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309
제309화
“죄송하지만, 이곳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회색빛 게이트 앞.
포털을 세 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그곳은 이미 일단의 인원들이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저 문양은 바타르 교단?’
라울은 앞을 가로막는 이들의 정체를 대번에 눈치챘다.
교단 가운데 검과 방패 문양을 새긴 곳은 전쟁의 신 바타르를 모시는 교단밖에 없었으니까.
“들어갈 수 없다는 게 무슨 말이지요?”
케인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교단의 책임자에게 물었다.
“말 그대롭니다. 게이트 내부는 이미 저희 교단의 토벌대가 진입했으니, 다른 분들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게이트 공략은 한 세력의 토벌대가 진입했다면, 다른 곳은 양보하는 것이 암묵적인 합의 사항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특별한 상황에, 그것도 교단(신성제국)에서 직접 협조까지 요청한 상황에서까지 진입을 막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요?”
케인이 난감한 표정으로 라울에게 물었다.
힘으로 뚫고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교단과 충돌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이었으니.
“도움은 필요 없습니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게이트 토벌에 한 손 보태고 싶습니다만.”
라울이 직접 책임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완고했다.
“저희 측 토벌 책임자께서 아무도 들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먼 길 발걸음 해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이곳은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백작님.”
고개까지 숙이며 거절하는 책임자의 모습에 라울은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케인? 분명 우리 측 요원이 발견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죄송합니다. 저도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분명 저 말고는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는데….”
직접 대면한 정찰 요원도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설명했다.
“분명 저 혼자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지부로 말을 달려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설마 교단 측에서 먼저 병력을 보낼 줄이야….”
딱히 정보가 새어 나갈 루트는 없었다.
그럼에도 교단 측이 먼저 선점하고 토벌대까지 진입했다는 것은.
라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너무 비약하지 말자.’
고개를 내저은 그가 케인에게 지시했다.
“일단 주변에 야영지 구축하고 멀리서라도 게이트를 관찰한다. 만약 상황이 변한다면 바로 진입할 테니, 준비 철저히 하고.”
“네, 마스터.”
대륙의 절반을 가로질러 왔는데 게이트 내부를 구경도 하지 못하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렇게 네댓 시간이 흘렀다.
“마스터, 나와 보십시오. 게이트가….”
케인의 부름에 라울이 막사를 벗어나자 저 멀리 희미해진 게이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게이트를 통해 수십의 인원이 빠져나오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토벌에 성공한 모양입니다.”
케인의 말처럼, 교단 측의 토벌대로 보이는 이들이 모두 빠져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색빛 게이트는 허공에서 소멸해 버렸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왠지 낯익은 이들의 모습이 보였으니.
‘저들은…?’
케인도 이미 그 사실을 깨닫고는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후.
“오랜만입니다, 라울 백작님.”
라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애셔와 레건이었다.
교단의 조사대로 라울의 영지를 방문하기도 했었고, 장벽 전투 때 함께했던 용사 파티의 인원들.
“오랜만이네요, 애셔 경. 그리고 레건 마법사도.”
그때의 만남 이후 벌써 4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시간은 풋내기 용사였던 애셔가 어엿한 전사로 성장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느껴지는 기도가 상당하군. 역시 용사라고 해야 하나?’
애셔에게서 초인의 향기가 느껴졌고, 마법사 레건도 6서클의 벽을 넘어선 듯했다.
“백작님을 이곳에서 다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멀리서도 소식은 계속 전해 듣고 있었습니다.”
“크게 되실 분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제 대륙에서 백작님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니. 제가 백작님과 아는 사이라고 해도 믿어주는 이가 잘 없더라고요, 하하.”
애셔와 레건이 반가운 듯 라울에게 인사를 하고는 근황을 주고받았다.
같은 파티였던 성녀 키에라는 조사대를 떠나 다시 교단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리고 길잡이였던 시마르는.
“운이 좋지 못했습니다. 하필 그곳에서 S등급 가디언을 만날 줄이야.”
어느 게이트에서 이름 모를 마물에게 목숨을 잃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저희는 몇 번이고 파티를 재편해가며 게이트 토벌을 이어오고 있었지요.”
“그리고 얼마 전부터 대규모 토벌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영….”
최근 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 둘의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번 게이트를 공략한 토벌대는 여러 교단들이 각자 운용하던 용사 파티들을 모두 모아서 만든 모양이었다.
“저, 그런데 사실….”
조금은 어두운 표정으로 애셔가 뭔가를 말하려던 바로 그때.
“이봐, 애셔! 전투가 끝났으면 재깍재깍 뒷정리를 해야 하는 거 아냐? 거기서 노닥거리다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애셔가 입술을 깨물었다.
저벅저벅.
일단의 무리가 라울과 애셔 쪽으로 걸어왔다.
