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72
제272화
“다 모였으니 회의를 시작하지요.”
작은 고성의 회의실.
다양한 복장의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그들의 특징이라면, 모두가 값비싼 장신구와 갑옷으로 치장하고 있다는 것.
아마 커넥트에 유통되고 있는 가장 비싼 아이템일 터였다.
왜냐하면 이들은 바로 커넥트를 주름잡는 대형 길드들의 수장과 수행원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퍼플 길드와 협력 길드는 논외로 치고 말이다.
이미 그들과 견주기에는 격차가 상당히 벌어져 있었으니까.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은 그러했다.
“바쁜 사람들을 불러 모은걸 보면 아주 대단한 용건이라도 있나 보지?”
삐딱하게 물어보는 이는 각진 턱과 다부진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얼굴과 몸에 각종 흉터가 새겨진 그의 정체는 바로 러시아 국영 길드 [슬라바 러시아]의 길드장 이사에브 루블란.
그가 각을 세우는 이유는 지금 이 자리를 소집한 이가 미국 연합 길드 [SUS(Super United States)]의 수장 브렌트 존스였기 때문이다.
“모인 이유조차 모를 정도로 바보가 있다는 게 놀랍군. 그쪽 정부에선 이곳에 별로 신경을 안 쓰나 보지?”
“뭐라고!”
험악한 인상의 이사에브가 달려들려는 것을 주변 길드원들이 붙잡아 말렸다.
“멍청이는 내버려 두고,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다들 아실 겁니다.”
그가 장내에 모인 각 길드의 수장들과 눈을 맞췄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 모인 이들의 면면은 과거 반 퍼스트 길드 연맹의 구성과는 조금 달랐다.
그때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대형 길드의 인물들은 한발 물러서 있는 형태.
그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신생 길드’들이었으니….
하지만 신생 길드라 해서 무시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유는 그 길드의 이름을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미국의 [SUS].
러시아의 [슬라바 러시아].
중국의 [중화].
일본의 [다이닛폰].
영국의 [GUK(Glory United Kingdom)].
한국의 [대한민국].
그 외에도 각국의 명칭이 들어간 길드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으니.
이들은 바로 국가의 지원을 받고 생긴 ‘국영 길드’였던 탓이었다.
도대체 한낱 게임에 무슨 국영 길드까지 존재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이 그랬다.
각국 정부는 스폰서가 없는 적당한 규모의 길드 여럿과 무소속 랭커, 국가에서 진즉부터 길러온 플레이어들을 통합하여 새롭게 길드를 창설했으니.
그게 바로 지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신생 대형 길드의 정체였다.
“새로운 시나리오가 시작되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다들 체감하고 계시겠지만, 지구의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리고 후원자들께선 우리가 가능하면 많은 영역을 확보하길 바라고 계십니다.”
새로운 시나리오가 공개되고 일주일.
각국 정부 수뇌부는 지구와 커넥트 시나리오 간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주장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점진적으로 떨어지고 있던 에너지 효율은 시나리오 직후, 절반 이하로 떨어져 내렸다.
정전 사태가 일어난 곳도 부지기수였고, 이제 대다수의 인구가 이상 기온에 시달리고 있었다.
㈜커넥트의 회장 알렉스 송에 대한 접근은 여전히 불가능했다.
그래서 좋든 싫든, 일단 커넥트 내부에서 뭔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지구 온난화, 엘니뇨, 라니냐, 흑점 폭발 여파 등등을 핑계로 시선을 돌리는 국영 매체와 언론들 탓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커넥트를 찾는 이유는 더 단순해졌다.
-원리는 모르지만, 자체 발전 기능 덕분에 전기가 필요 없는 캡슐.
-캡슐에서 커넥트에 접속하는 동안은 숙면을 취한 것과 같다는 연구 결과.
-지구의 이상기온 현상과는 상관없이 커넥트의 플레이 환경은 쾌적 그 자체.
이것이 합쳐지니, 일할 때를 제외하고 커넥트에 접속하는 건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아직 공급되는 캡슐 물량은 충분하지 않았고(아직 500만 대 정도), 개인 맞춤형 기능 때문에 양도도 불가능했으니.
사람들은 너도나도 커넥트에 당첨되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이 뭡니까? 이제 와서 사이좋게 협력해서 금역을 나눠 먹기라도 하잔 말입니까?”
