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아렌의 미소를 본 알코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직접적인 답변은 없었지만, 아렌의 표정과 기세를 느끼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정됐군.”
단호한 의지를 담은 목소리에 아인과 노아, 드웨인이 고개를 숙였다.
그라인드에는 존재하는 수많은 가신들 중에 이 셋은 각자의 영역을 대표하는 자들이다.
그런 그들 역시 알코르의 의견에 동의했으니 그라인드의 의지가 하나로 모아지는데 장애물은 없었다.
“전담 조직을 만들겠습니다. 일주일만 주시면 대략적인 방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인의 말에 알코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거대 상단과도 비슷한 그라인드를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관료들이 필요하고 당연하겠지만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다.
사람을 채용하는 것에 관대한 그라인드지만 능력 없는 사람을 쓰지는 않았고, 당연히 제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재들만이 모여 있었다.
대략적인 큰 그림을 그리고 보급 계획을 짜는 것에는 이들만 한 전문가가 없었다.
“전체적인 결계강화에 들어가겠습니다. 이번에 얻은 소득이 적지 않으니 결과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듣기만 해도 막대한 황금이 필요한 소리에 아인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주 간단한 마법이라도 적재적소에 쓰인다면 치명적인 상황 변화를 가져오게 만드는 힘이 있는 법이다.
그러한 변수를 없애기 위한 투자라면 황금을 쏟아 부어서라도 대비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영지군과 시민군을 소집하겠습니다. 평소에 하던 훈련이 있으니 금방 적응할 겁니다.”
드웨인의 말에 점차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직접적으로 군을 언급하니 모두들 피가 끓어오른 것이다.
힘을 제일의 가치로 치고, 끊임없이 전쟁을 지속해 온 제국에 속한 자들로서 전쟁과 전투는 그들과 멀리 있지 않았다.
“조금 급한 감이 없지 않지만, 새롭게 계약을 하고 싶소.”
그런 가신들의 모습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던 알코르의 시선이 알렉세이와 디어뮈드에게로 향했다.
두 소드마스터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제 아무리 지고한 경지에 오른 검사이고, 그라인드에 도움을 주었다고는 하지만 둘은 엄연한 외인.
그런 외인이 있는 자리에서 반역을 결의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알코르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다.
외통수.
귀족의 음험한 수단이었지만, 알렉세이와 디어뮈드는 가볍게 볼 수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하찮은 수작이라고 코웃음 치면서 당당하게 빠져나가겠지만, 이 자리에는 아렌이 있었고, 첫 걸음을 떼기도 전에 제압당할 것이 뻔했다.
“…… 젠장.”
알렉세이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지만, 알코르는 물론이고 아렌도 반응하지 않았다.
“붉은 가지는 합류하겠습니다.”
디어뮈드의 눈에서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결단에 감사드리오. 대우에 섭섭함은 없을 것이오.”
알코르의 말에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형형한 눈빛으로 아렌과 시선을 맞췄다.
조각 같은 얼굴과 형형한 눈빛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고, 그런 디어뮈드와 잠시 시선을 마주치던 아렌이 피식 웃었다.
“강단은 있구나. 강단이 있는 자는 앞으로 걸어갈 수 있지.”
흘리는 것 같은 아렌의 말에 디어뮈드의 표정이 밝아졌고, 알렉세이가 놀란 얼굴이 되었다.
서로가 숙적이라고 여겼던 두 사람인데, 한쪽이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보증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감히 소드마스터를 두고 품평을 한다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하겠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아렌이니 신빙성이 있었다.
“…… 푸른 늑대도 합류하겠습니다.”
“환영하오.”
잠시 입술을 씹던 알렉세이의 입에서 지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후환도 두렵고 라이벌의 발전이 눈에 보일 지경이니 알렉세이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드웨인이 두 소드마스터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 지었다.
비록 지금은 고용된 형태라고 하지만 머지않아 강력하기 짝이 없는 용병집단이 그라인드에 정착하는 미래가 그려졌으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전장을 전전하는 용병들에게 그라인드의 풍요를 보여 준다면 정착하지 않고는 못 베길 것이니, 드웨인은 아인과 슬며시 눈을 맞췄다.
드웨인의 시선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아인이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막대한 황금이 소모되겠지만 미래를 위해서라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니 아인의 입장에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모두의 뜻이 하나로 뭉쳤고, 알코르가 앞으로 나섰다.
알코르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몰렸고, 잠시 숨을 고르더니만 이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황제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던 상관없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를 느끼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라인드의 혈족이 죽었고, 범인이 황제라는 점이다.”
알코르의 눈에서 시퍼런 빛이 쏘아져 나왔다.
“복수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그라인드는 전쟁을 준비한다.”
쿵!
모두가 발을 굴려 동의를 표했고, 알코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렌.”
“예. 백작님.”
전쟁을 결의하는 공적인 자리가 되었으니 알코르의 권위를 높였다.
“메카니 공작가로 가서 그라인드의 의지를 전해라.”
“알겠습니다.”
아렌이 사자로 간다면 메카니에게는 그 어떤 이보다 강력한 의사 표명이 될 것이고, 감히 쉽게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나직하게 으르렁거리는 알코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제국의 남부는 풍요로운 곳이다.
험난한 산지에 둘러싸인 북부와는 다르게 비옥한 평야는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져 있으며, 온난한 기후는 3모작이 가능하게 하니, 제국 전체 식량의 반 이상이 남부에서 나왔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를 가로지르다 보면 거대하기 그지없는 수해가 나오는데 이곳이 남부 대수림이다.