“잡일꾼으로라도 합류하게 해달라고 한 게 얼마나 됐다고, 벌써 농땡이야?”
“큿….”
“왜? 덤비려고? 그래 보든가.”
키가 185cm 정도 되는 애셔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사내.
커다란 덩치와 터질 듯한 근육으로 온몸을 감싼 그의 피지컬은 마치.
‘큰형님을 보는 것 같군.’
애쉬튼 백작가뿐만 아니라 대륙에서 최고의 육체를 지녔다는 말까지 듣고 있는 큰형 딜런에 못하지 않아 보였다.
잠시 분이 차오른 듯한 애셔가 결국 고개를 숙이고는 라울에게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사정상 나머지 얘기는 다음에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레건과 함께 본진으로 돌아가 버렸으니.
팔짱을 끼고 거만한 태도로 그들을 바라보던 사내가 고개를 돌려 라울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이야, 대륙 최고의 유명인을 이렇게 눈앞에서 뵙게 될 줄이야. 정말 영광입니다, 라울 백작님.”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는 듯했지만, 말투도 분위기도 영 정중한 느낌이 아니었다.
“당신이 이번 토벌대의 책임자인 모양인데, 맞습니까?”
“하하, 그렇습니다. 바타르 님의 가호를 받은 용사이자, 신성제국 토벌대의 대장인 노엘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도발이라도 하듯 악수를 청했는데, 라울은 별 표정 변화 없이 악수를 받아줬다.
유치하게 손에 힘을 줘 악력을 시험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악수를 나누는 그 짧은 시간.
두 사람 사이로 보이지 않는 기운이 교차했다.
‘확실히 실력은 괜찮아 보이기는 하는데….’
기세만으로도 마스터 상급 수준.
제 입으로 신의 가호까지 받았다고 했으니, 숨기고 있는 것도 있을 터.
그랬으니 정체불명의 게이트를 이렇게 깔끔하게 토벌하고 나온 것 아니겠는가.
손을 떼고 물러선 노엘이 한걸음 물러서서 물었다.
“여기저기 세력 확장하시느라 공사가 다망하다 들었는데, 이 먼 오지까지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 아, 대답하기 곤란하시면 말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면서 다 알고 있다는 듯 쳐다보는 그 눈빛이 상당히 거슬렸다.
“게이트가 걱정돼서 왔는데, 교단 측에서 잘 정리한 듯하니 마음이 놓이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하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낼 만큼 수양이 얕은 라울은 아니었다.
보아하니 바타르 교단이나 신성제국 측에서 밀어주는 용사인 모양이니 딱히 척질 필요도 없었고.
물론 상대방의 생각은 그렇지 않아 보이긴 했지만.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세력 키우기에 바쁜 누구와 달리, 저와 동료들은 벌써 몇 년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게이트와 맞서 싸워왔으니까 말입니다. 앞으로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어울리게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 이 자가 지금 감히 누구에게…!”
옆에 있던 케인이 발끈해 나서려는 걸 라울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케인의 모습에 노엘 뒤에 서 있던 용사들도 어느덧 무기에 손을 올리고 있었으니.
“게이트가 소멸했으니 더 남아 있을 이유가 없군요. 고생하셨으니 이만 푹 쉬시길.”
라울이 부하들과 함께 몸을 돌렸다.
-도망치는 꼴하고는. 역시 소문은 믿을게….
-신도도 아니면서 신의 힘을 탐내다니. 역시 저자도 다른 욕심 많은 영주나 다를 것이….
거리가 좀 멀어지고 뒤쪽에서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라울을 호위하는 기사들의 손등에 힘줄이 꿈틀거렸지만, 라울은 그저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날 뿐이었다.
“알아봤습니다. 아마도 용사 파티라 불리는 이들 간에 서열 정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며칠 뒤, 칼립스 성 라울의 집무실.
케인이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찾아와 보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신의 가호라 불리는 힘이 그자에게 계승된 모양이더군요. 노엘이라는 그 건방진 토벌대장 말입니다.”
케인의 정보 수집 능력은 여전히 뛰어났다.
며칠 지나지 않아 저들에 대한 정보를 확실히 캐내어 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랬군.’
그때 그 자리에 있던 토벌대의 대원들.
수십이 넘는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초인 급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신의 축복을 받으며 수년간 용사 파티로 활약하며 진짜 실력을 갈고닦은 결과이리라.
문제는 그들의 몸에서 ‘신의 힘’, 즉 신성력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애셔 또한 예전에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별다른 신성력이 느껴지지 않아 의아했는데, 그 답을 알 것 같았다.
‘신의 가호를 한 사람에게 몰아줬단 말이지.’
토벌대 가운데서도 노엘이 독보적으로 보였던 이유였다.
