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78
078화
현실이었다면 실력을 테스트하고, 견습 의뢰 몇 개를 수주해서 신뢰를 쌓아야지 겨우 용병이 될 수 있었을 테지만, 안타이오스는 그런 모든 과정이 생략되어 있었다.
용병 길드에 찾아가서 의뢰를 수주한다는 의사를 내뱉기가 무섭게 용병패가 발급되었고, 바로 모든 의뢰를 수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격려품으로 주기도 하는군요.”
거기에 용병패와 함께 나온 큐빅이 개인당 1개씩.
조금 허탈하기도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일행이 첫 번째 의뢰 장소로 향했다.
* * *
“정말 현실 같은 감각이네요.”
바닷바람이 섞인 숲의 내음에 코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암살자 교육을 받은 코린은 오감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있었는데, 그런 그에게도 현실과 같은 감각을 주고 있으니, 안타이오스의 완성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코린. 선행해요.”
“알겠습니다.”
미소를 지은 것도 잠시, 코린의 몸이 숲의 그림자에 녹아드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졌다.
“이제부터 긴장하죠. 상대가 상대이니까.”
레티시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트리언이 전위에서고, 콜레트가 그 다음, 네이던, 레티시아, 도리안, 엘레나로 이어지는 진형이 완성되었다.
“오우거를 상대할 수 있을지는 몰랐어. 이거 꽤 흥분되는군.”
트리언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일행이 수주 받은 의뢰는 오우거 퇴치.
현실 세계였다면 도시 근처에 오우거가 출몰하는 것만으로도 대대적인 대피가 이루어졌겠지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토벌 의뢰가 떡하니 적혀있었던 것이다.
10번이라는 숫자가 박혀있는 큐빅도 그렇지만, 대상이 오우거라는 것에 눈이 돌아간 일행이 급하게 이동한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주의해야할 것은 맷집이겠지. 오러로도 타격을 주기 힘든 피부와 어지간한 마법은 무시하는 항마력, 덩치와 괴력은 물론이고 피어까지. 괜히 육상몬스터의 왕자가 아니야.”
네이던의 말에 모두가 긴장어린 표정을 지었다.
“우리 정도의 전력이면 해 볼 만하지. 거기에 가상이니까 실제적인 위험도 없고. 안타이오스의 쓰임세가 대충 짐작이 가는군.”
도리안의 말에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성비가 최악이기는 하지만, 안타이오스는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해준다.
비록 가상이지만 오우거를 상대해 본 경험은 더없이 소중할 것이고, 실전에서도 그 경험이 빛을 발할 것이니 소수의 특기전력을 키워내는데 이만한 장치도 없을 것이다.
“······뭐. 실제적인 목적은 조금 다르겠지만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겠지.”
콜레트와 트리언이 의문을 표할 때, 네이던과 레티시아가 얼굴을 굳혔다.
세상의 모든 것을 공평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이 마법사다.
그런 그들에게도 안타이오스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장소였고,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수십 가지 이상이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현실에서는 도저히 하지 못하는 금단의 실험에 관한 것도 있었다.
“······그렇겠군. 신병들에게 가상이지만 미리 살인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겠어.”
그제야 도리안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트리언이 얼굴을 굳혔다.
살벌한 내용에 울상을 짓는 콜레트가 어쩔 몰라 했지만, 각자 생각에 빠진 일행들은 콜레트까지 챙겨주지 못했다.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코린이 거짓말처럼 나타났고, 콜레트는 그제야 안심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전방 500미터 정도입니다. 조금만 더 접근하면 알아차릴 겁니다.”
일행을 멈추게 한 코린이 어떻게 할 거냐는 표정으로 레티시아를 바라보았다.
몬스터는 감각이 뛰어난 편이고, 오우거 정도면 최상위권에 속한다.
조금만 더 접근한다면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는 후각이 그들의 접근을 알아차릴 것이라는 코린의 말에 일행은 생각에 잠겼다.
“코린. 당신의 능력으로 어떻게 안 되나요?”
