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39
제239화
탁.
탁자 위에 놓인 금빛 장미 모형이지도 위에 꽂혔다.
지도 위에는 각종 모형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델라미안 가문의 문장인 금빛 장미.
보이드 가문은 보랏빛 자수정.
갈레고스 가문은 파란 눈동자.
맥그리거 가문의 주황색 주먹까지.
브레넌 공화국의 각 도시들에 놓인 모형들은 현재의 구도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흠.”
새하얀 머리칼의 노인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그걸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청년 하나가 숫자가 적힌 종이 하나를 내려놓았다.
[추정 득표수]갈레고스 – 435
델라미안 – 396
라르센 – 64
중립 기타 -105
“곤란하군. 라르센 놈들에게 여지를 주고 싶지 않은데 말이지.”
말은 그랬지만, 노인의 얼굴은 태평해 보였다.
목소리도 덤덤하게 느껴졌고.
“일단 중립 가문을 최대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라르센이 캐스팅 보트를 쥐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청년이 몇몇 중립 가문을 가리키며 말하자 노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의 이름은 엑사드 델라미안.
델라미안 가문의 가주이자, 이번 선거에서 총령을 노리고 있는 야심가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청년은 바로 그의 장남인 리포크 델라미안.
나름 상당한 수완을 발휘하고 있기에 가문에서 인정받고 있는 가문의 후계자였다.
그런데 분명 그들의 득표수가 경쟁자에 비해 부족함에도 그들의 얼굴에선 불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지도를 바라보고 있을 뿐.
“예측 범위이긴 하지만, 너무 일방적으로 손해를 봤군. 어떻게 생각하느냐?”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분명 손해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여전히 우리의 우위입니다. 어차피 중립표는 결국 강자의 손을 들어주게 마련이니까요.”
무슨 이유에선지 그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지. 그간의 손실이야 투자라고 생각해도 좋으니. 하지만…!”
쾅.
지도 위에 새로운 모형이 박혀 들었다.
파란 눈동자 모형들의 앞에 놓인 그 모형은 바로 보랏빛 매였다.
“작은 변수 하나가 큰 거래를 망쳐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는 법이지.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안 그래도 엘더윅 경에게 부탁하고 오는 길입니다. 고작 이방인 부대에게는 과분한 전력이긴 하지만, 일은 확실하게 처리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좋은 선택이다. 적재적소에 효율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때로는 과감한 배팅도 필요한 법이지. 이제 슬슬 우리의 패를 보여줄 때가 되었지.”
델라미안 가문의 칼이 퍼플 길드를 노리기 시작했다.
* * *
브레넌 공화국 남부, 드레이니 시 근교.
와아아.
“밀어붙여!”
“죽어랏!”
쾅! 채쟁!
양측 합쳐 만 단위가 넘는 대규모 병력들이 평원에서 교전 중이었다.
거리를 두고 마주한 두 진영의 가운데에선 양측의 선봉대가 맞부딪쳤다.
“고작 이방인 용병들에게 밀릴 셈이냐! 이상한 기술을 빼면 별 볼 일 없으니 겁먹지 말고 밀어붙여!”
용병대 단장으로 보이는 험상궂은 사내가 도끼창을 휘두르며 용병들을 독촉했다.
그와 비슷하게 개성 넘치는 방어구로 무장한 각 용병단 간부들이 용병들을 부추겼다.
“저놈들은 걸어 다니는 보물 창고다! 놈들이 걸친 거 하나만 챙겨도 팔자 핀단 말이다! 단단히 챙겨줄 테니 뒤로 빼지 말고 물어뜯어, 이 새X들아!”
거친 욕설과 폭력이 난무한 가운데 초짜 용병들이 최전선으로 내몰렸고, 그들을 방패 삼아 숙련된 용병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델라미안 가문에서 고용한 용병 군단.
플레이어들이 퍼플 길드를 따라 갈레고스 가문 측에 힘을 실어주자, 델라미안 가문은 용병 협회를 통해 병력을 수급한 것이다.
“장비가 허름하고 레벨이 낮다고 방심하지 마!”
“우습게 보지 말고 진형을 지키라고!”
선발대로 나선 플레이어 측의 길드 간부들이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진형을 유지하기 위해 핏대를 올렸다.
하지만 전장의 열기에 감화된 것인지, 최전선의 플레이어들은 지휘관들의 말은 귓등으로 흘린 채 막무가내로 용병들과 섞여 들어갔다.
“죽어, 새꺄!”
“쪼렙은 꺼져! 돈도 안 되는 놈들이!”
단연 개인적인 전투 능력은 플레이어들 쪽이 우세했다.
피지컬, 장비에 앞서는 것은 물론 죽음에 대한 공포도 적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병력이 소모되는 속도는 양측이 크게 차이 나지 않고 있었다.
