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전쟁보다도 더 길었던 치열한 시간이 지나고 황제군과 귀족군은 협정의 내용을 발표했다.
메카니 공작가가 공국으로 독립했다.
남부의 맹주라고 할 수 있는 메카니 공작가가 자신들을 따르는 귀족들을 데리고 통째로 떨어져나갔고, 마르틴은 공왕의 자리에 올랐다.
오만의 메카니라고 불릴 만큼 자부심이 강하고 명예를 위해서라면 기둥뿌리도 뽑아내는 것이 그들이니만큼 마르틴의 즉위식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제국 남부는 전통적인 귀족주의가 깊이 남아 있는 곳.
당연히 남부의 귀족들도 메카니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예물을 준비하니, 공왕의 즉위식에 참석한 모두는 그 화려함에 혀를 내둘렀고, 한동안 대륙의 사교계는 그 화려한 즉위식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라인드는 여전히 제국에 남았다.
백작에서 후작으로 승작했으니, 옛 왕실의 후예나 황실의 일원이 아닌 귀족으로서는 최고의 위치에 올라선 것.
무엇보다 황실과의 협상으로 제국의 상권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으니, 세인들은 그라인드의 금이 마르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메카니의 공녀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 로렌은 정식으로 그라인드 후작이 되었고, 알코르는 모든 권한을 내려놓고 후작령의 깊숙한 곳에 은거했다.
여전히 공포에 질려있는 잉그리드와 함께 은거한 알코르는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을 천명했고, 그런 알코르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조금은 가셔있었으니 그를 아는 모든 이가 그의 휴식을 축복했다.
알렉세이의 밑에서 검을 갈고닦은 다렌은 실질적인 그의 후계자가 되었고, 푸른늑대 용병단과 이제는 기사단이 된 붉은가지의 기사들을 거느리고 전쟁터로 향했다.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그 모습에 로렌과 그라인드의 원로들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다시금 시작된 제국과 왕국들의 국지전에 투입되어 이름을 날렸다.
승리에 대한 지분이 제법 큰 데미안은 타인이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기존의 피렌사가 가지고 있던 영지를 반납하고, 그라인드의 지근거리에 새로운 영지를 받아낸 것이다.
“피렌사의 목표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초인의 위계에 올랐음에도 변함없는 태도였고, 이 한마디로 그의 마음을 대변했으니 고집쟁이도 이런 고집쟁이가 없다고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데미안의 속셈은 달랐다.
든든한 스폰서가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절실히 깨달은 데미안은 아예 자신들의 영지를 그라인드에게 위탁해버렸고, 이것은 그라인드의 입장에서도 꽤나 괜찮은 거래였던 것이다.
대륙 전체에서도 최강을 논할 수 있는 소수정예집단.
넘쳐나는 황금으로 그들을 살피는 것만으로 유사시에 동원할 수 있는 특기전력이 생기는 것이니 그라인드의 입장에서는 쌍수를 들 만한 일이었고, 두 가문의 이해가 일치했으니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었다.
공작가가 후작가에 편입되는 모양이었지만 신을 만들어낸다는 목표를 위해서는 이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는 자들이 피렌사이다 보니 귀족들은 그러려니 했다.
와이즈너의 행보도 피렌사와 다르지 않았다.
일족 대부분이 죽어서 몇 남지 않은 와이즈너의 혈족들 역시 기존의 영지를 반납하고 그라인드의 옆에 붙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8대 귀족이라는 이름과 이번 전투에서 보여준 리헐트의 공로가 인정되어서 제법 커다란 영지를 받아낸 와이즈너는 이런저런 협상 끝에 그라인드가 있는 남동부에 영지를 받아내었고, 그 위치는 피렌사와 그라인드가 절묘하게 둘러싸 있는 형상이었으니, 그 사실은 안 귀족들은 혀를 내둘렀다.
결국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힘.
모략의 와이즈너라고 불리며 그 악랄한 심계로 이름을 날려 왔지만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손을 쓸 수 없었던 것을 절실히 깨달은 판단이었던 것이다.
명망 높은 세 개의 가문이 지근거리에 묶였으니 사소한 분쟁이 일어날 만도 하건만 의외로 세 가문은 꽤나 사이좋게 공존했다.
이는 세 가문의 성향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 컸고, 각각이 전혀 다른 것을 가지고 있었으니 서로를 절묘하게 보조하는 관계가 된 것이다.
