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92
제192화
“호오. 자네가 바로 라울 군인가?”
“처음 뵙겠습니다. 애쉬튼 백작가의 3남이자 퍼스트 영지의 영주 라울 드 애쉬튼입니다.”
처음 만난 피델 드 그리어 후작은 아주 강인한 인상이었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와 하얀 수염이 어우러져 일반적인 귀족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쉰여덟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온몸은 근육 덩어리 그 자체였고, 느껴지는 기운 또한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후작은 11월이 되어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가슴이 반쯤 드러나는 반팔 셔츠와 하체에 딱 들러붙는 타이트한 반바지만 입은 채 라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째서 두 가문이 잘 통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군.’
이 자리에 자신이 아닌 큰형 딜런이 왔다면 후작의 저 웃음이 더 호탕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요즘 자네의 이야기로 왕국이 들썩인다고 들었네. 비록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아주 가슴이 호탕해지는 이야기더군. 하하하.”
후작은 잠시 라울에 관한 왕국의 소문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고, 라울은 적당히 겸손하게 말을 받았다.
“그래, 아버지는 좀 어떠신가? 아무래도 문을 걸어 잠가 놓다 보니 소식이 제대로 전해지질 않아서 말이지.”
“걱정해주신 덕분에 많이 회복하셨습니다. 지금은 다시 수련에 들어가셨구요.”
“그런가. 다행이군. 그런 의기 있는 친구가 버텨줘야 이 왕국도 흔들리지 않을 테니 말이지.”
피델 후작과 라울의 아버지인 멜빈 백작은 상당히 친한 사이인 모양이었다.
그는 가문을 잇기 전 젊었던 시절, 멜빈 백작과의 모험담을 이야기하며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그랬는데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될 줄이야. 조만간 백작과 한번 자리를 마련했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제가 아버님께 말씀드려 시간을 한번 맞춰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겠군. 머무는 동안 편안하게 지내다 가도록 하게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는가 싶었지만, 후작의 눈이 잠시 라울의 뒤쪽으로 향했다.
“뒤의 기사들은 자네의 부하들인가?”
“아, 소개가 늦었습니다. 지금은 제 일을 도와주고 있지만, 원래는 아카데미의 동급생들이자 제 친구들입니다. 인사드리게.”
“안녕하십니까! 퍼스트 기사단 수석 기사 달튼 드 템플턴, 인사드립니다.”
“오오, 템플턴이라면 검공님의 혈족인가?”
“제 조부님 되십니다.”
“이런, 귀한 손님을 몰라봤군. 자네를 보니 앞으로 공작가의 앞날이 든든하겠어.”
후작이 달튼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덕담을 나눴다.
그리고 다음은 바로.
“…켄이라고 합니다. 퍼스트 기사단 상급 기사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렇군.”
잠시 후작과 눈을 마주친 켄.
하지만 이내 고개를 살짝 돌려 눈을 피했다.
후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켄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고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아주 훌륭한 친구들을 뒀구만. 부디 함께 꿈을 향해 정진하길 바라네.”
그렇게 후작과의 만남이 마무리되었다.
* * *
“꼭 나가야 합니까?”
켄이 살짝 불만스런 표정으로 라울에게 물었다.
“어. 꼭 나가야 해.”
“하아, 제 사정 잘 아시면서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응. 꼭 이렇게 해야겠어.”
뭐가 문제냐는 듯 싱글거리는 라울을 바라보며 켄은 처음으로 그가 참 얄밉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알잖아, 이번 토너먼트가 단순한 친선 토너먼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혹시라도 정말 소문대로 되면 어쩌려고?”
우습게도 영지전이 멈추자 세력들의 눈이 후작가의 토너먼트로 몰린 모양이었다.
케인이 가져온 정보에 따르면 이번 후작의 생일 축하연 및 토너먼트 참가를 위해 맥닐 후작가, 랜달 백작가는 물론이고, 그간 숨죽이고 있던 저력 있는 가문들까지 모두 후작가로 모여들었다.
이유는 은근히 돌고 있는 한 가지 소문 때문이었다.
– 이번 토너먼트 우승자는 그리어 후작의 사위가 될 수 있다.
즉, 후작의 하나뿐인 딸인 케일리(켄)의 남편이 될 수 있다는 얘기였는데, 직접 확인해 본 결과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리어 후작은.
