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소드마스터는 세상에 자신의 의지를 세기기 시작하고, 그러한 소드마스터를 넘어서 초인에 다다르면 세상의 자신의 의지를 강요한다.
주변의 감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그러한 경지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효과이니 딱히 황제가 다렌에게 무엇인가 수를 썼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황제에게는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굳이 자신의 경지를 숨기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황제의 관점이었고, 아직 어린 다렌에게는 항거하기 힘든 거대한 폭력이 되었다.
‘형의 말이 맞았어. 자신이라면 이럴 것이라고 했었지. 힘들어. 머리가 아파. 밉다. 황제가 미워. 아렌도 미워. 어머니도 아버지도 미워. 그라인드도 미…….’
아렌이 익히게 한 호심공을 뚫고 들어올 만큼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소년의 마음을 온통 부정적인 감정으로 채웠고, 다렌의 눈빛이 혼탁해지려던 그때였다.
후웅.
단단하기 그지없는 성질의 마나가 아렌의 등에서부터 스며들더니 이내 심장에 힘을 더했고, 순간적으로 증폭된 마나는 힘을 더했다.
“헛!”
머리를 혼탁하게 만든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일순간 사라지면서 마나가 단단하기 그지없게 변했다.
“괜찮습니다. 도련님.”
그 마나의 성질만큼이나 단단한 목소리가 다렌의 귓가에 울렸고, 그 순간 다렌은 드웨인이 손을 쓴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거 미안하군. 워낙에 헌앙해서 아직 어린 아이라는 것을 잊었구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황제의 목소리에 다렌은 다시 한번 이를 악물었다.
아렌이 가르쳐 준 호심공의 위력은 탁월하기 그지없어서 이번 여정동안 다렌은 그 효용을 톡톡히 깨달았다.
제아무리 귀족가의 교육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여행길을 어린 나이의 다렌이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여차하면 심신에 거대한 충격이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렌의 호심공은 그럴 때마다 다렌의 정신을 굳건히 보호해 온 것이다.
마음이 우울해지고 혼탁해져서 한쪽으로 쏠리려 할 때마다 효력을 발휘한 호심공은 다렌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그것은 드웨인을 비롯한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다.
헌데 그런 호심공을 뚫고 들어와서 자신의 마음을 흔든다는 것은 황제가 작정하고 자신에게 수작을 부렸다는 것으로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으니 다렌은 새삼 황제에 대한 적대감이 들끓었다.
우웅.
알렉세이와 디어뮈드의 몸에서 오러가 일어나더니만 이내 은은한 막으로 변해서 다렌을 감쌌다.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오러가 어우러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셋 중에 소드마스터가 아닌 사람이 없었으니, 촘촘히 짜인 세 겹의 오러가 다렌을 철통같이 보호했다.
“도련님의 심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순간적으로 치솟은 마스터의 오러에 근위기사들이 전원 검에 손을 가져다대었고, 첨예하기 그지없는 살기가 집중되었지만, 드웨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평온한 어투로 말을 꺼냈다.
“……주인을 보호하기 위함이니 그 뜻이 기껍구나. 허락하겠다.”
황제의 말에 근위 기사들의 살기가 가라앉았고, 신하들의 웅성거림도 멎었다.
황제가 입맛을 다셨다.
어떻게든 그라인드를 달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다렌을 보는 순간 불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만 자극하면 알아서 분란을 일으킬 것 같아 마음이 동해 슬쩍 건드려 본 것인데, 굳건히 저항하는 것이 아닌가.
이왕 내친김이라 힘을 더했지만, 그 순간 드웨인이 다렌을 보조하고 나섰으니 손을 쓰지 안하니 만 못한 게 되었다.
노회한 기사답게 일체의 기세를 숨기고 있었지만, 옥좌를 향해 무시무시한 눈빛을 쏘아 보내고 있었고, 그것은 다른 소드마스터들도 다르지 않았으니, 이래저래 체면을 구긴 모양이 되었다.