“…아악, 이 비겁한 놈들!”
“힐러! 힐러 어딨어!?”
난전.
그것도 다수가 섞여서 치르는 혼전 상황 속에서 용병들의 실전경험과 전투 노하우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눈앞의 상대 하나만 보고 칼을 휘두르는 반면에, 용병들은 자신 주변에서 벌어지는 전투 상황 전체를 파악했다.
그래서 기회가 생기면 눈앞의 상대가 아닌 옆사람의 빈틈을 노렸고, 난데없이 날아든 기습적인 공격에 플레이어들의 대처는 너무나도 미흡했다.
“우리 편은 다들 뭐 하는 거야? 왜 나 혼자 셋이랑 싸우는 거 같지?”
“아, 진짜. 자기가 마크하고 있는 적은 책임 좀 지라고! 용병 하나 상대하는 게 그렇게 어렵냐?”
호흡 문제, 실전 경험 부족 등의 문제가 겹쳐서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
둥둥둥둥.
본진에서 북소리가 울렸고, 플레이어들과 용병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슬쩍 뒤로 물러섰다.
“퇴각 신호다! 한꺼번에 빠지지 말고 천천히 물러서!”
플레이어측 지휘관이 열심히 소리치는 반면, 델라미안 측 용병들은 지시 없이도 질서정연하게 뒤로 빠져나갔다.
“이틀째인데 별 성과가 없네요. 오늘도 결국 무승부. 게다가 아군 플레이어들의 피해도 생각보다 크고요.”
여우 은별이를 품에 안은 한서현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후퇴하는 플레이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종의 기 싸움이니까. 어느 한쪽이 밀렸으면, 바로 추가 병력이 투입되었을 거야. 많이 아쉬워 보이네.”
배도현의 말에 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나섰으면 결과가 바뀌지 않았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번 전장은 앞서와는 좀 다르잖아. 병력수나 기사단 수도 그렇고. 일단 지휘부의 판단을 믿어보자고.”
배도현과 한서현을 비롯한 퍼플 길드원들은 아직 전장에 투입되지 않았다.
애초에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달리 그들은 기사들이 머무는 막사에 머물고 있었으니.
“실례합니다! 배도현 경은 어디 계십니까?”
본진에서 전령이 찾아왔다.
내용을 전해들은 그가 길드원들을 불러 모았다.
“내일은 아마도 본격적으로 붙어볼 모양이다. 출전 준비를 해달라는군.”
“휘유~. 드디어 출전인가요? 몸이 근지러워서 혼났네.”
길드원들은 이틀간 구경만 했던 것이 지루했던 모양이었다.
랭커들인 만큼, 순위를 신경 쓰는 이들도 많았다.
하루를 쉬면 그만큼 경쟁자들에게 뒤처지게 되니 조바심을 내는 것도 당연한 일.
물론 그런 상황을 대비해 각종 훈련 도구를 지참하고, 여유 시간에 대련을 펼치며 실력을 가다듬고 있었다.
하지만 실전을 통한 경험치 획득에는 비할 수 없지 않겠는가?
“우리는 적의 기병대와 기사단을 상대한다. 마상전을 기본으로 장비를 세팅하도록. 그리고 기사들과 맞붙을 가능성이 크니 다들 각오 단단히 다지고.”
배도현의 말에 길드원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일부는 기사들과의 대전을 기대하는 모양이었고, 일부는 어려운 상대를 만나게 되어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굳이 전공을 욕심낼 필요는 없다는 것 알고 있겠지? 상대할 수 없는 강자가 나타난다면, 최대한 버티면서 각 팀장에게 보고하도록. 쓸데없는 호승심에 목숨을 버리는 멍청이는 없을 거라 믿는다.”
“예쓰~ 마스터!”
“알겠습니다!”
퍼플 길드는 이제 단순한 플레이어 길드가 아니었다.
커넥트에 진입한 이방인들의 대표이자 얼굴 마담이었으니,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그들의 플레이 장면은 수많은 지구의 시청자들이 보게 되고, 커넥트의 지배층들 또한 그들을 통해 플레이어들의 수준을 가늠한다.
배도현이 굳이 길드원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게 아니었다.
작전회의가 끝나고 배도현이 일우를 따로 불렀다.
“내일은 네가 길드원들을 이끌었으면 좋겠어.”
“…응? 네가 있는데 왜?”
일우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배도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나는 아마도 따로 움직여야 할 것 같아. 도중에 내가 이탈하더라도 따라오지 말고 길드원들을 챙기란 뜻이야.”
“알았어. 그렇게 할게.”
배도현이 중간중간 개별 행동을 해오던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일우도 딱히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고.
그는 일우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건네고는 자신의 막사로 돌아왔다.
스르륵.
아무것도 없던 막사 천막에서 그림자가 새어 나오더니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확실한 정보겠지?”
