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대영그룹 후계자인 진승후는 어린 시절부터 반듯한 인성과 천재적인 두뇌로 진화성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인물이다.
재계에서 이세희와 더불어 가장 유망한 차기 오너로 꼽혔단다.
하지만 내게는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앞뒤가 다른 음습한 녀석에 불과했다.
뭐라고 했더라, 내 실력이 무사할 경우 관련 종사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아예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던가.
좋게 표현했지만 그 속에 감춰진 악의를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든 날 폄하하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애써 표정을 관리하는 앞뒤가 다른 인물이겠지.
뭐, 실제로 좋은 녀석이라고 해도 내게 이를 드러낸 이상 참아 줄 생각이 없었지만.
내 말을 들은 진화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승후가 무슨 짓을 저질렀다는 겁니까?”
“리그에 정보를 넘기고 있습니다. 아마 기업의 기밀도 넘어갔을 겁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승후는 오래 전부터 그룹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착실히 경험을 쌓아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왜…….”
뭔가 착오가 있을 거란 표정이 역력했다.
끝까지 사람을 믿는 타입은 아닌 거 같고, 아직 손자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걸로 보였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이영문이 말했다.
“회장님께서 승열이에게 중공업을 떼어 주려 하는 게 정 상무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수 있습니다. 재벌가를 이어받을 후계자로서 자기 제국이 쪼개지는 걸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회장.”
“제 경우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
난 침묵하는 진화성에게 말했다.
“진승열에게 제공되던 마약과 여자의 배후에 진승후가 있더군요.”
이 모든 정보는 마약 중개상을 습격하면서 얻은 것이다.
마약 중개상이 리그의 끄나풀인지 관련이 없는 건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다. 하지만 리그와 관련된 마약을 유통한 건 사실이다.
여기에 분명한 건 진승열이 망가지도록 만든 배후에는 진승후가 있었다.
그가 진승열에게 건넨 건 펜타(Penta)라 불리는 마약인데, 이것은 각성자 전용으로 투여하면 강력한 환각과 더불어 감각의 확장이 이루어진다.
중개상은 이 마약에 굉장한 효과가 있다면서 입을 털었는데, 효과 중 하나가 바로 기프트 개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진승열은 기프트를 보유하지 못한 각성자.
자신의 입지를 높이기 위해 펜타는 필요했을 것이다.
마약 복용으로 기프트 개방?
이게 가능할지 아닐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이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한 가지 분명한 건 진승열 옆에 붙어 있던 여자가 리그에 포섭된 각성자였다는 점이다. 미인계로 대영중공업의 비밀을 빼돌리고 있던 것이다.
진승열을 망가뜨리는 대가로 진승후는 기밀을 줬고.
리그가 양쪽으로 해 먹고 있었다.
“그렇게 붙은 리그 끄나풀이 대영그룹의 기밀을 적잖게 빼 갔습니다.”
“…허허, 난 무얼 위해.”
“세상 일이 그렇더군요. 상심할 필요 없습니다.”
허탈해하는 진화성.
난 그에게 위로를 해 줬다.
다행히 대영그룹만 그런 게 아니더라.
“이건 대영그룹에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재계 전체에 벌어지고 있는 공작입니다. 아마 세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영문이 말을 보탰다.
자신이 세계를 구원해야 할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미친놈이라면 분명 이런 짓을 세계적인 스케일로 벌이고 다닐 것이다.
아마 확실하겠지.
안 그러면 리그의 기술력이 설명되지 않는다.
버서커에게 듣기로 인위적으로 초인의 경지에 올려놓는 기술도 있다고 들었는데.
다시 떠올려 보니 나도 탐이 나는데?
진화성이 고개를 저었다.
“승열이가 그리 된 상황에서 승후까지 쳐낸다면 우리 그룹은 혼란에 빠질 거다.”
“회장님이 잘하실 거라 믿습니다.”
이영문은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청와대에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확실하게 처리하라는 말인가?”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그땐 손을 쓰면 된다.
오늘 이 자리도 이영문의 간절한 부탁으로 이루어진 거라.
내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날 향한 진화성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 애들 뒤에 리그가 있다는 말씀, 책임질 수 있습니까?”
“내가 왜 책임을 집니까.”
“…….”
누가 사업가 아니랄까 봐 책임 소재에서 슬쩍 빠져나가려 한다.
알아서 해야 할 곳은 대영그룹 측이지.
“제 말을 믿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저는 빌런전담팀과 연계해서 이번 정보를 토대로 리그 세력을 쫓을 겁니다. 그때 진승후가 모습을 드러내면 자비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리스트를 놓고 논의를 거친 뒤 일괄 배포를 할 생각이었지. 그리고 자체 정화가 되지 않는 곳을 찾아다닐 계획이었다.
재벌들도 과연 팔이 안으로 굽을까?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거 같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건 편견이다.
힘을 주면 바깥으로도 잘 굽어진다.
