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67
067화
“크륵?”
부족의 영역을 정찰하던 오크는 이상한 광경을 보고서는 눈을 비볐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는데, 허공에 금이 가는가 싶더니 이내, 검은 기류가 소용돌이치는 것이 아닌가.
심상치 않은 마나의 유동에 커다란 글레이브를 들고 휘두르려고 힘을 모으던 그때,
콰직.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오크의 머리가 사라져 버렸고, 머리를 잃은 몸이 대지에 주저앉았다.
“······어찌어찌 성공했군.”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마크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런 마크의 좌우로 재생과 파괴를 반복하는 베럭과 검은 기류로 온몸이 감싸인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밀드레드가 있었다.
“······큼.”
차분한 모습도 잠시, 마크가 인상을 쓰며 자신의 허리를 바라보았다.
허리에서 가슴까지 쩍 벌어진 상처가 피를 쏟아내고 있었고, 검은 기류와 함께 살이 움직이며 재생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상처에서 일어나는 붉은 기운이 재생을 막아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인상을 찡그린 것도 잠시, 마크의 손이 수인을 맺으며 주문을 발동시켰고, 은은한 빛이 상처 부위로 내려앉으며 붉은 빛이 조금씩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마크는 시선을 돌려 베럭을 쳐다보았다.
“······으으으으.”
신음과 함께 재생과 파괴를 반복하고 있는 끔찍한 모습을 보면서도 마크는 인상을 찡그리지 않았다.
“계획에 지장이 갈 수 있으니 살려오기는 했지만,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군.”
마크의 주위로 빛이 번뜩이며 주문이 완성되었고, 주문을 통해 베럭의 몸을 살펴본 마크의 안색이 변했다.
“······영혼에 타격을 줬군. 그랜드 마스터가 쓸 수 있다는 마인드 크러쉬인가.”
방대한 마법을 익히고 있는 마크는 견문도 넓었고, 오러 사용자들도 잘 알지 못하는 전설적인 기예도 알아 볼 수 있었다.
한참동안 베럭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긴 마크가 수인을 맺었다.
그와 함께 각종 주문이 완성되어서 베럭의 몸으로 쏟아져 내렸고, 그런 노력이 통한 것인지 살덩이에 가까웠던 베럭의 신체가 조금씩 인간의 형상을 띄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지금은 이 정도군.”
급한 불은 막았지만, 제대로 손을 쓰지 않는다면 높은 확률로 베럭은 자멸해 버릴 것이 분명했으니, 추가적인 조치가 시급했다.
“할 일이 늘었군.”
양팔과 다리에서 아직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봉인을 보면서 마크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봉인을 처리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제법 걸리는 일인데, 밀드레드를 개조하고 베럭을 돌보게 된다면 그 시간은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지만 마크는 마법사.
과거에 연연하기보다는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 마법사의 자세였고, 그런 면에서 마크는 누구보다도 마법사다운 자였다.
변수를 도입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재정비한 마크는 이내 아렌에게 생각이 미쳤다.
“그건 뭐지?”
불가사의하기 그지없는 꼬마.
양팔과 양다리에 봉인을 달고 있다고는 하지만, 12영웅 중 최선두에서 싸우던 베럭을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다.
무력화시키는 것을 떠나서 불사신이나 다름없는 베럭을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아렌을 생각하면 냉정한 마크도 소름이 돋았다.
베럭과 힘을 합쳐 아렌을 배제하기보다는 도주를 택했을 정도로 아렌이 풍기는 기운은 불길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정보가 너무 부족해. 어디서 그런 괴물이 나왔는지 모르겠군.”
수많은 경우의 수가 마크의 머릿속을 지나쳤지만 어느 하나도 만족스런 대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이 녀석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멍한 표정으로 검은 기류에 휩싸여 둥둥 떠 있는 밀드레드를 일변한 마크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어둑해진 밤하늘에 하나둘씩 떠오르는 별들과 환하게 어둠을 비추는 달을 보는 마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길었어.”
