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50
050화
조금은 가라앉은 분위기에 네이던이 피식 웃었다.
“뭐. 확실한 것은 아냐. 귀족, 특히 아카데미 졸업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 여러 가지 특혜가 가능하거든.”
물을 한 모금 마셔 목을 축인 네이던이 말을 이어나갔다.
“후계자의 자격이 없는 귀족 자제는 일정 시간동안 종군하는 것이 제국의 법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항상 방법은 있지.”
네이던의 시선이 트리안에게로 향했다.
“트리안의 가문은 아마 종군의무가 없을 거다.”
조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트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밀려오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곳이 북방인데, 그런 곳에까지 종군 의무를 부여할 정도로 제국이 정신 나가지는 않았어.”
척박한 대지에서 항상 밀려오는 몬스터와 사투를 벌이는 북부는 종군의무에서 면제될 뿐만 아니라 세금도 거의 없다.
거꾸로 매년 지원금이 책정될 정도로 험난한 곳이고, 그런 지역이 제국에는 몇 군데 있다.
“그리고 결혼이 있지.”
귀족에게 있어서 대를 이어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비단 후계자가 아니더라도 귀족가의 자식이 결혼을 하게 된다면 종군의무를 몇 년 미루거나 상황에 따라서 세금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있다.
“모르긴 몰라도 나나 트리안에게 들어오는 결혼 제의가 상당할 거다. 물론 가문에서는 다 보류하겠지만.”
아카데미에 입학했으니 입증된 인재이고, 귀족들은 언제나 인재에 목말라 있다.
피렌사만큼은 아니라지만 뛰어난 후대를 바라는 것은 모든 이의 공통된 바람이니, 아카데미에 입학한 순간부터 이들은 일등신랑감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영감이 그런 말을 했었나.”
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린 트리안의 뇌리에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 어지간하면 혼자 오지 말고 둘이 와라. 셋도 괜찮고.
장난스런 말투에 트리안은 인상을 썼었지만, 빙글빙글 웃는 모습을 보이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모습이 뇌리에 선했다.
“아렌 너도 마찬가지일거고. 오늘 일은 어떤 식으로든 소문이 날 테니까 더 심할 거야. 아직 간만 보고 있는 아카데미의 영애들도 적극적으로 달려들 테지.”
아직 입학한지 얼마 안 되는 시간인지라 서로를 알아가기에는 부족하기에 다들 몸을 사리고 있지만, 아렌 정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세력을 넓히기 위해서 가장 흔히 쓰이는 것은 혈연으로 이어지는 것.
내부가 시끄럽다고는 하지만 아렌은 백작가의 적자이니 조건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렌 자체가 워낙에 규격외다.
“생각 없다.”
“네 생각이 중요한 건 아니지.”
빙긋 웃는 네이던의 모습에 아렌의 눈이 가늘어졌고, 트리안이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배우고 나가는 곳이 아니군.”
“그래.”
고개를 끄덕인 네이던이 입을 열었다.
“단순하게 보자면 아카데미는 인재를 키워내는 곳이지만, 미래를 대비하는 곳이지. 친구와 적을 구분하고 필요하다면 혈연을 구축할 수도 있다. 거기에 독하게 마음먹는다면 미래의 적을 제거할 수도 있지.”
살벌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에 트리안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아렌은 피식 웃었다.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군.”
조금은 뜬금없는 이야기에 트리안과 네이던이 아렌을 쳐다보았지만, 아렌은 답하지 않았다.
* * *
베네프트의 신조는 엘레강스다.
그 규범은 베네프트의 일생을 관통하는 것이며 언제나 엘레강스한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베네프트는 많은 신경을 써 왔었다.
“조금 쉬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직 확인해야 할 게 많아.”
하지만 지금 베네프트의 모습은 엘레강스와는 꽤 거리가 있었다.
며칠을 씻지 않아서 떡진 머리와 퀴퀴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 의복, 충혈된 두 눈과 악귀 같은 표정은 철저하게 이해관계로 묶여 있는 리암의 마음속에서도 걱정이라는 감정이 솟아오를 정도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내부 보안에 구멍이 뚫렸어.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교수들 몇몇이 두문분출하고 있기는 하지만, 특별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감찰대가 의심스럽기는 한데······. 거기는 제가 알아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리암의 대답에 베네프트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네. 감찰대는 나도 접근하기 어려우니까.”
거칠게 차를 마신 베네프트가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 감찰대는 아닐 거야. 탐욕스러운 자들이지만 멍청한 자들은 아니니까. 무엇보다 감찰대의 입장에서는 아카데미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익일 테니까 동기도 없고.”
“결국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내부의 문제겠군.”
침중한 목소리에 베네프트와 리암의 안색이 변하더니만 두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동시에 둘의 몸 이곳저곳이 빛나기 시작했고, 온갖 방호주문이 둘의 몸을 덮었다.
“누구냐!”
파괴적인 힘을 담은 주문을 양손에 든 채로 베네프트가 소리치며 시선을 돌렸다.
“······총장님.”
허탈한 리암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베네프트는 핏발이 선 눈으로 부르바스를 노려보았다.
“확실히 자네 솜씨는 좋아. 결계를 푸는데 꽤나 고생했다네.”
바짝 독이 오른 베네프트를 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의자를 하나 끌어와서 맞은편에 앉았다.
그 푸근한 미소와 여유로운 태도를 보면서도 베네프트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총장님은 소문보다 더 실력이 좋으시군요. 제 결계에 이렇게 흔적 없이 침투하실 수 있으실 정도였을 줄은 몰랐습니다.”
기사에 비하면 제멋대로라는 인식이 있는 마법사들이지만, 그런 그들 사이에도 암묵적인 룰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다른 마법사의 거처에 무단으로 침입한다는 것은 선제공격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한 다해도 할 말이 없는 적대행위나 마찬가지.
