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전장이 멈췄다.
모든 이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오직 홀로 고고한 것은 허공에서 막대한 위엄을 뿌리는 황제와 그 주변에 포진한 인원들뿐.
마치 신과 천사의 강림과도 같은 그 모습에 모두들 넋을 잃었고, 병사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릴 정도였으니, 황제는 지상에 강림한 신이 맞았다.
“…… 거짓된 신!”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신성력 가득한 교황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고, 파문이 이는 것처럼 모두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들었다.
황제에게로 쏠렸던 모든 시선이 교황에게로 모였다.
그 모습에 황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지만, 교황은 신으로 화한 황제를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보았으니 전혀 기죽은 모습이 아니었다.
후웅!
저 멀리 천상에서부터 막대한 신성력이 교황을 매개체로 이 땅에 쏟아졌고, 주변의 대지를 성지화하면서 기세를 넓혀가고 있었으니 그 장렬한 기세는 황제의 장악력을 밀어낼 정도.
방패와 투구가 그런 교황의 주위에 둥둥 떠다니며 마치 호위하듯이 그를 감싸고 있었으니 황제도 함부로 손을 쓸 수 없었다.
신격의 조각을 이용한 천사 소환에 성공했다.
대륙의 역사를 뒤져본다고 해도 살아있는 몸으로 천사의 소환에 성공한 예는 극히 드물다.
지금 이 순간 교황은 만신전에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 있었고, 신물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신물인 아이기스와 퀴네에가 교황을 감싸니 제아무리 황제라도 그런 교황을 공격할 수는 없었다.
“감히 참람한 말을 지껄이느냐!”
그런 교황을 향해 비욘이 나서며 크게 소리쳤다.
어느새 비욘의 등 뒤로는 빛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돋아나 있었고, 머리 위 헤일로에서는 후광이 비치니 교황이 불러낸 천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황제의 주변에 떠있는 모두가 마찬가지.
황제가 신으로 승화하던 연구실에 있던 모두가 천사로 화한 것이니, 수십 명의 천사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교황을 노려보고 있었다.
짐승 같은 모습이 아닌 인간의 원형을 가지고 있는 모습.
아마도 황제가 만들어내려던 천사의 완성형일 것이 분명한 수십 명의 시선은 실질적인 물리력까지 갖추어서 교황을 내리누르려 했지만, 교황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지금 교황이 서 있는 대지는 만신전의 일부나 다름없다.
외계의 존재를 막아내는 와중에서도 만신전의 시선은 교황에게 집중되고 있었으니 초짜 신이 만들어낸 천사 따위의 압력에 굴복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런 교황의 모습에 분노한 것일까.
무감정해 보이던 비욘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크게 손을 휘저었다.
부왕!
순식간에 허공에 마법진이 형성되더니만 이어서 찬란하기 그지없는 빛이 교황을 향해 내리꽂혔다.
“레이!”
“저런 대 마법을 저렇게 쉽게?!”
순수한 빛으로 이루어져서 방어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최상위 대인마법이 순식간에 펼쳐졌으니 마법사들이 경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흥!”
모든 것을 꿰뚫을 듯이 다가오는 빛을 보고서도 교황은 움직이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을 막아낸다는 아이기스가 이미 기민하게 움직였기 때문이고, 과연 아이기스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서 어느덧 교황의 앞에 서서 마법을 막아냈기 때문이다.
“음!”
동시에 비욘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저! 저!”
“…… 도대체 언제?”
온통 하얀빛으로 이루어져 있는 비욘의 복부에 검은 화살 하나가 꽂혀있는 것이 아닌가.
불길하기까지 한 검은 화살은 너무도 깊고 어두워서 그 존재감을 더욱 뚜렷이 하고 있었고, 화살을 잡아 뽑아 우그러트린 비욘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마크!”
“오랜만이군. 비욘.”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는 마크가 손을 흔들었지만 전혀 살가운 기색이 아니었다.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살기가 풀풀 날리는 모습으로 온통 일그러진 얼굴은 원한이 골수에까지 맺혀 있는 모습.