“저 하나면 괜찮지만 일행 전부는 불가능합니다.”
난처한 표정의 코린을 보면서 레티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은요?”
“기척을 은폐하는 마법이 만능은 아니야. 몬스터들은 마나의 이질적인 움직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지. 거기에 후각까지 더해진다면 바로 들킬 거다.”
네이던의 말에 트리언이 앞으로 나섰다.
“그럼 정해졌군.”
일행의 시선이 모였고, 트리언이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정면으로 가야지. 별 수 있나?”
모두의 얼굴에 허탈한 표정이 서렸지만, 트리언을 비웃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겠죠. 그래도 수는 써 보도록 해요.”
레티시아의 말에 일행이 머리를 맞댔다.
* * *
“맛있구나.”
“감사합니다요. 도련님.”
무표정한 얼굴의 꼬마가 반말을 지껄인다면 화가 날 만도 하겠지만, 중년인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름답다 못해 고귀하기까지 한 외모와 행동 하나하나에서 우러나오는 고위 귀족의 모습은 중년인의 고개를 얼마든지 숙이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쏴아아아.
안타이오스의 모든 노점을 순례하는 기록을 세운 아렌이 분수대가 잘 보이는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서려 있었고, 병사가 지나가는데도 무서워하지 않는 꼬마들의 모습은 이 도시가 얼마나 살 만한 곳인지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아직까지 입안에 남아 있는 맛의 여운을 느낀 아렌이 자신을 관조했다.
맛도 남아있고, 포만감도 느껴지지만 정작 신체 내부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위험한 걸 만들었군.”
나직이 중얼거린 아렌의 눈빛이 깊어졌다.
어떻게 보면 아렌만큼 안타이오스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무인으로 살다가 아렌으로 깨어난 지금의 그와 안타이오스의 상황은 그리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렌은 안타이오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짓된 꿈만큼 허망한 것도 없지.”
아렌의 눈에 붉은 기운이 떠올랐고, 그 순간 거리의 모습에서 생동감이 사라졌다.
제 아무리 대단한 마법이라도 용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고, 그제야 아렌은 표정이 풀렸다.
마음을 가다듬은 아렌이 가만히 눈을 감더니 품속의 큐빅에 정신을 집중했고, 이내 그의 기감이 무럭무럭 뻗어나가더니 도시 전체를 감쌌다.
그 순간 도시의 모든 것이 아렌의 머릿속에 박혀들었다.
막대한 정보의 유입으로 아렌의 머리가 김이 날듯이 뜨거워졌지만, 아렌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목표로 한 기운을 선별해 나갔고, 이내 도시안의 모든 큐빅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많군.”
눈을 뜬 아렌이 큐빅의 위치를 가늠하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많지 않아.”
스스로도 모순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렌은 그 이외에는 적당한 단어를 찾기 힘들었다.
아렌이 파악한 도시 내의 큐빅 숫자는 300개 이상.
하지만 그중 대부분이 흐릿한 기척을 흘리며 당장이라도 소멸될 것처럼 깜빡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렌이 일정수의 큐빅을 모은 채 다가가면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고, 아렌 정도의 강자에게 그러한 예감은 예지나 다름없었다.
“이질적인 것도 있고.”
아렌의 시선이 도시 중앙에 높게 솟아 있는 건물로 향했다.
비교적 청량한 편인 안타이오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음울한 기운이 그곳의 지하에서 느껴졌던 것이다.
“총장이 걱정할 만도 하군.”
저런 기운을 풍기는 것이 이러한 장소에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며 아렌은 몸을 일으켰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대응하면 될 일이라고 판단한 아렌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 * *
촤악.
“히이익!”
핏줄기가 흩뿌려지고, 비명이 흘러나왔지만 학생들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러게 말로 할 때 들었어야지.”
더러운 것이 묻었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검을 이리저리 살핀 학생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중년인을 향해 말했다.
“자. 다시 한번 말할게. 큐빅을 내놔. 그러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야.”
이미 집안의 하인들 대부분인 핏물에 잠긴 채 차갑게 식어 가고 있었지만, 중년인은 반박하지 못했다.