“나는 그런 조건을 내건 적이 없다. 하지만 토너먼트에 우승할 만한 강자라면 사윗감으로 한번 고려해 볼 수는 있겠지.”
이런 대답을 해왔고, 실제로 후작가 내에선 기정사실이 아니냐는 얘기도 돌고 있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켄은 ‘절대 그럴 일은 없다’면서 분노했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법이었다.
그녀가 언제까지 정체를 숨긴 채 후작가를 외면하고 살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그나저나 이쪽 어머니는 좀 곤란하군.’
그리어 후작에게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첫째인 정실부인은 장남인 션과 장녀인 케일리를 낳았는데, 그들이 어릴 적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두 번째 부인이자 현재 후작 부인은 아들만 둘을 낳았다.
두 형제 중 맏이는 라울과 동갑인 열여섯 살이었고, 둘째는 열네 살로 내년이면 성년을 맞이한다.
문제는 두 형제의 자질이 수준 이하라는 것.
육체적인 부분은 타고났지만, 참을성과 끈기가 부족해 성취가 또래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장남인 션이 실종되었을 때, 그들이 아닌 케일리가 후작가를 잇는 것이 낫지 않으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아마도 케일리가 정체를 감추고 가출한 데는 그런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기는 했지만.
‘몇 년이 지났는데도 딸을 팔아먹으려 하다니. 끈질기다고 해야 할지, 집요하다 해야 할지.’
케인의 조사에 따르면 소문의 출처는 바로 후작 부인이었다.
아마도 제 아들들의 작위 계승에 방해가 될 만한 걸림돌을 치워버리겠다는 생각이겠지만….
“어리석은 짓이군.”
“네…?”
“아니, 혼잣말이었어.”
자칫 승냥이를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다니.
물론 후작 선에서 커트하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후작가의 체면도 말이 아닐 것이다.
그때 켄이 조금은 뾰로통한 말투로 얘기했다.
“그렇게 걱정이 되신다면, 지, 직접 참가하시면 되잖아요?”
“음? 내가? 그건 좀 반칙이지. 그리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켄이 나서는 게 그림이 더 낫지 않겠어?”
이번 토너먼트를 통해 라울은 후작가의 실전된 창술이 복원되었다는 사실을 알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걸 후작가의 혈족인 켄이 아닌 자신이 직접 펼쳐 보인다면, 아무래도 문제가 생길 여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켄은 라울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 정말 너무하십니다!”
한마디 내뱉은 켄이 얼굴을 붉힌 채 밖으로 나가버렸다.
“내가 뭐 잘못했나? 아니면 너무 놀린 건가?”
어리둥절한 라울에게 조쉬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하아, 역시 완벽한 사람은 없는 모양입니다. 여심을 읽지 못하는 자, 세상의 반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일지니. 저도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조쉬마저 방을 떠나자 라울이 머리를 긁적였다.
“뭔 소리야?”
* * *
켄의 토너먼트 출전에 대한 실랑이는 다음 날 바로 종결되었다.
이유는 본선 토너먼트에 참가 신청한 일부 인물들 때문이었다.
“랜달 백작가에서는 4남인 하파엘이 참가 신청을 했습니다.”
“하파엘? 내가 알고 있는 그 하파엘 말인가?”
“네, 투리엄에서 만났던 그자가 맞습니다.”
이번 토너먼트 참가 자격은 나이 30세 이하, 루벤 왕국 국적자였다.
일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예심은 이미 예전부터 진행되고 있었고, 왕국의 명문가들에겐 본선 직행 추천권이 주어졌다.
“내가 알기로 그는… 이미 결혼하지 않았던가?”
“네, 이미 처가 둘이라고 합니다.”
“이런 XX놈을 봤나.”
라울은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랜달 백작 가주가 처를 열 명 가까이 두고 자식도 수십 명이 넘는다더니, 아들놈도 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하파엘이라면 과거 수도의 혈족 반란 사태 때 참관하다가 큰형 딜런에게 곤욕을 치르고 도망친 녀석이었다.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맥닐 후작가에서는 두 명이 출전했는데 그중 하나가 파비앙 드 맥닐이라고 합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라울이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곁에 있던 켄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파비앙 드 맥닐, 현재 24세. 현 가주 클리포드 후작의 막내아들로 후작의 총애를 듬뿍 받고 있다고 합니다. 특이 사항이라면 과거 그리어 후작가의 후계자인 션 드 그리어 공자와 아카데미 동급생이라는….”
