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온통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되어진 거대한 장소는 보는 이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제 아무리 자신의 부에 자신이 있는 자라고 할지라도 이 장소에 들어서는 순간 위축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이 거대하고 화려한 대전이야말로 제국의 힘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좌우로 늘어서 있는 화려한 기둥 사이에는 고급스런 의자들이 구비되어 있어서 관료들과 귀족들이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어 있었고, 한참이나 높은 단 위에는 황금 옥좌가 마련되어서 황제의 위엄을 한껏 뿜어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곳.
황제가 정무를 보고 귀족이나 사신들을 맞이하는 이 대전에 오랜만에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 이 부분은 양보할 수 없소이다!”
“무슨 말을!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지!”
“…… 다시 한번 해 보자는 거지?”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소!”
서로 멱살만 안 잡았을 뿐이지 고성방가가 오가며 얼굴을 붉히고 있는 귀족들과 관료들의 분위기는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전쟁이라는 것은 무수한 물자를 잡아먹는 것이고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거꾸로 승리한 자가 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무엇보다 이번 전쟁에 동원된 물자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준.
눈이 돌아간 알코르가 그라인드의 창고를 개방하여 무차별적으로 황금을 쏟아 부었고, 그 덕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터였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이 연합군의 수장인 마르틴도 인정하는 바였으니, 모르긴 몰라도 메카니와 그라인드가 가장 큰 것을 가져갈 것이 뻔했다.
거기다 아렌.
신마저 때려잡는 초인의 존재는 그들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으니, 남은 귀족들은 최대한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서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고, 재빠르게 황태자를 중심으로 뭉친 관료들은 어떻게든 뺏기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쟁에서 지고, 무려 황제가 살해당한다는 참담한 일이 일어났지만 그것을 입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은 패배했으니까.
어떠한 명분도 그들의 패배를 가리지는 못했고, 돌아가는 분위기 상, 황가를 끌어내리려는 것 같지는 않으니 다행이지만 어쨌든 패자는 유구무언인 법이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라도 덜 내주기 위해 핏발을 세우는 관료들의 모습은 생전의 황제가 왜 그들을 중용했는지를 알게 해 주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서로를 무섭게 노려보며 설전을 계속하는 이들의 뒤에는 진정한 실세라고 하는 자들이 조용히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르틴과 알코르를 비롯한 귀족들.
황태자 로드리고를 비롯한 황자들.
별다른 말없이 앉아 있는 모습이었지만 이들의 기세는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았으니 이 회담이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로드리고의 눈에 황금 옥좌가 보였다.
본래라면 황제가 저 자리에 앉아 만방에 위엄을 과시하며 여타의 귀족들과 관료들을 찍어 누르며 국정을 이끌어 나갔겠지만, 옥좌의 주인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순서대로라면 로드리고가 저 옥좌에 앉아 위엄을 과시해야겠지만, 마르틴을 비롯한 귀족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모욕.
서로 대등한 높이에 마주 앉음으로써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모욕을 황가에게 주고 있었고, 로드리고의 동생들은 그 사실 때문인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정작 로드리고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 자업자득인가.’
아버지가 살해당했음에도 별다른 감정이 솟지 않는 것을 느끼면서 로드리고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황제였지만 정작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였냐고 물으면 로드리고는 자신 있게 고개를 저을 수 있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황제는 신이 될 생각이 가득해서 혈육에 큰 의미를 쏟지 않은 것이 분명했으니, 총명하기 그지없었던 로드리고는 일찍이 황제에 대한 애정을 포기했던 것이다.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겠지.’
감정에 휘둘리는 동생들과는 달리 로드리고는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제국은 너무 커졌다.
국경에서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거야 요식 행위나 마찬가지이고, 제국이 진정으로 마음을 먹으면 나머지 왕국을 정벌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다만 그러지 못했던 것은 제국 내부에 잠재해 있던 위험 요소 때문이었고, 어지간한 왕국 못지않은 전력을 가지고 있는 대귀족들이 즐비했으니 황제가 쉬이 움직이지 못한 면이 컸다.
‘……메카니의 독립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이고……. 그라인드는 작위를 올려 주는 것으로 되려나? 여전히 알코르는 읽기 어렵군.’
눈을 희번득거리며 독립하겠다는 의지를 풀풀 내뿜고 있는 마르틴과는 달리 알코르는 특유의 피곤한 얼굴로 별다른 의견을 내고 있지 않았다.
오직 그라인드의 재무관 아인만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한 푼이라도 더 빼앗기 위해서 날뛰고 있었을 뿐.
사실 저 둘을 제외한다면 어지간한 요청은 내주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제국은 크고, 황가가 가지고 있는 것은 충분했으니까.
꽤나 많이 뜯겨 나간다고 해도 여전히 제국은 제국일 것이고, 황가의 힘은 쇠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루드비히는 황제와 달리 내실과 안정을 추구하는 유형이었으니 그리 안타까울 것도 없지만, 온전한 제국을 물려받지 못한다는 것은 제아무리 그라도 마음이 쓰렸다.
그렇게 각자의 생각이 교차하면서 열기가 고양되는 그때.
저벅.
그리 크지 않은 발자국 소리에 신기하게도 모두의 말이 멈췄다.
저벅.
슬며시 시선이 돌아가고 발자국의 주인을 확인하는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벅.
제국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위기에도 변하지 않던 로드리고의 표정에 금이 갔고, 붉게 달아올랐던 황자들은 급급히 머리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저벅.
화려하기 짝이 없는 백금발과 수려한 이목구비는 화공이 정성 들여 그려 낸 그림과도 같았고, 훤칠한 키와 당당한 자태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귀족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저벅.