덕분에 그라인드가 있는 남동부는 사실상의 독립국 취급을 받아서 황제의 자리에 오른 로드리고의 속을 쓰리게 했지만, 그가 손을 쓸 수 있는 범주의 일이 아니었다.
이 밖에도 무수한 협의가 이루어졌으며 전체적으로 귀족들의 이권이 크게 강화되었다.
황제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 다른 왕국과 비슷한 봉건군주의 영향력이 강한 시기로 돌아가 버린 상황.
당연히 제국의 역량은 크게 약화되었고, 내전의 결과를 지켜보면 전쟁을 멈췄던 왕국들은 다시금 제국에 국지전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가는 법.
쪼그라들었지만 제국은 제국이었고, 내실 지향적이었던 로드리고가 크게 군대를 일으켜 국경으로 보내니 국지전이 아닌 전면전의 수준까지 커져버렸다.
황실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로드리고는 외부의 적을 만듦으로서 국면을 타파하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로드리고의 노림수는 적중해서 신화와도 같았던 내전을 지켜보며 몸이 근질근질 거렸던 제국의 수많은 귀족들이 참전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황제와는 달리 로드리고는 귀족들의 참전을 막지 않았고 공정한 보상을 약속했으니 그동안 쌓아왔던 힘이 폭발해버린 것이다.
전면전이 되어버린 분쟁은 식을 줄을 몰랐고, 귀족들은 너도나도 무기를 들고 참전했지만 왕국들도 만만치 않았다.
제국의 기다란 국경선 전체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쉬이 끝날 것 같지 않았고, 그렇게 대륙은 또 다른 시간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 * *
로이드는 언제 어디서나 당당한 사내였다.
자랑스러운 와이즈너의 혈족답게 총명하기 그지없었고, 오러에 대한 재능도 있어서 모두가 그를 인재라고 치켜세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한 평가에도 자만하지 않은 로이드는 자신에 대한 단련을 끊이지 않았으니 조금 날카로운 외견의 귀공자는 주변으로부터 혼담이 끊이질 않았고, 리헐트의 자랑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재능과 혈통, 쉬지 않고 자신을 갈고닦는 자세까지.
그렇기 때문에 로이드는 언제 어느 곳에서도 가슴을 펼 수 있었고, 그를 아는 모두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래서.”
느릿한 한 마디가 송곳처럼 귀속으로 파고들었고, 당당하기 그지없는 로이드는 지금 이 순간 주저앉지 않는 자신을 칭찬했다.
백금발을 늘어트리고 그림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이 귀공자의 앞에 선다면 그 누구라도 자신과 같을 거라고 끊임없이 되뇌며 최대한 정신을 부여잡으려고 노력했다.
“엘렌과 결혼하려고 한다고?”
아무런 감정이 섞이지 않은 것 같은 목소리였지만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한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견디어낸 로이드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옛!”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로이드의 모습에 새침한 표정을 지은 엘렌이 양 허리에 손을 얹었다.
“아이 참! 표정 좀 풀어 오빠! 로이드가 힘들어하잖아.”
“나는 원래 이런 표정이다.”
“아니거든!”
타인은 구별하지 못하겠지만 아렌의 표정이 묘하게 구겨져있다는 걸 엘렌은 대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업어 키우다시피 한 여동생의 호통에 아렌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냥 개구지고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던 꼬마가 어느새 자라서 남편감이라고 데려온 모습을 보니 제아무리 명경지수와도 같은 아렌이라고 할지라도 동요를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쯧.”
용의 눈으로 로이드의 신체를 넘어 영혼 깊숙한 곳까지 한 번에 파악한 아렌은 혀를 찼지만 이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아렌의 눈에 차는 인재가 세상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로이드는 꽤나 괜찮은 인재였고, 자신 앞에서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 모습에 수긍한 것이다.
“형은 뭐라고 하더냐.”
한없이 무거웠던 공기가 가라앉는 것 같았고, 그 변화를 느낀 엘렌이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로렌 오빠는 괜찮데. 오빠만 허락하면 괜찮다고 했어.”
아렌이 엘렌을 지극정성으로 아끼는 것은 그라인드를 넘어서 귀족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전쟁 이후에는 영지에서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렌의 초월적인 신위를 모르는 귀족은 아무도 없었고, 그렇기에 엘렌의 가치는 수직상승하다 못해 하늘에 닿을 지경.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키워왔던 엘렌이 결혼하겠다고 외쳤으니 모두들 아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고민하던 로렌은 결국 아렌에게 공을 떠넘긴 것이다.
“쯧.”
