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311
제311화
당장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것 같았지만, 최종 시나리오가 시작되고 며칠.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산발적으로 회색빛 변종 게이트가 등장하고 있었고, 발견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에게 토벌되기를 반복했다.
‘찜찜하군.’
가볍게 회색 게이트 하나를 처리하고 나온 라울.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것을.
이미 퍼스트 길드의 모든 영역에는 병력들이 전진 배치되었고, 만에 하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에게도 당분간은 게이트나 던전 진입을 자제하고 영지 내에 머물 것을 전달한 상태.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영지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라울은 소멸하는 게이트를 앞에 두고 다시 한번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했다.
[최종 시나리오 : 조정자]해설 : 커넥트를 위협하는 위험한 세력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침략을 저지하고 커넥트의 평화를 지켜내야 합니다.
-침략자를 저지하고 자신의 자격을 증명하십시오.
-적의 세력이 통로(게이트)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모든 통로를 막아내려면 많은 이들의 협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통로를 제한 시간 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거대한 위협이 커넥트를 덮칠 것입니다.
시스템은 확실한 위기를 경고하고 있었다.
문제는 명확한 단서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조정자가 무엇인지, 그 보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당면한 적을 처리하지 못하면 알 자격조차 없다는 뜻일까?’
어쩌면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일지도 몰랐다.
커트라인을 넘지 못하면 탈락 정도가 아니라 커넥트 자체의 파멸로 이어질지도.
‘어쨌든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어.’
그게 누구든 적이라면 쓰러뜨릴 뿐이었다.
라울의 두 눈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 * *
웅장하다는 걸 넘어서 거대한 대전.
고대의 신전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기둥 수십 개가 아치형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다.
하지만 오로지 돌만으로 이뤄진 대전은 경건하기보단 차갑고 삭막한 느낌을 주고 있었으니.
그 거대한 대전의 끝.
마물의 뼈로 만들어진 날카롭고 기괴한 옥좌에 흑발의 중년인이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마치 졸고 있는 것처럼 옥좌에 푹 기댄 그 남자의 안색은 하얗다 못해 창백했다.
생기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그의 얼굴에 새겨진 감정은 하나였다.
무료함.
눈을 뜨는 것조차 귀찮다는 듯 온몸에 힘을 빼고 옥좌에 기대 있는 그가 바로 크라넨 제국의 황제 [기오넬리 에곤 마블리오네스].
속칭 기아곤 황제라 불리는 당대 제국의 정점이었다.
“흐아암.”
황제의 입에선 연신 하품이 흘러나왔다.
겉모습만 봐선 그가 커넥트의 모든 왕국을 긴장하게 만드는 거대 제국의 황제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주위를 감도는 묘한 기운과 기이한 분위기는 그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홀로 거대한 대전에 앉아 졸고 있기를 한참.
사아악.
황제의 몸에서 검은 운무가 쏟아져 나오며 대전의 바닥을 뒤덮었다.
“…끈질긴 놈들. 이제야 떨어져 나갔구나.”
꽈드드득.
상체를 일으킨 황제가 기지개를 켜자 굳어 있던 뼈마디가 부딪치는 소리가 대전에 울려 퍼졌다.
“준비는?”
“모두 마쳤습니다.”
어느새 중갑주를 착용한 장군이 황제의 앞에 부복하고 있었다.
“그래? 시작해. 오래 기다리지 않겠다.”
“모든 것은 폐하의 뜻대로!”
“황제 폐하의 뜻대로!”
수십 명이 넘는 중갑의 기사들이 대전이 떠나가라 소리치며 황제 앞에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잠시 후.
기암괴석에 둘러싸인 황도 인델리온에서 어마어마한 마나의 파동이 일며 수백 개의 포털이 빛을 뿜어냈다.
여전히 옥좌에 무료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황제의 두 눈동자는 파충류의 그것처럼 세로로 길쭉하게 갈라져 있었다.
* * *
구구구구궁.
오늘도 변함없이 거대한 성벽 위에서 북쪽의 숲을 바라보던 경계병들.
그들은 숲을 뒤흔드는 듯한 거대한 진동에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땡땡땡땡땡!