‘……정말 되는 일이 없어.’
나직이 탄식한 황제가 이내 정신을 바로 잡았다.
태어난 이래로 계속 승승장구해 온 황제이지만 사람인 이상 실패가 없을 수 없었고, 이 자리까지 오기에 수많은 고난이 있었다.
그러한 고난과 앞으로 이뤄야 할 업적을 생각한다면 눈앞의 이 일은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그래. 로티컬의 시신을 인수하러 왔겠지?”
나직한 목소리로 운을 뗀 황제의 말에 대전 안에 슬픔이 내려앉았다.
“좋은 신하였고, 좋은 친구였다. 짐과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귀족이었지.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구나.”
자신의 손으로 로디컬의 목숨을 끊은 황제였지만, 실제로 황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 슬픔에 거짓은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성대한 장례를 치러 주고 싶으나 로티컬은 엄연히 그라인드의 혈족이니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이제 그라인드의 적장자가 와서 유해를 수습하니 로디컬도 만족하겠지.”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근위기사들의 얼굴에 슬픔의 빛이 떠올랐고, 신하들이 표정을 간수하지 못했다.
알렉세이와 디어뮈드, 드웨인 마저도 황제의 배려에 마음이 쏠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으니, 대전 내부는 슬픔만이 가득했지만, 단 한 명, 다렌만은 거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세 소드마스터의 조력과 호심공, 최대치까지 끌어올려진 경계심이 이 와중에도 다렌의 마음을 냉정하게 지켜주고 있었고, 다렌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막연하게 품어왔던 의혹은 확신에 가깝게 변했고, 그렇기에 다렌은 주저하지 않았다.
“숙조부의 시신을 정중하게 지켜주신 것에 대해 그라인드를 대표해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낭랑한 소년의 목소리가 슬픔에 잠긴 대전 안을 울렸고, 그 순간 균열이 일었다.
“폐하의 배려를 그라인드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라인드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형형한 눈빛으로 옥좌 너머를 쏘아보는 소년의 모습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숙조부의 사인이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에 관해서 그라인드는 자체적인 조사를 하려고 합니다. 이에 대한 폐하의 배려를 원합니다.”
독기마저 서려있는 것 같은 소년의 말과 눈빛에 신하들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저희 일행을 습격한 분들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야겠지요.”
작은 균열을 그 몸집을 불리더니만 이내 커다란 구멍을 내었고, 그 구멍사이로 당혹감이라는 감정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
“오랜만이군.”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렌 공자.”
도리안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틈도 없었고, 엘레나의 몸짓은 우아하기 그지없어서 사용인들은 절로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조각같은 도리안과 아름답기 그지없는 엘레나와 함께 아렌이 서 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화려하기 짝이 없는 그림을 보는 것 같았으니 사용인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일 것이다.
“꽤나 빨리 보는구나.”
성의 없게 고개를 끄덕인 아렌이 엘렌을 안은 채로 자리에 앉았고, 그 뒤로 유나를 비롯한 시종들이 시립하려 했지만, 아렌이 손을 저었다.
“유나만 남고 나가 봐라.”
“……도련님?”
“괜찮다.”
무심한 말에 기사 하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려 했지만 이어지는 아렌의 말에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두 번 말하게 할 셈이냐?”
“……알겠습니다. 문 밖에서 대기하겠습니다.”
기사와 시종, 시녀들이 밖으로 나가고 엘렌을 유나에게 넘기려던 아렌이 순간 멈칫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히히거리던 엘렌이 아렌의 몸을 꼭 붙잡고 놔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힐끗힐끗 돌리며 도리안과 엘레나를 훔쳐보던 엘렌이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아렌의 품에 얼굴을 묻었고, 깜찍한 모습에 도리안과 엘레나가 소리 없는 웃음을 흘렸다.
“귀여운 아가씨로군. 소개해 주지 않겠나?”
