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88
제188화
와아아!
등 뒤에서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함성을 들으며 배도현이 가볍게 창을 뽑아냈다.
멜버드의 벨트(파워아머)를 챙긴 그가 여유롭게 창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말 머리를 돌리려던 찰나.
“이노옴! 나와도 겨뤄보자!”
“거기 서랏! 아직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자작의 진영에서 기사 서넛이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싫은데?”
배도현은 피식 웃으며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이미 목적을 달성한 이상, 저들 두셋을 더 이긴다고 달라질 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이번 전투는 플레이어 전체가 돋보여야 하는 전장.
배도현의 독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해선 곤란했다.
“이런 비겁한 놈! 도전을 회피하는 것이냐!”
“이방인 놈은 역시 명예 따윈 모르는구나!”
뒤에서 들려오는 개소리를 무시하며 배도현은 말을 몰아 진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비겁은 무슨. 방금 대결을 끝낸 이에게 바로 달려드는 게 더 비겁한 거 아닌가?’
주인이 명예를 모르니 그 밑의 기사 놈들도 아주 제멋대로 명예를 들먹이는 꼴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거기 서! 이 미개한 이방인 새끼야!”
피융.
그리고 기사 대전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등을 돌려 돌아가는 배도현을 향해 자작 측의 기사가 화살을 날린 것이다.
“조, 조심해!”
“뒤! 뒤!”
플레이어들의 경악한 표정이 배도현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몸을 돌리지 않았다.
“앗!”
어느새 배도현의 등 바로 뒤까지 날아든 화살.
하지만 기이하게도 화살이 꿈틀거리며 궤적을 바꾸더니, 마치 위성이라도 된 것처럼 빠르게 배도현의 몸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피이이익!
날아왔던 것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활을 쏘아낸 기사를 향해 되돌아가는 화살.
“크읏!”
탱!
기사가 간신히 검으로 화살을 쳐냈지만….
쿠당탕탕!
화살 뒤에 숨어서 날아든 비수가 말의 이마에 꽂히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 기이한 장면을 목격한 자작 측 기사들이 잠시 주춤한 사이, 배도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진영 안으로 복귀했다.
등 뒤에서 화살을 날린 비겁한 기사 놈에 대해선 왕실 참관인을 통해 정식으로 항의할 수도 있었지만.
‘참관인도 한통속일 텐데 뭐.’
어차피 놈은 이 전장에서 살아 돌아가기 힘들 테니 상관없었다.
“와, 저런 X새끼. 내가 무조건 저 새끼는 잡고 간다!”
“감히 통수를 쳐? 넌 내가 딱 찍어놨어.”
플레이어들의 공분을 산 것은 물론이었고.
「마, 마스터! 괜찮으시죠? 저런 XX한 XX를 봤나! XXX, 내가 기필코….」
「저, 아직 통신 안 끊겼는데?」
「네? 꺄….」
아무래도 켄과 퍼스트 기사단에도 단단히 찍힌 모양이었다.
‘뭐 어쨌든.’
멍청한 기사 놈의 돌발 행동 때문에 기사 대전의 열기는 사그라들었다.
남은 것은 정면충돌뿐.
뿌우우!
양측 진형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보병 앞으로.”
“보병 앞으로!”
뿌우우!
남작의 명에 따라 플레이어 부대 2천과 셀피어드 남작가 병력 5백이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자작가 진영에서도 4천이 넘는 보병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영지전은 특별한 전략 없는 전형적인 힘 싸움 구도로 진행되는 것으로 보였다.
차이점이라면 남작 측은 기병이 많이 남아 있고, 자작 측은 궁병의 수에서 앞선다는 것.
푸르르륵.
말들이 달려나가고 싶다는 듯 투레질을 하는 사이, 보병들은 50m 가량을 전진해 있었다.
“궁수대 사격 준비.”
“궁수대!”
깃발이 휘날리며 본진 앞쪽에 2열 횡대로 자리 잡고 있는 500명 남짓한 궁수들이 장궁에 화살을 걸었다.
마치 거울처럼 적진에서도 천여 명의 궁수들이 사격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긴장되는 순간.
적과의 거리를 살피던 남작의 입에서 명이 떨어졌다.
