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마룡으로 화한 쿨리크의 몸을 찢고 그 안에 발을 들인 순간 아렌이 느낀 것은 공허감이었다.
말 그대로 공허.
아렌이 들어온 입구도 사라지고, 온통 시커먼 공간이어서 위아래도 구분이 안가는 광대무변한 공간 안에 홀로 떠 있는 모습이 생명체의 몸속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었다.
아렌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기감이 수십 킬로미터를 달렸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았고 실시간으로 육체를 침투하려는 마기와 한없는 무력감과 절망을 강요하는 공간은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미치거나 오염되기 딱 좋았다.
“재미있는 재주로구나.”
하지만 아렌은 비릿하게 웃었다.
마법에 대해서 깊이 파고든 것은 아니지만 기초적인 지식은 어느 정도 습득한 상태.
비록 그 지식은 얕지만 기초만큼은 확실하게 몸에 새겨 넣었으니 아렌은 지금의 이 공간이 정상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마룡으로 변하기 시작한 쿨리크의 몸은 어느 순간부터 그 변화가 극심해졌으니, 쿨리크 자체의 체적의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일 것이다.
모자라는 부분은 끊임없이 생성되는 마기로 채웠을 것이니 그렇다면 마룡의 육신이 피와 살점으로 구성되지 않았다는 것도 납득이 되는 이야기다.
결국 쿨리크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봉인을 처리해야 하고, 그 봉인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마룡의 깊은 곳까지 들어갈 필요가 있기 때문에 신체 내부로 진입한 것인데, 이런 깜찍한 짓거리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온통 공허뿐인 공간에 뭉클거리며 그 밀도를 높여가는 마기를 보면서 아렌은 생각을 정리했다.
‘힘밖에 없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했더니만 이런 식으로 답하는군. 확실히 무한대의 역량이라고 할만하다.’
병렬로 연결된 여섯 개의 봉인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한대에 가까운 힘.
그 힘을 무식하게 쏟아 부어서 마기를 채우고 공간을 늘여 당겨 아렌을 몸속에 가두어버렸으니 쿨리크의 이번 수는 대단히 유효했다.
어쩌면 이 공간이야말로 쿨리크의 심상일지도 몰랐다.
기감도 안 통하고, 마나와 공기마저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단절 되어버린 적대적인 환경이지만 아렌은 웃었다.
여의주는 여전히 힘을 잃지 않았고, 외부에 펼쳐진 심상은 여전히 그 힘을 유지하며 마룡의 육체를 제어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드득.
소리마저도 잡아먹는 공간이었지만 아렌이 주먹 쥐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아렌의 내부를 순환하며 이제는 완전한 일치에 가까워진 부룡기공이 끊임없이 아렌의 정체성을 속삭여주고 있었다.
신성의 씨앗을 만나 이제는 희미한 영성마저 띈 부룡기공은 격렬한 감정을 토하며 아렌을 격려했다.
마룡, 아니 마룡이 되지도 못한 역겨운 그 무엇.
수행을 거듭해서 용으로 거듭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부룡기공은 그러한 존재를 용납하지 못했다.
웅.
여의주와의 동조가 시작되고 붉은 기운이 떠오른 아렌의 눈이 공간을 넘어 본질적인 것을 엇보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아야 할 것까지 보는 용의 눈은 세상의 이면을 바라볼 정도였으니 아렌은 오래지 않아 원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거기 있었구나.”
비릿한 웃음과 함께 굳건하게 쥔 주먹을 들어 올려 자세를 잡았다.
노리는 것은 공간 그 자체.
눈앞에 보이는 공간을 집중해 사고를 가속한다.
단순한 공간이었던 것이 압축되기 시작했고, 가속에 가속을 거친 사고는 결국 목표물을 하나의 점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콰릉!
빛살처럼 뻗어진 아렌의 주먹이 정확하게 압축된 점에 닿았다.
쩡!
온몸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아렌을 둘러싼 허무의 공간이 거짓말처럼 부셔져 나갔다.
* * *
“흠.”
균열된 공간 너머로 발을 내디딘 아렌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괴하기 그지없는 살점들이 이리저리 얽혀있는 이곳은 마룡의 가슴 안쪽.
