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전쟁은 마무리가 중요한 법이다.
악전고투 끝에 식량도시를 함락시킨 귀족군이지만 쉴 틈은 없었다.
“성채 보강해! 자제는 어디 있나?”
“주민들 소개한다! 반항하는 녀석들은 본보기를 보여! 서둘러!”
“창고 확인을 서둘러라!”
“경계병들은 위치를 잡아!”
마법의 빛이 여기저기 떠올라 대낮처럼 보이는 식량도시를 귀족군은 끊임없이 누비고 있었다.
제도 쪽으로 향하는 성벽은 무사하다지만, 귀족군이 공략했던 성벽은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으니 혹시 모를 야습에 대비해야 했다.
기이할 정도로 감정이 사라지고 황제를 찾는 백성들의 모습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신속히 후방으로 소개해야 했다.
이들이 내부에 남아 있다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고, 그 안에 공안이 숨어들어 있을지도 몰랐다.
애초에 공안은 그 은밀성이 악명 높은 조직이었으니 아예 공안이 숨어 들 틈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리헐트의 결론이었고,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귀족들은 그 의견에 찬성했다.
공성이 한참인 와중에도 부지런히 식량을 날랐다지만 명색이 천만 인구의 식량을 생산하던 도시다.
창고에 그득히 쌓여있는 식량들은 보는 이의 입을 떡 벌어지게 했고, 그 막대한 식량에 아인의 표정이 모처럼 환해졌다.
그라인드의 금력은 그 끝을 모른다지만 재무를 담당하고 있는 아인의 입장은 또 그런 게 아니지 않은가.
매일매일 막대한 자금을 태우는 귀족군의 식량을 대처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어깨춤을 추기에 충분했다.
물론 혹시 모를 수작에 대비해서 검사를 철저히 해야겠지만, 그거야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것이고.
이미 마법사와 신관들이 붙어서 분석과 정화작업을 이어가고 있었으니, 아인은 한쪽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승리 후 방심한 적에게 기습을 거는 것은 전쟁의 기본이다.
비교적 후방에 위치했던 병력을 위주로 철저히 경계를 세우고, 지친 병사들에게 숙소를 배분해 쉬게 했다.
그렇게 밤을 지나 새벽으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식량 도시를 함락시킨 귀족군은 쉬지 않고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의 전투를 위해서.
그리고 그것은 수뇌부라고 할 수 있는 귀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피해 상황 산출은?”
“5만 명 정도의 병사가 사상자로 분류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복귀할 수 있는 숫자는 대략 3만. 그것도 시간이 걸릴 겁니다.”
리헐트의 물음에 사관이 서류를 내밀며 대답했고, 상상 이상의 피해에 모두가 침음을 삼켰다.
“…… 그때인가.”
“아무래도 그렇겠지. 마력포대 절반이 날아갔어. 그 자리에 있던 마석도 연쇄폭발을 일으켰네. 어쩌면 그 정도로 끝난 게 운이 좋은 걸지도 몰라.”
5만 명의 사상자는 귀족군도 쉽게 볼 수 없는 숫자였지만, 모두는 운이 좋았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뇌리에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하늘을 덮을 것만 같았던 거대한 빛의 손.
그 빛의 손이 만들어낸 참담한 파괴의 현장.
그리고 그 힘의 주인인 황제의 모습까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을 움츠린 귀조들의 모습을 보면서 리헐트는 비웃지 않았다.
‘하긴 꽤나 무서운 광경이기는 했지.’
오직 자신의 머리와 세 치 혀를 믿으며 세상 그 무엇도 눈 아래로 보는 리헐트였지만, 황제와 아렌의 대결은 그런 리헐트에게 겸손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전략이나 전술이 소용없다.’
병가의 금언처럼 내려오는 말이었지만, 그 말을 오늘처럼 확실하게 실감한 적은 없었으니 리헐트 개인은 한 단계 발전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 짐승들도 위력적이었지. 그나마 대처가 좋아서 다행이었어.”
누군가의 말과 동시에 전쟁본부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슬그머니 한쪽으로 모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사람.