“쏴.”
“사격 개시!”
투웅, 피비빗!
하늘을 향해 화살의 비가 날아올랐다.
500에 불과한 장궁병이었지만, 정예병이라는 걸 과시하듯, 그들이 날린 화살은 분산되지 않고 일정한 화망을 형성하며 적들의 선두를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화살 세례에 노출된 건 남작가의 선두인 플레이어 진영도 마찬가지였다.
“전방에 화살! 방패 들어!”
천천히 걸어가던 병력들이 걸음을 잠시 멈추고 각자가 지참한 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 침착하게 화살 공격에 대비했다.
후두두둑! 텅! 푸슉.
확실히 자작 측 궁병들은 숙련도가 부족했는지, 실제로 남작 진영에 도달한 화살의 수는 백여 개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진영의 선두에 위치한 이들은 플레이어들 가운데서도 정예였다.
산발적으로 떨어져 내리는 화살에 맞아줄 이는 아무도 없었단 얘기.
“방패 내리고 다시 전진!”
지휘관의 명령에 플레이어들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반면 자작 측 보병 진영에선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지 반응 속도가 느려진 듯했다.
“2파가 온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다시 화살 비가 떨어져 내린다.
거리가 조금 좁혀진 탓일까?
이번에는 화살의 수가 좀 더 많아 보였다.
후두두둑.
그리고 다시 방패를 내리고 전진.
“아, 심장 쫄리네.”
“그냥 확 뛰어가면 안 되나?”
플레이어들이 구시렁거렸지만, 초반 지휘는 남작 측의 명령에 따르기로 합의되어 있었다.
그렇게 두어 번을 더 반복하자 어느새 상대측 보병과의 거리가 150m까지 줄어들었다.
이대로 거리가 100m 이하로 줄어들 때까지 같은 작업을 반복하다가 일제히 돌격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투 양상이었지만.
「지금이다. 전원 2단계 전투태세로! 준비되는 조는 자율 전투 개시.」
「2단계 전투태세로!」
말에서 내려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전진하던 배도현이 길드 통신을 통해 명령을 전달했다.
그 순간.
플레이어들이 대여섯 명 단위로 쪼개지며 소규모 진형을 만들었다.
근접 클래스 플레이어들이 커다란 타워실드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땅에 박아 넣으며 간이 방어벽을 세우는 사이, 궁수 클래스는 활을 들어 적진을 향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화르륵!
그와 동시에 마법사 계열은 사정거리가 긴 기초 마법들을 발동하여 적진을 향해 발사했다.
“조준할 필요도 없다! 무조건 빠르게 날려!”
지휘관들이 자신들도 화살을 쏘면서 주변 플레이어들을 독려했다.
그리고 타워실드 방어벽 설치를 마친 근접 플레이어들마저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던 활을 꺼내 발사하니, 순식간에 플레이어 진형 전원이 원거리 공격수로 전환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퉁.
“와, 이거 제대로 날아가는 거 맞나?”
“나도 몰라. 일단 쏴! 어차피 화살 많잖아?”
근접 검사 클래스인 두 친구가 잡담을 하며 활을 쏘았다.
그들이 처음으로 활을 손에 잡아본 건 며칠 전이었다.
퍼스트 플레이어 협회에선 영지전에 참가하는 모든 플레이어들이 기본적으로 활을 쏘는 방법을 배워둘 것을 주문했고, 며칠간 의무적으로 몇 시간의 속성 교육을 실시했다.
당연히 아무런 스킬 보정도 없고 활을 쏴본 경험도 없는 이들이 제대로 화살을 표적지에 적중시킬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쭈우욱, 퉁!
일반인이라면 당기기조차 힘들었을 고탄성의 활시위를 플레이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쭉쭉 잡아당겼다는 사실.
그리고 원하는 목표를 맞출 수는 없어도, 150m까지 화살을 날리는 것은 가능했다는 것.
애초에 플레이어들이 사용하고 있는 이 육체는 일반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소프트웨어는 부실해도 하드웨어 자체는 초인이나 다름없단 뜻이었다.