나직하게 중얼거린 마크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각종 실험과 고문을 당하며 수십 년의 세월을 버틴 끝에 겨우 자유를 찾게 된 것이니 감회가 남다른 것이다
“······기다려라. 황제.”
마크의 얼굴에 흉악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재앙이 휩쓸고 간 아카데미의 모습은 처참했다.
전쟁의 한 가운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폐허처럼 무너진 건물들과 아직도 잡히지 않은 불, 여기저기서 메아리치는 비명은 현세의 지옥을 연상케 했다.
당면한 위협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부르바스를 위시한 아카데미의 인원들이 급히 복구와 구조를 시작했지만 아카데미의 방대한 규모가 발목을 잡았고, 수습은 요원해 보였다.
쿠르릉.
그런 아카데미의 한쪽, 폐허가 된 건물의 한쪽 벽이 무너지는가 싶더니 일단의 학생들이 밖으로 급히 뛰쳐나왔다.
“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기숙사로 가 봐야겠어.”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아카데미 제복이 먼지투성이가 되었고, 낭패한 기색이 가득한 학생들이었지만 이내 몸을 날려 이곳저곳으로 사라졌고, 어느새 그 자리에는 다섯 명의 학생들만이 남았다.
각자 묵직한 분위기를 풍기는 학생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침묵하던 것도 잠시, 한 학생이 입을 열었다.
“······아카데미도 끝이군. 이런 상황인 이상 정상적으로 돌아가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어.”
탄식 같은 한마디에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손에 넣어야 될 아카데미가 이 꼴이 됐는데.”
묵직한 기도를 풍기며 바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학생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기본적으로 동등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리더 격인 학생에게 의견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계획의 수정은 불가피하겠지.”
“그런가?”
잠시의 생각 끝에 나온 대답에 어쩐지 실망하는 것 같은 대답이 들려왔지만, 바위 같은 표정의 사내는 말을 이었다.
“그것보다 너희에게 묻고 싶군.”
묵직한 기도가 스멀스멀 번져 나갔다.
“우리의 대의는 건제한가?”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무게는 일순간 학생들을 주춤거리기 만들기에 충분했다.
“······물론이다.”
“그래.”
“애초에 아카데미를 손에 넣는 것은 과정이었지.”
여기저기서 나오는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사내가 나머지 학생들의 눈을 차례로 마주쳤다.
강인한 신념이 담겨 있는 눈을 마주보는 학생도 있었고, 슬그머니 피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사내는 개의치 않았다.
“연락망을 유지해라. 한동안 심신을 수습하면서 계획을 가다듬는다.”
사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학생들이 이내 각자 사라졌지만, 사내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바위처럼 그 자리에 뿌리박힌 듯 가만히 서서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사내가 가만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보더니 이내 크게 발을 내딛으며 걸음을 옮겼다.
“변하는 건 없다.”
단단한 각오가 서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제국은 청소되어야 한다.”
불길과 먼지가 넘실거리는 아카데미의 폐허 속으로 사내가 사라졌다.
* * *
“다 모였습니다.”
부하의 목소리에 루드비히는 고개를 돌렸다.
낭패한 기색임에도 칼 같은 예기를 뿜어내고 있는 공안 6과 요원들의 모습은 남다른 면이 있었지만, 루드비히는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숫자가 안 맞았다.
루드비히와 함께 유피테르로 파견 나온 요원의 숫자는 정확히 스무 명.
하지만 지금 루드비히의 앞에 서 있는 것은 일곱 명뿐이었고, 나머지 인원들은 바디 백에 쌓인 채로 대지에 그 몸을 누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열한 대원들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바디 백을 바라본 루드비히의 눈가에 복잡한 빛이 어린 것도 잠시, 예의 무감정한 얼굴이 된 루드비히의 입이 열렸다.
“예상치 못한 희생이 있었다.”