한쪽 구석에 양팔을 모은 채로 가만히 앉아있는 중년인의 모습에 모두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빛바랜 갑옷이었지만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신성문자는 더없는 경건함을 안겨주었고, 어찌나 많은 피를 묻힌 것인지 붉은빛으로 번들거리는 메이스의 광택은 보는 것만으로 모골이 송연해졌다.
단단한 얼굴과 그만큼 단단한 표정, 번듯한 자세는 노련하기 짝이 없는 기사를 연상케 했지만, 이 사내는 그런 정도의 존재가 아니다.
추기경의 직위도 가지고 있는 명망 있고 신실한 성직자이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름으로 그 악명을 대륙 전체에 떨치고 있는 자.
이단심문관장 요한은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느끼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헬리오스는 황제를 인정하지 않소. 더군다나 그따위 짐승은 더욱 그렇지.”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담긴 살기와 광기에 모두가 어깨를 움츠렸다.
황제가 천사라는 이름의 짐승을 만들어내고, 그에 대항하려는 그때, 콜레트와 코린이 가지고 있는 성물을 매개로 교황과 이단심문관들이 공간이동으로 전장에 넘어왔다.
지금 이 시간에도 대륙 각지에서 신을 모시는 자들이 악을 물리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었지만, 도저히 황제를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신을 참칭하는 것만으로도 이단으로 낙인찍기에 충분하다.
헌데 황제는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신앙을 강요하고 천사라고 하는 짐승들까지 만들어낸 것 아닌가.
콜레트와 코린을 통해서 상황을 지켜보던 교황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전장에 개입한 것이다.
황제를 이단으로 선포했다.
교황은 전 대륙에서 신에 가장 가까이 앉은 자.
그런 그의 선포는 그 즉시 세상에 새겨졌고, 적이 이단이라면 절대적인 상성을 발휘하는 것이 이단심문관들이다.
데미안과 디어뮈드가 한 마리를 막아 세우는 동안 이단심문관들은 나머지 한 마리를 철저히 분쇄했고, 교황이 본격적으로 황제와 맞서기 시작하니 제 아무리 무진장의 힘을 가진 황제라도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헬리오스는 계속해서 종군합니까?”
말 한마디로 전쟁본부 내부의 온도를 떨어트린 요한에게 리헐트가 물었다.
천사라는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확인했으니, 언제 어디서 그런 괴물들이 튀어나올지 몰랐다.
무엇보다 황제에게는 악마소환이라는 무기도 있고, 그 이상의 것도 없으리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분명히 뭔가 더 있겠지.’
맹렬히 돌아간 리헐트의 두뇌는 확신에 가까운 대답을 내놓았고, 그러한 비대칭 전력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쪽도 그러한 전력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이단심문관들과 교황의 합류는 천군만마가 되어줄 것이 분명하니, 리헐트는 조금 무리한 요구 조건이 나오더라도 무조건 고개를 끄덕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단이 있는 곳에 우리가 있소이다.”
“…… 감사한 말씀이군요.”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요한에게 리헐트가 고개를 숙이며 사의를 표했다.
‘황제와 그 피조물들만 상대하겠다는 거군. 뭐 이 정도면 감사하지.’
리헐트가 생각한 것을 귀족들이 생각하지 못할 리가 없었고, 이내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떠올랐다.
황제의 위엄과 신위에 절망하기도 했었지만, 그 절망을 지워낼 수 있는 빛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절로 신앙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교황성하께서 안 보이시는군요. 모처럼 이니 존안을 뵙고 좋은 말씀이라도 듣고 싶습니다만.”
신앙심이 충만한 어느 귀족의 한 마디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충만해진 신앙심도 신앙심이지만 무려 교황이 아닌가.
헬리오스에만 거주하고 외부로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 교황과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거기에 오늘 보여준 그 막강한 신위까지 합쳐지니 귀족들에게 있어서 교황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 순간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기회가 되었다.
기대감이 듬뿍 어린 모두의 눈빛을 받은 요한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렌 공자와 함께 계십니다.”