지시를 내린 것은 황제였지만 실질적으로 12영웅들에게 온갖 실험을 자행한 것은 비욘이었으니 마크의 이런 원한은 당연했고, 나머지 세 영웅들의 몸에서도 짙은 살기가 마기와 함께 풀풀 피어올랐다.
“못 보던 사이에 패션 센스가 바뀌었군.”
“감히 신의 색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느냐!”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이리 내려와라. 우리는 할 이야기가 제법 있지 않느냐.”
으르렁거리는 마크의 태도에 비욘이 황제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만 이내 일단의 마법사들과 함께 지상으로 향했다.
“가자!”
“…… 그래. 저놈들이라도 때려잡아야지.”
마크를 비롯한 세 명의 영웅들이 앞으로 달려나갔고, 드라고를 비롯한 남은 인원들이 무서운 얼굴로 날개를 활짝 펴며 전면에 나섰다.
제국 내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였던 드라고가 황제의 은총까지 입게 되었으니, 그 능력은 초인의 경지에 이를 정도.
묵직한 기도가 사방을 내리누르니, 황제의 존재감과는 전혀 다른 압박감이 세상을 먹어치우려 했지만, 그 순간 빛이 허공을 달렸다.
쫘자자자작!
소리보다 먼저 도달한 빛이 공간을 넘어 드라고에게 닿았고, 미간을 꿈틀거린 드라고의 손이 빛으로 화하며 대응했다.
쩡!
소리의 여파만으로 경지가 일천한 자들은 몸을 비틀거렸고, 드라고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눈물점이 인상적인 훤칠한 기사가 무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런 말없이 손을 까닥거리는 디어뮈드의 모습에 드라고의 눈에 불똥이 튀겼고, 일단의 천사들과 함께 그에게로 향했으니 공전절후의 대격전이 벌어질 것이 뻔했다.
– …… 벌레 같은 것들이 감히.
황제의 입에서 나직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신이 된 그는 몰랐던 것을 알 수가 있었고, 할 수 없었던 것을 손쉽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전지전능하지는 않았다.
신으로서의 격을 높여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위계를 확실히 정하고 신앙을 수급해야 하지만 이제 막 신이 된 황제에게 마크와 귀족군은 시간을 주지 않은 것이다.
마크가 한 짓은 신앙을 수급하는 시스템에 타격을 준 것이다.
이미 신이 되었기에 자연스럽게 신앙을 수급할 수 있었지만, 억지로 끌어모으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이제 막 신으로 올라선 황제에게는 무엇보다 막대한 신앙이 필요한데 그 한 축을 끊어버렸으니 황제가 자리를 박차고 나설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신이 된 황제의 권능으로도 마법진의 복구는 어려웠다.
마룡을 봉인하고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고통받으며 결국에는 정신이 붕괴해서 악밖에 남지 않은 베럭을 이용한 공격은 제아무리 신이 된 황제라고 해도 쉽게 손을 쓸 수 없었다.
오로지 원념하나만 가지고 마법진을 훼손하고 있는 베럭이 품고 있는 기운은 막강하기 그지없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무려 다섯 개의 봉인이 합쳐진 힘에다 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매개체까지 더해진 힘이 아닌가.
그러한 힘을 중화하기 위해서는 황제 자신도 꽤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고, 결국 새로운 신앙을 보급하기 위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인데 그의 생각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고 있었으니 격렬한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콰르르릉!
그런 황제의 감정에 호응했는지 공기가 크게 흔들리며 천둥이 울렸다.
상서로운 하얀색의 구름이 모이면서 전하가 일어나기 시작했으니, 범상치 않은 이적에 모두의 눈이 크게 떠졌다.
파지지지직!
들어 올린 손에 불똥을 튕기는 번개가 잡히고 크게 휘두르려는 듯 팔을 젖혔다.
그야말로 신벌.
막대한 피해를 유발할 것이 분명한 그 모습에 모두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고, 황제가 비릿한 표정으로 팔을 휘두르려는 그때.
쾅!
– 큭!
막대한 힘이 황제의 미간에 작렬했고, 황제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으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적이지만 신이 된 자가 아닌가.
그런 황제를 물러서게 만들 정도라면 도대체 어떤 공격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경악한 것이다.