베네프트의 날선 태도는 전혀 과하지 않은 것이다.
“실례라는 것은 알고 있네. 그나마 내 위치가 있으니 자네도 인내하고 있는 것이겠지.”
제 아무리 경지의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곳은 베네프트의 집무실이다.
준비가 되어 있는 마법사도 무섭지만, 자신의 거처에서 싸우는 마법사는 몇 배의 힘을 내기 마련이니 베네프트가 작정하고 부르바스를 배제하려고 한다면 부르바스도 목숨을 장담하지 못한다.
그런 부르바스의 각오를 느낀 것인지 베네프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잠시 자리를 비키게.”
“교수님!”
“괜찮아.”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지은 리암이 부르바스를 한번 보더니만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머리를 한번 쓸어넘긴 베네프트가 부르바스에게 찻잔을 건네고, 맞은편에 앉았다.
“고맙군. 역시 조금 무리를 해서 자네를 찾아온 게 맞는 거 같아.”
“······ 엘레강스하지 못한 방법입니다.”
냉엄한 눈빛을 쏘아 보내는 베네프트의 모습에 부르바스가 고소를 지었다.
“어쩔 수 없었어. 나름대로 생각을 했었네만 도무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더군. 거기에 공안마저 돌아다니지 않나. 결국 이 사태에 가장 피해를 입은 자네가 그래도 믿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베네프트의 안색이 구겨졌다.
도도하게 자신의 길을 걸으며 성과를 증명해 오던 베네프트에게 입학식에서의 사고는 치명타였다.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관리해 오던 커리어가 이번 사고 한번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으니, 잘나가던 베네프트의 미래는 먹구름이 끼어 버린 상황이다.
그렇기에 베네프트는 부르바스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연락을 주시거나 일정을 잡으면 모두가 알게 되겠죠.”
쓰게 웃으며 부르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총장님께서는 황제파가 아니었습니까? 결국 공안을 아카데미에 들인 것도 총장님의 결제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텐데요.”
방계 황족에다가 황제가 직접 임명한 아카데미의 총장이 부르바스다.
대외적으로는 정치적인 의견을 거의 내지 않았지만 세인들은 그를 황제파로 인식하고 있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네만 ······. 사람들의 편견이라는 것은 무서워. 모두가 나를 황제파로 인식하고 있더군.”
뜻밖의 대답에 베네프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황제파가 아니네. 그렇다고 귀족파냐라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지.”
“······이해하기 어렵군요.”
부르바스가 피식 웃었다.
“그냥 나는 학생들이 무사히 졸업하기를 원할 뿐이야. 혼탁한 세상 아닌가. 결국 서로 편을 갈라서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텐데. 그 전까지 만이라도 세상을 즐겨 주었으면 좋겠어.”
허심탄회하게 중얼거리는 부르바스의 말에 베네프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불가능하다는 것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단순한 교육기관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복마전으로 변해 버린 아카데미다.
시간과 인맥이 쌓아 올린 무수한 비밀과 이권이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아카데미 내부에서 결성된 비밀 결사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그 부분을 제어해야 할 감찰대는 이권 다툼을 하고 있고, 자정 작용을 하고 학생들을 이끌어야 할 학생회는 권력으로 향하는 통로가 되어버려서 암투가 끊이질 않았다.
당장 베네프트 자신만 하더라도 아카데미 교수라는 자리가 주는 명예와 이권 때문에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던 베네프트가 눈을 빛냈다.
“······뭔가 알아내셨군요.”
신세 한탄을 하러 찾아온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미친 베네프트의 물음에 부르바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암을 내보낸 것은 잘했네. 그리고 사실 내가 알아낸 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야. 우리는 마법사 아닌가.”
베네프트가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죠. 눈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은 믿지 않죠. 우리는 마법사니까.”
부르바스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걸렸다.
“지금은 말해 줄 수 없는 것을 이해해 주게나. 일단 내가 온 목적을 말해야겠군.”
베네프트가 자세를 바로했다.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의 대비는 해야겠지. 난 이번 기회에 아카데미에 밑바닥을 조금 들춰낼 생각이네.”
“······밑바닥을 말입니까?”
“보이지 않는 적만큼 위험한 것은 없지 않나. 이번일이 어떤 목적으로 일어났는지는 잘 모르겠네. 짐작이 가는 게 없는 건 아니지만 확실하지 않으니 일단 그 부분은 접어두고.”
나직이 숨을 들이마신 부르바스가 말을 이었다.
“······최소한 사망자 수는 줄여 봐야지. 매년 학생들이 죽어나가는데 그것만큼은 막아 보고 싶어.”
아카데미에서 사망자는 꾸준히 나온다.
여러 가지 학문을 가르치지만 결국 주가 되는 것은 오러와 마법으로 대변되는 전투능력이니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그중에는 석연치 않은 죽음이 항상 끼어 있었다.
“기회가 닿은 거지. 감찰대도 모처럼 제 역할을 하고 있고, 공안도 들어와 있는 상황인데다 조만간 휘페리온에서도 심문관들이 올 거야.”
이단심문관이 온다는 이야기에 베네프트의 안색이 찡그려졌다.
“그렇게 혼탁하게 섞이다 보면 꼬리를 드러낼 거야. 그때 자네의 역할이 중요해져.”
“······어쨌든 제가 조사 책임을 지고 있으니 말이죠.”
절대 좋은 자리라고는 할 수 없지만, 베네프트는 사건의 조사를 맞은 자다.
상황에 따라서는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적당한 미끼도 나타났지.”
“미끼라면?”
부르바스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 좋은 타이밍에 입학해 주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