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320
제320화
파앗.
비밀 석실이 환한 빛으로 물들었다.
라울의 오른 팔목에 매여 있는 레그나토르가 빛을 발했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눈앞에는 스킬도감이 소환되어 펼쳐져 있었고, 라벨이 눈을 빛내며 그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반대쪽 진열대에 올려진 팔찌와 스킬도감도 빛을 발하고 있었으니.
‘서로 감응하고 있는 건가?’
갑작스런 사태에 놀란 건 라울뿐만이 아니었다.
같이 석실에 들어온 3현자와 노신관도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허, 신기가 저절로 반응하다니!”
“놀라운 일이군. 이미 신기의 주인은 정해져 있었단 뜻인가?”
봉인 해제와 업그레이드를 거치며 라울의 레그나토르와 스킬도감은 이미 처음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상태였다.
빛을 내는 신기들이 같은 물건이었다는 걸 저들이 바로 눈치채기는 쉽지 않은 게 당연했다.
그레이가 눈웃음을 지으며 라울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신기가 자네를 원하는 모양이군. 어떤가. 신의 힘이 담긴 신기를 앞에 두고도 생각이 바뀌지 않겠나?”
물론 라울도 탐이 나긴 했다.
하지만….
‘굳이 목숨 걸 정도는 아니지. 이미 내게는 이것들이 있으니.’
신화급 아이템의 본모습이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미 몇 년간 동고동락하며 성장시켜온 그만의 레그나토르와 스킬도감이 있는 이상 더 욕심낼 필요는 없었다.
라울의 표정을 읽은 그레이가 허허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몇 년간 자네를 지켜봐 왔지만, 자네도 참 대단하군. 본인의 기준을 세우고 나면 쉽게 흔들리지 않으니, 그야말로 인간답지 않은 의지력 아닌가. 신기를 앞에 두고 탐하지 않는 이가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군. 따라오게.”
그리고 그레이가 걸음을 옮기자 라울이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뭐가 또 있다고?’
급하긴 했지만, 전생에도 석실을 한번 둘러봤었다.
딱히 다른 게 숨겨져 있을 만한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끼기긱.
노신관이 손을 대자 석실의 끝에 또 다른 숨겨진 통로가 나타났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선 라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건…?”
“어때. 이제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있나?”
그레이의 말투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 * *
꾸욱.
라울이 주먹을 한번 움켜쥐어 봤다.
‘정말 별 차이 없군.’
느껴지는 감각도.
몸에 지니고 있는 힘도.
그의 팔에 찬 레그나토르와 스킬도감도 아무 이상 없이 작동했다.
“부활권을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이야. 어때? 뭔가 바뀐 것 같아?”
“진짜 감쪽같아. 마나의 흐름도 전혀 다르지 않고. 정말 대단한 시스템인 것 같아, 커넥트 시스템은.”
라벨의 확인까지 받은 라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의 뒤를 따라 들어간 방에는 익숙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조금 둔탁해 보이는 ‘캡슐’.
그리고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육체인 ‘아바타’.
“정말 몇 구 남지 않은 프로토타입 아바타라네. 지구인들을 위한 아바타 생산이 중단된 이상, 이제 이 세상에 남은 몇 안 되는 인공 육체지.”
3현자는 라울이 커넥트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을 ‘신이 부여한 권능’으로 받아들였다.
커넥트 시스템의 완성에 관여한 세 가지 요소가 있다면, 드래곤 로드의 힘, 지구 출신 이방인의 설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전을 통한 신의 힘이었다.
3현자가 라울을 비밀 신전으로 데려온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현재 커넥트 시스템의 양산 시스템과 통제실은 출입이 제한된 상태라네. 커넥트 시스템의 관리는 전적으로 제작자가 남긴 인공 지능이 맡고 있지. 더 자세한 사항을 알고 싶다면, 정식 ‘조정자’로 인정받게나.”
그리고 라울은 그레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첫 시나리오 우승 보상으로 받은 부활권.
그걸 지금에서야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라울은 커넥트의 프로토타입 캡슐에 몸을 담았고, 가상의 육체인 아바타에서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그 몸은 정말 본래의 몸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보다는 맥 빠지는 임무였어.”
“그러게. 전투가 없을 거라고 듣긴 했지만, 정말 그럴 줄이야.”
암흑룡의 봉인을 손보는 일은 3현자가 장담했듯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저 제국 수도의 뒤편으로 넓게 펼쳐진 산맥의 어느 장소로 이동해 마나를 불어넣고, 마법진을 보수하는 정도면 끝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장소를 향하는 좌표는 3현자만 알고 있었으니, 제국군과 충돌할 일이 없는 건 당연했다.
