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84
084화
“흠.”
익숙한 기척에 아렌이 고개를 돌렸다.
강력한 마법의 흔적과 마나의 잔향이 안타이오스 반대편에서도 관측될 정도였고, 그 안에는 일행들의 기척이 있었던 것이다.
“알아서 잘 하겠지.”
인연이 이어저서 같이 어울리고는 있지만, 그들의 운명에 함부로 간섭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부디 이번 시련을 잘 극복하고 앞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렌은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들켰다!”
“쳐!”
휘황한 빛과 함께 강력한 구속 마법이 아렌의 몸을 감쌌고, 주변에 널려있던 건물의 잔해들이 떠올라 파묻어 버리려는 기세로 떨어져 내렸다.
대지는 늪으로 변해서 아렌을 빨아들이는가 싶더니만 이내 굳어 버려 아렌의 신체를 구속했다.
하나하나가 대마법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마법 세 개가 동시에 작렬하니 제아무리 아렌이라고 하더라도 바로 대응하지는 못했다.
쿠구궁!
막대한 질량이 아렌이 있던 자리에 쌓이더니 이내 커다란 무덤이 되었다.
촘촘하게 뭉친 잔해들이 바닥의 늪과 호응하더니만 급속도로 굳어지는 모습에 관객들은 감탄사마저 내밀 정도.
“머리를 잘 썼군.”
“그라인드의 실력을 생각한다면 항마력도 범인을 훌쩍 뛰어넘을 테니 물리력으로 처리한다는 발상이 괜찮아.”
“어머! 저 예쁜 아이에게 저런 무식한 짓을!”
마법에 조예가 있는 관객들이 감탄을 토했고, 아렌의 미모에 감탄한 귀부인들이 역정을 냈다.
완전히 굳어진 반구형의 무덤은 5층 건물 정도의 크기였으니, 그 안에 담긴 무게를 생각하면 아렌은 이제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됐다!”
“역시 함정을 짜고 버티는 게 답이었어!”
“큐빅을 회수 못하는 게 아쉽지만 저 괴물을 상대로는 어쩔 수 없지.”
아렌이 확실히 죽는 것을 확인한 다음 큐빅을 회수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렌을 공격한 이들은 보다 신중한 방법을 택했다.
워낙에 괴물 같은 녀석이니 버티기도 오래 버틸 것이고, 그 사이에 다른 학생들이 공격해 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게시판에 그려진 아렌의 얼굴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니 그들의 판단은 옳다고 할 수 있었다.
세 명의 학생들이 마나를 끌어올리자 각자의 큐빅이 빛을 발하며 보조하기 시작했고, 이내 마법진이 되어서 무덤의 표면을 달렸다.
“좋아. 이 정도면 오우거도 못 빠져 나온다.”
중첩 강화 마법으로 빛나는 무덤을 본 학생들이 환하게 웃었다.
이번 별전쟁의 최대 변수라는 아렌을 그들의 손으로 무력화시켰으니, 자신감이 차오른 것이다.
– 아직 어설프군.
“뭐!”
“누구냐!”
그 순간 나직한 목소리가 그들의 귀에 박혀들었다.
마치 공간 전체가 말하는 것 같은 느낌에 학생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큐빅을 활성화했다.
각종 방호 마법이 입혀지고, 치명적인 주문이 준비되자 조금은 안심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시금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 역시 어설퍼.
“크악!”
“아아악!”
말 그대로 공간을 진동시킨 목소리가 파동이 되어 학생들에게로 집중되었고, 중첩된 파동이 분자를 자극하며, 결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분자들은 일대의 공간을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허억!”
“뜨, 뜨거워!”
부글부글.
급격히 올라간 공기로 인한 아지랑이가 생기고, 공기 중의 수분이 기화되기 시작했다.
대지가 건조해지는가 싶더니 벌겋게 달아올랐고, 그것은 학생들도 다르지 않았다.
피부가 바싹 마르고, 안구가 건조해지기 시작했으며, 입술은 그 탄력을 잃었다.
“허, 허어······.”
극심한 갈증이 찾아왔고, 피부가 바싹 마르다 못해서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퍽!
“아악!”