아, 이런 건 부러진다고 해야 하나.
진화성의 눈에 체념이 서렸다. 그 모습을 본 이영문이 말했다.
“초인님. 제가 진 회장님들 설득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지?”
여기서 바로 답을 들어도 되는 일인데.
“어릴 때부터 애지중지 길러 온 손자들입니다. 가족을 저버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앞에서 대놓고 말하는데 효과가 있나.
의문이 들었지만 이영문의 수완은 꽤 믿음직해서.
기회를 주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와 생각해 보는데 확실히 리그 녀석들이 음흉하다 싶었다.
이렇게 각지에 마수를 뻗어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다니. 제법 난 놈들이다 싶었다.
그러고 보니 재계 모든 그룹에 손을 뻗었다면 신성그룹도 예외가 아니었을 텐데.
내가 이세찬에게 브레인워싱을 해서 사전에 차단이 된 건가?
그럼 내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그때 이세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화려함이 아닌 차분한 그레이 계열의 오피스룩이었다.
“안녕하세요, 준호 씨. 대화는 잘 하셨어요?”
“무슨 일로 왔어?”
“중요한 얘기가 오가고 있다고 들어서요. 진 회장님은 재계 큰 어르신이기도 해서 성의를 보여야죠. 왜 밖에 계세요?”
“둘이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생각해 보자.
신성그룹에 마수를 뻗었다면 두문불출하던 이영문은 제외하고 이세찬과 이세희가 남는다.
여기에서 알짜 정보를 쥐고 있는 건 이세희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난이도가 확 올라갔다.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겠지.
“갑자기 왜 그렇게 보세요?”
“최근에 접근하던 사람 없었어?”
“엄청 많았죠.”
“그래?”
예상치 못한 말이다.
이세희가 싱긋 웃었다.
“네, 근데 다 쫓아냈어요. 딱 봐도 다른 속내가 있어보였거든요.”
기프트 매혹을 가진 이세희는 타인의 호감을 사는데 능숙했는데 동시에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접근해 오는 걸 귀신같이 탐지해 냈고 그 사람들을 멀리하는데 도가 텄다고 말했다.
“그리고, 제가 남자 보는 눈이 좀 까다로워요.”
“편식은 안 좋은데.”
“거기서는 보통 감동을 받아야 하거든요?”
내가? 왜?
의아함을 담아 보니 이세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농담이고, 저는 행실에 신경을 안 쓰면 바로 구설수가 나오거든요. 평소에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왜 그러세요?”
“대단하다 싶어서.”
이세희가 아니고서는 보여 줄 수 없는 처신이었다. 여러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조건임에도 참아낸다는 건 보통 정신력이 아니고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진승열이 이세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던데.
그걸 말하자 눈에 띄게 난감해했다.
“어, 음. 그게, 집안일이었어요.”
“집안일?”
“그게, 오해하지 마시고요. 사실 혼담 이야기가 오간 적이 있거든요. 바로, 바로 거절했어요.”
“…….”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이 화제로 깊게 들어가 봤자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돌렸다.
“리그가 재벌들의 기술을 빼내고 있어.”
“수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리그였네요. 정말 안 끼는 곳이 없네요. 얼마 전에는 태평문도 그러더니.”
태평문이 뭔가 싶어 물어보니 중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빌런 조직이란다.
민간에 깊이 퍼져 있어 중국에서 눈에 불을 켜고 색출하는 중이라고.
리그가 세계적인 스케일이라면 각국을 속앓이 하게 만드는 빌런 조직이 몇 개 존재한단다.
하긴, 세계적으로 움직이는 것보다 토착 세력이 영향을 끼치는 게 더 현실적이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며 진화성이 나왔다.
잠깐 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몇 년은 더 늙어 보였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구나, 세희야.”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해요.”
“어엿한 오너가 아니더냐. 당연히 사업에 집중해야지. 네 성공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감사합니다. 힘이 되네요.”
“그건 그렇고.”
이세희와 나를 번갈아 보던 진화성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내가 잘 어울리는 커플을 두고 헛꿈을 꾸고 있었어. 우리 집이 불타고 있는 것도 모르고. 허허.”
고개를 젓다가 자리를 벗어났다.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우유부단하지만 않으면 좋겠다.
그 뒤로 나온 이영문이 내게 말했다.
“진 회장님에게 잘 말해 뒀습니다. 애지중지하던 손자라서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해합니다.”
그 정도는 이해해 줘야겠지.
다만 결정은 빨랐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세희를 위해 나서 줘서 감사드립니다.”
“…….”
무슨 말인가 싶었다. 난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영문은 내게 고개를 숙인 뒤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고, 얼굴이 홍당무가 된 이세희만 남았다.
훈련을 도와줘서 그런 건가?
딸이 반쯤 죽어갈 정도로 매진하는데 그걸 고맙다고 하다니.