요한의 이 한 마디에 귀족들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 *
“차 맛이 좋구려.”
“아랫것들이 신경을 좀 썼지.”
교황의 앞에서도 반말로 일관하는 아렌의 태도에 수행하고 있던 이단심문관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이내 표정을 풀었다.
전 대륙의 시선이 집중된 전쟁이니만큼, 그 소식은 마법을 타고 실시간으로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그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렌에 관한 내용이다.
인세를 걸어 다니는 초인.
신과 같은 위엄을 발휘한 황제에게 한 발자국도 밀리지 않고 맞서 싸운 자.
폭풍과 번개, 드래곤과도 같은 신수를 부리는 초인 등등.
아렌에 관한 소문은 끝없이 퍼져 나가고 있었고, 그중에는 당연히 아렌의 기벽에 관한 것도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존대를 하지 않는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가문의 어른들뿐.
무려 황제의 앞에서도 반말을 하며 비난하기까지 했으니, 교황이라고 해도 존대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잃었군.’
그래도 교황인데 존대를 하지 않겠냐 에 걸었던 이단심문관은 쓰린 속을 달래며 아렌을 노려보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써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주시하는 디어뮈드의 눈초리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오늘의 전투로 인해서 아렌의 위상이 끝도 없이 치솟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자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데미안과 디어뮈드.
베일에 싸여있던 피렌사의 혈족이 가진 힘은 세상을 놀라게 할 정도였으니 은연중 피렌사를 비웃던 귀족들은 입을 다물었다.
데미안뿐만 아니라 전투에 참가한 피렌사의 혈족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그 무명을 떨친 것이다.
거기에 디어뮈드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망국의 근위기사에서 용병으로, 용병에서 아렌의 호위기사로 몸을 위탁한 소드마스터의 사연은 수많은 귀부인의 심금을 울렸고, 디어뮈드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귀족가의 여인들은 상사병으로 쓰러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화려한 외모는 귀족 남성들의 질투를 불러왔고, 소드마스터라고는 하지만 은연중에 전투력이 떨어질 거라고 깔봐왔는데 이게 웬걸.
데미안과 손을 맞추어 황제가 만들어낸 천사를 훌륭하게 막아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 가공할 쾌검과 전투 능력은 어지간한 소드마스터를 완전히 상회할 정도였으니 오늘은 전투 한 번으로 디어뮈드의 가치가 급격하게 솟구쳤던 것이다.
거기다가 오늘의 전투로 인해 느낀 것이 있었는지 한층 더 깊은 기세를 갈무리하고 있었으니, 그런 디어뮈드의 시선을 일개 이단심문관이 무시할 수는 없었다.
“좋은 하인을 두신 모양이오.”
“다들 충직하다.”
표정 없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어리는 것을 보고서 교황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세상 그 어떤 하인이 아렌에게 불충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대륙의 그 어느 누구보다 신들과 깊게 연결되어 있어 초인이라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교황이지만 눈앞의 아렌을 읽을 수 없었다.
신의 힘을 빌려 그 누구도 꿰뚫어 보는 눈이 아렌을 바라볼 수 없었으니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명확했다.
“…… 보고를 들었을 때는 설마 했는데. 진짜로 반신이시구려.”
“그렇다더군.”
교황과 아렌의 문답에 소리 없는 경악이 번졌다.
만신전의 지상대리인이 아렌을 반신이라고 인정한 것이고, 아렌은 부인하지 않았으니 신화시대 이후로 인세를 걷는 신이 출현한 것이다.
그 의미를 아는 이단심문관은 무거운 표정으로 침묵했고, 디어뮈드는 주인의 경지를 가슴에 새기며 더욱더 정진을 결심했다.
“그래서.”
한없이 무거운 분위기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아렌의 입이 열렸고, 그 순간 신들의 시선이 모이는 것을 교황은 느낄 수 있었다.
“만신전에서는 나를 어떻게 하라고 하던가?”
한 치의 가감도 없는 직설적인 물음에 교황은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