급기야 안구가 터져나가고, 전신의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피가 흘러나왔지만, 흘러나오기가 무섭게 기화되어서 사라진다.
바싹 말라 버린 머리카락이 뚝뚝 끊어지며 떨어지더니만 이내 불타올랐고, 그것은 다른 체모도 마찬가지였다.
이어서 수분을 완전히 잃어버린 몸뚱이가 나뭇조각처럼 부서지기 시작하더니 불타올랐고, 완전히 연소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 명의 학생이 있었던 곳에 남아있는 것은 한 줌의 재뿐.
상상도 못해 본 광경에 관객들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으음.”
“허어!”
당연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교수들도 입에서 신음을 내뱉었다.
잔인한 것도 잔인한 것이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경지에 이른 자들답게 저 현상이 어떠한 원리로 돌아가는지 파악한 것이다.
마법이란 이론과 신비를 다루는 것이다.
원리와 현상만 알 수 있다면 과정쯤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무섭군. 마법으로 저런 현상을 일으키려면 대충 생각하는 것만 해도 4개 이상의 주문이 필요한데, 그것을 오러 컨트롤만으로 하고 있는 거 아닌가.”
누군가가 중얼거린 말에 교수들이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이 이론이라면 오러는 직관적인 힘이고, 그것이 마법사가 기사를 완전히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것으로 확실해졌군요.”
마일리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아렌 드 그라인드는 최소 오러 마스터. 최대로 잡으면 그랜드 마스터에 이른 초인입니다.”
모두가 아연한 표정이 되었다.
“공간을 조종하는 것은 마스터 중에서도 중급이상이나 가능한 기예입니다. 특별한 오러 연공법을 익혔다고 가정해도 저만한 기예를 마스터가 아닌 자가 할 수 있다고 하면 그것도 말이 안 되겠죠.”
이어지는 마일리의 말에 누군가 의문을 표했다.
“큐빅을 쓴 것 아닐까요? 큐빅의 힘이라면 경지의 경계를 넘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학생들 중에는 큐빅의 힘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형성해 내는 자들이 있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큐빅은 힘을 더해 줄 뿐이지 경지를 넘게 하지는 못해. 경지라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만 극복할 수 있는 것이지.”
침묵하던 부르바스가 말을 이었다.
“힘으로 저러한 현상을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제 아무리 큐빅이라도 60 이상은 넘어가야 가능할거야. 무엇보다 그라인드의 큐빅 현황을 보게나.”
“······이건!”
아렌이 소지한 큐빅을 확인한 교수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하네. 나도 몇 번 확인했지만 아렌 드 그라인드는 큐빅의 힘을 전혀 안 쓰고 있어.”
경악이 상황실을 휩쓸었다.
“······사람이 맞습니까?”
누군가의 목소리에 상황실의 모두가 얼굴을 굳혔다.
인간인척하고 대륙을 거니는 존재가 드물기는 하지만 없지는 않았다.
유희를 즐긴다는 드래곤, 소환된 악마, 이계의 존재 등.
최근 몇십 년간 관측된 기록이 없기는 하지만, 전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렌의 정체를 충분히 의심해 볼 수 있었다.
“······그건 아니야. 아렌 드 그라인드는 인간이 맞네.”
단정하듯 말하는 부르바스의 대답에 모두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저 강함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10대 초반의 어린나이에 그랜드 마스터로 추정되는 무력이라는 것은 대륙의 역사를 뒤져봐도 전례가 없었다.
“······과한 무력이기는 하지만, 짐작 가는 게 없는 건 아니야. 거기에 그라인드라고 하니 마침 생각나는 것도 있고.”
“······혈계 능력이군요.”
나직하게 중얼거린 마일리의 목소리에 교수진들 모두가 얼굴을 구겼다.
오러 만큼이나 이론이 통하지 않는 혈계 능력은 그들에게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자세한 것은 말해 줄 수 없지만, 그라인드의 혈족이라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 거기에 본인 스스로가 인간임을 천명했으니 인간이 맞아.”
널리 알려진 혈계 능력도 있지만, 대부분의 혈계 능력은 각 가문의 기밀인 경우가 많았으니 교수들은 호기심이 차올랐지만 부르바스에게 묻지는 못했다.
