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26
제226화
‘역시 정면 대결로는 힘드네.’
라울이 내지른 송곳같이 뾰족한 오러 블레이드가 핏빛 장막을 쑤시고 들어갔다.
하지만 잠시 밀려나는가 싶었던 장막이 오러를 둘러싸고는 쥐어짜듯 압박하자 오러의 형태가 일그러졌다.
라울은 내질렀던 검을 회수하고는 이번엔 채찍처럼 막을 후려쳤다.
길게 펼쳐진 오러가 장막을 두드렸지만, 마치 흡수라도 되는 것처럼 오러가 흐물흐물해지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정말 재밌는 수법이구나.」
라울과 시야를 공유하고 있던 스승 카르데나스의 말이 들려왔다.
「핏물을 매개체로 마기를 압축시켜 만들어낸 장막이구나. 압축한 마기의 짜임새가 네 오러의 강도에 필적하니, 쉽게 공략하긴 어렵겠어. 게다가 접촉 순간에는…」
「핏물 섞인 마기와 오러를 상충시켜 마치 흡수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죠. 알고 있습니다.」
겉보기엔 오러를 흡수해버리는 듯하지만, 실상은 같이 태워버리는 것이었다.
대전의 바닥에 널린 핏물을 통해 소멸한 분을 보충하고 있으니 눈에 띄지 않을 뿐.
「그런데 어찌하여 계속 무의미하게 오러를 소모하고 있는 것이냐? 아무리 파워아머라는 기물이 마나를 보조해 준다고 하지만, 낭비해서 좋을 것은 없을 텐데.」
완전무결하고 깔끔한 검술을 추구하는 카르데나스에게 라울의 막무가내 전투 방식이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강자가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테지.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 하지만….’
「일종의 기만전술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낚으려는 거죠.」
「저 마족을 속이겠다는 뜻이냐?」
「네. 전투의 승패는 단순히 실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약자에게는 약자만의 전투법이 있는 법.
전생의 배도현은 오랜 시간 랭킹1위의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그가 항상 강자였냐면 그건 결코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이 상대라면 모를까, NPC 초인들과 전투를 벌일 때면 배도현은 언제나 약자의 위치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시스템의 보조에서 벗어나 길을 개척했다고 해도, NPC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
정말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검을 갈고닦아 마스터의 자리에 오른 검술의 대가.
수십 년간 마나의 본질을 연구하고 마법을 익혀 7서클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
마찬가지로 수십 년간 수련과 고행을 통해 초인의 자리에 오른 성직자, 무투가, 소환술사 등.
커넥트에서 초인이라 함은 그런 한 분야의 달인을 뜻했다.
시스템의 보조를 통해 경험치와 숙련도를 올려 초인이 된 플레이어들과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는 뜻이었다.
결국 같은 초인이라 생각했던 NPC들은 언제나 그의 머리 위에 서 있었고, 배도현은 그들을 이기기 위해 실력 그 이상의 것들이 필요했다.
좋게 말하면 작전, 저속하게 말하면 잔머리를 굴렸다는 뜻이다.
지금 라울이 무의미해 보이는 공격을 계속 퍼붓는 것도, 실제론 작전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쯧쯧. 나름 재밌는 장난감이라 생각했거늘, 네놈도 별수 없구나. 그 주둥아리 반만이라도 실력이 받쳐줬다면, 좀 더 흥이 살았을 것을.”
마족 포르시스는 이제 정말 지루하다는 듯 하품까지 내뱉었다.
실제로 전투 자체는 격렬하게 펼쳐지고 있었지만, 그는 라울이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한쪽 팔은 뒷짐을 지고, 남은 손으론 와인을 홀짝이고 있는 그의 태도도 그걸 방증했다.
뭔가 신선한 공격이 펼쳐질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 라울은 다른 인간들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멍청한 인간놈. 백날을 두드려 봐라. 내 [포스 오브 블러드]를 뚫을 수 있는지.’
피가 있는 한 그의 방어막은 절대 뚫리지 않는다.
그를 상대하는 이들 대부분은 그것도 모르고 두드리면 깨질 것이란 착각을 하곤 한다.
‘아니면 적어도 지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어쨌든 오랜만의 인간계 나들이인데 이번에도 그다지 흥미 있는 상대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포르시스는 라울 또한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착각은 이내 자만심을 불러오고, 자만심은 결국 방심으로 이어지게 마련이었다.
라울은 바로 그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 * *
꽈광! 쾅! 콰과광!