하지만 표정.
아무런 감정도 없어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얼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속에 서늘함이 차오르게 만들었고, 그의 이름과 명성을 아는 이는 저도 모르게 등허리에 소름이 돋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아렌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 그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대전의 온도가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왔느냐.”
“예.”
오직 한 명.
알코르만이 별다른 변화 없이 아렌을 맞았고, 아렌이 고개를 숙이며 회답했다.
영지의 후계자도 아니고 일개 혈육인 주제에 중요한 회담 장소에 난입했으니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며 타박해야 함이 마땅했지만, 그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아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회담에는 관심이 있는 것 같지 않은데. 무슨 일이냐.”
“영지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아렌의 시선이 황제 측 관료들을 훑었고, 하얗게 얼굴이 질린 관료들이 분분히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귀족군에게는 승리의 대명사이지만 황제군에게는 절망 그 자체인 아렌이니 이러한 반응은 당연한 것이다.
“제가 필요한 일이 있습니까.”
아렌의 말에 하얗게 질린 관료들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
같은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압박감이 심한데 본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대부분의 관료들은 심장 마비나 호흡 곤란으로 떼죽음을 당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알코르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금 예의 피곤한 표정을 지은 알코르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괜찮다. 고생했으니 쉬어야겠지.”
“그럼! 아렌 공자야말로 이번 전쟁의 일등 공신이 아닌가!”
관료들의 모습을 살피던 마르틴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고, 시퍼렇게 질렸던 관료들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알겠습니다.”
알코르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려던 아렌이 한마디를 더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호출하십시오. 바로 달려오도록 하죠.”
“그러마.”
“흡!”
아렌이 물러나는 줄 알고 마음을 놓았던 관료가 새된 숨소리를 내며 가슴을 두들겼지만, 그것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저벅.
그렇게 아렌이 대전을 벗어나서도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고, 아인이 손을 비비며 얼굴을 들었다.
“자.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 볼까요.”
비릿한 미소를 지은 그의 얼굴을 보면서 관료들이 표정을 구겼다.
* * *
따스한 햇살과 귓가를 간지럽히는 새소리에 엘렌은 눈을 떴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천장의 모습과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한 엘렌이 커다란 눈을 깜박이던 것도 잠시.
“이야아아.”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합과 함께 온몸을 쭉 핀 엘렌이 몸을 옆으로 굴렸다.
“야압!”
꽤나 커다란 침대였지만 열심히 구르던 꼬마는 어느덧 가장자리에 도달했고, 작디작은 몸이 떨어져 내렸다.
폭.
바닥 가득 쌓여 있던 쿠션이 엘렌의 작은 몸을 상처 하나 없이 받아들였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나가 작게 미소 지으며 엘렌에게 다가갔다.
“그러면 위험하다니까요. 아가씨.”
“헤헤헤헤.”
시선을 슬금슬금 피하며 환하게 웃는 엘렌의 모습에 유나는 피어오르는 미소를 애써 참으며 최대한 근엄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엘렌의 기행에 질릴 만도 하건만 유나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고, 한차례 잔소리 이후에 엘렌을 일으켜 세웠다.
“정려엉. 정려엉.”
“아가씨도 참.”
양팔을 벌리며 칭얼대는 엘렌의 모습에 유나가 운디네를 소환했다.
“운디네에!”
아이의 천진난만함에 기분이 좋은 것인지 환하게 웃은 운디네가 엘렌의 주위를 한 바퀴 도니, 커다란 물 덩이가 엘렌의 몸을 완벽하게 씻어 냈다.
“아푸!”
한두 번이 아닌지 익숙하게 세안을 끝마친 엘렌에게 유나가 옷을 입혔고, 씩씩하게 선 엘렌은 이제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끝마쳤다.
“식사가 준비되었어요.”
그런 엘렌의 손을 이끌고 유나가 자리를 옮기려 하자 엘렌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렌 오빠아아.”
방실방실 웃으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엘렌의 모습에 유나가 그럴 줄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도련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으응!”
확답을 들은 엘렌이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들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아가씨! 천천히 가세요!”
아직 소환되어 있던 운디네가 엘렌의 뒤를 따르며 보살피고 있었지만, 작을 발을 열심히 놀리는 엘렌의 속도는 일반적인 꼬마의 것이 아니었으니 유나는 늘 걱정이 앞섰다.
“히히히히.”
그런 유나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개구지게 웃으며 저택을 달리는 엘렌의 모습에 사용인들이 분분이 비켜서며 고개를 숙였다.
“엘렌 아가씨. 잘 주무셨습니까.”
“아가씨. 천천히 뛰세요.”
“어어.”
마주치는 모든 이들에게 건성으로 손을 흔들며 달려가는 엘렌의 모습은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힘이 있었고, 걱정하며 엘렌을 살피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 왔다아!”
그렇게 엘렌이 거침없는 질주를 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화려하기 그지없는 문을 엄숙한 자세로 지키는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고, 엘렌은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이런!”
“문을 열어!”
마치 문이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도도도 달려오는 엘렌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 기사들이 급히 문을 좌우로 열었고, 커다란 문이 열리며 그 너머의 풍경이 보였다.
“아렌 오빠아아!”
훤칠한 백금발의 청년이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에 환하게 웃은 엘렌이 달려가던 기세 그대로 몸을 날렸다.
꼬마치고는 제법 높이 날아오른 엘렌의 모습에 청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만 자리에서 일어나 엘렌을 앉혔다.
“얌전하지 못하구나. 엘렌.”
“이히히히히.”
아렌과 같은 찬란한 백금발 머리를 가슴에 비비며 엘렌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