끝이 보이지 않았던 허무 공간이 사실은 사방 1미터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크기였던 것이다.
기분 나쁘게 꿀렁거리는 살점들은 쉴 새 없이 마기와 악의를 내뿜으며 아렌을 배제하려하고 있었지만, 아렌의 가벼운 손짓에 갈기갈기 찢어졌으니, 그의 발길을 막지 못했다.
그렇게 마룡의 몸을 해체하며 느릿하게 걸어 들어간 아렌이 도달한 곳에 쿨리크가 있었다.
“한심한 꼴이로구나.”
“…… 네 놈.”
집채만 한 살덩이에 신체의 절반쯤을 파묻힌 쿨리크가 이를 갈며 아렌을 노려보았다.
쿵! 쿵!
힘차게 맥동하는 살덩이는 심장으로 보였고, 광택이 번들번들한 여섯 개의 구슬이 보였다.
“그래. 네 마음대로 그 힘이 휘둘려지더냐?”
비웃으며 묻는 아렌의 말에 쿨리크가 이를 갈았다.
드라코니언같은 외모는 인간의 그것으로 되돌아와 있었지만, 살덩이에 파묻혀 있었으니,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알 수 없었다.
특이한 것은 봉인.
쿨리크의 가슴에 박혀있는 세 개의 봉인은 그에게 예속되어 있었지만, 나머지 세 개의 봉인이 심장으로 보이는 살덩이에 박혀서 빠져나와 있었던 것이다.
힘에 취해 봉인의 힘을 끌어내는 와중에 그의 몸에서 벗어나 제 멋대로 움직인 모양이다.
단순히 세 개의 봉인만으로 마룡의 신체를 구성하는 것은 놀랍기 그지없었지만, 불완전한 마룡을 부활시킨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 사실만으로 쿨리크는 대륙에 씻을 수 없는 죄인이 된 샘이다.
만약 아렌이 이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마크와 베럭의 봉인을 손에 넣은 쿨리크가 폭주했을 것이고, 오로지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마룡이 다시금 부활했을 것이다.
“흡!”
우지직.
얼굴을 일그러트린 쿨리크가 힘을 쓰자 그의 몸이 살덩이를 찢고 빠져나왔다.
가슴 밖으로 도출되었던 봉인들이 그의 신체내부로 스며들며 다시금 쿨리크의 힘이 되었지만 밖으로 빠져나와 있던 봉인들은 힘차게 움직이며 마룡의 신체에 더욱 더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아렌의 흑룡이 붙잡고 있지 않았더라면 진작 전장을 벗어나 대륙 전체에 재앙을 가져왔을 터.
봉인을 덜어내서 이성이 돌아온 쿨리크 역시 이 사실을 짐작했는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긴 말은 필요 없겠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렌이 느릿하게 손을 들었고, 그 순간 가공할 압력이 일어났다.
콰지직!
“뭐하는 거냐!”
자신을 공격하는 줄 알고 화들짝 놀란 쿨리크가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정작 아렌의 손길은 마룡의 심장이 품고 있는 세 개의 봉인으로 향했다.
살점이 뒤틀리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강제로 뽑혀진 세 개의 봉인이 아렌의 손으로 날아들었고, 신경 다발처럼 연결된 심장을 어떻게든 움직이려 날뛰던 봉인을 아렌이 붉은 기운으로 감쌌다.
와득!
뭔가가 부셔지는 소리와 함께 봉인들의 움직임이 멈췄고, 그제야 아렌은 붉은 기운에 휩싸인 봉인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애먹이는군.”
가볍게 한숨을 쉰 아렌이 서늘한 시선으로 쿨리크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아렌은 쿨리크와 심장의 상황을 보자마자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일격으로 쿨리크를 죽이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었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쿨리크의 봉인마저 마룡에게로 넘어가 사태가 더 커질 수도 있었으니, 아렌은 마룡에게 먼저 손을 쓰기로 결정했다.
방금 전의 일격은 아렌이 지금까지 쌓아온 힘과 권능, 신성의 씨앗까지 동원한 치명적인 일격이었고, 한 수에 봉인을 무력화시켜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아렌으로서도 적지 않은 힘을 소모했으니, 애먹인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쿨리크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 사이 힘차게 맥동하던 심장이 거짓말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부스스.
