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03
제103화
“하아….”
라울이 깍지 낀 손으로 이마를 받치며 눈을 감았다.
없었다.
아무리 명단을 찾아봐도 그가 찾는 이름은 없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인터넷에 접속하여 그가 알고 있던 모든 개인 정보들을 다 동원해 뒤져 봤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그래, 그렇겠지. 당연한 결과야.’
배도현.
전생에 커넥트의 탑 플레이어로 군림했고, 마지막까지 권력에 맞서 발버둥 쳤던 최후의 솔로 플레이어 배도현.
라울의 전신이었던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커넥트에도, 지구에도 그와 관련된 자료는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혹시나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를 계획에 끌어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모른 척해야 하는지.
수많은 생각을 하며 고민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그건 아무 의미 없는 고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제 인간 배도현을 기억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또르륵.
라울의 눈에서 작은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뭐, 뭐야. 잘된 일이잖아? 슬퍼할 이유가 어딨어? 가장 큰 변수가 사라졌으니 잘된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봤지만,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가 고아였다 하더라도.
아무리 친한 친구 몇 없는 인생이었다 하더라도.
아무리 소외받고 힘든 삶이었다 하더라도.
그의 인생이었다.
그걸 부정이라도 하듯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건, 이제 그에게 돌아갈 자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제기랄.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냐? 내가 갑자기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지기라도 할 줄 알았냐고!’
라울은 누군지도 모를 어떤 이에게 욕을 내뱉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라울은 배도현을 꼭 만나고 싶었다.
자신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세상에 있을 배도현을 통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전생에는 끝끝내 찾아낼 수 없었던 친부모를 이번엔 꼭 찾아보고 싶었다.
배도현을 후원해서 가난한 고아 출신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 주고 싶었다.
게임이 아닌 현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가정을 이뤄 행복해지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다 쓸데없는 미련이었던 건가….’
어쩌면 실패했던 과거를 고쳐보고 싶은 보상 심리, 대리 만족 이런 것일 수도 있었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라울이 눈물 자국을 닦아 내며 애써 가졌던 미련도 같이 지워 버렸다.
‘이제 진짜 내게 남은 건 이곳밖에 없구나.’
어쩌면 다시 지구로 돌아갈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이제 그에게 소중한 것들은 모두 이곳에 있으니까.
이로써 그의 목표는 더욱더 명확해졌다. 만약 그의 가족과 영지를 노린다면 그게 설사 과거의 친구라 한들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곳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플레이어 전체를 적으로 돌려야 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고 말리라.
각오를 다진 라울의 머리가 다시 민첩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배도현이 없다는 건… 내 입장에선 잘된 일이야.’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배도현이던 시절 자신은 굉장히 까다로운 인물이었다.
성격은 배타적이었고, 권력자와 기득권 세력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이었으며, 사회에 대한 불만도 많았던 것 같았다.
‘이렇게 보면 완전 단점투성이에 사회 부적격자 같네.’
만약 그에게 재능이 없었고 커넥트란 게임을 만나지 못했다면 정말 패배자에 가까운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감이 있었고, 한번 결정을 내리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과 자신감도 있었다.
어려운 일을 마주하더라도 피하지 않는 용기와 도전정신은 그를 커넥트의 최고 자리로 이끌어 주었고,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적어도 세 번은 생각하는 신중함도 갖추고 있었다.
만약 아무런 능력도 없는 피해주의자에 사회 부적응자였다면 아무리 게임 속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으리라.
그런 배도현의 입장에서 지금의 라울을 만나게 된다면. 그리고 라울이 손을 내민다고 한다면 그가 과연 그 손을 잡을 것인가?
‘풉. 아마도 재수 없는 금수저 새끼라고 욕하면서 들은 척도 하지 않았겠지.’
과거의 배도현과 지금의 라울은 같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고,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사랑받고 자란 라울의 입장이 되고 보니 까칠했던 그의 성격이 부드럽게 변해 버렸다.
사람과 함께하는 걸 어려워했던 것이 이제는 혼자 있는 게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졌다.
가진 자, 권력자에 대한 이유 없는 증오와 투쟁심도 가라앉았다.
‘누가 보면 내로남불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겠군.’
금수저로 환생하더니 돈과 권력에 맛을 들인 것 아니냐고 누군가는 비판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라울은 아무 상관없었다. 그는 그저 주어진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 그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뿐이었으니까.
주변의 시선, 누군가의 시샘, 약자의 눈물, 적들의 사정.
이딴 것들은 라울의 선택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이미 실패한 한 번의 삶을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배도현이 없다면 이야기는 편해지지.’
스킬의 직접 체득이라는 배도현의 노하우가 세상에 드러나려면 이제 굉장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스킬 체화를 완성한 배도현과 다른 랭커들의 실력 차이는 압도적일 정도로 컸으니까.
그렇다면 당분간 라울의 앞길을 가로막을 플레이어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플레이어들의 진가가 빛을 발하는 건, 랭커들이 본격적으로 스킬 체화를 체득하고 고유 특성을 활용하기 시작한 이후니까.
‘세상이 배도현을 잊어버렸다면, 내가 다시 알려주겠어.’
배도현의 빈자리. 라울은 그것을 되찾아 오기로 마음먹었다.
* * *
커넥트가 서비스를 시작한 지 보름이 지났을 무렵, 한 가지 소식이 커뮤니티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커넥트 비공식 첫 이벤트 개최! 퍼스트 길드 아카데미 생도 모집 공고]플레이어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으로 눈길을 끌었던 루벤 왕국의 자유 도시들.
이제 대부분의 신규 플레이어가 루벤 왕국을 선택하는 가운데, 그 지원 정책의 중심에 서 있던 퍼스트 길드가 플레이어 전용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생도 모집 공고를 올렸다.