게다가 퍼스트 자작가에서 통 크게도 2천의 병사 모두에게 활과 화살을 비롯한 군수 물자를 전부 지급했으니, 플레이어들 입장에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자작가의 병사들에겐 악몽과 다를 바 없었다.
후두두둑. 푸슉, 퍼억!
“끄악!”
“내 다리!!”
“아악! 살려줘!”
갑작스럽게 쏟아지기 시작하는 수천 발의 화살 세례와 더불어 곳곳에 날아드는 각종 마법 공격.
작은 방패와 가죽 갑옷만으로 그것을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정신 차려! 모두 적진으로 도… 꺼헉.”
저격이 특기인 플레이어들은 적진에서 지휘관만을 노리고 있었으니, 혼란을 수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뒤늦게 적 본진에서 기사 몇이 달려와 보병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리자, 방패를 머리 앞쪽에 치켜든 병사들이 무작정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하지만 그들이 내지르는 함성은 미약했다.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과 마법 공격을 피해내며 150m를 돌파한다는 건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은 언덕 위의 본진에서 더 확연하게 알아챌 수 있었다.
자작가의 선봉대 4천은 어느새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있었고, 적진에 다가갈수록 실시간으로 병력들이 녹아내리는 게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우리 궁병들은 뭐 하고 있나?”
제레미 자작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발악하며 외쳤지만, 자작가의 궁병들은 이미 열심히 화살을 쏘아내고 있었다.
다만 그 공격이 플레이어 진영에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하고 있었을 뿐.
타워 실드 방어벽은 마법사와 궁사들을 효율적으로 지켜주고 있었고, 각 조마다 배치된 한 명 이상의 탱커들이 눈먼 화살을 적절하게 막아냈다.
“아악!”
혹여 화살에 맞는 플레이어가 있다고 해도.
「B-13조 부상자 발생」
「접수. 지금 의료반 출동합니다.」
실시간 통신을 통해 전달되는 보고에 따라 치료 계열 플레이어들이 즉각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었다.
“큭. 이럴 수가….”
제레미 자작가의 기사단장이자 사령관을 맡은 갈론드가 말고삐를 움켜쥐며 신음성을 내뱉었다.
이런 결과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저 무기와 화살들은 어디서 계속 나타나는 거지? 아니 애초에 저놈들은 정체가 뭐야?’
일반적으로 보병 병과가 나눠지는 이유는 무기에 대한 숙련도 차이도 있지만, 보급적인 측면도 컸다.
병사들이 전장에 투입될 때 지참할 수 있는 무장은 한계가 있기 때문.
지휘관 입장에선 방패도 들고 창도 쓰고 활도 날리며 근거리에선 검도 쓰는 만능 병사가 있다면 작전을 짜는 게 얼마나 수월하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다양한 무기를 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전장에 투입하려면 싸우기도 전에 지쳐 나자빠질 게 뻔했다.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전천후 병사들이 진짜 나타날 줄이야.
이는 인벤토리라는 사기적인 보급 창고를 지닌 플레이어들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었다.
배도현은 그걸 적절히 활용했을 뿐이지만, 상대하는 지휘관 입장에선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크읏, 이대로면….’
보병이 전멸하고 전투는 패배할 게 기정사실이었다.
갈론드가 입술을 꾹 깨물고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야닉 경, 출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거 참. 어쩔 수 없지요.”
그도 눈앞의 참상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이대로는 답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뿌우우!
본진을 지키던 맥닐 후작가 출신 정예병들과 남아 있던 보병들이 전장에 투입됨과 동시에, 야닉과 기사들을 필두로 한 기병대가 전장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적 보병은 보병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적장을 친다!”
야닉은 정면돌파가 아닌 우회를 선택했다.
아군 보병들이 싸그리 녹아버린 마당에 적 보병들과 씨름을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쪽은 기사만 40명.
엑스퍼트급 기사만 해도 20명에 달했다.
‘겨우 10명 남짓한 남작가 기사들 따위야 순식간에 쓸어버리면 그만이지.’
기병의 수가 이쪽이 훨씬 적다고 해도 큰 의미 없었다.
어차피 일반 기병은 기사들 앞에선 덩치 큰 표적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자작가 기사들의 움직임은 배도현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전투태세 3단계로!」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