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병력 상황 확인해!”
“식량 보관 상태는 어떤가?”
“적의 공격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예비대를 투입해!”
황궁에 위치한 전쟁본부는 여전히 활기차게 돌아갔지만, 드라고의 눈에는 어제만 못한 것처럼 보였다.
군대란 사기를 먹고사는 존재.
황제가 직접 참전했음에도 식량도시를 빼앗겼다는 사실이 공안의 사기를 떨어뜨렸고, 특수한 교육을 받아서 황제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뭉쳐있는 자들답게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다들 표정이 굳어있었다.
‘안 좋아.’
절대적인 존재라고 믿고 있었던 황제의 패퇴.
아렌과의 싸움이 황제의 우세승이라고 판단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짙은 패배감에 공안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졌을지도 몰랐다.
드라고는 주의를 환기시켜야 함을 느꼈다.
“확실하게 보고해라!”
소드마스터의 마나가 가득 실린 일갈이 전쟁본부를 울렸고, 거짓말처럼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식량 상태는 어떤가!”
굳은 신념이 어려 있는 드라고의 위엄 있는 목소리에 공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몸을 꼿꼿이 세웠다.
“옛! 현재 제도의 신민을 포함해서 1년을 버틸 수 있습니다!”
천만의 인구를 1년 동안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이 어떠한 양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드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알아야 할 것은 확실한 숫자뿐이었으니까.
“향후의 대책은?”
“예비로 비워놓은 토지를 활용할 계획입니다! 백성들을 동원해서 개간하고 생장마법을 활용한다면 적어도 3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예측됩니다!”
“그럼 됐군.”
확신에 차 고개를 끄덕이는 드라고의 모습에 굳어있던 공안들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병력 상황!”
“옛! 추가로 징집에 들어갔습니다! 황제 폐하에 대한 굳건한 신심덕분인지 자발적으로 군에 합류하려는 백성들이 가득합니다!”
“좋아! 기초적인 교육 이후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해라!”
“옛!”
문제가 된 부분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대응책을 제시하는 드라고의 모습에 굳어져 있던 얼굴이 활짝 펴지고, 모두의 얼굴에 활기가 돌아왔다.
“아직 전쟁 중이다! 국지전에서 패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항상 승리만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렇습니다!”
드라고의 위엄 있는 목소리에 공안들이 일제히 한목소리로 답했다.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가 계시고, 그분은 마지막에는 언제나 승리하셨다. 제군들은 감히 폐하의 승리를 의심하는가!”
“아닙니다!”
기이한 열기가 담긴 목소리가 전쟁본부를 쩌렁쩌렁 울렸다.
“적의 증원을 예상 못 한 것도 아니니 그에 따른 방안을 마련하면 그만이다! 최후에 승리하는 것은 황제폐하가 되실 것이니 너희들은 직무에 충실하라!”
“황제폐하 만세!”
일제히 복명복창한 공안들이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만 이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패배감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다시금 이를 악무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드라고가 몸을 돌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드비히가 예의 목소리로 고개를 숙이며 드라고의 뒤를 따랐다.
“움직여!”
“보고 제대로 하라고 하지 않았냐!”
고성이 난무하는 전쟁본부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기며 드라고가 이를 악물었다.
전쟁은 이제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가슴에 묻으면서 힘차게 발을 굴렸다.
* * *
“황제폐하 만세!”
“…… 왔느냐.”
드라고의 절도 있는 외침에 조금은 힘 빠진 목소리가 들렸고, 드라고는 다시금 이를 악물며 입을 열었다.
“대치 상태로 들어섰습니다. 식량도시를 내어준 것은 뼈아프지만 대책이 없는 것도 아니니 심려 놓으십시오.”
자신감이 넘치는 드라고의 말에 황제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잃은 것은 다시 빼앗으면 그만이지. 그 상황에서 교황이 나타날 줄을 예상하지 못했었어. 뒷방 늙은이인 줄 알았는데 제법 타이밍을 잘 잡더구나.”
다시금 자신감 넘치는 황제의 목소리에 드라고가 안도한 표정을 지었고, 루드비히는 시선을 돌려 연구실 내부를 훑었다.
