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78
제178화
“멍청한 놈. 이런 간단한 일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가문의 힘을 빌리다니.”
“면목 없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중년 마법사 하나를 세워놓고 차가운 음성으로 꾸짖고 있었다.
각종 보석과 장신구로 치장된 고급스런 복장은 노인의 신분이 보통이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그는 바로 레슬리 왕국 3대 세력 중 하나인 스카일러 백작가의 가주이자 마탑주인 맥다니엘 스카일러였다.
그리고 그 앞에 서서 창백한 안색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는 바로 그의 둘째 아들이자 탑의 2장로인 타데우스 스카일러.
이번 페리도 마탑 인수의 책임자였던 그는, 갑작스런 라울의 개입으로 일이 틀어질 기색이 보이자 가문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제길.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자연스럽게 넘어왔을 텐데.’
페리도 마탑주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거의 공작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이달 말, 대출 만기일이 되면 순식간에 몰아쳐 페리도 마탑을 흡수할 예정이었는데, 뜻밖의 세력이 등장하는 바람에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더 이상의 실수는 용납하지 않겠다. 그깟 조그만 마탑, 없어도 그만이지만, 가문의 체면이 걸린 일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이번 일로 인해 페리도 마탑 인수는 무조건 손해를 보게 되었다.
규정 변경을 위해 다른 두 세력에 아쉬운 소리를 한 것은 둘째 치고, 공개 입찰로 전환되는 바람에 가격을 후려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차라리 포기하고 다른 마탑을 인수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었다.
사실 지금 왕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 세력들의 마탑 인수는 일종의 사전 힘겨루기나 마찬가지였다.
아직까지 세력에 합류하지 않은 중립 귀족과 마탑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힘자랑’이었던 것이다.
‘우리 세력이 이렇게 강성하니 우리에게 합류해라.’
이런 메시지를 날려야 하는 상황에서 점찍어둔 마탑조차 제대로 인수하지 못한다?
단순히 금전적인 손해 정도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아버지에게 호된 질책을 받고 마탑의 집무실로 돌아온 타데우스가 가신들과 회의를 열었다.
“그래서 결국 놈의 정체가 뭐라고?”
“라울 드 애쉬튼 자작. 루벤 왕국에서 최근 명성을 떨치는 신흥 귀족입니다. 나름 명문인 애쉬튼 백작가의 3남으로 지난 게이트 사태에서 각종 공을 세워 자작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신 중 하나가 라울에 대해 알려진 정보들을 하나둘 보고했다.
그간 벌인 일이 많았던 만큼,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보고가 이어졌다.
물론 타국의 일인 만큼 정보가 정확하진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근래 라울의 활약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하여튼 루벤 왕국 놈들 허세는.”
“기사놈들이 명예에 죽고 사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너무 과하군요.”
“루벤 왕국도 피해가 상당했나 봅니다. 이런 조잡한 수준의 영웅 만들기라니.”
겨우 15살의 나이에 기사단을 이끌고 왕성과 수도를 구하고, 몬스터에 점령된 영지 여러 개를 수복했다.
거기에 동시에 6개의 영지와 벌인 영지전에서 승리를 거두는가 하면, 음지에 숨어 있는 제국 정보부 아지트를 몇 개나 괴멸시켰고, 본신의 경지는 적어도 엑스퍼트 상급 이상.
솔직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믿기지 않는 게 당연했다.
“결론적으로 애쉬튼 백작가를 등에 업고 날뛰는 애송이란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다만 자금력은 상당한 듯합니다. 여러 자유 도시에 투자한 것이 성공을 거둔 모양이더군요.”
“그래 봤자지. 일개 자작 놈이 돈이 많아 봐야 얼마나 많겠는가. 다른 신경 쓸 점은?”
“아무래도 그레이 님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듯합니다.”
여태까지 별 감흥 없어 보이던 타데우스의 인상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건 좀 신경 쓰이는군. 하지만 뭐, 그레이 님이 이런 사소한 일까지 관심을 보이진 않을 테니.”
아무리 큰 세력을 가진 스카일러 마탑이라 한들 대현자 그레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마법에 관련된 이들이라면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으리라.
“어쨌든 이곳은 우리 앞마당이다. 별것도 아닌 타국의 애송이 자작 놈에게 사냥감을 뺏길 수는 없지. 차질 없이 준비하도록.”
“이미 인선을 마쳤습니다. 놈은 감히 우리에게 도전한 것을 크게 후회할 겁니다.”
회의장의 모두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에게 전해진 정보가 사실은 더 축소된 것이었음을.
