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22
022화
베로아와 벡스터의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그림 리퍼.
악마에 가까운 암정령이라는 사실은 대부분이 모르고 있지만, 목숨을 걷어가는 사신이라는 설화나 전설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던 이름이니까.
아렌 역시 그림 리퍼의 일렁이는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생의 아렌 역시 괴련난신怪力亂神을 접한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영체靈體나 악령惡靈을 접한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 세계의 악령.
단순히 무력만으로 정리하기에는 워낙에 변수가 많은 것이 악령이다.
스르륵.
긴장한 일행의 모습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인지, 잠시 빛 무리를 흡수하던 그림자가 벽 안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허엇!”
“후우.”
그림 리퍼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제 자리에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는 일행이었지만, 아렌의 시선은 그림 리퍼가 사라진 벽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여전히 기이한 빛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한 참을 쳐다보던 아렌이 레티시아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아렌의 모습을 훔쳐보던 레티시아가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지만 역시 아렌은 신경 쓰지 않았다.
“말해 봐라.”
아무런 주어도 없는 갑작스런 물음에 당황할 만도 하지만, 찰떡같이 알아들은 레티시아가 긴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림 리퍼라는 악령이에요. 정령이라고도 하고 악마라고도 하는데, 주로 생의 마지막 순간에 목숨을 걷어가는 사신死神으로 여겨집니다.”
중원으로 따지면 명부사자冥府使者쯤 되는 신이神異한 존재라는 말이 아렌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실제로 그 정도로 위계가 높은 존재는 아니에요. 다만 능력은 일반적으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면이 있죠.”
“자세히.”
속내를 알 수 없는 아렌의 눈빛을 보면서 레티시아가 침을 꼴깍 삼켰다.
“마주하는 존재는 항거할 수 없는 공포와 무력감을 느낀다고 해요. 저항한다고 해도 영체이기에 마법이나 오러가 아니면 타격을 줄 수가 없고, 저주의 오러를 항상 두르고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각종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전설로만 들어보던 그림 리퍼의 무서움을 자세히 설명하는 레티시아의 모습에 베로아와 벡스터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레티시아가 미리 걸어놓은 정신 방어가 아니었다면 일행은 패닉에 빠졌을지도 몰랐다.
“영체이기에 지형의 영향을 받지 않고, 물리력도 상당한 편이라서 소드 익스퍼트 중급 이상의 무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고, 탄생한 환경에 따라서는 다른 특수능력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절망만 느껴지는 내용이었지만 아렌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신관의 정화에는 약한 면모를 보이지만 정령과 악마의 경계쯤에 걸쳐 있어서 그런지 절대적이지도 않아요. 딱히 약점이 없고 상대하기 까다롭죠.”
이야기를 뱉어낸 레티시아도 자신이 말하는 내용의 처참함에 점점 표정이 구겨졌지만, 역시 아렌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 도련님.”
베로아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아렌을 바라보았다.
블랙 코크로치가 제 아무리 국가 재난급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실체가 있지 않았는가.
지금 그들의 앞에 나타날 것이 확실한 상대는 지역에 따라서는 신으로도 추앙받는 존재.
제 아무리 강력한 아렌이라도 상대하기 힘든 존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알겠다.”
일행의 걱정과 절망의 시선을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아렌은 평상시와 전혀 다름없는 말투로 말했다.
“가자.”
“괜찮으시겠습니까. 도련님.”
근심어린 표정의 벡스터가 조심스레 물었지만 아렌은 여전히 아무런 표정 없는 얼굴로 짧게 답할 뿐이었다.
“괜찮다.”
상대가 무적에 이른 신이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
아렌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 * *
그림 리퍼가 언제 어느 때 갑자기 튀어나올지 몰라 잔뜩 긴장하며 온갖 방호마법을 유지한 레티시아는 물론이고 언제든지 오러를 뽑아낼 수 있게 단단히 준비한 벡스터가 제풀에 지쳐갈 정도였지만, 일행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변함없는 것은 아렌 뿐.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아렌의 태도는 생각보다 의지가 되었고, 일행은 아렌의 등만을 바라보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정신적으로 지쳐가던 레티시아가 슬쩍 아렌을 보더니 슬며시 입을 열었다.