어지간한 나라 이상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대수림에는 수많은 부족들과 몬스터들이 균형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고, 황제는 대수림을 정벌하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대신 대수림의 유력 부족들과 협약을 맺고 그들 하나하나의 자치권을 존중하니 남부는 외적의 침입을 걱정하지 않는 천혜의 대지가 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남부의 안정을 공고히 했고, 황제의 정복전쟁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병참기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으니, 실상 황제가 전쟁을 계속 지속하는 것에는 남부의 지분이 적지 않았다.
넓은 대지에서 나오는 소출과 공고한 지배체계는 그 어떤 지역보다 남부의 귀족들을 권위적으로 만들었고, 끝없는 식량을 생산해 내지만 평민들의 삶은 다른 지역보다 뒤떨어지는 이질적인 모습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난 이곳이 싫어.”
거대한 평야 너머에서도 확연히 눈에 띄는 도시의 모습을 보면서 사내가 중얼거렸다.
무수히 많은 마을이 둘러싸고 있는 도시의 형태는 언뜻 제도의 모습과도 닮았지만,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제도가 활기에 가득 차 있었다면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조금은 주눅 든 강압적인 분위기다.
간간히 지나가는 기사들과 귀족들에게 평민들은 깊숙이 허리를 굽혔고,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번뜩이는 창칼을 든 병사들이 지나갈 때면 주민들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려 들었으니 평민의 권위가 제법 올라간 제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이곳만은 아직도 옛적 봉건영지의 모습 같았다.
전쟁의 제국의 기술을 발전시켰고, 각종 상업과 기술을 장려해 인식의 변화가 크게 이루어져 평민의 권위가 상승했지만, 변함없이 식량만을 생산하는 남부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자기들 이외에는 모두를 아래로 보는 메카니 공작가가 있어서 그런지, 예전처럼 평민을 가축 취급하는 분위기는 사라졌다지만 그래도 사내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 밑으로는 모두가 평등할 터인데 ……. 건방지기 그지없군.”
한때 남부의 빈민가를 전전하다 황제의 은총을 받아 이 자리에까지 온 사내의 가슴속에서 맹렬한 분노가 불타올랐다.
제국을 넘어 대륙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 중인 위대한 황제에게 반항하는 귀족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은 이내 강력한 혐오로 발전했다.
“용서할 수 없지.”
이를 갈며 중얼거린 사내가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온통 시커먼 표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홀리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고, 한 치의 틈도 없는 정육면체의 모습은 완전한 큐빅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순식간에 사내의 눈빛이 멍해지고, 홀린 듯이 큐빅을 바라보던 눈가에 이내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모든 것은 황제 폐하를 위해서!”
단호하게 중얼거린 사내가 이내 표정을 굳히고는 거친 손길로 큐빅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평범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일순간 사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나는 어지간한 익스퍼트를 크게 상회하는 것이었고, 큐빅이 은은한 빛을 뿜어내더니만 이내 사내의 마나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였다.
“크으으으 …….”
사내의 입에서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제법 건장한 사내의 몸이 실시간으로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탄탄한 근육이 오그라들고, 윤기가 흐러던 팽팽한 피부가 푸석해졌으며, 활력이 넘치던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하얗게 세어 버리더니만 이내 저절로 빠졌다.
전신의 가득했던 마나를 빨아들이는 것도 모자라 사내의 생명력까지 빨아드린 큐빅이 마치 생명을 얻은 것처럼 맥동하기 시작했고, 그 대가로 사내의 몸은 마치 해골에 가죽을 입힌 것처럼 변해 버렸다.
푸석해진 안구에 금이 가더니만 저절로 눈가에서 빠져나오고 사내는 빛을 잃었다.
이빨이 저절로 빠져나가 부서져 버렸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뼈가 가벼워진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말도 안 되는 극심한 고통이 사내의 몸을 달려야 정상이겠지만, 이미 신경마저 가닥가닥 끊어졌으니, 사내는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전신의 구멍에서 흘러내리던 출혈은 핏빛으로 기화되어서 큐빅으로 흘러들었으니, 큐빅은 사내의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잃어버린 채 바닥에 누더기처럼 구겨진 사내의 몸에서 활력이 사라졌고, 이름 모를 생명 하나가 세상에서 지워졌다.
웅!
불길하기 짝이 없는 빛을 발하는 큐빅 하나만이 허공에 고정된 채 진동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 사내가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마법의 문자가 떠오르더니만 이내 큐빅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음습한 기운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단단하게 맞물려 있던 정육면체가 점차 벌어지기 시작하더니만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세어져 나왔다.
우직.
서서히 세력을 넓힌 검은 안개가 대지에 닿았고, 그 순간 끔찍한 소리와 함께 일대의 대지가 오염되기 시작했다.
자신 외에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검은 안개가 세상을 먹어치우기 시작했고, 영양분을 공급받은 안개가 세력을 넓히기 시작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퉁 떨어지는 것 같은 불길함이 가득했다.
“블랙 큐빅 정상 작동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관측하던 또 다른 사내가 자그마한 큐빅 모양의 수정구를 향해 중얼거렸다.
– 관측 장비 작동은 어떻지?
“정상 작동 중입니다. 다만 이대로 오염이 계속된다면 관측 장비도 휩쓸릴 겁니다.
– 그 정도는 괜찮다. 통신은 양호하군. 2지점으로 철수해서 변수에 대비하라.
“황제 폐하 만세!”
– 황제 폐하 만세!
단호한 의지가 들어 있는 음성과 함께 사내가 슬며시 몸을 일으켜 어둠 속으로 사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