 것이 옳겠지만, 모종의 계획이 있는 황제는 그럴 수 없었고, 그런 면에서 로드리고는 황제에게 있어서 아픈 손가락이었다.
황제의 시선이 대전에 모인 신하들에게로 향했다.
고개를 숙인 채 두려움에 떠는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들이야말로 제국을 움직이게 만드는 자들이며 하나하나의 능력은 일국의 재상에 버금가는 엘리트들이다.
그런 그들이 로드리고의 말에 수긍하는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자신의 큰 아들이 옳았고, 대신들이 수긍했으며 결정적으로 황제 본인도 그것이 옳다고 여겼다.
“젠장.”
황제의 입에서 나오지 말아야 할 소리가 나왔지만, 그것을 타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선포하겠다. 먼저…….”
잠시의 숙고 끝에 황제의 입에서 명이 나오려던 그때였다.
옥좌의 옆에 있던 문이 소리 없이 열리더니 공안 하나가 굳은 얼굴로 황제에게 다가와 서류를 내밀었고, 서류를 건네받은 황제가 커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어지간한 일에는 미동도 하지 않는 철혈의 황제가 보이는 모습에 신하들이 놀라서 황제를 부르짖었고, 로드리고의 눈동자도 크게 떠졌다.
“……머저리들의 영지를 몰수해라. 숨겨 놓은 세력과 재산이 있으면 철저히 추징해. 그라인드를 어떻게든 달래야 한다.”
“황제 폐하 만세!”
황제의 말에 대신들이 우렁차게 외쳤고, 평소라면 시끄럽다고 한 마디 했을 황제가 아무 말도 없자 대신들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사교도와 반란군을 처리해라. 왕국 놈들의 끄나풀도 잡아들여. 황가도 일을 한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장남. 자네가 알아서 분배해.”
“알겠습니다. 폐하.”
귀족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하고 있는 황자들이라는 인식을 돌릴 필요가 있었고, 그라인드를 습격한 자들 중에 있었던 사교도와 반란군, 왕국의 특작 부대 등을 소탕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조금의 국면전환이 가능할 것이다.
로드리고 혼자서도 가능한 일이지만, 황제의 뜻은 황자들의 이미지 전환이다.
적절히 일을 나눠 줄 형제들을 생각하며 손익을 계산하던 로드리고를 바라보던 황제가 입을 열었다.
“들어라.”
“예. 폐하!”
무게가 실려 있는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주변의 감정을 조종하는 경지에 이른 황제에게서 묵직한 감정이 흘러나왔고, 그 사실을 아는 모든 이들이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메카니와 그라인드가 혼약을 맺겠다고 발표했다. 대책을 생각해라. 엉덩이 가벼운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할거다.”
“헛?!”
“……큰일 났군.”
상상하지도 못했던 황제의 말에 모두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어지간해서는 감정변화가 없는 로드리고도 안색을 굳혔다.
황제는 정복전쟁에서 귀족들의 힘을 직접적으로 투사하지 않았다.
변경백을 제외한다면 외부지원을 하는 것으로 한정지었고, 그것은 전리품에 대한 황제의 권한을 대부분 가져오게 되었으니 황제의 권력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자연히 귀족들이 가져갈 몫이 적어졌고, 이는 불만으로 이어졌으나 한번 굴러가기 시작한 눈덩이는 어떻게 막을 수가 없어서 황제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지내온 시간이 수십 년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영지를 가진 귀족이라는 것은 자신의 영지에서 왕이나 다름없고 다툼이 없는 제국 내부에서 착실히 힘을 쌓아 왔던 것이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쌓인 귀족들의 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황제는 필사적으로 고위 귀족들 간의 연대를 막아 왔던 것인데, 이번의 일로 그 막강한 힘이 수면으로 올라오게 되었으니 그 의미를 모르는 이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저울추가 기울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최우선으로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라.”
“황제 폐하 만세!”
“……시끄럽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황제의 모습은 베일에 가려있다고는 하지만 힘이 있어 보이지 않았고, 대신들의 눈에 기묘한 빛이 떠올랐다.
티끌만큼의 결점도 보이지 않았던 황제의 약한 모습에 그들의 마음속에도 자그마한 파문이 일어났다.
황제의 뒤를 따르는 드라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로드리고 역시 그랬다.
* * *
화려하기 짝이 없는 방으로 돌아온 황제는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인간을 아득히 넘어선 육체는 피곤을 모르고, 열흘 밤낮을 싸워도 지치지 않지만, 정신적인 피로가 황제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되는 일이 없군.”
“송구합니다.”
차가운 대전에 머리를 박는 드라고의 모습에 황제가 헛웃음을 흘렸다.
“네가 송구할 일이 뭐가 있느냐. 상대의 대처를 예측하지 못한 짐의 잘못이지.”
자조적인 황제의 말에 드라고는 더욱 고개를 바닥에 박았고, 바삐 움직이던 공안들의 움직임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8대 귀족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그에 준하는 녀석들도 면밀히 살펴라. 움직이는 놈들이 분명히 있을 거야.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봐.”
“옛!”
고개를 드는 드라고의 눈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고, 그 순간 대기하고 있던 공안 몇이 바쁘게 방을 빠져나갔다.
이제 감시는 강화될 것이고, 조금의 움직임이라도 생긴다면 공안의 살벌하고 음험한 칼이 그들을 덮질 것이다.
“알파계획은 어떻게 되고 있지?”
황제의 말에 드라고가 몸을 일으켜 베일로 다가섰다.
알파부터 시작하는 프로젝트는 황제와 공안의 최대 비밀.
자연스럽게 조심하는 움직임이 몸에 베인 것이다.
“70%정도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조만간 1차적인 결과가 나올 거라고 합니다. 베타와 감마도 순조롭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제국을 천년의 반석에 올려놓기 위한 프로젝트가 알파계획이고, 황제가 자리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어떻게 일궈 온 제국인데 머저리 같은 놈들이 망치게 둘 수는 없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황자들을 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지만 드라고는 거침이 없었다.
그가 충성하는 대상은 오직 황제뿐이기 때문이다.
“……그라인드의 사절은 어디까지 왔느냐.”
“하루거리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관문도시에서 여독을 풀고 있다고 보고 받았습니다.”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인 그라인드의 사절단을 생각하니 없던 두통이 몰려올 지경이었지만 황제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원래는 적당히 다렌을 조종해서 그라인드에 분란을 일으켜 아렌을 끌어내려는 계획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다렌을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었다.
제국 내부의 분쟁을 원했지만, 지금처럼 각 지역이 준동하는 형태는 절대 아니었고, 자신이 원인을 제공했으니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환장하겠군.”
황제의 탄식에 드라고는 그저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