강력한 파괴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포르시스의 표정에는 놀라움이 아닌 지루함이 묻어 있었다.
‘끝이군.’
얼마 전부터 인간 놈의 오러가 슬슬 줄어들기 시작했고, 공중의 무기들도 눈에 띄게 숫자가 줄어들었다.
지루한 공방이 이어진 지 어느덧 20분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고, 그 정도면 인간 마스터의 오러가 슬슬 바닥을 드러낼 시점이었다.
방금 펼쳐진 위력적인 연속 공격은 놈의 마지막 발악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예측처럼 라울의 검에서 뻗어 나오는 오러의 크기가 처음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보일 반응은 뻔하군.’
포르시스가 손바닥 휘둘러 어딘가를 가리키자, 바닥의 피 웅덩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차라락.
그리고 대전의 출입구와 창문 등 도주로를 피의 장막으로 모두 봉쇄해 버렸다.
덕분에 정면의 장막이 약간 얇아지긴 했지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인간이 뚫어내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인 것을.
그렇게 퇴로를 막아버리고 비어버린 와인 잔을 여유롭게 다시 채우려고 신경을 잠깐 돌린 그 순간.
라울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불타올랐다.
* * *
‘지금이다!’
라울이 순간적으로 파워아머 레그나토르의 ‘각성’스위치를 올렸다.
그와 동시에 광휘의 아우라를 발동하고 염동력을 오토 컨트롤에서 매뉴얼 모드로 변경하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라벨, 지금!」
푸화학!
라울의 몸과 검에서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고, 무기 군단에는 오러와 더불어 신성력이 덮어 씌워졌다.
챠라락! 꽈드드득.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라벨이 펼쳐낸 [급속 빙결] 마법이 대전 전체를 뒤덮었다.
콰과과광!
“큭!”
어마어마한 굉음과 힘의 파편들이 난무했고, 피 안개가 대전을 뒤덮으며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잠시 후.
“네놈! 힘을 숨기고 있었구나!”
마족 포르시스의 가슴팍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얕았군.’
구멍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꿈틀대며 천천히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드드드드드.
그리고 신성력을 머금어 백금색으로 변해버린 라울의 오러 블레이드는 핏물이 뭉쳐 집게발처럼 변한 포르시스의 왼팔에 붙들려 있었다.
“아쉽게 되었군. 나름 회심의 카드였을 텐데 말이지.”
그리고 라울의 반대편.
포르시스의 오른팔은 고스트 아머로 현신한 카르데나스의 푸른 오러 블레이드를 붙잡고 있었다.
“글쎄. 그렇게 속편하게 말할 여유가 있어 보이진 않는데?”
그러고 보니 여태까지 그를 지켜주던 장막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라벨의 마법이 작렬하는 순간 라울은 신성력과 무기의 군단을 동원해 장막을 박살내 버렸다.
포르시스는 본능적으로 장막을 복원하기 위해 피를 동원하려 했지만 아뿔싸.
라벨의 마법이 대전에 널려 있던 피를 모조리 얼려버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라울과 카르데나스의 검을 붙잡고 있는 피의 집게(혹은 장갑)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포르시스 자신의 혈액이었다.
외부의 혈액보다 마족 자신의 혈액에 대한 지배력과 순도가 높은 것은 당연한 일.
그렇기에 각성한 라울과 마스터 상급 수준의 카르데나스의 오러 블레이드를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밑천이 다 드러났으니 이제 어쩔 거냐? 숨겨둔 패가 있다면 더 꺼내 보던지.”
마치 여유 있는 듯 말했지만, 포르시스 또한 힘을 모두 쥐어짜고 있었다.
두 초인의 오러 블레이드를 붙잡고 있으면서 상처도 복원해야 했다.
그리고 남은 혈액은.
펑! 채쟁!
길쭉한 꼬리 모양으로 변해 날아드는 라울의 무기 군단을 쳐내고 있었으니까.
상황은 결국 힘겨루기, 치킨 게임으로 돌아선 것이다.
어느 쪽의 힘이 먼저 떨어지느냐에 승부가 달렸다는 뜻.
그리고 포르시스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인간 놈. 이번에야말로 느껴진다. 네놈의 발악이 말이지. 흐흐흐.’
레그나토르의 각성 효과.
여러 번의 강화와 라울의 경지가 높아짐에 따라 유지 시간이 길어지긴 했지만, 길어야 5분이었다.
그 시간이 지나면 비축해 두었던 모든 마나를 소모하고 레그나토르가 작동을 멈춘다.
포르시스는 그것을 간파한 것이다.