“네,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델라미안 가문도 몸이 달아올랐나 보군. 이렇게 과감한 수를 던지는 걸 보면 말이지.”
배도현에게 서류를 넘기는 이는 바로 케인이었다.
이미 델라미안 가문에서 무슨 수를 쓸 것을 예상한 배도현이 그를 브레넌 공화국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재밌겠네. 새로운 초인은 어떤 느낌일지 내일이 기대되는데?”
짓궂은 표정의 배도현을 바라보며 케인이 속으로 애도를 표했다.
‘하필이면 마스터를 적으로 돌리다니, 쯧쯧. 경지에 올라서서 한창 들떠있을 시긴데 안 됐군.’
라울이 내려놓은 서류의 윗장.
고집스럽게 생긴 백발 노인의 얼굴 아래 ‘엘더윅 드윈’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 * *
다음 날.
지휘부의 작전대로 본격적인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플레이어들이 아닌 정규군이 전장에 투입되었고, 이에 맞서 적 지휘부도 정규군을 진격시켰다.
챙! 콰광!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전장 한가운데서는 양측의 정규군이 충돌하고 있었고, 좌익과 우익에선 플레이어와 용병단이 다시금 맞붙었다.
병력 규모가 비슷했던 만큼, 전장은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가닥, 다가닥!
그때, 델라미안 측의 본진에서 일단의 기마대가 출진했다.
오백 기 가량의 기마대 선두에는 금빛 장미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은 기사 대여섯이 앞장서 있었다.
“적 기마대 및 기사단 출현!”
관측병의 황급한 목소리에 뒤이어 이쪽의 기마대도 출병을 시작했다.
“배도현 공, 부탁드리오.”
“네, 저들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기마대에 퍼플 길드원들이 따라붙어 이열에 자리 잡았다.
다가닥, 다가닥.
쐐기꼴로 진형을 갖춘 기마대는 선두 기사들의 인도하에 적 기마대를 향해 힘차게 달려나갔다.
중앙군과 좌익 사이의 공간을 파고들던 적들이 이쪽의 모습을 보곤 말머리를 돌렸다.
“거창! 충돌에 대비하라!”
휘리링.
말안장에 걸려 있던 4m 길이의 장창들이 앞을 향해 겨눠졌고, 퍼플 길드원들은 각자의 무기와 방패를 고쳐쥐었다.
20m, 10m, 5m.
순식간에 양측의 거리가 좁혀들었고, 서로의 창날이 상대방을 향해 얽혀 들어갔다.
꽈지직! 퍼걱! 콰광!
히히히잉!
충돌의 여파가 진형 전체를 흔들었다.
전열에 서 있던 일부 기사들이 장창에 밀려 낙마했고, 다리가 부러진 말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챙! 채쟁!
기사급들이 전열을 책임진 탓인지, 장창 돌격에 목숨을 잃은 이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진형 자체가 흐트러져 기마대의 속도는 완전 죽은 상태.
바닥에 떨어진 기사들이 검을 꺼내 적들에게 내질렀고, 말 위의 기병들이 단창을 바꿔 들어 창을 쑤셔댔다.
“저열한 델라미안 놈들! 돈으로 실력을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남부의 촌놈들은 그냥 시골에 처박혀 풀이나 뜯어먹어라!”
델라미안가의 황금장미 기사들과 갈레고스 가문의 캐넌 기사들이 서로에게 욕을 내뱉으며 맞붙었다.
거대 가문의 기사들답게 하나 하나가 중급 엑스퍼트 이상의 강자들.
다만 그 수가 양측 합해서 열도 안되었고, 실제 전장을 채운 것은 지방 가문의 기사들과 기마병들이었다.
“무리하게 파고들지 말고 아군을 엄호해!”
“기사들의 싸움에 끼어들지 말고 적을 견제해라!”
마나 블레이드도 쓸 수 없는 일반 기마병은 기사들의 전투에 끼어들어봤자 고기 방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쪽에는 퍼플 길드가 있었으니.
“모두 돌격! 사정 보지 말고 다 쓸어버려!”
“으라차!”
“다 덤벼!”
퍼플 길드원들의 참전에 적 기마대가 맥없이 밀려났고, 기사들도 점차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좋아, 계속 밀어붙여!”
“3소대, 4소대는 우회해서 적을 포위해!”
기세를 탄 퍼플 길드원들을 따라 기마대 지휘관들이 적을 둘러싸고 포위망을 형성하려 했다.
‘왔나…?’
배도현이 내지르던 창을 수습하며 적진의 뒤를 슬쩍 바라보자, 다섯 명의 기사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매섭게 다가오고 있었다.
“일우, 부탁한다!”
“오케이. 나중에 보자고!”
배도현이 진형을 이탈해 다가오는 기사들을 향해 말을 달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