그리고 그렇게 힘을 한데 모은 것은 그만큼 강적이 등장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신성 제국에서 자신들의 사람을 조정자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겠지.’
분명한 건 노엘 또한 조정자의 최종 후보 중 하나라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시나리오의 내용 또한 인지하고 있는 게 당연했고.
게이트를 막아선 건, 다른 후보들이 업적을 쌓지 못하게 하려는 견제였을 터.
하지만 라울은 그 모든 게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꼼수를 부린다고 결과가 바뀔 것 같았으면, 거창하게 최종 시나리오란 이름이 붙지도 않았겠지.’
무슨 학급 반장을 뽑는 것도 아니고 고작 선발 기준이 게이트 하나둘 처리하는 정도로 정해지진 않을 터.
게다가 어찌 보면 선발 시험은 곁다리고, 진짜 목적은 등장할 적을 처치하는 것.
아직 진짜 적이 나타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아등바등 게이트를 두고 다툴 이유 따위 전혀 없었다.
어차피 라울의 최종 목적은 그저 가문, 부하, 영지민 등 그의 사람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 치열하게 싸워왔을 뿐, 뭔지도 모를 ‘조정자’가 되기 위해 심력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정리해 주겠다면 차라리 잘된 일이지. 더 분발해 달라고, 영웅 양반.’
라울은 피식 웃으며 밀린 영지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 * *
“이게 공정한 경쟁이라고 생각하는가?”
“오랜만에 만나서 하는 첫마디가 고작 그런 말인가, 쯧쯧.”
“너무 인간들의 감정에 몰입하지 않는 게 좋겠군, 그레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공간.
구름 같은 연기가 바닥에 깔려 있고, 반투명한 하얀 장막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어느 곳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각기 검은 빛, 회색 빛, 새하얀 빛의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이들.
그들은 바로 대륙 3현자로 알려진 그랑 블랙, 알프레도 그레이, 제나스 화이트였다.
“최종 시험일세. 무엇보다 공정해야 할 시험에 개입하다니. 그러다 오류라도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 생각이란 말인가?”
그레이가 못마땅한 말투로 다시 묻자, 블랙이 역으로 되물었다.
“공정? 말 잘했군. 지금 이대로 최종 시험이 진행되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하나? 이미 한쪽으로 치우친 시험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대로라면 우리는 그저 정해진 답을 그냥 승인해주는 것밖에 안 되네. 그리고 나는 그 답이 정답이라고 확신하지도 못하고 있고.”
“그건 나도 블랙의 말에 동의하는 바이다. 어차피 시험이라면 뭔가 비슷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의미가 있지 않겠나?”
화이트마저 블랙의 의견에 동조하자, 그레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평가는 계속 진행되어 오지 않았는가. 최종 시험은 그 연장선. 그 후보가 쌓아온 것들을 인정하지 않고 최종 시험만을 참고하겠다면, 그간의 시험은 다 무엇이었나?”
“그걸 부정하자는 건 아닐세. 그저 조금은 더 검증을 거칠 수 있길 바랄 뿐이지.”
그레이는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의 얼굴을 바라봤다.
고집이 가득한 블랙과 그저 웃음 짓고 있는 화이트.
어차피 각자의 생각을 바꿀 일은 없다는 걸 이미 오랜 세월을 통해 겪어왔다.
그리고 서로의 생각이 무엇인지도 훤히 알고 있었고.
오랜 세월 제국이라 불리는 곳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억제해왔던 블랙은 순수한 커넥트 주민이 조정자의 자격을 얻길 바라고 있었다.
오랜 세월 진짜 이 대륙을 지켜온 자들이야말로 그 자리에 걸맞은 자격을 가지고 있으니.
그에 반해 화이트는 새로운 인물을 원했다.
오랜 시간 동안 답을 내지 못한 이들에게 다시 기대를 거느니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레이 자신은.
‘출신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자격을 갖춘 가장 확률 높은 이를 선택해야지.’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한 사람의 이름이 크게 박혀 있었으니.
“어쨌든 본 시험이 시작되기 전까지 정보 전달은 계속 이어 나갈 생각이다. 놈들을 막기 위해서는 인간들의 욕심을 부추길 필요도 있으니 말이지.”
“나도 찬성. 꼭 후보자가 아니더라도 인간들이 움직여줄 필요가 있으니까. 네 생각은 어떤가, 그레이.”
화이트의 물음에 그레이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일단 커넥트의 위기를 넘어서는 게 우선이었으니.
“동의는 하겠다만, 지나친 개입은 곤란하다는 걸 명심하길.”
“이미 그럴 힘도 없다는 걸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이제 남은 것은 인간들의 몫일 테지.”
억지로 틀어막고 있던 힘의 균형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과연 커넥트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그건 이 자리에 있는 세 사람도 알 수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