“공자님 정도면 던전을 부술 수 있지 않나요?”
제법 뛰어난 마법사인 그녀도 이 던전이 정상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것은 파악한 상태.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시험이 정상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확신이 든 레티시아는 시험 자체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녀 자신의 실력으로는 힘들겠지만 끝 모를 강함을 소유하고 있는 괴물 같은 아렌이라면?
어쩌면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레티시아는 조심스레 말을 건넨 것이다.
“글쎄.”
여전히 구석구석에 보이는 공간의 어색함을 살피던 아렌이 답했다.
“그러면 도련님이 손을 써 주시면.”
블랙 코크로치만 해도 어이가 없는데, 그림 리퍼의 존재까지 확인했다.
일반적인 몬스터에게 당하는 것과 악령에게 당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희망이 보이니 레티시아의 표정이 밝아지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더 이상 대답하지 않는 아렌을 보면서 레티시아의 표정이 급격하게 가라앉았지만, 이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할 수 있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은 천지차이.
마법으로 이루어진 던전을 힘으로 찢어발길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놀라운 일이지만, 뭐든지 강제적으로 일을 처리하다보면 어떤 사고가 생길지 모른다.
심지어 대규모의 인원을 이면 세계로 정신 전이하는 고도의 마법이라는 것을 상상 해본 적도 없는 레티시아이기에 아렌에게 더 이상 대답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최후에는 쓸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려는 그때.
“으아아악!”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가 동굴 저 너머에서 울려퍼졌다.
* * *
베네프트는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격식을 중요시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실용적인 성격이다.
그런 그가 결정을 내리고 사람을 모집했으니,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필요한 인원을 모을 수 있었다.
“급하게 호출해서 죄송합니다.”
“별 말씀을.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은 들었습니다. 더 빨리 오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울 따름이죠.”
정중하게 말하며 성호를 긋는 듀란 사제를 보면서 베네프트는 한 시름 덜 수 있었다.
마법사와 경지에 이른 기사도 정령과 악마, 영체들을 상대할 수 있지만, 누가 뭐래도 그런 종류의 적을 상대하는 데에는 신관만 한 직종이 없는 것도 사실.
2시간은 걸릴 거라는 신관들의 귀환을 앞당기기 위해 비상용 순간이동 마법진까지 동원해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흐음. 영체용 장비는 없어서 ······ , 언데드 상대용 장비를 준비했는데 괜찮겠는가?”
은은한 빛이 감도는 전신 갑옷으로 중무장한 노기사가 입을 열었다.
커다란 덩치에 순박한 얼굴이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지만, 무려 익스퍼트 최상급의 강자.
아카데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검술의 소유자인 발드 교수다.
“충분합니다. 정신 방호 쪽에 더 신경을 쓰시면 될 겁니다.”
베네프트의 시선이 모인 인원들을 훑었다.
마법진을 통해 이면 세계로 진입하기로 한 인원은 여섯.
기사 한명에 마법사 둘, 신관 셋.
방어적인 검술과 탁월한 방패술을 지녀 수없이 많은 전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발드, 구마사제로서의 경험이 풍부한 듀란과 그를 보조할 사제 둘, 흑마법에 조예가 깊은 타린과 마지막으로 베네프트 자신까지.
어지간한 던전 하나쯤은 순식간에 쓸어버릴 전력이 모여 있었다.
“목표는 그림 리퍼입니다.”
베네프트의 말에 일행의 시선이 모였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진을 우회하여 악령을 풀어놓은 상황입니다. 덕분에 올해 입교식은 엉망이 되었죠.”
미지의 상대에게 이를 갈며 말하는 베네프트의 모습에 일행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미 희생자가 나온 상황이고 더 이상의 희생자는 없어야 합니다.”
분노로 가득 찬 마음이었지만 일행 하나하나와 눈을 맞춘 베네프트는 든든한 느낌을 받았다.
