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25
제225화
탁.
라울이 용사 일행을 데리고 공중에 떠 있는 마신전 입구에 내려섰다.
“우읍. 지독한 마기!”
마법사 레건이 농도 짙은 마기에 구역질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입구에는 아무도 없네요. 방심한 걸까요?”
애셔의 말처럼 마신전 앞의 공터와 계단에는 그 흔한 마수 하나 없이 조용했다.
‘들어올 테면 들어와 보란 말인가?’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면 그만이었다.
라울은 거리낌 없이 계단을 올라 신전의 출입문으로 향했다.
용사파티가 황급히 그의 뒤에 따라붙었다.
지지잉.
‘결계군.’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이 자그마한 신전에 마족 다섯이 옹기종기 모여 있지는 않았을 테니, 아마도 공간 확장마법이 걸려 있을 터였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분이 강림하셨는지 얼굴이나 보자.’
라울이 결계 안으로 성큼 발을 들이밀었다.
* * *
“조심해!”
퍼엉!
바닥에 고여 있던 핏방울이 폭발하며 애셔를 덮쳐갔다.
애셔가 검을 휘둘러 몸을 막기 직전 반투명한 실드가 생성되며 핏물을 막아냈다.
치이익.
실드에 가로막힌 검붉은 핏물이 실드를 반쯤 녹이고는 공기 중으로 산화했다.
“쿠워어!”
쾅!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시마르는 날렵하게 뒷걸음질 치며 떨어져 내리는 철퇴를 피해냈다.
그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바로 ‘블러드 골렘’.
피로 만들어진 3미터 크기의 피조물은 물리 공격에 거의 피해를 받지 않는지 화살을 대여섯 개나 몸에 박고도 쌩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홀리 스피어!”
성녀가 쏘아낸 새하얀 창이 블러드 골렘의 가슴팍에 꽂혔다.
그리고는 이내 눈부신 빛을 터뜨리며 폭발했다.
후드드득.
블러드 골렘의 상반신 전체가 신성력에 녹아내리고, 일부는 사방으로 튀었다.
‘거기냐!’
눈을 빛내고 있던 시마르가 재빨리 화살을 날려 골렘의 핵인 ‘붉은 보석’을 깨뜨렸다.
그사이 애셔와 마법사 레건도 늑대 형상의 블러드 골렘 하나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나쁘지 않은 연계네. 메인 탱커가 없다는 게 좀 아쉽긴 하군.’
팔짱을 끼고 기둥에 살짝 기댄 채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라울.
기둥 너머로 잔해만 남은 블러드 골렘의 사체가 십여 구 넘게 나뒹굴고 있었다.
결계 내부는 커다란 궁전 같은 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다행히 미로가 아닌 평범한 구조물.
다만 벽과 기둥이 모두 붉은 빛을 띠고 있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문제는 곳곳에 고여 있는 피 웅덩이였다.
바닥뿐만 아니라 천장과 벽에서도 핏물이 흘러내리거나 뚝뚝 떨어져 내리는 게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블러드 골렘’류 몬스터들.
핵을 파괴하지 않으면 무한히 재생하는 까다로운 상대였다.
물론 라울에게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의 분석안은 골렘의 핵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단번에 꿰뚫어 볼 수 있었으니까.
‘이제 대충 실력 파악도 끝났으니 속도를 내볼까?’
용사 파티는 라울이 없어도 충분히 적들을 돌파할 실력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한창 전투 중인 밖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정리해야 했다.
“먼저 가겠습니다. 알아서 따라오세요.”
라울이 검기(마나 블레이드)를 뿜어내는 비수 50여 개를 풀어놓으며 궁전 복도를 달려 나갔다.
“그워어어!”
“케르륵!”
사방에서 핏덩어리들이 괴성과 함께 달려들었지만, 라울의 근처에 다가오지도 못하고 비수에 핵을 꿰뚫린 채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팟, 팟!
라울이 발을 구를 때마다 10여 미터씩 전진했고, 그가 지나간 자리엔 피보라가 휘날릴 뿐이었다.
“휘유우. 이거 우리가 할 게 없겠는데?”
시마르가 혀를 차며 멀어져가는 라울의 뒤를 따라 달렸다.
길잡이인 만큼 일행의 앞에서 적과 함정을 파악하고 대비해야 했지만, 오늘만큼은 개점휴업이나 다름없었다.
라울이 쓸고 지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정까지 다 때려 부수고 지나갔으니 뭐.’
겉으로는 그들을 차갑게 대하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뒤따를 그들을 신경 써주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자자, 서두릅시다! 이러다가 마족 얼굴도 못 보고 끝나겠어요.”