심령을 울리는 루드비히의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요원들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제국의 어둠속에서 움직이며 죽음과 친숙한 요원들이라고는 하지만, 동료의 갑작스런 죽음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요원들의 모습을 눈에 담은 루드비히가 말에 힘을 담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
심령을 자극하는 목소리에 요원들의 시선이 모였다.
“오직 그것만이 희생당한 동료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요원들의 눈가에 독기가 차올랐다.
“원인을 찾아라. 시설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마룡봉인체들이 자력으로 탈출할 수 있을 만큼 무른 곳이 아니지.”
다시금 공안의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요원들의 모습에 루드비히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을 요청하고 티끌만한 의혹도 놓치지 마라! 황제 폐하를 위하여!”
“황제 폐하를 위하여!”
복명복창한 요원들이 각자 흩어지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루드비히가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웅.
마력을 불어넣자 희미한 빛과 함께 작동하기 시작한 주먹만 한 구슬이 이내 표면에 기하학적인 무늬를 떠올리더니만 담담한 목소리를 흘려 내었다.
– 루드비히.
“황제 폐하 만세!”
오직 목소리뿐이지만 더없이 공손한 자세로 구슬을 받쳐 든 루드비히가 변치 않는 충성을 담아 외쳤다.
– 보고해라.
연륜이 가득한 나직한 목소리에 루드비히의 얼굴에 긴장이 떠올랐다.
“시설에 가둬져있던 마룡봉인체들이 탈옥했습니다. 현재 행방은 묘연한 상황입니다.”
황제는 말이 없었고, 루드비히는 여전히 공손한 자세로 구슬을 받쳐 들고 황제의 답을 기다렸다.
– 네 생각은 어떻지?
“이상합니다.”
– 무엇이?
“수십 년간 문제가 없었던 시설이 갑자기 붕괴된 것도 이상하고, 요 근래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사건들도 그렇습니다. 분명히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 공식적인 입장인가?
황제의 물음에 잠시 숨을 고른 루드비히가 단호하게 말했다.
“6과의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 ······그렇군.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듯 잠시 침묵하던 황제가 말을 이었다.
– 7과를 충원하도록 하지. 지휘권을 한시적으로 인계하겠다.
“황제 폐하 만세!”
공안 6과가 사냥개라면 공안 7과는 실질적인 무력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하나하나가 독보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만큰, 그들이 합류한다면 루드비히의 운신이 훨씬 자유로워질 것이다.
– 그럼 수고하도록 해. 다른 보고는 없나?
나른한 황제의 목소리에 루드비히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특기할 만한 상황이 있습니다.”
– 호오?
어지간한 일에는 감정의 변화가 없는 루드비히가 특기라고까지 표현한 일이 있다는 것에 황제의 흥미가 동했다.
“그라인드가의 적자 아렌. 이자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와 감시를 요청합니다.”
– 그 정도인가?
황제의 목소리에 활기가 서렸다.
루드비히의 요청은 아렌이 제국 차원에서 그 동향을 항시 주시해야할 정도의 인물이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비록 봉인이 걸려 있다고는 하지만, 베럭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갔습니다. 감히 예상하건데 마크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베럭은 죽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건 놀랍군.
초인을 상대로 압도했다는 것도 놀라운데 불사신을 죽이기 직전이었다는 보고에 어지간한 황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자의 성향이 극히 개인주의적이라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조심스러운 루드비리의 말에 황제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군 그래. 뛰어난 인재가 항시 부족하거늘. 하긴 초인의 반열에 오르면 다들 제멋대로 이기는 하지.
“송구합니다.”
죄송스럽다는 표정을 떠올린 루드비히의 말에 황제가 답했다.
– 어쩔 수 없지.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써먹어야지 어쩌겠나. 그 부분은 내가 조치하도록 하지. 자네는 자네의 의무를 다하게나.
“황제 폐하 만세!”
구슬의 빛이 사라지고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 루드비히가 구슬을 품에 집어넣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려던 루드비히가 문득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괴물을 조종할 수 있을까?’
불현듯 드는 불길한 예감에 루드비히는 시선을 돌려 제도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