물론 이 임무는 암흑룡이 살아 있는 한 주기적으로 반복해야 하겠지만, 당장 생각하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현재.
라울은 제국 수도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저곳인가?”
산 중턱에서 바라보는 제국 수도는 굉장히 딱딱해 보이는 계획도시였다.
한낮임에도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의 모습은 손에 꼽을 정도로 활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삭막하지?”
“…….”
언제 다가온 것일까.
라울의 옆에는 마계의 탑에서 만났던 검은 머리의 청년이 서 있었다.
“약속을 지켜줘서 고마워. 이곳에 왔다는 건 내 제안을 들어줄 생각이 있단 뜻이겠지?”
그때 라울에게 정보를 넘기고 사라지던 청년은 부탁을 남겼다.
조만간 그가 제국을 찾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 이 장소로 와줬으면 좋겠다는 것.
어쩌면 그냥 던져본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라울은 지금 이 장소에서 그와 만나고 있었다.
“그거야, 네 정체와 네 제안을 확실히 듣고 나서 결정할 일이지.”
라울이 확실하게 선을 긋자 그가 천진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좋아. 부탁을 들어준 대가로 내 정체를 말해주지. 만나서 반가워, 라울 백작. 내 이름은 아라민 에곤 마블리오네스. 크라넨 제국의 황태자라면 더 쉽게 이해할, 어쿠.”
어느새 그의 몸 주위를 라울의 무기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네가 제국의 황태자라고? 귀하신 분께서 무슨 이유로 이렇게 혼자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거지? 설마 나를 함정에 빠뜨리겠다는 계획이었다면, 글쎄. 내 검이 네 목을 베어버리는 게 훨씬 빠를 거란 걸 장담하지.”
라울의 살벌한 기세에도 아라민 황태자는 태연히 말했다.
“죽이고 싶다면, 죽이든가. 하지만 그 전에 내 얘기를 좀 들어줬으면 하는데….”
잠시 그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던 라울.
“좋아.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날 보자고 한 거지?”
그러자 아라민이 겨우 한숨을 내쉬고는 살짝 굳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라울 백작. 제국의 현 황제와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암흑룡 마블리오네스를 죽여다오!”
“……!”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린지.
그저 생각난 김에 검은 머리 청년의 정체나 확인해 볼 겸 들렀을 뿐인데,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고 말았다.
* * *
“이쪽이야.”
끼이익.
어두운 지하 동굴을 걷길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마침내 사람의 손이 닿은 문이 나타났으니.
“빠르게 처리하지 못하면 수도에 널려 있는 마장들이 달려올 거야. 그러니 서둘러야 할 거야.”
황태자 아라민의 말에 라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나섰다.
“약속은 꼭 지키길 바란다. 그리고 만약 실패하더라도 내 원망은 하지 말고.”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이었어. 기왕이면 가능성이 높은 너에게 도박을 걸었을 뿐.”
초연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라울이 무장을 점검했다.
아라민이 들려준 이야기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암흑룡 마블리오네스는 단순히 제국 수도 뒷산에 잠들어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과의 혼혈인 드라고니안을 황제로 세운 그는, 모종의 수법을 통하여 그 몸에 빙의해 제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황제의 육체가 늙어가고 새로운 몸이 필요하면, 새로이 얻은 자식의 몸으로 갈아탔으니.
황제가 될 것을 기대했던 황태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암흑룡 마블리오네스에게 몸을 빼앗겨 왔던 것.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게이트 사태 때문이었다.
암흑룡 마블리오네스가 동면에서 깨기 위해 신경을 쓰는 사이, 황제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되면서 한 번씩 황제 본인의 자아가 깨어나는 때가 생긴 것이다.
그 잠깐 사이 황제는 아들인 아라민에게 진실을 전했고, 그는 저주나 다름없는 황가의 운명을 끊어내길 바란 것이다.
“그러면 차라리 마블리오네스가 깨어나길 바라야 하는 것 아니야?”
라울이 묻자 아라민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깨어난다 한들 바뀔 건 없어. 마장과 제국인들의 몸에 새겨진 각인이 뭐라고 생각해? 결국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장난감에 불과하게 되겠지. 그리고 그는 결코 인간들을 살려두지 않을 거야. 동면에 빠져 있던 수천 년간 그는 대륙의 모든 인간을 말살하겠다고 이를 갈고 있었으니까.”
하긴 그럴만했다.
인간들이 마나를 모두 날려버린 덕에 반송장 상태로 긴 세월을 버텨왔으니.
“만약 황제와 마블리오네스가 죽는다면. 제국은 어떻게 되는 거지?”
“…순리에 따라야겠지.”
순간 아라민의 눈에 비친 어떤 욕망을 라울은 놓치지 않았다.