“…… 끄으으으으.”
겹겹이 싸인 마법진 한가운데에 쿨리크가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고 있었고, 그런 쿨리크의 가슴 위쪽으로 세 개의 구슬이 떠올라 있었다.
마룡의 봉인.
황제에게 격을 더해 진정한 신격으로 화하게 해줄 물건이 그곳에 있었다.
“끈질기군요.”
가는 눈으로 봉인을 관찰하던 루드비히의 한 마디에 연구실 내부의 모두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완전히 분리되어서 가슴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늘고 가늘어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실 한 가닥이 쿨리크의 몸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빛의 용사라는 건가.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군.”
영혼과 일치된 봉인을 분리하는 것이니 그 고통은 육신의 그것을 아득히 벗어나는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순순히 떼어내는 것이 고통을 더는 길일 것인데, 쿨리크는 마지막까지 봉인을 놓지 않으려 저항하고 있었고, 그 저항의 원동력이 무엇이든 간에 쿨리크의 의지는 감탄할만한 것이었다.
“저열하기 그지없는 탐욕이지요. 폐하의 대의에 비한다면 그저 일신의 힘을 바라는 하찮은 욕망입니다.”
“비욘.”
드라고의 말에 비욘이 불쾌한 표정으로 답하며 슬쩍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애초에 쿨리크가 이 자리로 전이되었을 때 쉽게 봉인을 떼어낼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지만, 쿨리크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고, 그 때문에 시간이 꽤나 지체되어 지금까지 온 것이다.
황제 앞에서 허언을 한 모양이 되었으니,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죄.
그렇기에 비욘은 황제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고, 그런 비욘의 속마음을 읽은 황제가 피식하고 웃었다.
“되었다. 상대가 쿨리크였으니 할 수 없지. 그래도 12용사 최강의 사내가 아니더냐.”
원정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108명의 영웅 중 가장 약했지만 원정의 마지막에는 누구보다도 강했고, 결국 마룡에게 치명타를 먹인 자가 쿨리크다.
황제는 적이라고 상대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았고, 쿨리크는 비욘이 상대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물이 맞았다.
“황제폐하 만세!”
환희에 찬 얼굴로 바닥에 넙죽 엎드리는 비욘의 모습에 드라고와 루드비히가 한심한 눈초리로 쳐다보았지만, 고개를 숙인 비욘은 알 수 없었다.
“…… 크흐흐흐흐. 그 모양을 보니 …… 생각대로 잘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군.”
그때 조소를 가득 담은 희미한 목소리가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모였고,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는 와중에도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황제를 노려보고 있는 쿨리크의 모습이 보였고, 모두의 안색이 무섭게 굳어졌다.
“감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비욘의 몸에서 마나가 넘실거리는가 싶더니 마법진이 휘황한 빛을 발했다.
“끄아아아아아!”
“너 따위가 감히 존귀하신 폐하를 능멸하느냐!”
분노에 가득 찬 비욘의 목소리와 쿨리크의 비명소리가 교차했고, 마법진으로 막고 있음에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고통의 감정에 몇몇의 마법사가 가슴을 거머쥐었다.
“흥.”
코웃음과 함께 황제가 한발 나서더니만 가볍게 손을 저었다.
마법진의 빛이 사그라졌고,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던 마법사들이 몸을 추슬렀으며 쿨리크의 몸이 덜덜 떨렸다.
가벼운 손짓 한 번으로 대마법사의 조정을 받는 마법진과 초인의 발악을 잠재운 황제가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다.”
한발자국 더 내디뎌 쿨리크에게 가까이 다가간 황제가 말을 이었다.
“느긋하게 일을 처리하려 했건만 시간이 조금 모자라구나.”
“…… 끄흐! 그 괴물에게 당했구나. …… 크흐흐흐.”
극심한 고통에 몸을 덜덜 떨면서도 클클 거리는 쿨리크의 모습에 황제가 표정을 굳혔다.
“그러니 너도 짐이 과격하게 손을 쓰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야.”
황제의 손이 불쑥 내밀어 지더니 마법의 장벽을 아무런 저항 없이 파고들었다.
이내 그 손으로 봉인을 거머쥐더니만 손목을 비틀었다.
