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64
제64화
‘이런 망할! 하필이면 저런 귀찮은 걸 숨기고 있었다니….’
화가 난 건지 짜증이 났는지 가면 아래 드러난 잭의 턱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가 열심히 깔아두었던 섀도우 미스트가 싸그리 날아가 버렸다.
게다가 애송이의 검에 솟아난 금빛 검기는 그의 검술과 상극이었다.
검이 부딪칠 때마다 섀도우 미스트가 흩어져 버리니, 검기를 숨긴다는 장점마저 사라져 버렸다.
“너 이 자식! 어떻게 신성력을 쓰는 것이냐?!”
잭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라울은 무슨 소리냐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공격을 이어갔다.
‘이게 신성력이라고?’
겉보기엔 휘황찬란하고 성스러워 보일지 모르겠지만, 순수한 마나의 결정체일 뿐 신의 힘이 섞인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에겐 신성력 스탯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잭의 표정을 보니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레그나토르 때문에 뭐가 좀 섞였나?’
어쨌든 나쁠 건 없었다. 앞으로 제국 놈들과 마주칠 일이 종종 있을 텐데 큰 도움이 될 듯했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쪽이었다.
‘이거 어떻게 조절이 안 되나?’
전구도 아니고 몸에서 빛이 나다니! 그리고 검기에 달라붙은 후광효과는 도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실제 효과는 약간의 항마력(抗魔力)과 미세한 축복 효과에 불과했다.
그가 관심종자도 아니고 이렇게 눈에 띄는 모습으로 계속 전장에 설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적들에게 내가 여기 있으니 덤벼보라는 광역 어그로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러다 제명에 못 죽지. 지금은 어쩔 수 없지만, 이 쓸데없는 후광 이펙트를 없앨 방법을 찾아야겠어.’
스킬의 효과 자체는 굉장했다.
발동시 넓은 범위에 신성력 삼종 세트인 정화(Purification), 축복(Blessing), 치료(Cure) 효과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후에는 시전자와 그 주변에 축복과 항마 효과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준다.
아직 스킬 숙련도가 중급 1레벨에 불과하여 라울 본인에게만 효과가 적용되고 있지만, 나중에는 전장 전체에 영향을 줄 만큼 강력한 광역 버프 스킬이었다.
쾅! 퍼벙!!
라울은 불만이 많았지만 그 휘광효과 덕분에 전투는 굉장히 역동적이고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검은 흑마력에 휩싸인 흑기사 잭과 황금빛 광휘를 흩뿌리는 라울의 전투는 마족과 천족의 대결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불만스러웠던 건 라울뿐만이 아니었다.
‘빨리 이 녀석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잭의 마음이 점점 다급해졌다.
요새 아래의 전투는 이미 전황이 기울고 있었다.
마병은 어느새 전멸했고, 문신으로 도핑한 요원들과 아머유저들이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
언제 저쪽의 기사들이 이곳에 개입할지 몰랐다.
‘제길. 가능하면 안 쓰려고 했는데!’
그의 몸에 새겨진 황제의 문장은 굉장한 힘을 부여하지만, 지속시간이 끝나고 나면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요 며칠간의 사냥에서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걸 이 애송이를 상대로 써야 한다니!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지만, 더 이상 아껴두었다간 죽도 밥도 안 될 상황이었다.
‘오냐. 그 역겨운 빛과 함께 세상에서 지워주마!’
사람들이 종종 착각하는 것이 있었다.
-불은 물에 약하다.
-빛은 어둠을 제압한다.
-신성력은 흑마력에 강하다.
하지만 잭이 생각하기에 그건 전혀 진실과 달랐다.
물은 강한 불에 증발하고, 어둠은 빛을 잠식한다.
중요한건 상성이니 상극이니 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강한 쪽이 이긴다!’
변하지 않는 진실은 오직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잭은 지금부터 그 사실을 증명할 생각이었다.
“후읍.”
잠시 숨을 들이켠 잭의 몸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지렁이같은 붉은 문신들이 그의 목 아래부터 뻗어 올라오며 얼굴 전체를 뒤덮었다.