할 일이 없어진 용사파티는 텅 빈 복도를 열심히 달려 나갔다.
* * *
“반갑지 않은 손님이군. 오랜만에 여흥을 즐기고 있었는데 말이지.”
궁전의 최상층.
통째로 만들어진 대전의 옥좌에 붉은 정장을 차려입은 마족이 앉아 있었다.
한 손에 와인 잔을 들고 옥좌에 기댄 채 편안한 자세로 대전을 내려다보고 있는 마족의 두 눈동자는 핏물처럼 붉었다.
“더러운 악취미로군.”
라울이 눈살을 찌푸렸다.
옥좌의 아래.
대전의 끝에는 작은 연못과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바로 핏물이었다.
그리고 연못 안에는 사지가 절단된 인간들의 사체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으니….
후르릅.
와인잔의 내용물을 들이켠 마족이 분수대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분수대의 핏물이 저절로 날아와 와인잔을 다시 채웠다.
라울은 전혀 신경 쓰지도 않는 눈치였다.
‘개폼잡기는…. 인간 피나 빨아먹는 모기 같은 놈이.’
라울도 굳이 놈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챠라락.
레그나토르가 라울의 몸을 뒤덮었고, 그의 등 뒤에선 찬란한 무기의 군단이 떠오르며 대전 위를 가득 채웠다.
‘가랏!’
라울의 지시에 무기들이 마족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그리고 라울 또한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찰박.
핏물 연못 위를 슬쩍 밟고 계단 위의 옥좌를 향해 뛰어오르는 라울의 검에는 날카로운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가 서려 있었다.
퍼버버벙! 콰광!
“큭….”
라울이 공중에서 백텀블링을 하며 분수대 위로 내려섰다.
검을 쥔 손바닥이 얼얼했다.
그리고 마족을 노렸던 무기의 군단은….
텅. 챙그랑.
부러지거나 뭉개져 버린 쇳덩어리들이 옥좌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아주 흥미로운 재주를 부리는구나.”
쨍그랑.
와인 잔을 던져버린 마족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옥좌에서 일어섰다.
산양의 뿔처럼 굵고 긴 뿔을 제외한다면 분명 어디 가도 모델 소리를 들을 만한 미중년이었다.
물론 붉은 눈에 붉은 머리, 붉은 복장까지 빨간색 일색으로 갖춰 입은 취향은 너무나도 악취미였지만 말이다.
‘…저건?’
라울은 마족의 외모보다도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기운에 더 신경이 쓰였다.
분명 충돌의 순간 보였던 그 모습은….
“끝이냐? 하긴, 힘의 격차를 느꼈다면 의욕을 잃을 수도 있는 법이긴 하….”
쾅! 텅, 터덩!
라울의 오러 블레이드가 황금빛 궤적을 그리며 연속으로 마족을 베어나갔다.
그리고 그걸 가로막는 것은 핏빛 기운이 감도는 얇은 장막이었다.
슈슉!
이번에도 어김없이 장막이 일그러지며 가시 같은 꼬챙이들이 라울을 향해 튀어나왔다.
‘흥! 같은 기술에 두 번 당할까 보냐?’
라울은 날렵한 스텝을 밟으며 가시들을 피해내곤 계속해서 막을 두드렸다.
“흠. 그것 참 팔팔한 녀석이로구나.”
하지만 실질적인 타격은 전혀 주고 있지 못했다.
마족의 몸에서 1m가량 떨어져 형성된 장막은 라울의 오러 블레이드를 완벽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파바바방!
순간적으로 마족의 뒤를 노리며 날아든 라울의 무기들은 오러를 담고 있었음에도 막을 뚫어내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촉수처럼 뻗어 나온 장막에 붙들리자 라울과의 연결이 끊어졌다.
텅그렁.
또다시 한 무더기의 무기들이 고철이 되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시시하군.”
파앗!
마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터져 나왔다.
또한 그의 몸 근처에 머물고 있던 장막이 갑자기 크기를 불려가며 라울을 집어삼키려 했다.
휘리릭~ 탁.
라울은 피 연못 너머로 한참을 물러섰다.
「눈치챘어?」
라벨이 슬며시 물어왔다.
「어. 녀석의 힘의 근원이 뭔지 알 것 같아.」
마족을 둘러싼 장막.
그건 마기로 핏물을 움직여 만들어낸 것이었다.
마족들은 혈통에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들었는데, 눈앞의 마족은 피를 조종하는 능력을 지닌 듯했다.
「성가신 상대네. 주변 환경도 그렇고.」
녀석이 주변을 피바다로 만들어 놓은 건 취향 탓도 있겠지만, 특성을 활용하기 위한 장치일지도 몰랐다.