온통 기괴한 살점과 핏줄, 신경으로 뒤덮여있던 마룡의 신체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마기로 환원되기 시작했다.
작은 동산만한 육체를 구성했던 마기가 흩어지고 있는 것이니 이만한 양이라면 어지간한 영지를 오염시키고도 남았지만, 아렌의 심상이 만들어낸 흑룡과 먹구름이 이때다 싶어 위세를 더했다.
콰르르르릉!
수백발의 뇌격이 집중되어 마기를 태우기 시작했고, 흩어지려는 마룡의 시체를 똘똘 감은 흑룡이 그 힘을 더하니 빠른 속도로 마기가 소멸되었다.
덕분에 급격히 힘을 소모한 아렌의 심상이 옅어져갔지만, 이 정도면 싸게 먹힌 거라고 아렌은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스스스스.
어느덧 주변을 감싸고 있는 마룡의 시체가 사라져 아렌과 쿨리크는 허공에 떠 있는 모양이 되었고, 대부분의 마기를 소멸시킨 흑룡과 먹구름 역시 사라지면서 다시금 달이 보였다.
“좋군.”
환하게 떠오른 달빛과 무수하게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보며 아렌이 미소 짓던 그때.
촹!
쿨리크가 검을 뽑아들었다.
마법의 갑옷은 부셔졌지만, 아직 쿨리크에게는 수많은 장비가 건제했고, 대륙에서 손가락에 꼽는 그의 보검은 상처하나 없이 써늘한 예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팔찌가 빛을 내며 그에게 공중을 부유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있었고, 빛바랜 망토가 커다랗게 부풀더니 마치 날개와 같은 형태가 되어서 쿨리크를 받쳤다.
몸 곳곳에서 빛나는 마법의 빛이 쿨리크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안쪽 깊숙한 곳에서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한 세 개의 봉인은 그에게 안정적인 힘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떠오르는 빛.
혈계능력이 발휘한 빛이 마기와 합쳐졌고, 이어 회색으로 어우러진 혼돈기가 쿨리크의 몸을 빈틈없이 감싸니, 그 모습에 아렌은 눈을 빛냈다.
“훨씬 낫구나.”
이성이 돌아오고 냉철한 정신을 가지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준비가 되었다.
너무나도 거대한 힘에 휘둘리며 본능적으로 행동하던 방금 전보다 비록 힘의 총량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겠지만, 지금의 쿨리크가 훨씬 강해보였다.
거기에 혼돈기.
힘의 총량에 관계없이 존재 자체만으로 거의 모든 힘에 대해 극상성인 힘인데, 세 개의 봉인에서 끊임없이 힘을 퍼 올릴 것이 분명하니, 어지간한 초인은 쿨리크를 상대하는 것이 엄청나게 까다로울 것이다.
비록 쿨리크가 혈계능력으로 빛을 계속해서 뽑아 올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초인의 위계에 오른 것이 분명한 쿨리크이니 그런 제약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아렌이 쿨리크를 상대로 견적을 내는 사이, 자신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 같은 아렌의 눈빛에 쿨리크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 네까짓 게 뭔데 감히 나를 평가하느냐!”
높디높은 자존심에 상처가 그어졌고, 지금껏 벌여왔던 추태와 실수가 쿨리크를 구석으로 몰았다.
“나는 쿨리크다!”
“머저리라는 소리인가?”
아렌의 빈정거림에 쿨리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빛의 용사란 말이다!”
“용사라고 하기에는 악의로 가득 찼구나.”
그 와중에도 자신을 정당화하는 쿨리크의 모습에 아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륙의 평화를 위해 황제를 타도하는 내 앞길을 가로막다니!”
“…… 이 정도면 다른 의미로 대단하군. 감탄했다.”
자기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쿨리크의 태도에 아렌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 너에게서 봉인을 되찾고 위대한 여정을 이어나가겠다!”
“…… 그래. 마음대로 해 보려무나.”
한심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렌을 향해 쿨리크가 이를 악물고 검을 내밀었다.
“죽어라!”
콰릉!
기합과 동시에 쿨리크의 몸이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고, 아렌이 손을 들어 맞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