자신의 작은 행동에도 어깨를 움찔거리는 모양이 영 마음에 안 들었지만 엘렌의 태도를 보니 막기에는 글렀다.
그렇다면 최대한 축복해주는 것이 옳은 일일 것.
“…… 엘렌을 울리면 가만 안 둔다.”
“예! 옛!”
“와아! 고마워 오빠!”
환하게 미소 지으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엘렌의 모습을 보면서 아렌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 * *
세상 그 어떤 초인이라고 할지라도 시간을 다룰 수는 없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갔으며 세상은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먼저 올라가보겠습니다.”
온몸을 환하게 빛내는 디어미드의 말에 아렌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초인의 경지에 올라서도 디어뮈드는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결국 에테르 바디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초인을 뛰어넘는데 성공했으니 대륙의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쾌거였지만 동시에 아렌은 만신전의 속셈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디어뮈드가 경지를 뛰어넘기가 무섭게 천상에서 강력하게 부르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결국 지상에 남아있는 초인이라는 자들은 자신을 갈고닦아 승천하여 만신전의 전력이 되는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외려 기쁘기도 하군요. 검은 휘두를 수 있어야 검이니까요.”
“…… 네가 괜찮다면 괜찮겠지.”
“그럼 보증하십시오.”
끝까지 충성스러웠던 디어뮈드가 한줄기 빛으로 화해 천상으로 향했고, 가만히 눈을 감은 아렌이 세상을 살폈다.
세상 곳곳에 숨어있는 초인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강한 영기를 느꼈고, 결국 모든 것은 세상을 수호하기 위함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라인드는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었고, 내심 신경이 쓰였던 엘렌의 자손들도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렌이 세상에 나서지 않은 지도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라인드의 원로들은 아렌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아렌이 세상 속에서 잊혀진지도 꽤나 오래.
그나마 디어뮈드가 곁에 있어서 별다른 저항 없이 지냈던 것인데, 그나마 가장 큰 연이 있던 디어뮈드가 사라진 지금, 아렌은 인과율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세상을 주시하던 아렌이 입을 열었다.
“바인드.”
“예. 도련님.”
땅바닥에서 불쑥 솟아나온 것처럼 나타난 바인드 역시 아렌이 처음 만났던 바인드가 아니었으니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은 이리도 야속했다.
“떠나라.”
“…… 어디로 가야합니까?”
황망한 명령이 분명한데도 의문을 표하지 않는 모습에 아렌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 공간을 봉쇄하겠다. 잠이나 한 숨 자야겠어.”
디어뮈드라는 인연덕분에 간섭을 받고 있지 않았지만 그 인연이 사라진 지금, 아렌에게 수면기가 찾아온 것이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니 기약할 수 없지. 그동안 수고했다.”
“…… 언제까지고 기다리겠습니다.”
침중한 목소리로 고개를 숙인 바인드를 바라보며 아렌은 미소 지었다.
* * *
쿠르르릉!
‘…… 시끄럽군.’
온 공간을 울리면서 퍼져나가는 소리에 아렌은 눈가를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콰콰쾅!
진동과 폭음이 격렬해지며 점점 가깝게 다가오고 있었고, 영원히 잠들어있을 것만 같았던 아렌의 정신이 서서히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탕!
쿠쿵!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음에 아렌의 정신이 밝아졌고, 온몸에 힘이 들어찼다.
우드득.
“…… 허어.”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인지 굳을 대로 굳어진 온몸의 관절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아렌은 한번 크게 휘젓는 것만으로 몸의 상태를 원래대로 돌릴 수 있었다.
웅.
잠들어 있던 여의주가 기지개를 켰고, 정기가 넘치는 아렌이 몸을 일으켜 사방을 훑었다.
시간의 흐름에 삭아버린 주변의 모습이 보였고, 아렌이 심혈을 기울인 봉인은 그 빛을 잃기 직전.
“적이 몰려옵니다. 아가씨!”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버텨!”
두텁기 그지없는 문 너머로 소음과 비명이 가득 들렸고, 아렌의 눈가에 흥미가 떠올랐다.
콰쾅!
“열렸다!”
커다란 폭음과 함께 고풍스런 양식으로 만들어진 문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고, 그 저돌적인 방식에 아렌의 눈가가 찌푸려졌던 그때.
먼지를 뚫고 희희낙락하며 방안으로 들어선 소녀가 아렌의 모습을 보고 멈칫했다.
“…… 누구세요?”
“그러는 너는 누구더냐.”
콰콰쾅!
“아가씨!”