‘뭐, 평생 황제가 되기 위해 준비하며 살아왔을 테니.’
하지만 오히려 라울은 마음에 들었다.
욕심이 없는 자보다, 욕심이 있는 이를 상대하는 게 확실히 계산하기 편했기 때문이다.
결국, 둘은 모종의 계약을 맺었고, 그게 지켜지기만 한다면 라울로서도 불만은 없었다.
“그럼 열게. 건투를 빈다.”
아라민이 단검으로 손바닥을 긋고 흘러나오는 피를 석문에 가져다 댔다.
휘우우웅.
검붉은 드래곤 문양의 마법진이 날카로운 기세를 드러내더니, 이내 구르르릉 소리와 함께 석문이 열렸다.
3현자가 아무리 애써도 해제할 수 없었던 암흑룡의 방어 결계가 손쉽게 해제된 것이다.
라울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석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무저갱 같은 암흑이 이어졌고, 어느 순간 통로는 거대한 광장으로 바뀌었으니.
저 멀리 거대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몸을 웅크리고 엎드려 있는 거대한 생명체.
적어도 몸길이가 백 미터를 훌쩍 넘기는 검은 비늘의 암흑룡이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저것이 드래곤!’
처음으로 마주한 드래곤은 잠들어 있음에도 그 존재만으로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촤라라라락!
이미 마음을 정한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라울은 바로 무기의 군단을 소환하여 암흑룡을 향해 날렸다.
그리고.
텅, 터더덩!
유성우가 쏟아지듯 암흑룡을 향해 날아가던 무기의 군단이, 어떤 장막에 가로막혀 튕겨 나오고 말았다.
“누가 감히 소란을 피우는가!”
그리고 잠들어 있는 드래곤의 머리 위에 나타난 인물.
그는 바로 기오넬리 에곤 마블리오네스.
크라넨 제국의 황제였다.
‘제법 강한 마법사로군.’
하지만 라울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파라라락.
라울의 눈앞에 펼쳐진 스킬도감은 눈부신 황금빛으로 빛났고.
“어쭙잖은 마법으로 우리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지워져라!”
라벨이 마법봉을 휘두르자 무기 군단을 가로막고 있던 검은 장막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언령 마법? 아니, 뭔가 다르군. 어떻게 요정 따위가…?”
의아하다는 표정의 제국 황제가 날아드는 무기를 각종 마법으로 요격하며 라벨을 노려보았다.
라벨도 지지 않고 그를 노려보며 다시 주문을 외웠으니.
“다 사라져버려! 그리고 너는 그만 바닥에 처박히고!”
라벨의 말에 실린 힘이 황제의 요격 마법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그를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황제가 몸을 부르르 떨며 저항해보려 했지만, 라벨의 마법은 그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럴 만하지. 이제 스킬도감이 본 모습을 찾았으니까.’
3현자의 제안을 수락하고 신기라 불리는 두 아이템을 얻게 된 라울.
스킬도감과 레그나토르는 마치 원래부터 하나였다는 듯 각각 라울의 것들과 합쳐졌고.
마지막 봉인이 해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능력들까지 완전히 각성해 버렸던 것이다.
스킬도감은 S등급 이상의 고유 스킬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스킬이 기록되었고, 그만큼 어마어마한 힘의 증폭을 가져왔다.
게다가 모든 스킬 발동 시, 신의 힘(신력)이 담기게 되었으니, 라벨의 주문에는 단순한 마법 이상의 힘이 실려 있던 것이다.
허무하리만큼 승부는 쉽게 갈렸다.
끝까지 뭔가를 하려 했던 황제의 몸은 무기의 군단에 꿰뚫리고, 라벨의 주문에 의해 가루로 변해버렸다.
“드래곤 본체도 아니고 고작 드래고니안의 마법에 질 수는 없지.”
라벨이 안경을 고쳐 쓰며 가슴을 쭉 폈다.
이미 대전쟁의 시대, 드래곤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던 그녀였기에 더더욱 자신감이 넘쳤으리라.
그리고 마침내 라울의 무기들이 암흑룡의 비늘에 닿으려는 순간.
드드드드드득.
광장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처럼 진동했다.
오러가 담겨 있는 무기들은 마치 철판을 찌른 나무꼬챙이처럼 맥없이 튕겨 나왔다.
그리고 노란 바탕에 세로로 길게 찢어진 거대한 눈동자가 라울을 응시하고 있었다.
“또다시 저주받을 인간 놈에게 방해받다니. 감히 하찮은 피조물이 신에 대항하려 한단 말인가!”
쿠워어어!
거대한 용트림이 동굴을 휩쓸었다.
“신은 무슨. 잔말 말고 덤벼!”
라울이 인피니트 파츠를 발동하며 암흑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