“명색이 신이라는 자인데 약자를 괴롭혀서 되겠느냐.”
심드렁한 표정을 지은 아렌이 황제와 마주 보며 허공에 떠 있었다.
* * *
“너희들 모두가 벌레처럼 꿈틀거리던 기억이 나는구나.”
당장이라도 때려죽일 것 같은 기색으로 내려온 비욘이었지만, 막상 대치하고 나니 의외로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황제에 대한 광신으로 가득 차 결국에는 천사까지 되어버렸지만 비욘의 정체성은 마법사.
그것도 제도마탑을 대표하는 경지에 이른 대마법사이니 금세 마음을 진정시키고 상황을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적을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는 너는 그 벌레에게 지식을 구걸했지.”
하지만 마크 역시 범상한 자가 아니었다.
비욘을 비웃고 있지만 그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게 천사들을 살피고 있었고, 실시간으로 적을 분석하는 두뇌는 열기를 높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크는 결론을 내렸다.
“…… 결국 돌고 돌아서 다다른 모습이 우리와 다를 바 없군. 너희도 참으로 불쌍한 존재구나.”
마크의 중얼거림에 담긴 뜻을 파악한 세 명의 영웅이 눈을 빛냈다.
12영웅은 봉인의 영향으로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몸이 되었다.
신체의 결손은 마기로 대체되었고, 사실상 이들은 마기만 충분하다면 몸을 무한히 재생할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비록 봉인은 제거했지만 그간의 세월 동안 이루어진 육체는 이미 마기 그 자체나 다름없어서 별다른 일이 없다면 무한의 시간 동안 살아가야 할지도 몰랐다.
말은 안 했지만 이미 먼저 간 다른 영웅들의 처지가 부러울 정도였다.
저주라면 지독한 저주다.
헌데 마크의 말은 눈앞의 천사라는 자들 역시 자신들과 같은 처지라는 것이었고, 그 말은 황제의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육신을 가직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그들을 그렇게 괴롭히고 고문했던 자들이 결국에는 자신들과 다를 바가 없게 되었으니 마크는 지독한 인과를 느꼈다.
“감히 비천한 마기 따위를 신의 은총과 비교하느냐!”
비욘의 입에서 분노에 찬 소리가 터져 나왔고, 비욘과 함께 내려온 마법사들 역시 얼굴을 크게 일그러트렸다.
오직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역겨운 것을 참아가며 취급하던 마기를 신성한 황제의 기운과 동일시하는 모습에 분노가 치솟은 것이었지만, 그것은 마크와 세 영웅들도 다르지 않았다.
“…… 그래. 그럼 그 비천한 마기에 죽어봐라!”
억눌린 분노가 입에서 새어 나왔고, 동시에 영웅들의 몸에서 정제된 마기가 뭉클거리며 치솟아 올랐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비욘을 비롯한 천사들을 잡아먹을 듯이 몰려오는 마기의 파도에 코웃음을 친 비욘이 크게 외치며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마기의 천적은 신성력이고, 그것은 세상 그 누구도 아는 사실이니 하찮은 마기쯤이야 단번에 제압할 자신이 있는 비욘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맺혔다.
파지지직!
무섭게 진격해오던 마기와 신성력이 맞부딪치니 강렬한 스파크가 솟아올랐고, 세를 넓히던 마기의 물결이 멈칫거렸다.
“봤느냐! 이것이 신의 힘이다!”
마법사이자 대 신관.
크게 웃으며 황제를 찬양한 비욘이 더욱더 힘을 불어넣으며 불신자들을 단박에 녹여버리려던 그때.
쿠릉!
불길한 울림과 함께 위축되었던 마기가 크게 일어나더니만 거꾸로 신성력을 덮어버리는 게 아닌가.
“뭣!”
절대적인 명제가 무너지는 광경에 비욘을 비롯한 천사들의 눈이 크게 떠졌고, 그 순간 마기를 뚫고서 세 명의 영웅이 빛살처럼 쏘아져 들었다.
제각각 희미한 실이 정수리에 연결되어 있었고, 그 끝에서 실을 통해 영웅들과 연결된 마크가 흉악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