아이의 움직임에는 복잡한 계산이 없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고, 요 근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엘렌은 더더욱 그랬다.
오랜만에 만나서 잠시 어색했던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어졌고, 아렌은 엘렌을 부드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엘렌.”
“왜에…….”
아렌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는 엘렌의 머리를 쓰다듬은 아렌이 평소의 그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었다.
“손님에게 인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 둘은 내가 아는 사람들이니 그렇게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우우웅.”
아렌의 말에 시선을 맞춘 엘렌이 한참이나 눈알을 굴리더니만 이내 크게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어.”
아렌의 옷을 꽉 잡은 손에서 힘이 풀어지고 아이 아렌의 몸을 타고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 모습이 느리기 그지없고, 조마조마했지만 아이를 도우거나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운 엘렌의 모습에 도리안은 엘렌의 가치를 대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괴물이 이렇게까지 사랑을 쏟을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꼭 기억해 두어야겠군.’
어느덧 바닥에 내려선 엘렌이 쌕쌕거리며 숨을 내쉬자 유나가 조심스런 손길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아렌과 같은 백금발을 늘어트린 소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찬탄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도리안과 엘레나도 다르지 않았다.
“어머. 귀여워라.”
엘레나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지만 엘렌은 아렌을 가만히 쳐다보았고, 꼬마의 시선에 아렌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린 엘렌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고, 도리안과 엘레나는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렌의 그것을 흉내라도 내는 것인지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을 씰룩거리며 최대한 무표정하게 만든 엘렌이 고개를 살짝 들고는 양 허리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엘렌 드 그라인드다아.”
“풋!”
“……호호호.”
도리안은 입에서 찻물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고, 엘레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유나가 고개를 돌린 채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자신의 인사에 만족한 것인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시선을 마주치는 엘렌을 보며 아렌은 기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잘했다. 엘렌.”
“히히히.”
소녀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올랐고, 아렌은 엘렌의 머리를 쓰다듬었으니, 그 모습에 도리안도 더는 참지 못했다.
“푸하하하하!”
“……비웃음당해도 할 말이 없군. 어른은 아이의 창이라더니 만 …….”
웃음은 전염되기 마련이고 접객실에 훈훈한 분위기가 가득하니 엘렌은 더더욱 환하게 웃었다.
* * *
“우리 아가씨의 이름이 엘렌이구나. 마침 내 이름도 엘레나란다.”
“비슷해에?”
“어렸을 때는 엘렌이라고도 불렸으니 그렇네?”
“와아아아.”
엘렌이 단단히 마음에 들은 것인지 한쪽으로 물러나 눈을 마주치고 있는 엘레나의 모습을 일변한 도리안이 시선을 돌렸다.
여상한 태도로 찻잔을 들어 올리고는 있었지만, 신경의 한쪽을 엘렌에게 쓰고 있는 것이 분명한 아렌의 모습에 도리안이 미소 지었다.
“잘 지내고 있는 거 같아 다행이군.”
“너도 나쁘지 않구나.”
여상한 대답이었지만, 아렌의 눈에 비친 도리안의 상태는 단순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광대무변한 견문을 가진 아렌에게도 도리안의 재능은 불가사의하게 보였다.
재능만 따진다면 아렌 자신을 넘어서는 것은 당연하고, 이 세상에 이런 재능이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도 들 정도이니 이미 인간의 탈을 어느 정도 벗어 버린 느낌마저 들었다.
아렌이 언젠가 이야기했던 천재는 경지에 오르기 어렵다는 말도 도리안에게는 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최상급에 올라 소드마스터를 바라보는 도리안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렌이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이지?”
“……직설적인 건 여전하군.”
전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아렌의 태도에 고개를 가볍게 저은 도리안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찻잔을 들어올렸다.
“메카니와 그라인드에 관한 이야기지. 거기에 손을 올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도리안의 말에 아렌의 눈가가 씰룩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