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53
제153화
화려한 막사 안.
고급스런 복장을 갖춘 여러 인물들이 와인잔을 손에 든 채 테이블 앞에 모여 있었다.
긴 테이블에는 마법 영상구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마찬가지로 고풍스런 복장의 귀족들의 얼굴이 송출되고 있었다.
막사 한쪽 벽면에는 지도가.
테이블 가운데는 지형도와 함께 병력 배치 모형이 세팅되어 있는 걸로 봐선 전략회의가 한창인 듯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회의라기보단 만찬회 같은 느낌이었다.
“하하하, 그럼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해봅시다.”
꽈배기처럼 꼬인 콧수염이 인상적인 귀족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는 바로 브록스 남작.
라울의 본성인 칼립스성과 맞닿은 영지를 가지고 있었다.
“병력 배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의 물음에 수정구 속 인물 중 하나가 답했다.
“뭐, 병력이야 벌써 오래전에 접경지에 데려다 놓지 않았소? 지원병력이라면 어제 모두 도착했고 말이오.”
“이거 참. 굳이 이렇게까지 병력을 동원해야 싶나 싶기도 하고…. 너무 겁을 줘버리면 애송이 놈이 성에 틀어박혀 버릴 텐데 말이지.”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얘기 아니오? 기왕이면 밖으로 나와줬으면 좋겠지만 말이지, 하하하.”
회의에 참석한 그 누구의 얼굴에도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그들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자, 진정들 하시고. 혹시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습니까? 지금쯤이면 선전포고를 받고 뭐라도 해보려고 꿈틀거릴 시간인데 말이지요.”
“흥. 제놈이 뭐 별수 있겠소? 척후로 보이는 기마병이 가끔 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쥐새끼처럼 성안에 처박혀 있을 뿐이오.”
처음 영지 경계에 병력을 파견한 이후, 라울의 움직임은 철저히 방어적이었다.
이미 영주성을 제외한 주민들을 모두 성으로 불러들였고, 토벌을 위해 출병했던 병력들도 모두 귀환했다는 사실을 이들도 알고 있었다.
“자, 상황을 정리해 봅시다. 현재 라울 자작의 영지는 총 네 곳. 확인된 병력은 칼립스성에 대략 5천, 나머지는 3천 정도요.”
“하, 겨우 만 오천도 안된단 말이오? 이거 계산할 필요도 없겠군.”
“말씀하신 대로 우리 병력은 2만 5천 이상. 병력 수에 있어서는 훨씬 앞서고 있지요.”
게다가 만약 라울 측이 공성전이 아닌 야전을 택한다면 성의 수비병력을 남겨둬야 하니, 실질적으론 두 배 가까운 차이라고 해야 했다.
그리고 이들은 그걸 노리고 야전을 제안한 것이고.
“병력도 그렇지만 기사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패배할 수가 없지요. 저들은 기껏해야 100명. 백작가의 지원을 받는다 해도 150명이 되기 어려울 테니까요.”
“허허, 우리 측 기사들의 수가 적어도 250은 넘으니 압승이군요!”
“후원자께서 어제 기사 30을 추가로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모두 아머 유저 분들로 말이지요.”
“오오, 이래서야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겠습니다. 하하하.”
기사들의 수만 280여 명.
숫자만 놓고 보면 명문 무가의 기사단에 견줄 만했다. 물론 질적인 차이를 생각하면 비교 대상조차 아니겠지만.
이 중 9개 남작가 소속 기사는 절반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했고, 120여 명은 그들을 후원하는 후원자들의 지원과 용병 기사들이었다.
어쨌든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일개 자작의 힘으로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그게 비록 명문 무가의 막내아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봐도 공성을 해야겠는데요? 멍청이가 아니라면 성에서 기어 나올 생각도 하지 않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상관없지요. 이 정도 병력으로 따로따로 떨어진 남작성 몇 개 공성하는 건 일도 아닐 테니 말입니다. 하하하.”
그렇게 대충 작전 회의 같지도 않은 회의가 정리되자 진짜 본론이 나왔다.
“그럼 전후처리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봅시다. 어떻게 할까요? 변동사항은 없는 거겠죠?”
“크흠.”
“아무래도 조정이 좀 필요하지 않겠소? 병력 동원 기간도 길어졌고, 비용이….”
“아니, 이 사람이 지금!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겠다는 것인가?”