긴박한 비명과 굉음이 가득했지만 엘렌은 눈앞에 서 있는 그림 같은 귀공자에게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너무나도 완벽해서 마치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귀공자가 자신과 같은 백금발을 늘어트린 모습에 가슴 속 깊은 곳을 아려온 것이다.
“…… 엘렌 D 그라인드라고 하는데요.”
“호오.”
용의 눈으로 소녀의 육체는 물론 영혼, 그 너머의 인과까지 한 눈에 꿰뚫어 본 아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 아.”
마치 생명이 피어나는 것 같은 환한 웃음에 엘렌이 넋을 잃고 있던 그때, 피투성이의 남자가 구르듯이 방으로 들어섰다.
“탈출해야 합니다! 아가 …… 씨?”
큼지막한 쇳덩이를 들고 난입한 중년인 역시 아렌을 보면서 멍한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에 아렌의 미소가 더욱 짖어졌다.
“네 이름은 뭐냐.”
“…… 벡스터라고 합니다만.”
엘렌과 벡스터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가문의 오래된 기록에 의지해서 겨우겨우 비처를 찾아내 공략하고 있는 와중에 도적떼들이 따라붙었고, 수많은 위기를 넘긴 끝에 목표지점에 도착했지만 보물은커녕 뜬금없이 미남 하나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지만 가슴을 가득 메우고 있는 감정에 뭐라고 말을 할 수 가없었다.
콰쾅!
“…… 피해야 합니다!”
찰나와도 같고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끝나고 현실을 직시한 벡스터가 다급하게 외쳤다.
엘렌 역시 입술을 깨물었다.
하긴 너무나도 오래된 기록이지 않은가.
가문이 가진 최후의 보물은 존재하지 않았으니 이제는 다른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할 때였다.
쾅!
“어딜 가려고 하시나!”
커다란 굉음과 함께 벽면이 터져나가는가 싶더니 일단의 무리가 안으로 들어섰다.
하나같이 기괴한 쇳덩이를 들고 몸 이곳저곳에 금속을 박아 넣은 모습에 아렌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흐흐흐흐. 오래 찾았다고 엘렌 양. 순순히 같이 가줘야겠어.”
“…… 나 하나 잡아간다고 변하는 건 없어.”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지. 걱정 말아.”
엘렌을 보면서 입술을 훔치는 사내의 뒤로 기괴한 모습의 남자들이 흉악하게 웃었다.
결코 좋은 의도로 말하는 것이 아님을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는 모습이었고, 벡스터와 엘렌의 얼굴이 굳어지던 그때였다.
“천박하구나.”
“…… 크흐흐흐. 뭐?!”
그제야 아렌의 존재를 눈치 챈 듯 사내들의 시선이 돌아섰고, 아렌의 모습을 본 사내들의 얼굴에 탐욕이 떠올랐다.
“오호라! 이건 뭐야?”
“반반한데! 팔아먹기 좋겠어!”
“…… 팔기 전에 맛 좀 봐도 되겠지?”
하나같이 흉악한 표정으로 아렌을 보며 지껄이는 모습에 얼굴을 굳힌 엘렌이 조용히 속삭였다.
“…… 도망치세요. 여기는 저희가 어떻게 해 볼게요.”
“아가씨!”
“어쩔 수 없잖아.”
전의를 다지는 엘렌의 모습에 벡스터도 비장한 표정으로 쇳덩이를 움켜잡았고, 그 모습에 사내들의 분위기도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내 이름을 물었었지.”
“…… 예?”
아무렇지도 않게 아렌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고, 그 움직임을 알아차린 자는 아무도 없었다.
“어어?”
“뭐야 저거?”
“쏴야 하는 거 아니우?”
느릿하게 들어 올린 오른손이 사내들을 가리켰고, 아렌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콰지지직!
“아악!”
“커억!”
끔찍한 소리와 함께 사내들의 몸이 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커다란 덩어리로 뭉쳤다.
“…… 허업!”
벡스터의 입에서 새된 소리가 흘러나왔고, 엘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쿵!
커다란 육괴로 변해버린 사내들이 땅으로 떨어졌고, 흘러나온 피가 파도처럼 번지더니만 이내 방안에 가득해졌다.
아렌의 시선이 둘에게 향하고 온 몸을 옥죄는 섬뜩함에 둘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공포.
영혼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공포에 둘의 시선이 창백해지는 그때.
“아렌 드 그라인드다.”
비릿한 미소를 잃지 않은 입가에서 아렌의 이름이 흘러나왔고, 세상이 다시금 그 이름을 인지했다.
– 완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