하지만 라울은 오히려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숨겨둔 패를 꺼내라고? 그래, 원한다면 보여주지. 지금이야!”
라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전의 천장에서 하나의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그의 손에는 평범해 보이는 롱소드가 들려 있었는데, 그 끝에선 새하얀 마나 블레이드가 솟아나 있었다.
“푸하하!”
포르시스의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제 와서 초인도 아니고 고작 기사 하나가 참전한다고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인간 전사가 움직이는 무기 군단 중 하나만 못해 보였다.
포르시스는 여유롭게 붉은 꼬리를 휘두르며 외쳤다.
“고작 이게…!?”
푸확!
그리고 포르시스의 몸뚱어리가 완벽하게 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서컹! 푸슉! 투과과광!
뒤이어 라울과 카르데나스, 무기 군단이 그의 몸을 산산 조각내 버렸다.
“하앗!”
그것도 모자랐는지 라울이 염동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 공간을 장악했다.
휘리리릭!
“라벨!”
“불타올라라!”
라울이 공기 중으로 흩어진 핏물을 마지막 한 조각까지 끌어 모아 한데 뭉쳐놓자, 라벨이 화염 마법으로 그것을 불태워 버렸다.
-띠리링.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라울이 아공간을 열어 불타오른 공간을 덮어버렸다.
‘아싸, 득템!’
뭔지 모르겠지만, 마족 놈이 뱉어낸 아이템을 용사 파티의 눈을 피해 아공간에 욱여넣은 것이다.
“후아.”
그리고 나서야 라울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느새 레그나토르는 해제된 상태였다.
“…끝난 겁니까?”
“네, 그런 것 같네요.”
라울의 대답을 듣자마자 ‘용사’ 애셔 또한 다리가 풀려 바닥에 철푸덕 앉아버렸다.
포르시스에게 최후의 일격을 먹인 것은 다름 아닌 용사 애셔의 작품이었다.
검술 실력이나 경지가 잘해 봐야 엑스퍼트 상급에 불과한 애셔가 ‘용사’인 이유.
그건 바로 그가 신에게 부여받은 특별한 힘 때문이었다.
‘신의 적을 상대로 속성, 방어를 무시하는 절대적인 일격을 날릴 수 있다니. 완전 사기잖아?’
어리바리한 외모와 어설픈 실력에 방심하다가는 한방에 훅 갈 수 있단 얘기였다.
조금 전 영문도 모르고 소멸한 포르시스처럼 말이다.
물론 실전에 써먹기에는 아주 험난한 조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솔직히 라울이 없었더라면 과연 애셔가 포르시스에게 단 한 번이라도 칼질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근처에 다가가기도 전에 핏덩어리로 변해버렸겠지.’
커넥트 세상의 용사들이 ‘반쪽짜리 얼뜨기’ 소리를 듣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샤라락.
온화한 치유의 빛이 라울의 전신을 덮어왔다.
‘좋네.’
성녀의 회복 스킬이었다.
대전 곳곳에 숨어 있던 나머지 용사 파티원들이 라울의 근처로 모여들었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신가요? 다친 곳이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이미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대의 축복과 회복을 부여하고 있으면서도 키에라가 걱정스레 물어왔다.
“감사합니다. 조금 지친 것뿐입니다.”
“와! 정말 대단하십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장엄한 전투 장면을 본 건 처음입니다. 어떻게 이런 실력을 그간 숨기고 계셨던 겁니까?”
시마르가 감탄했다는 듯 물어왔다.
‘숨기기는…. 마스터에 오른 게 겨우 며칠 전 일인데.’
하지만 굳이 착각을 바로잡아줄 필요는 없었다.
라울은 그저 싱긋 웃음 지으며 말을 아꼈다.
“정말…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작님처럼 그렇게 강해질 수 있는 겁니까?”
그리고 라울보다도 두 살이 많은 18살의 용사 애셔는 마치 우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라울을 바라봤다.
‘…부담스러운데.’
라울은 머리를 긁적이며 FM 대답을 해줬다.
“열심히 노력하면 됩니다.”
“…….”
참고로 라울의 나이는 이제 열여섯. 해가 바뀌어도 열일곱이었다.
어쨌든 이로써 가장 큰 위협이었던 마계 백작 포르시스를 쓰러뜨렸다.
이제 이 빌어먹을 마신전의 핵을 찾아 무너뜨리고, 외부의 전투를 마무리 지어야 했다.
“자, 서두릅시다.”
라울이 씩씩하게 옥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