국영 길드가 생겨나면서부터, 범국가적인 길드 연합이 출범할 것 같은 기류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고, 개척 시나리오를 지나오며 각국 길드들은 전쟁에 가까운 영역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니 당장 화해하고 협력하자고 말하기엔 이미 늦은 것일지도 몰랐지만….
“못할 것도 없지요. 더 이상 쓸데없는 힘겨루기를 피하고 서로 영역을 정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만.”
웅성웅성.
브렌트의 말에 장내가 시끄러워졌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합의가 잘 이뤄진다면 나쁠 건 없었으니까.
“그 영역을 어떻게 정하려고? 결국엔 노른자위 땅은 너희 미국 놈들이 다 챙겨가려는 수작 아닌가?”
이사에브의 날선 목소리에 일부 인원들이 동조했다.
“맞아. 케이크를 잘라 먹는 것도 아니고, 금역을 어떻게 공정하게 나눈단 말인가?”
“영역 가른다는 핑계로 우리 개척지를 탐내는 거 아닌가!”
이미 6개월간 개척지 내부의 영지전을 통해 대략적인 경계는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경계를 그대로 영역으로 인정하라고 하면, 반대할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고작 그 정도 개척지론 절대 만족하지 못하지.’
‘한 달 정도면 옆 영지를 뺏을 수 있는데, 지금 합의할 순 없잖아?’
수십 길드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금역 개척지를 어떻게 딱 선을 긋듯 가른단 말인가.
“아, 말을 좀 잘못 전달한 것 같군요. 제가 말하는 ‘영역’은 지금의 개척지가 아닙니다. 바로 ‘앞으로 획득할’ 개척지를 말하지요.”
지잉.
회의실 전면에 마법 스크린이 펼쳐지며 세 곳의 금역 지도가 나타났다.
당연히 서쪽 몬스터 숲은 제외되었으니까.
“보다시피 우리가 차지한 영역은 금역 전체로 본다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초입의 자그마한 땅을 두고 6개월간 피 터지게 싸워온 겁니다.”
현재 플레이어들이 개척을 마친 곳에 색깔과 함께 각국의 국기가 그려졌다.
깔끔하게 영역 전체를 차지하고 방어선을 형성한 몬스터 숲과는 전혀 달랐다.
산발적으로 퍼져 있는 개척지의 색은 마치 벌레 먹은 빵처럼 곳곳에 검은 구멍이 즐비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색이 칠해지지 않은 구역은 바로 A등급과 S등급 개척지였으니까.
플레이어들은 A등급과 S등급 개척지를 제외한 나머지들을 우선적으로 차지했고, 그걸 두고 계속해서 다퉈온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습니다. 지도를 보십시오.”
금역 안쪽에 그어져 있던 1차 결계선이 지워지고 막혀 있던 금역의 영역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이제 굳이 초입의 자잘한 개척지를 두고 다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새롭게 열린 개척지가 저렇게 넓게 펼쳐져 있으니 말이죠. 그래서 제안합니다. 새로운 개척지의 개척 우선권을 협의하고, 영지전보다는 개척에 집중합시다!”
황금빛 영역.
왠지 모르게 뭔가 더 귀한 것들이 감춰져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플레이어들의 눈에 ‘욕심’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찬성. 우리 [중화] 길드는 찬성합니다. 아무렴, 조그마한 땅에 집착할 필요가 없지요. 일단 싸움을 멈추고 능력에 따라 개척을 진행하는 게 맞는 것 같소.”
그게 시작이었다.
다들 생각은 같았다.
일단 빈 땅부터 먹고 보자.
다른 놈들 걸 뺏는 건 그다음에 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리고 이후.
고성이 오가는 난잡한 회의가 며칠이나 이어지고 나서 대타협이 이뤄졌다.
지도는 자를 댄 것처럼 선으로 쪼개졌고, 각국의 국기가 박혀 있었다.
그 영역의 크기가 강대국의 순서로 정해진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마침내 합의에 이른 이들이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지만, 모두 머릿속에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적당히 지키는 시늉은 하자.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그리고 그들이 합의한 영역에는 다른 수많은 중소 길드나 플레이어들은 아예 배제되어 있었다.