투과과과!!
그와 동시에 그의 근육들이 폭발적으로 부풀어 올랐고, 온몸에서 검은 증기 같은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
꽈~앙!! 쿠당탕!
괴성과 함께 휘두른 잭의 일격을 라울이 바스타드 소드로 막았지만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형편없이 뒤로 날아가 버렸다.
“크아! 뒈져버려!!”
10m가 넘는 거리를 한걸음에 뛰어넘은 잭의 대검에서 반월형의 검은 검기가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며 라울을 무차별 폭격했다.
쿠당탕! 쾅! 콰광!!
무시무시한 기세로 쏟아지는 공격에 라울은 태풍에 휩싸인 낙엽처럼 연신 밀려났고,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황금빛 기류는 오간 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도핑된 그의 힘과 스피드는 라울을 압도했고, 흑마기는 광휘의 아우라를 잡아먹고 다시금 라울의 파워아머를 뒤덮었다.
일방적인 공세에 라울은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검을 막아내기 급급했다.
그렇게 한참을 몰아붙인 탓에 잭의 의도대로 요새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버렸고, 전투는 이렇게 잭의 승리로 마무리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태연한 것이냐!’
투구 사이로 보이는 라울의 눈은 굳건했고, 움직임은 여전히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치 겨우 이 정도냐는 듯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잭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이제 끝내주마!’
잭이 그의 투핸드 소드를 양손으로 꽉 움켜쥐고 하늘을 향해 뻗었다.
구르르릉!
검을 향해 주변의 기운이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갔다.
처음에는 1m 남짓했던 검은 검기가 2m, 3m, 점점 길어지더니 마침내 5m까지 길어졌다.
파지직. 빠직!
마치 탑처럼 솟구친 검은 기둥이 대기를 찢어버릴 것처럼 요동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끝이다, 애송이!!”
거대한 흑마검기의 기둥이 라울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공간 그 자체를 삼켜버릴 것 같은 무시무시한 검기를 앞에 두고 라울은 의외의 선택을 했다.
검기를 피하기 위해 몸을 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잭과 검기를 향해 몸을 날린 것이다.
‘뭣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잭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원래는 애송이를 사로잡는 게 목표였지만, 이제는 어찌 되든 상관없을 정도로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검은 흑마검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
하지만 기대했던 충돌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검기는 바닥에 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드드드득!
어이없게도 잭의 대검은 라울의 오른손에 붙들려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었다.
‘맙소사!’
잭의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저, 저게 도대체 뭐야!?’
라울의 오른쪽 어깨부터 손끝까지 뒤덮은 황금빛의 갑주.
기존의 파워아머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감을 뿜어내는 그것은, 흑마검기가 덮여 있는 잭의 대검 날에 직접 맞닿아 있음에도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파워아머 위의 파워아머라니.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크읏!”
담담하다 못해 차가워 보이는 라울의 황금빛 눈동자를 마주한 잭이 침음성을 흘렸다.
여태까지 사냥감으로만 보이던 녀석이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괴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부르르르.
‘떨고 있다고? 이 내가??’
“크악!!”
이를 꽉 깨문 잭이 괴성을 지르며 대검을 거둬들이고 거리를 벌렸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잭은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슈아악!!
검을 휘두를 때마다 매서운 반원형의 검기가 라울을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라울에겐 통하지 않았다.
라울은 단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잭이 날린 검기를 대검으로 가볍게 박살 내 버렸다.
발악하듯 수십 개의 검기를 쏘아낸 잭이 돌연 몸을 돌려 요새 쪽으로 달려갔다.
「제기랄! 마법사 들리나? 붙잡아둔 몬스터를 처리해.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후퇴한다! 나머지 놈들은 시간을 벌어!!」
파워아머에 내장된 지휘관 통신기능을 통해 명령을 내린 잭이 슬쩍 뒤를 돌아보며 걸음을 서둘렀다.