뚜둑!
실제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연구실 내부에 있는 모두의 귀에는 무엇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 순간 쿨리크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오오오!”
“봉인을 저리도 쉽게!”
대마법사와 연구실, 수많은 도제의 힘으로도 조심조심 분리해내던 봉인을 황제는 가벼운 손짓만으로 떼어냈으니 모두의 눈에는 경탄이 일었고, 황제는 무덤덤하게 자신의 손에 든 봉인을 바라보았다.
둥. 둥. 둥.
가볍게 맥동하고 있는 세 개의 봉인은 마치 살아있는 것만 같았고, 황제는 그제야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비욘.”
“예! 폐하!”
경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비욘에게 봉인을 넘긴 황제가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최대한 빠르게 준비해라. 준비가 되는 대로 흡수하도록 하겠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비욘의 결의에 찬 목소리와 함께 마법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고, 황제의 시선이 쿨리크에게로 향했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쿨리크의 몸은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고, 눈에는 빛이 없으니 영혼이 죽은 것처럼 보였다.
“실험체로는 쓸 만하겠군. 저건 네가 알아서 하거라.”
“황제폐하 만세!”
황제를 따라 탐욕스런 눈으로 쿨리크의 육체를 바라보던 비욘이 환희에 찬 표정으로 소리 질렀고, 미소 지은 황제는 몸을 돌렸다.
드라고와 루드비히의 얼굴에 환희가 떠올랐고, 비욘과 마법사들이 각자의 일에 돌입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던 그 때.
쿨리크의 눈가에 희미한 빛이 떠올랐다가 사그라졌지만, 그것을 본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 * *
굳어버린 교황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은 아렌은 품에서 상자를 꺼냈다.
신성문자가 빈틈없이 새겨져 봉인되어 있는 상자.
“으음.”
상자의 모습을 본 교황이 짧은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알고 있는 물건인 탓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교황 자신의 손으로 엄중히 보관되어 있던 것을 창고에서 반출했었으니까.
“깜찍한 시도였다.”
“크흠. 흠!”
아렌의 말에 교황이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콜레트와 코린의 보고로 이야기는 들었지만, 당사자에게서 직접 추궁당하는 것은 경우가 다르지 않은가.
신탁을 받고서 그대로 행한 것인데 설마 그런 내막이 있으리라고는 교황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으니 할 말은 있었지만, 교황이라는 신분으로 차마 신을 비난할 수는 없었으니 시선을 돌린 것이다.
“허어.”
어색한 침묵이 있던 것도 잠시.
한숨을 내쉰 교황이 아렌과 시선을 맞췄다.
무저갱 같은 눈에는 붉은 기운이 떠올라 있었고, 그 안에 담겨있는 광기에 일순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았지만, 교황은 신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
자연스럽게 신성력이 솟아오르며 그의 정신을 일깨웠다.
“따끔따끔하군.”
“…… 대단하시구려.”
교황이 있어서인지 그 어느 때보다 신들의 시선이 아렌을 주시하고 있었고, 실로 상상하기 힘든 압박감이 아렌에게 집중되었지만 아렌은 그저 웃었다.
그런 아렌에게 탄복한 것도 잠시뿐.
교황은 묵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신성이 늘어나지 않으셨소이까.”
“…… 신성 말인가?”
뜻밖의 이야기에 아렌이 자신의 내부를 관조했다.
영혼 깊숙한 곳, 심상의 중심에 자리 잡은 신성의 씨앗을 바라보았고, 아렌은 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그렇군. 너무 미미해서 몰랐다만 늘었어.”
“…… 역시 그렇군요.”
교황의 탄식 섞인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아렌이 감각을 넓혔다.
기감을 넘어서 세상의 이면까지 느낄 수 있도록 감각을 넓힌 아렌은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감정.
자신을 중심으로 수많은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그러한 감정 중 일부가 그에게 모여들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미미했기에 인식하지도 못했던 감정의 조각들.
그리고 아렌은 이러한 현상을 이미 본 적이 있었다.
“신앙입니다. 아렌 공자에게 신앙이 모여들고 있는 거죠.”
아렌의 표정을 살피던 교황이 쐐기를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