“아니, 처음 얘기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 않소!”
“프랑노아의 광산 말인데….”
지금까지의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장난이었다는 듯 갑자기 영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무래도 아홉이나 되는 귀족가가 엮이다 보니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들의 다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전령이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급보입니다! 라울 자작 측 병력이 성에서 나와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 푸하하하. 애송이 놈이 상황 파악이 안 된 모양이군. 좀 더 자세히 보고해 보거라.”
다시 조용해진 막사안에서 전령의 보고가 이어졌다.
바야흐로 전투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척척척.
대로를 따라 수천의 병력이 질서정연하게 행군하고 있었다.
총 7천 명에 가까운 이 병력은 사흘 전에 칼립스 성에서 출발한 라울 자작군의 본대였다.
병력의 구성원이 다양한 만큼 복장이 통일되지 않았지만, 날이 선 군기가 그들이 정예병임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병력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칼립스 성의 영지병 1,500.
용병부대 1,500.
라울 직속 기마병 1,000.
퍼스트 길드 지부에서 동원된 병력 500.
그리고 플레이어 부대 2,000.
총 6,500명의 병사들.
그리고 황금매가 새겨진 하얀 갑옷을 입은 퍼스트 기사단 200명.
은빛 갑옷에 갈색 곰의 문양이 새겨진 아이언 베어 기사단이 50명이었다.
하얀 갑옷의 기마병이 가장 앞에서 대열을 이끌었고, 그 뒤로 기사단, 영지병, 플레이어 부대, 용병부대, 길드병이 뒤를 이었다.
행군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고, 병사들의 얼굴에서도 그리 피로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라울이 일부러 여유있게 행군할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보고드립니다. 대략 1시간 정도 떨어진 언덕 위에 적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병력은 대략 1만 2천 정도로 보입니다.”
“적진의 상태는?”
“중앙 부대는 전투 준비가 마무리 된 것으로 보이나, 좌우 양익의 병력은 진형도 어수선하고 많이 지쳐 보였습니다.”
“수고했다. 적진에 변화가 생기면 즉시 보고하도록.”
“네, 마스터!”
전령이 떠나가고 라울은 간부들을 불러모았다.
“부르셨습니까.”
모여든 이들은 케인, 달튼, 켄 등의 기사와 각 부대 지휘관들이었다.
“적진이 한 시간 거리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의도했던 대로 놈들의 부대가 합류한 모양이다.”
“하하, 아주 발바닥에 불이 나게 달려왔나 봅니다. 아주 가관이었겠는데요?”
달튼이 신난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 놈들도 다른 방법이 없었겠지. 자칫 각개격파를 당하면 난감할 테니까.”
영지전을 신청한 6개 영지 중 칼립스 영지와 맞닿아 있는 3개 남작가가 이쪽 방면으로 병력을 배치하고 있었다.
칼립스 영지가 라울의 본거지인 만큼 이쪽에 병력을 좀 더 집중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합류해 있던 것이 아니라 세 방면에 흩어져 따로따로 진영을 꾸렸다는 것.
만약 야전을 치르게 되면 라울 측의 병력을 분산시키거나 포위할 심산이었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많아야 5천 정도라는 예상과 다르게, 성에 병력을 남기고도 7천에 가까운 대병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당연히 따로 상대하기엔 부담스러웠던 그들은 서둘러 합류하는 것을 선택했고, 시간에 맞추기 위해 황급히 행군해야 했다.
“그런데 굳이 적들에게 시간을 준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을 꺼낸 것은 본가에서 지원 나온 아이언 베어 기사단의 부단장 라몬트 경이었다.
멜빈 백작은 골든베어 기사단이나 더 많은 기사를 지원해 주겠다고 했지만, 라울이 거절했다.
이번 전투의 주역은 라울과 퍼스트 길드여야 했기 때문이다.
“아, 경에게는 아직 설명하지 않았군요.”
라울이 일부러 천천히 행군한 이유는 전투를 단번에 끝내기 위해서였다.
만약 각개격파를 시도한다면 전투 결과를 보고받은 다른 남작들이 전투를 포기하고 회군해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된다면 충분한 병력이 준비된 영주성을 상대로 공성전을 벌여야 하고, 시간이 지연되면 왕실이 개입하여 영지전을 중단시킬 수도 있었다.