이대로 저 괴물과 싸움을 이어가 봤자 의미가 없었다.
파워아머의 에너지 잔량과 문장의 지속시간을 생각하면 여기서 전투를 이어가는 건 시간 낭비였다.
‘내가 진 게 아니야. 그저 전황이 불리하니 작전상 물러나는 것이지. 다음에 제대로 준비해서 박살 내면 돼!’
처음부터 저 괴물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싸우진 않았을 것이다. 이래서야 자기 혼자만 쓸데없이 힘을 뺀 격이 아닌가?
애초에 저 괴물은 15살이 맞는지도 의문이었다. 아니 지가 뭐라고 건방지게 힘을 숨긴단 말인가? 마치 이쪽이 뭘 할지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 설마? 그럴 리 없겠지…. 일단은 돌아가서 생각하자.’
어느새 요새에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괴물 같은 놈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쫓아오기만 했다.
도망쳐봐야 소용없다는 듯 뒷짐을 지고 산책을 하듯 따라오는 놈의 모습이 얄미웠다.
‘쳇. 언제까지 그렇게 기고만장할지 두고 보자.’
갑자기 게이트가 클리어되어 자신들이 사라지고 난 후, 당황할 놈의 모습을 상상하니 입가에 슬쩍 미소가 맺혔다.
쾅! 퍼버벅!!
어느새 요새 앞 격전지에 도착했다.
‘이런 X발.’
멍청한 놈들이 시간도 제대로 끌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느새 아머유저 다섯을 빼고는 모두 쓰러져 있었다. 쪽수에서도 밀리기 시작했으니 전멸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완전 계산 착오였어. 정보부 놈들, 돌아가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때 잭의 모습을 발견한 부관 에밀이 반색하며 그를 반겼다.
“잭 부대장! 어서 좀 도와주십시오!!”
얼마나 심하게 당했는지 전신의 파워아머 중 멀쩡한 곳이 별로 없어 보였다.
코어 에너지도 거의 고갈되었는지 방어 역장이 흐릿하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상대가 퍼스트 기사단 최강자 필립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만약 에밀이 어떻게든 활약하지 못했다면 임페리얼 하운드의 아머 유저들은 이미 진즉에 전멸했을 터였다.
“이런 쓸모없는 놈 같으니! 그 많은 병력을 모두 날려 먹고 무슨 낯짝으로 주둥이를 터는 것이냐!!”
성깔 더러운 잭이 그런 사실을 인정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도와주려는 것인지 에밀을 향해서 거리를 좁혀갔다.
‘후우, 이제 살았구나!’
아마도 잭이라면 상대측의 괴물 같은 기사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겨우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 에밀의 눈에 묘한 장면이 보였다.
달려오는 잭이 어째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는가 싶었더니 그 뒤를 라울이라는 꼬맹이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양새가 아무리 봐도 잭이 쫓기고 있는 것 같았다.
‘에이, 설마…. 이크!’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적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어찌저찌 막아내는 사이, 드디어 잭이 그와 부하들의 곁에 당도했다.
“잭 부대장님! 저쪽의 기사가….”
“닥쳐! 병신 같은 새끼들.”
잭은 달려오던 걸음을 멈추지 않고 욕을 내뱉으며, 에밀과 부하들을 스쳐 지나갔다.
삐이익!
그런 그의 손엔 어느새 빨간 호적(號笛)이 들려 있었고,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것을 세차게 불었다.
순간, 에밀의 얼굴에 경악과 불신의 표정이 떠올랐다.
“잭~ 이 X새끼야!! 혼자만 살겠다는 거, 끄어억!”
격분하여 욕설을 내뱉던 에밀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화르르륵!
이윽고 에밀과 다른 두 아머유저의 전신에서 검은 마력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제국 기사 최후의 자폭기 [검은희생]이 발동된 것이다.
그들 스스로의 의지로 발동한 것이 아닐지 몰라도 결과는 같았다.
“크와아앙!!”
마침내 살육에 미친 짐승 세 마리가 전장에 풀려나고야 말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