* * *
페리도 마탑의 인수를 위한 공개 입찰과 특별 경매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입찰자 중 최고액을 부른 4팀을 선정하고, 그 네 팀이 모의전을 벌여 최종 승자가 인수자가 되는 형식이었다.
공개 입찰 과정에서 최고액 입찰자는 라울의 퍼스트 길드가 차지했다.
입찰하는 동시에 그 금액을 마법사 협회에 증거금으로 맡겨야 했기에 허위 입찰은 불가능했는데, 라울의 입찰 금액은 다른 이들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거금이었다.
물론 페리도 마탑의 미래를 알고 있는 라울 입장에선 푼돈에 불과했고, 혹시 모를 장난질을 피하기 위한 투자이기도 했다.
그렇게 정해진 4곳의 상위 입찰팀은 라울과 레슬리 왕국의 3대 세력이 차지했다.
이미 예측되었던 결과이기에 놀라울 것도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레오파드 마탑과 코렐리우스 마탑이 모의전을 포기하면서 페리도 마탑 인수전은 라울의 퍼스트 길드와 스카일러 마탑의 모의전 결과에 따라 정해지게 되었다.
웅성웅성.
레슬리 왕국의 수도 크리스틸렌의 최외곽 지역.
마법사 협회가 관리하는 커다란 스타디움에 수많은 관중들이 모여들었다.
“모의전이라니, 이게 얼마 만이지?”
“게이트 사태 이후로 경기가 거의 없었으니까. 하루가 멀다고 마탑들이 파산하니 경기가 열리기 어렵긴 했잖아.”
“어쨌든 정말 기대되는데? 300명 규모 모의전이라니! 이런 대규모 전투는 많지 않았는데 말이야.”
레슬리 왕국에서 벌어지는 모의전.
루벤 왕국의 영지전과 달리, 레슬리 왕국의 영주나 마탑들은 마찰이 생길 경우 모의전을 벌였다.
모의전은 마법사 협회에서 제공하는 스타디움에서 진행되는데, 경기장 전체에 ‘대규모 환상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전투를 벌인다 해도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고 승패를 가릴 수 있었다.
단점이라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는 것.
모의전에 참가하는 병력이 많아질수록 소모되는 마나석의 양이 많기에, 일반적으론 소규모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번 인수전의 경우 걸린 이권이나 금액이 크기도 했고, 양측 모두 많은 인원의 참가를 원했기에(특히 스카일러 마탑 쪽) 300명으로 합의가 되었다.
“그나저나 퍼스트 길드는 뭐 하는 곳이지? 보는 우리야 재밌으면 그만이지만, 솔직히 스카일러 마탑하고 상대가 되겠어?”
“루벤 왕국 쪽 길드라고 하더라고. 나름 명문가의 후원을 받는 곳이라고 하긴 하는데, 솔직히 좀 그렇지?”
일반인 관중뿐만 아니라 마탑 관련자들도 당연히 스카일러 마탑의 승리를 예측했다.
애초에 퍼스트 길드는 인지도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했고, 흘러다니는 정보도 워낙 믿기 어려운 것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스카일러 마탑이 어느 정도 전력을 투입할지 궁금하군.”
“판이 커진 만큼 체면치레할 정도는 동원하지 않겠어? 우리가 보고 있다는 사실도 알 테니 말이지.”
스타디움의 특등석에는 레오파드 마탑과 코넬리우스 마탑에서 나온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경쟁 세력의 전력을 파악할 수 있는 이런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본탑에서 탑주들도 모의전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모의전 장면은 마법 스크린을 통해 이곳저곳에 중계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스타디움에서 직관하는 것만은 못했다.
스타디움에는 축소된 전장의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은 물론, 다양한 시점에서 전투 장면을 보여주고, 전투에 대한 해설과 관련 자료도 제공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협회 소속의 사회자가 중계석에 모습을 드러내 이번 모의전의 배경과 참가자들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의전에 참가할 양측의 병력이 경기장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스카일러 마탑이 입장합니다!”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스타디움의 문이 열렸다.
척척척.
100여 명의 방패병이 번개 마크가 새겨진 녹색의 망토를 두르고 질서정연하게 걸어 들어왔다.
뒤이어 어두운 녹색 계열의 갑옷을 입은 50명의 기사들이 말과 함께 등장했고, 마지막으로 녹색 로브를 걸친 150명의 마법사들이 여유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
“스카일러 마탑 최고다!”
“레슬리 왕국의 저력을 보여주세요!”
관객들이 환호하며 스카일러 마탑을 맞이했다.