이미 성벽 곳곳에선 비상종이 울리고 있었고, 곳곳에선 무기를 들고 뛰어오르는 병사들의 모습이 가득했다.
“전원 전투태세로! 수성 병기 모두 장전해!”
“빨리 주민들 피난시켜! 정찰병들은 모두 귀환했나?”
긴장하기는 장교들도 마찬가지.
큰 전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지침이 내려오긴 했지만, 분명 오늘 새벽까지만 해도 아무런 징후가 없었다.
그랬다면 뛰어난 정찰병들이 대번에 보고를 올렸으리라.
하지만 여전히 소식이 없다는 것은.
‘제길… 정찰병들은 모두 당했다고 봐야 하나?’
성벽이 진동할 정도로 적들이 다가왔다는 건 분명했다.
게다가 일반 인간 병사들이 숲을 요동시킬 정도로 땅을 뒤흔들 순 없었으니.
“나온다!”
“헉!”
“저게 다 뭐야?”
쿠워어어!
크르릉.
크롸롸!
적어도 5m 이상의 덩치를 자랑하는 대형 몬스터 수백 마리가 나무를 뿌리째 뭉그러뜨리며 숲 밖으로 뛰쳐나왔다.
“마수병 군단이다! 머리나 심장 쪽의 급소를 노려!”
“어, 언데드까지? 신관들은 무기에 축복을 부탁드립니다!”
“마법사들! 무조건 방어 장벽을 사수해!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텨야 해!”
1km는 넘게 떨어져 있는 숲에서 쏟아져 나오는 병력 수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선두는 제국의 마수병이었고, 그 뒤를 마병들이 받쳤다.
게다가 빈틈을 메우고 있는 것은 장벽에서나 활동한다는 제국의 언데드 군단.
그리고 아마도 저 대열의 끝에는 진짜 제국의 병력과 기사단이 뒤따르고 있을 것이다.
‘제길. 예상은 했지만, 어마어마하군.’
지휘관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적의 숫자에도 불구하고 겁을 집어먹은 이는 없었다.
몬스터 평원에 들어선 이 방어 장벽은 그야말로 퍼스트 길드의 모든 재력과 기술을 쏟아부어 만든 최고의 방패였기 때문이다.
북쪽의 장벽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각종 방어 결계와 마법진이 설치된 수십 미터 높이의 두터운 성벽은 충분히 저들의 진격을 저지할 수 있을 터였다.
“겁먹지 마라! 기사단이 도착하면 저깟 놈들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
“우리에겐 대륙 최강의 기사단과 플레이어들이 함께 한다! 침착하게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라!”
지휘관들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성벽 위의 방어 병력은 이미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곳에 배치된 이들은 이미 금역의 몬스터, 오크족, 제국과의 전투를 수없이 겪은 베테랑들.
게다가 퍼스트 백작가의 힘을 충분히 믿고 있는 이들이었으니.
“조준… 발사!”
“전원 공격! 모조리 쓸어버려라!”
콰과과광!
마침내 크라넨 제국의 대병력이 커넥트 대륙에 그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 * *
“급보입니다! 몬스터 평원 전역과 몬스터 숲 동북쪽 방어 라인까지. 전 지역에 제국의 대대적인 파상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얼음 산맥 드워프 부족의 전언입니다! 대량의 제국군이 남하 중. 지하 도시는 제국군에 의해 입구가 봉쇄되어 움직이기 어렵다고 합니다!”
“원소 정글 동쪽에서도 제국군이 침공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장벽의 줄리어스 총사령관이 각 왕실에 지원군을 요청했습니다! 장벽을 향해 제국군 진군 중! 콥스로드를 가득 메우고 다가오는 제국군의 수는 측량 불가!”
칼립스 성의 상황실은 연이어 쏟아지는 급보로 인해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전면에 표시된 거대한 대륙 전도는 제국을 의미하는 검은 표식으로 이미 가득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라울을 비롯한 지휘부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냉철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제2 전투단은 서쪽의 덴포 성으로! 안테르시에 대기 중인 자치령 방위군 5천을 대동한다.”
“각 왕실에 급전. 제국군이 얼음 산맥을 통해 남하 중. 긴급히 병력 배치 요망.”
“랭커들과 기동전투단은 대기. 제국의 초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어차피 제국의 침공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막강했을 뿐.