모집 대상은 계열, 직군 상관없이 1차 전직을 마친 모든 플레이어이며, 모집 인원은 4개 지부 각각 150명씩 총 600명이다.
교육 과정은 3개월 코스로 진행되며, 비용은 전액 무료다.
아카데미 수료생에게는 명예 길드원 자격을 수여하며 퍼스트 길드와 관련된 퀘스트나 미션을 우선적으로 배정받을 수 있게 된다.
또한 퍼스트 길드 산하의 각종 상점과 시설들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게 되고, 추후 길드원 모집시 가산점이 부여된다.
상위 성적으로 졸업한 일부 생도에게는 특별히 정식 길드원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진다.
정식 길드원이 되면 전용 장비 지급은 물론 직급에 따라 급료가 지급되며, 직군에 따라 고급 수련 단계를 밟을 수 있도록 후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모집 예정일은 2월 1일이며 원서 접수 마감일은…
-미쳤다~ 다들 소리 질러~!!
-당장 짐 싸들고 루벤 왕국으로 가야겠네.
└쯧쯧. 이미 늦었음. 자유 도시 영역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공식 확인된 지가 언젠데.
└일주일 전에 미라로 가는 포탈을 탄 나 자신을 마구마구 칭찬한다.
└아 XX. 너무한 거 아니냐? 이딴 식으로 몰아주기하면 밸런스 무너지잖아!
└네, 다음 흑우 등장하세요~
-퍼스트 길드 완전 대박이던데. 길드 지부 방문해 본 사람 있어? 시설이 와~ 복지가 와~ 길드원들 때깔이 와~.
입을 다물 수가 없었음. 나는 일단 무조건 길드에 가입할 생각이야.
└응, 너 안 뽑아 줘. 내가 들어갈 거야.
└ㅋㅋㅋ. 아카데미 입학도 못 할 쩌리들이 입 털고 있네. 이미 입학생들 내정되어 있다는 비공식 정보가 있다. 다들 꿈 깨라.
└대단한 음모론자 나셨네. 걔들이 뭘 안다고 벌써 내정이냐? 자꾸 한국 입시 생각나게 하지 마라! 게임 속도 그딴 식으로 굴러가면 혈압 터져서 못 산다.
-이건 무조건 신청하고 봐야겠네. 혜택도 혜택이지만, 이번에 떨어지면 기회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번 경쟁률 대략 5 대 1. 다음 분기 모집할 때 경쟁률 대략 50 대 1 예상한다.
└이거 ㄹㅇ. ㈜커넥트에서 앞으로 매주 3,000명씩 선발한다고 했음. 석 달 뒤면 유저수 가 4만 명 넘을 듯?
└아 놔. 이런 꿀 이벤트를 왜 지금 진행하는 거냐? 유저들 좀 더 모이고 나서 공정하게 해야 되는거 아니야?
└꼬우면 직접 퍼스트 길드 찾아가서 항의하셈. 이거 운영진이 진행하는 이벤트 아님.
-커넥트 운영진 보고 있나? 좋은 말로 할 때 루벤 왕국 말고 다른 국가에도 이벤트 열어라. 안 그러면 진짜 본사로 쳐들어간다!
└네, 입구컷 당하실 분.
└커넥트 운영진 아무 힘도 없을걸? 초기 공지 보면 특별한 경우 아니면 개입할 수 없다고 나와 있어. 걔들도 어쩌면 지금 머리 끙끙 싸매고 대책 회의하고 있을지도 몰라.
└어젯밤부터 커넥트 본사 불 안 꺼지고 있다고 함.
각종 커넥트 관련 게시판은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미 커넥트에 접속한 플레이어들은 이미 예상되는 입학 시험을 놓고 정보를 교류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신청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커넥트 접속 권한을 얻지 못한 대다수의 예비 플레이어들은 부러움을 불만으로 승화시켜 ㈜커넥트의 홈페이지를 폭파하는 데 성공했다.
커넥트 운영진들은 게임 속 NPC들의 활동에 직접적인 개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고, 추후에 다양한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다는 말로 예비 플레이어들을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예비 플레이어들의 불만은 식을 줄을 몰랐다.
피식.
게시판을 살펴본 라울이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예나 지금이나 플레이어들이 게임 운영진에게 가지는 불만과 불신은 변함이 없는 듯했다.
라울이 보기에 게임 운영은 정치와 다를 바 없었다. 아무리 좋은 이벤트를 준비하고 밸런스 패치를 한다고 해도 플레이어 전원을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니 말이다.
신규 플레이어를 위한 이벤트를 열면 기성 플레이어들이 뭐라고 하고, 어려운 이벤트를 열면 신규 플레이어들이 징징거리고.
심지어 플레이어 전원에게 혜택이 가는 퍼주기 이벤트를 해도 상대적으로 가져가는 게 적은 이들은 불만을 터뜨린다.
현실 세계에선 불만이 있어도 권력자와 기득권자의 힘에 짓눌려 입도 뻥긋 못하지만, 게임 속은 평등하다고 생각하는지 작은 불만도 참지 않고 운영진을 갈군다.
그렇다고 라울이 운영진을 편드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정상적인 게임 운영을 해나가는 게임은 극소수에 불과하니까.
애초에 이익 극대화를 노리는 개발사에서 운영진을 뽑아놓으니 밸런스에 맞춘 운영을 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말이다.
그저 지금 회의실에 모여서 대책을 마련하느라 끙끙대고 있을 커넥트의 운영진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내 웃음기를 거둬낸 라울이 차가운 눈으로 ㈜커넥트의 홈페이지를 노려봤다.
‘잊지 말자. 놈들은 나의 적이다.’
라울에게 있어서 커넥트의 운영진 또한 그저 하나의 적일 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