다른 한쪽에서 빙글거리고 있는 학생의 손에 그의 아들이 잡혀 있었고, 시퍼런 날붙이가 아들의 목에 붙어 있으니,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 여기 있소.”
떨리는 몸을 간신히 추스른 중년인이 서랍에서 꺼낸 것은 큐빅 4개.
다른 한생이 거친 손길로 큐빅을 받더니만 이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큐빅에 가져다대자 은은한 빛과 함께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을 보였다.
“맞군.”
그제야 만족한 표정을 지은 학생이 환하게 웃었고, 중년인의 얼굴에 일말의 안도감이 서렸다.
“아. 아들을 돌려주시오.”
떨리는 눈빛과 눈동자로 학생들을 살핀 중년인이 발작하듯이 말했다.
“저. 절대로 오늘 일어난 일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겠소. 아! 아니! 당장 안타이오스를 떠나겠소이다!”
“바람직한 자세야.”
만족한다는 듯이 싱긋 웃은 학생이 아들을 중년인에게 밀었고, 눈물범벅이 된 꼬마가 중년인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사내의 손이 흔들거렸다.
쫙!
마치 공간이 잘리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사내의 손에서 뻗어나간 검이 부자의 목을 동시에 날려버렸다.
아마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목숨을 잃었을 거라고 생각되는 부자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학생이 얼굴을 찡그렸다.
“왜 그랬어?”
“손맛을 보는 것도 좋지만 경쟁중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거기에 외부에서는 우리를 다 보고 있다고.”
“쳇!”
조리 있는 대답에 답변이 궁색해진 학생이 몸을 돌렸지만, 다들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쯧. 아무리 가상이라지만 불쾌하군. 사람을 베는 감각까지 재현해 놨을 줄은 몰랐어.”
“이거 사실 진짜 아냐?”
불현 듯 떠오른 의문에 모두의 안색이 변했다.
가상이라고 명시되어있지만 너무나도 현실 같은 감촉에 감각의 혼란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건 아니다.”
다른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몰렸고, 로브를 걸친 학생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중년인의 시체를 뒤적이며 말을 이었다.
“이걸 봐라.”
“우웩!”
“거. 왜 이런걸 보여줘?”
언제 손을 썼는지, 가슴 깨에서부터 하복부까지 절개되어 내장을 드러내고 있는 시체의 모습에 학생들이 인상을 찡그렸다.
피와 죽음에 익숙한 것과 별개로 생리적인 혐오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니까 더 진짜 같은데?”
“진짜 아니야?”
그래도 시선을 돌리지 않은 학생들의 눈가에 들어온 것은 생생한 내장의 모습.
인간의 장기 모양을 숙지하고 있는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너무나도 사실적인 것이었고, 심지어 김도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역한 피냄새까지 섞여 있으니 혼란은 더욱더 가증되기만 했다.
하지만 마법사는 공정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들.
전혀 흔들림 없는 표정과 눈으로 시체의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모습에 학생들이 질겁했다.
“봐라. 장기의 모양은 인간과 똑같지만 결정적인 게 있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장기를 핏물 가득한 손으로 들어 올린 마법사가 말을 이었다.
“위치가 정 반대야. 간혹 가다가 심장이 반대쪽에 있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장기의 위치가 정반대인 사람은 없다.”
중년인의 옆에 있는 아들의 시신과 저택에 있는 몇 개의 시신을 더 챙긴 마법사가 배를 갈랐다.
이제는 흥미진진한 표정이 되어 버린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듯 마법사가 시체들을 가리켰다.
“중년인과 꼬마뿐이라면 유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모든 시체가 이런 형태라면 이것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
차분하게 손을 닦는 마법사를 보며 학생들이 눈을 빛냈다.
“오호라.”
“그래. 이런 식으로 확실하게 확인이 돼야지 마음이 편하지.”
“그렇잖아도 이것들 움직이는 게 기분 나빴는데 잘됐군.”
서로를 바라보는 그들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