‘하지만 쉽게 뚫리지는 않을 테지.’
이미 제국의 각 전력에 대해 충분히 분석하고 준비해 두었다.
평원도 아니고 방어벽을 끼고 버티는 데는 문제없었다.
게다가 단순히 병력 수만 비교해도 밀릴 일은 없었다.
전력 외로 분류된 신규 플레이어들을 제외한다 쳐도, 기존에 커넥트에서 1년 이상 활동한 플레이어 숫자만 천만 단위가 넘었다.
군인도 아닌 이들을 바로 전장에 투입할 수는 없었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편제는 마친 상황이었다.
‘혹시라도 방어선이 뚫릴 상황이라면 아무리 지구인들이라도 사정을 봐줄 순 없지.’
이미 상당수의 플레이어들이 자원하여 전선에 투입된 상황.
커넥트를 선택한 이상 본인들도 이곳의 주민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할 터였다.
물론 그런 상황이 오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그때 버나드가 다가와 말했다.
“지구 연합 정부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지불할 테니 지원군을 파견해 달라고 합니다.”
라울은 무심한 표정으로 케인에게 물었다.
“동쪽 전선 상황은?”
“정보원의 보고에 의하면 고전 중이긴 하지만, 방어선이 뚫리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용병들과 마커스 왕국의 병사들이 투입되지 않았던가?”
“그것이… 용병들이 제국군의 숫자를 보고 도주했다고 합니다. 왕국군도 언제 철수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뭐 그렇겠지.’
용병들이야 신용보다 제 목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제국의 어마어마한 병력을 마주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커스 왕국군도 본인들의 땅이 아닌 이상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할 리가 없었으니….
라울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방침은 바꾸지 않는다. 국가를 천명했으면, 본인들의 땅은 스스로 지켜내야지.”
전 대륙이 전쟁에 휩싸이게 된 상황이었다.
지구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특별 대우를 해줄 생각은 없었다.
일단 이쪽의 안전이 확실히 보장되기 전까지 지원군 파병은 없었다.
“그러다 혹시 연합 정부가 무너지면 어쩝니까?”
“글쎄. 그것까지 우리가 책임져줄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1억이 넘는 플레이어가 대륙의 한쪽 귀퉁이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그런 무능한 자들을 챙겨줄 이유는 더더욱 없을 테고.”
사람은 누구나 본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못한 이들이라면, 이 커넥트 대륙에서 도태되는 것이 당연한 법.
듣고 있던 지휘관들도 모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합 정부에는 적당히 둘러말하도록. 아예 관계를 끊을 생각은 아니니까.”
“네, 마스터. 최대한 버텨보라고 전하겠습니다.”
만약 제국이 작정하고 그쪽으로 병력을 집중한다면 아예 모른 척할 수는 없을 터.
일단 전체적인 전황의 흐름을 살펴보고 결정할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겨우 이 정도로 끝날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단순히 병력 대 병력의 전쟁이라면, 제국이 아무리 강한 국력을 지녔다 해도 왕국 전체와 플레이어를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최고 지휘관들이 전장이 아닌 이 상황실에 모여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파상 공세가 시작되고 하루.
“큰일 났습니다! 게이트 웨이븝니다! 지금 대륙 전체의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
지휘관들이 모두 라울을 바라봤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감탄, 존경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런가. 상황은?”
“마스터의 명에 따라 배치된 예비군들이 적절히 대응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피난은 이미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라울은 이미 최종 시나리오에 앞서 각 영지의 주요 요지와 고착화한 게이트 앞에 방어 시설 구축을 마쳐두었다.
낮은 등급의 게이트들은 신규 플레이어들과 일반 병사들로도 막아낼 수 있으니, 병력이 부족할 일도 없었다.
‘우리야 그렇다 치고.’
각 왕국에도 미리 대비할 것을 조언해 두었지만, 실제 어느 정도 대처가 되고 있을지는 미지수긴 했다.
하지만 제국과 국경을 직접 맞대지 않은 왕국들은 여유 병력이 있을 터.
‘자.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이게 다일 리가 없잖아?’
라울이 검 자루를 움켜쥐고는 냉정한 표정으로 대륙 전도를 바라봤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