따라서 라울은 단 한번의 대규모 회전으로 적들을 전멸시킨 뒤, 병력을 분산해 동시에 세 영지를 공략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진심이십니까? 아무리 이쪽이 정예라 해도 적의 병력은 두 배 가까이 됩니다만….”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라울 측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라몬트 경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게다가 적측에 기사로 보이는 자들이 150이나 된다는 정찰 보고를 이미 받은 후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작전 계획을 듣고 난 뒤에는 불신 어린 눈초리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지휘권은 라울에게 있었기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라울의 작전은 황당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반대가 없는 간부진을 보며 라몬트 경은 각오를 굳혔다.
‘여차할 경우엔 라울 님만이라도 탈출시켜야겠군.’
* * *
둥둥둥둥.
뿌우우!
라울 측 병력이 전장에 도착하고 양측 진영이 전투를 위해 대열을 정비했다.
남작 연합 12,500 vs 라울 자작령 7,000.
도합 2만의 병력이 5백 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상대방 진영을 마주보고 있었다.
“와, X발. 장난 아니다!”
“숫자만 들었을 땐 별로 안 많아 보였는데, 직접 보니까 끝장나는데?”
긴장감 가득한 병사들과 달리 플레이어들은 연신 탄성을 뱉어내며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실시간 중계가 진행되고 있었기에 시청자들도 이 장면을 보고 있기는 하겠지만, 실제 전장에 서 있는 느낌은 방송으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야, 이거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거지?”
“글쎄, 대충 봐도 숫자는 저쪽이 더 많아 보이는데….”
“얘들아, 지금 방송 중계에서 전문가들이 전황 분석 중이란다!”
웅성웅성.
플레이어들은 전투가 직전임에도 시끌벅적했다.
실제 목숨이 걸려 있는 병사들과 그저 단순한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플레이어들의 차이였다.
그 시각.
중계석에서는 전투 상황을 놓고 자칭 전문가들이 전투 결과를 예측하고 있었다.
“수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확실히 퍼스트 길드 측의 열세입니다. 백병전 위주로 진행되는 중세 전장에서 병력 차는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요.”
“그러면 퍼스트 길드측의 패배를 예상하시는 건가요?”
캐스터의 물음에 전문가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보시다시피 병종 구성에 있어서는 역으로 퍼스트 길드 측에 장점이 있으니까요. 남작 연합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보병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퍼스트 길드 쪽은 기병의 수가 천 오백 가까이 됩니다. 그렇다면 병력 운용에 따라선 병력의 열세를 극복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뒤이어 다른 전문가가 입을 열었다.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병사들의 무장 수준의 차이입니다. 양측 공히 통일된 병력 구성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입고 있는 복장이 아주 알록달록 다양하지 않습니까?”
“네, 그래 보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스트 길드 쪽은 부대별로 복장이 거의 통일되어 있습니다. 용병과 플레이어들을 제외하면 상당한 수준의 갑옷과 무기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정규병 혹은 상비병이란 뜻이지요. 그에 반해서….”
화면이 전환되고 남작 연합 측 진영의 모습이 확대되었다.
“보이십니까? 천 옷 위에다 허술한 가죽조끼만 걸친 이들이 대다숩니다. 무기는 딱 봐도 조악해 보이는 나무 창만 덜렁 들고 있고요. 이건 보나 마나 징집병입니다.”
그리고 전문가는 당연하게도 퍼스트 길드의 승리를 예측했다.
‘뭐, 틀린 분석은 아니군.’
전투에 앞서 분석 채널을 잠시 훑어보던 라울이 피식 웃음 지었다.
하지만 그들은 포인트를 완전히 잘못 짚고 있었다.
커넥트의 전장은 단순히 병력의 수와 질로서 승부가 갈리는 중세 전장과는 완전히 달랐다.
전장의 판도를 결정하는 것은 전장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기사.
전략 병기라 할 수 있는 아머 유저.
그리고 전황을 뒤엎을 수 있는 초인의 유무에 달려 있었다.
라울은 그 세 가지 모두에서 상대방에 앞서고 있음을 확신했다.
또각또각.
새하얀 백마 위에 오른 라울이 하얀 갑주를 입고 황금매가 새겨진 파란 망토를 휘날리며 전장의 한 가운데로 말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이 마치 조명처럼 라울의 모습을 비춰주었고, 라울의 입가에는 자신감에 가득 찬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