웅!
아렌이 갇혀 있는 무덤이 기묘한 소리를 내며 일렁이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일렁임이 무덤을 자극하더니 이내 한 점에 수렴한 진동이 거짓말처럼 무덤의 한쪽 면을 분해해 나갔다.
퍼석.
흙더미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무덤의 내부에 뚫린 통로에서 아렌이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어깨에 조금 묻어있는 먼지를 제외하면 아무런 낭패도 당하지 않은 것 같은 모습에 관객들과 교수들이 숨을 들이켰지만, 그것을 모르는 아렌은 태연히 어깨의 먼지를 털어내더니만 세 학생들이 있던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이었던 재가 남아 있는 곳에 세 개의 큐빅이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파괴가 불가능한 건가? 법칙으로 보호받고 있는 모양이군.”
큐빅을 들어 살핀 아렌이 중얼거렸다.
가상이기는 해도 안타이오스는 엄연한 하나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세계를 구성하는 법칙이 큐빅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관없지.”
품안의 큐빅을 꺼내서 이리저리 돌려보던 아렌이 큐빅을 하나로 모았다.
은은한 빛과 함께 하나로 합쳐진 큐빅의 표면에 쓰인 숫자는 70.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아렌이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일행의 기감이 느껴지는 곳.
하나둘씩 사라지는 기척이 느껴졌지만, 아렌은 서두르지 않았다.
* * *
“커헉!”
“트리언!”
전방을 든든히 지켜 주던 트리언이었지만, 지속된 파상공세를 버티지는 못했다.
대지와 불, 얼음, 번개, 삭풍 등등, 마치 자연이 적대하는 것 같은 마법이 트리언을 덮쳤고, 제아무리 큐빅의 보조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그러한 힘을 버텨 낼 수 는 없었다.
“······젠장. 먼저 나간다.”
온몸을 난자당한 트리언은 거친 숨을 내쉬더니만 한마디 말과 함께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감히!”
네이던이 이를 갈면서 주문을 외웠다.
그때 알베르토의 큐빅이 빛을 발했고, 네이던의 움직임이 덜컥 멈춰 버렸다.
“마인드 리프레쉬!”
레티시아가 급하게 주문을 걸었지만, 네이던의 얼굴에 떠오른 혼란스런 표정은 쉽게 가시지 않았고, 그 모습을 본 도리안이 얼굴을 굳혔다.
“정신 방어도 뚫고 들어오는군.”
“흐아아아아.”
기합인지 신음인지 모를 외침과 함께 콜레트의 온몸에서 성광이 번져 나오며 일행의 정신을 방호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서 감정이 솟아오르는 것을 제어하기는 쉽지 않았다.
오욕칠정.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알베르토의 큐빅은 각자의 감정 하나를 건드려 증폭시켰고, 갑자기 솟구쳐 오른 감정에 평정을 잃은 일행이 알베르토의 마법에 놀아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 오빠······.”
당당하기 그지없었던 엘레나가 양팔로 몸을 감싸고 바닥에 쭈그려 앉은 모습을 보며 도리안이 이를 갈았다.
두려움이란 감정이 크게 증폭된 엘레나의 지금 모습은 일행의 전력은커녕 짐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신관인 콜레트가 있어서 어느 정도 저항하고 있는 것이지, 아니었다면 한순간에 전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
알베르토가 환희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환한 빛을 연신 퍼트리고 있는 큐빅을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본 알레르토가 말을 이었다.
“제국이 정신 마법을 금기로 정하고 엄격하게 제한한 이유가 이거라는 생각이 드네. 아니지! 엄밀히 말하면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이니 정신 마법은 아닌가? 여하튼!”
힘에 취한 것인지 횡설수설하며 빙글거리는 알베르토가 말을 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데는 그리 거창한 힘이 필요 없다는 것의 증명이지 않을까?”
싸늘한 표정을 지은 알베르토가 일행을 쳐다보았다.
“그게 제아무리 괴물 같은 힘을 지녔다고 해도 말이지. 위대한 마법의 이적을 찬양하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