100명의 방패병, 50의 아머 유저, 150의 마법사.
전형적인 레슬리 왕국 모의전 병력 구성이었다.
100명의 방패병은 각종 방어 마법이 각인된 아티팩트를 장비하고 전열에서 적의 마법을 막아내는 역할.
50의 아머 유저는 빈틈이 생겼을 경우 적진으로 파고들 돌격대.
150의 마법사는 마법 포격을 통해 적을 분쇄할 주력 병력이었다.
“음, 생각보다 정예를 동원했군요.”
“4서클 이상 마법병단 출신으로 마법사를 모두 채우다니. 제대로 위력 시위를 할 생각인 모양입니다.”
“이것도 주력을 전부 동원한 게 아닐 테니. 역시 숨겨진 전력이 상당하겠군.”
경쟁 마탑에서 파견한 분석관들이 바쁘게 정보를 기록했다.
4서클 마법사는 기사로 친다면 엑스퍼트와 마찬가지였다.
노력한다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3서클을 넘어선 선택받은 자들.
본격적으로 전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규모 살상 마법이 가능한 경지였다.
그런 이들을 100명 이상 동원했다는 것만 봐도 스카일러 마탑의 저력을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그때 사회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이에 맞서는 퍼스트 길드의 병력이 입장합니다!”
쿠구궁.
문이 열리고.
다그닥, 다그닥!
황금빛 매가 수놓아진 푸른 깃발을 든 기수 다섯이 뛰쳐나왔다.
그리고 뒤이어 백마에 오른 하얀 갑주의 기사들이 황금빛 매가 새겨진 푸른 망토를 휘날리며 기수들의 뒤를 따라 경기장을 질주했다.
5열 횡대로 진입한 기사단 250명은 길게 대열을 갖춰 경기장 절반을 순회하며 퍼레이드를 펼쳤고, 마지막으로 마법사 복장을 한 50명의 인원이 입장하여 자리를 잡았다.
웅성웅성.
퍼스트 길드 측의 병력 구성을 확인한 관중과 분석관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와! 멋지다. 기사단인가?”
“순백의 기사단이라니, 굉장한데!”
“모의전에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되다니!”
솔직히 스카일러 마탑 쪽에 비하면 너무나도 화려하고 멋진 등장이었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하지만 잠시 감탄했던 관중들의 표정은 하나둘 안타까움으로 변해버렸다.
“쩝. 이건 보나마나군.”
“마탑을 상대로 기사단을 들이밀다니. 실전이면 몰라도 모의전인데….”
“루벤 왕국 소속이라더니 역시나. 멍청하면 대가를 치러야지.”
분석관들의 평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의전에서 파워아머 역장이 발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건가?”
“일정 규모 이상 전투에서 마법전단 상대로 기사단은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도 모르나? 돈만 많은 애송이란 얘기가 있더니 역시 병력 운용은 서툰 모양이군.”
레슬리 왕국의 모의전.
주력이 마법사인 만큼, 당연하게도 기사들보단 마법사가 돋보여야 했다.
그래서 마련된 규칙이 ‘파워아머 역장 무효화’.
덕분에 실전이라면 마법을 씹어 먹고 달려들 수 있는 아머 유저도, 모의전에선 흔한 한 명의 기사에 불과했다.
게다가 상대가 4서클 이상 마법사로만 구성된 마법 병단을 상대로 기사단이라니.
게다가 50명의 마법사도 제대로 된 병단이라 보기 어려웠다.
애초에 마법사 전력이 거의 없는 라울이 페리도 마탑에서 지원받은 마법사로 머릿수만 채웠기 때문이다.
‘최소 마법사 50인 참전’이라는 조건이 없었다면 아마 전원 기사로 채웠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레슬리 왕국의 마탑들이 보기에는 이건 싸우기도 전에 승부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건 스카일러 마탑 측 병력의 총사령관인 타데우스 스카일러가 보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이가 없군. 아무리 루벤 왕국 출신이라지만, 이렇게 막무가내일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마법 병단을 동원할 필요도 없을 뻔했습니다. 괜히 전력만 노출하게 생겼군요.”
“상관없다. 기왕 이렇게 된 이상, 압도적인 화력을 보여주는 수밖에. 그래야 망설이던 놈들도 정신을 차리지 않겠는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스타디움의 경기장은 구릉과 숲, 평지가 적당히 섞인 거대한 지형으로 바뀌었다.
라울의 퍼스트 길드와 레슬리 왕국의 스카일러 마탑 정예가 우열을 가리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