이영문의 취향도 참 독특하다 싶었다.
그리고 다음 날, 진화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손자 녀석을 처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우유부단하다는 말 취소였다.
* * *
진승후는 자신의 앞에 탄탄대로가 펼쳐졌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대영그룹의 맏손자이자, 할아버지에게 공인받은 후계자. 몇 가지 사업을 맡아 성과를 냈고, 탁월한 이미지 관리로 주변의 신뢰를 받고 있다.
그에게 눈에 거슬리는 건 딱 두 가지였다.
첫째는 망나니 동생이 중공업을 물려받는다는 것.
능력이라고는 여자 후리는 것밖에 없는 녀석에게 그룹의 핵심인 중공업을 물려주는 게 어디 가당한 일이란 말인가.
그래, 녀석에게 기대를 걸어 보기도 했다.
신성의 이세희를 잡기라도 하면 신성그룹과 이어질 희망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마저도 못 하는 걸 보고 기대를 완전히 버렸다.
차라리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면, 대영과 신성을 아우르는 최대 재벌그룹이 탄생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최준호라는 존재였다.
재계에서 최준호의 존재는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같았다.
타협보다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미치광이.
그런 주제에 이미지 관리를 하면서 미친 행보가 정의로 포장되고 사이다라 불리고 있었다.
재계 후계자들 사이에서 언제고 반드시 치워야 할 걸림돌이라 생각했는데.
그 걸림돌에게 자신이 걸려 넘어졌다. 그로 인해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게 되었고.
하루아침에 감춰 왔던 모든 비밀이 까발려졌다.
그것도 할아버지한테.
“네게 실망했다.”
“할아버지, 그게 아닙니다. 이건 대영그룹이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하늘 같은 할아버지였다. 엄할 땐 엄하고 인자할 땐 한없이 인자했던. 그래서 할아버지 것을 온전히 지켜 자신이 발전시켜 나가고 싶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지금은 한없이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진승후는 세상에 홀로 내동댕이쳐진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진화성의 표정은 냉정했다.
“끝까지 내게 거짓을 말하려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
“그럼 말해 봐라. 왜 리그와 손을 잡은 거냐?”
“…….”
진승후가 입을 닫았다.
국가 전복 세력인 리그와 손을 잡았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잃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큰 뜻을 가지고 진행한 일이었고,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네가 입을 열지 않는다고 사건이 숨겨지는 게 아니다. 넌 선을 넘었다.”
“할아버지.”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집무실 안으로 익숙한 얼굴이 안으로 들어왔다.
진승후는 숨이 멎을 뻔했다. 최준호가 왜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단 말인가.
“……!”
“어서 오십시오, 최준호 초인님.”
더 놀라운 건 할아버지가 녀석을 정중하게 맞이한 점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어, 어떻게 저자가?”
“내가 모셨다.”
최준호는 무심하게 자신을 보다 진화성에게 고개를 돌렸다.
“정보를 뽑아낼 수 있지만 두 번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그룹을 말아먹을 놈은 내 손자도 아닙니다. 녀석의 처우는 초인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처음에는 모르다가 흘러가는 내용을 듣고 알게 되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최준호는 저승사자였다.
“오, 오지 마!”
주변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우러러 봤다.
조심스럽게 대하고, 호감을 사려 했으며, 행동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는 게 보였다.
자신은 그렇게 태어난 존재였다.
처음부터 모든 걸 손에 거머쥐고 태어난 핏줄이 다른 존재.
하지만 최준호 앞에 서는 순간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극찬을 받던 영민한 두뇌도, 철저하게 관리하던 몸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사이 자신 앞에 선 최준호가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간단해. 리그에 대한 정보만 불면 돼.”
“그, 그…….”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최준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내가 싫어서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생략된 뒤에 말이 더 무서웠다.
입을 닫아도 정보를 뽑아낼 수 있다는 걸로 들었으니까.
암암리에 들리는 정보로 알고 있다.
상대가 입을 닫아도 최준호는 정보를 뽑아낼 수 있다고.
그리고 정보가 다 털린 대상은 텅 빈 깡통이 되어 백치가 된다.
신성그룹 장남 이세찬도 최준호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자신도 그렇게 된단 말인가.
도움을 청하듯 할아버지를 봤지만 자신을 향한 눈동자에 일말의 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
짧은 시간 무수히 많은 생각이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최준호의 손은 그를 기다려 주지 않고 머리 위로 뻗어 왔다.
결국 진승후의 선택은 ‘굴복’이었다.
“마, 말하겠다.”
“왜?”
그러면서 손이 다가온다.
진승후가 기겁해서 외쳤다.
“다 말하겠다고!”
“아, 말한다고? 좀 더 기개를 보여 줄 줄 알았어.”
“…….”
“아쉽네.”
녀석은 처음부터 자신을 백치로 만들 생각밖에 없었다.
입맛을 다시는 걸 본 순간, 진승후는 하체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