‘예상보다 실력이 훨씬 윗줄인데? 곤란하군.’
느껴지는 힘의 기운만 해도 마스터 상급 이상임은 분명했다.
게이트를 넘어오며 본래의 힘을 발휘하지 못함에도 그렇다는 건, 진짜 실력은 얼마나 대단하단 뜻이겠는가?
물론 라울도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다.
이 정도 고위 마족을 정면에서 상대하는 건 전 현생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었다.
놈의 특기가 뭔지, 수준이 어떤지 탐색하는 건 필수였으니.
이제는 많이 뒤틀려버린 전생의 기억이지만, 분명 이런 마족에 대한 소문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장벽 쪽에서 마족이 출몰했다는 정보 자체도 없었으니까.
‘애초에 그때는 장벽 자체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으니까.’
도대체 전생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런 괴물뿐만 아니라 장벽과 콥스로드 일부분까지 통째로 괴멸되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그런 궁금증을 해결할 때가 아니었다.
“타핫!”
라울이 다시 무기의 군단을 조종해 마족을 공격해 나갔다.
그리고 시시하다는 말과는 달리 마족 또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펑! 퍼버벙!
라울과 마족간의 거리는 대략 30m정도.
그 상공에서 주인을 대신한 무리들이 격렬하게 부딪쳤다.
라울의 무기 군단과 그에 맞서는 피의 구슬들.
피의 장막에서 떨어져 나온 주먹만 한 구슬들이 라울의 무기 군단을 요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충돌과 함께 구슬들은 터져나가 바닥에 쏟아져 내렸고, 라울의 무기는 힘을 잃고 추락했다.
스르륵.
쏟아져 내린 핏물은 다시 연못으로 스며들어 마족의 장막으로 흡수되었다.
추락한 라울의 무기도 장막에 붙들렸을 때와 달리 멀쩡한 상태로 다시 군단으로 합류했다.
백중세!
무기의 군단과 피의 구슬 간의 전투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놀랍구나, 인간 전사여. 내 앞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버티는 인간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구나. 어떠냐? 지금이라도 내게 복종을 맹세한다면, 너를 이곳의 왕으로 만들어주마!”
마족은 아직도 여유가 넘치는지 어디선가 새로운 잔을 꺼내 핏물을 음미하며 라울에게 제안했다.
물론 라울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웃기고 자빠졌네. 크라넨 제국의 황제가 잘도 그런 걸 허락해 주겠다. 고작 제국 놈들의 손아귀에서 움직이는 주제에 왕은 무슨, 푸흡.”
라울이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자 마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놈! 감히 마계 서열 33위인 나 [포르시스 백작]을 모욕하는 것이냐? 인간 따위가 위대한 마계의 고귀한 귀족을 함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제국 황제 그자는….”
라울이 귀를 쫑긋 세웠다.
황제에 대한 정보.
그것은 전생에도 알려진 바가 없는 최고의 기밀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해줄 줄 알았냐? 멍청한 인간 녀석 같으니. 아무래도 너에게는 자비를 베풀 이유가 없어 보이는구나.”
‘쳇.’
라울이 속으로 혀를 찼지만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다.
“거봐. 33위? 난 또 십 위 안에는 드는 줄 알았네. 고작 33위가 왕으로 만들어 줘봤자, 너보다 계급이 높은 놈이 나와서 한마디 하면 말대꾸나 할 수 있겠어? 생각해보니 완전 사기꾼 아냐?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 보든가.”
라울의 말에 마족 포르시스가 잠시 멈칫하더니 근엄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이놈! 마계는 서열과 계급만으로 움직이는 곳이 아니다! 감히 인간의 잣대로 위대한 마계의 백작을 의심하는….”
“그래서 마계 후작, 공작, 마왕님이 나타나면 들이댈 수 있단 말이야?”
“…하찮은 인간 놈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군.”
“우연의 일치네. 나도 거짓말쟁이 마족 새끼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후우웅!
마족의 손짓에 거대한 피의 파도가 라울을 향해 밀려왔다.
‘흥!’
라울 또한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와 염동력을 이용해 그에 맞섰다.
콰과광!
거대한 충돌의 여파로 피 연못과 분수대가 박살이 나 버렸다,
공중에서는 무기와 피 구슬의 대결이.
바닥에서는 라울과 포르시스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사이.
라벨의 도움으로 마족의 감각을 피해낸 용사파티가 정해진 위치로 움직이고 있었다.
‘기회는 단 한 번!’
라울과 마족이 펼치는 엄청난 대결을 곁눈질로 훔쳐보며 조심스레 움직이는 용사 애셔의 손아귀는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