“그 정도면 충분해. 놈이 뭐 하는 녀석인지는 알고 있으니까.”
“어찌, 어찌…!”
켄은 충격이라도 받은 듯 주먹을 불끈 쥔 채 부들거리고 있었다.
“이건 뭐, 하파엘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악당 놈이 등장했구만.”
살다 보면 가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을 마주치곤 한다.
오빠인 션을 직접 죽음으로 몰아넣은 녀석이 뻔뻔하게 그 동생을 취하려고 하다니.
‘삼류 각본보다 더 저질이군.’
어쩌면 놈은 그저 재미 삼아 토너먼트에 참가했을지도 모른다.
속으로는 션이 죽은 원인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후작가 인물들을 비웃고 있을 테고.
“토너먼트, 제가 참가하겠습니다.”
켄의 으르렁거리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뭐, 이미 그렇게 하기로 했긴 했는데. …죽이지만 마라. 놈의 목을 딸 장소는 여기가 아니니까.”
라울과 눈을 마주친 켄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쉬 경.”
“네, 마스터.”
“이번 토너먼트에 경도 참가 신청을 해 두었으니, 준비하도록.”
“오오, 저도 출전입니까? 맡겨 주십시오!”
라울은 애쉬튼 백작가에 주어진 두 장의 출전권을 켄과 조쉬에게 배정했다.
딱히 이제 와서 애들 싸움에 끼어들 생각도 없었고, 그의 뇌리를 찌르는 불길한 예감 때문에 후작의 곁을 지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라울 자신이 아니라 부하 기사들이 명성을 얻는 것 또한 그의 격을 높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재밌는 토너먼트가 되겠어.’
라울이 상반된 분위기의 두 기사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 * *
토너먼트 본선에 앞서 피델 후작의 생일을 축하하는 축하연이 먼저 열렸다.
후작성의 커다란 홀은 수백 명의 손님을 수용하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텔른 남작가의 차남 제레미아입니다. 후작 각하의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상석에 앉은 후작의 앞으로 각 가문의 대표들이 찾아가 축하 인사와 함께 선물을 전달하고 있었다.
따로 초대하지 않았음에도 수십 개의 가문에서 찾아온 것을 보면, 역시 명문가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듯이 작위가 낮은 가문부터 인사가 진행되어 갔다.
‘아무래도 준비해 온 선물의 가치가 다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처음부터 값비싼 선물들이 나타나면, 뒤에 인사할 가문들이 부담스럽지 않겠는가.
연회를 즐기며 평소에 보기 힘든 각 영지의 특산물이나 보물들을 구경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어느덧 긴 순서가 지나가고 라울의 차례가 다가왔다.
라울은 선물을 든 조쉬를 대동하고 홀의 가운데로 향했다.
“퍼스트 자작가와 애쉬튼 백작가를 대표하여 라울 드 애쉬튼이 후작 각하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후작의 덕담이 잠시 오간 뒤 드디어 라울의 선물이 공개되었다.
딸각.
고풍스런 상자가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접이식 삼지창이었다.
“호오, 그것은?”
“가문의 장인들에게 부탁해 특별 제작한 삼지창입니다. 게이트에만 등장하는 아머드 스콜피온의 꼬리와 미스릴, 레드 스틸의 합금으로 만들었습니다.”
라울이 가운데 창대 하나를 들고 살짝 마나를 주입하자, 분리되어 있던 창이 저절로 하나의 창으로 합쳐졌다.
그리고 합쳐진 창대 위로 은은하게 푸른 문양이 떠올라 시선을 모았으니.
“미약하지만 물의 기운을 내포하고 있으니, 바다를 접하고 있는 후작가에 걸맞은 창이 아닐까 합니다.”
라울이 창대를 두 손으로 받쳐 후작에게 전하니, 창을 쥐어본 후작이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훌륭하군. 가히 명작이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후작가의 문장인 삼지창을 구현한 것이었기에 후작의 마음에 쏙 드는 모양이었다.
흐뭇해하는 후작에게 다가간 라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선물은 토너먼트가 끝난 뒤에 전해 드리겠습니다.”
후작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의아한 듯한 표정이었지만, 순서가 밀려 있었기에 궁금증을 풀 수 없었다.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라울이 준비한 진짜 선물.
그것은 바로 후작가에서 유실한 가문의 창술 일부였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