아니 오히려 서로 차지할 영역에 중소 길드의 개척지가 포함되어 있었으니….
현실이나 커넥트나 역사의 흐름은 강국들의 협상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 * *
“아주 생쑈를 하고 있네.”
라울이 회의의 정보를 전해 듣고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어떻게 예상한 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냐?’
전생의 흐름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물론 이번에는 그 대상에서 가장 큰 파이인 몬스터 숲이 빠지긴 했지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대로 놔뒀다간 세 곳의 금역이 저들 연합의 손에 넘어갈지도 모릅니다.”
케인의 우려도 이해가 되긴 했지만, 라울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도 운명이겠지. 하지만 절대로 놈들의 생각대로 되진 않을 거야. 협력 길드들에겐 필수 거점을 제외하고는 넘겨줘도 상관없다고 전해.”
“예? 왜 굳이?”
“이제부턴 개척지를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부담될 수도 있는 상황이 펼쳐질 테니까. 가능하면 본 거점을 제외하고는 길드원들을 철수하는 것도 좋겠군.”
라울의 지시에 케인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도록 하지요.”
어차피 결정권자는 라울이었고, 그의 말을 따라서 잘못된 일은 거의 없었다.
“전쟁 준비는?”
라울이 옆에 있던 총사령관 필립에게 물었다.
“착실하게 진행 중입니다.”
“절대 얕봐선 안 돼. 이번 상대는 단순한 몬스터 따위가 아니니까. 적어도 왕국을 상대한다고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회의실 앞쪽 마법 스크린.
상공에서 촬영한 듯한 영상에는 커다란 마을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는 녹색의 생명체.
그건 바로 오크였다.
마을 상공을 잠시 맴돌며 촬영하던 정찰 소환수가 오크 주술사가 쏘아낸 주술에 적중해 소멸하며, 영상이 끊어졌다.
‘저 정도 규모면 3만은 가뿐히 넘기겠군.’
몬스터 숲의 결계 너머.
놀랍게도 그곳에는 숲이 아닌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인간들이 몬스터 숲이라 호칭했을 뿐, 실제로 그 안에는 기름진 평지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나도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알았지.’
라울이 처음부터 몬스터 숲을 노렸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저 드넓은 땅 때문이었다.
전생에 대형 길드 연합 수뇌부는 몬스터 숲 너머에 있는 그 땅에 대해 함구했다.
마치 지금의 저들처럼 자기들끼리 선을 긋고 영역을 나눠 가졌으며, 그곳에서 나는 것들을 독점했다.
‘뭐, 사실은 평원에 제대로 발을 들이지도 못했던 것이긴 하지만.’
왜냐하면 그곳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촬영 화면이 끊어지기 직전.
앵글을 들어 찍은 넓은 평원 위에는 수없이 많은 검은 점들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정체는 바로.
‘오크 부족들.’
적게는 천, 많게는 수만까지 무리를 이룬 오크 부족들이 그 넓은 땅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공지 사항]플레이어 분들의 노력에 힘입어 금역이 인류의 땅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과거 인류가 누렸던 영광의 시절을 되찾는 것도 시간문제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금역을 원하는 건 여러분뿐만이 아닙니다.
금역이 금역이 아니었던 시절.
이곳은 분명 누군가가 살고 있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주인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어 연계 시나리오가 발동합니다.
-시나리오 [금역 개방-개척]은 상설 퀘스트로 변경됩니다. 앞으로도 개척으로 인한 보상과 규칙은 유지됩니다.
-새로운 시나리오 [금역 개방 – 조우(???)]가 시작됩니다.
-시나리오 정보는 조건을 만족하면 공개됩니다.
이미 라울은 새로운 시나리오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게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마지막 메인 시나리오이기도 하고.’
전생의 배도현이 목숨을 잃은 건 바로 이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도중이었다.
커넥트가 서비스를 시작한 지 이제 불과 3년 9개월.
그런데 벌써 전생의 15년간 진행한 걸 따라붙은 것이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대형 길드 연합 놈들이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것을 완전히 틀어 막아버렸기 때문이었지.’
덕분에 같은 시나리오를 거의 10년 가까이 정체하며 배도현과 플레이어들의 성장이 멈춰버렸던 것이다.
어쨌든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과거 커넥트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던 종족.
오크와의 전쟁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