입교생들이 개화하기 전의 엘리트들이라면 눈앞의 일행은 활짝 피어나 대가의 경지에 이른 강자들.
“리암!”
“준비되었습니다!”
마법진을 조작하며 대기하던 리암이 화답했고.
“엘레강스하게 가도록 하죠.”
이런 상황에서도 엘레강스를 외치는 베네프트의 모습에 일행이 피식 웃으며 마법진이 가동되었다.
* * *
빠르게 이동한 일행이 동굴을 벗어났을 때 본 것은 끔찍한 광경이었다.
“저, 저리가!”
“커, 커어억!”
“히이익!”
넓은 공터 이곳저곳에 쓰러져 있는 입교생들의 모습도 그렇지만 그런 것이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의 참혹한 광경.
스으으.
허공에 거대하게 일렁이는 그림 리퍼에게 밀려 벽에 부딪친 입교생에게 다가선 그림 리퍼가 얼굴로 추정되는 부분을 입교생에게 가져다 댄 것이다.
“아! 아아아악!”
제법 실력이 있는지 오러가 번들거리는 검격이 그림 리퍼의 온 몸을 난자했지만, 마치 연기를 베고 지나간 것처럼 일렁이는 몸은 그대로 검을 통과시킬 뿐, 피해를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일렁이는 양 손이 입교생의 얼굴을 잡고 마치 키스 하듯이 얼굴을 가까이 댄 그 순간.
“허, 허어어어.”
입교생의 눈과 코, 입에서 희끄무레한 영기靈氣가 그림 리퍼의 눈과 입으로 추정되는 구멍으로 흘러들었다.
“커, 커어어”
탱!
필사적으로 검격을 날리던 팔이 아래로 쳐지고, 가지고 있건 검을 놓쳐버리는가 싶더니 이내 몸 전체가 지직거리면서 흐려지기 시작했다.
반대로 그림 리퍼의 모습이 방금 전보다 확연히 진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저 괴물은 사람을 포식함으로서 실시간으로 강해지고 있다는 결론.
동굴 구석구석 널브러진 입교생들의 모습이 기직거리며 흐려진 것으로 보아 이 괴물의 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의 혼백을 빨아먹는 괴물의 등장에 아렌의 기색이 달라졌고.
“갈喝!”
크게 외친 기합이 실체적인 힘을 가지고 그림 리퍼에게 집중되었다.
둥!
커다란 북을 치는 것 같은 울림이 그림 리퍼의 전신에서 울리는 가 싶더니 흐릿한 몸뚱이가 크게 일렁거렸다.
툭.
한참 혼백魂魄을 탐하던 입교생의 몸이 바닥에 떨어지고 그림 리퍼의 시선이 아렌에게로 향했다.
파지직!
“헛!”
“흡!”
“프로텍팅!”
거대한 로브를 뒤집어쓴 것 같은 모습에 얼굴로 추정되는 곳에는 깊은 어둠만이 있을 뿐.
그리고 그 깊은 어둠에서 눈으로 추정되는 공허가 일행을 주시하는 순간, 레티시아가 열심히 유지하고 있던 방호 마법이 발동하며 허공에 스파크를 튕겼다.
보는 것만으로 아득한 절망감과 공포가 잠식해 들어서 저절로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온 몸에 흐르던 그 때.
스컥!
아렌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는 가 싶더니 이내 볼에 한 줄기 상처가 나타났다.
“도련님!”
대경실색한 베로아가 비명을 질렀지만, 아렌의 시선은 그림 리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시각으로 인지하지 못할 속도로 공간을 넘어 휘둘러진 자신의 낫에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아렌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그림 리퍼의 모습을 보면서 아렌은 자신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후끈 거리는 상처와 끈적이는 피.
용린을 전개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자신의 호신기공을 뚫고서 몸에 상처를 입힌 그림 리퍼와 작은 손에 묻은 핏자국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쿠웅!
아렌의 몸에서 장대한 기운이 사방으로 넘실거리기 시작했고, 순간적으로 그림 리퍼의 일렁임이 커졌다.
손가락으로 자신의 핏자국을 비비던 아렌이 바닥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