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다이내믹 코리아.
마물이 창궐하기 전, 매일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던 대한민국을 일컫던 말이다.
이 말만큼 대한민국을 잘 일컫는 말이 없다.
최근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리그 협력자’ 소식은 대통령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정계에 이어 재계까지 뒤집혔어.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지.”
정치인부터 시작해서 재벌가 로열패밀리까지.
리그는 독버섯처럼 영역을 넓혀 나가 음지에서 힘을 키우고 있었다.
미인계, 위장취업, 해킹, 이면 거래 등등으로 리그에 기술이 유출되고 있었다니. 리그의 작전수행이 오늘 내일 하는 문제가 아니었으나 직계, 나아가 후계자까지 연결된 것은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이것이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로 퍼져 나간다면 그 위협이 얼마나 클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은 양반이다.
단순히 간담이 서늘한 걸로 끝이 났으니까.
대한민국은 명실 공히 리그 청정국이다.
이곳도 이 정도인데 다른 곳은 어느 정도일까. 당장 리그에 협력하고 있을 정치인, 기술이 유출되고 있는 기업, 사상적으로 동조하는 내부 협력자들.
여기에 정부 조직을 뒤집을 것처럼 기세를 키우는 지부까지.
실제로 타국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대한민국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걸 찾아낸 게 최준호고. 이렇게 또 우리를 구해 주는군. 참 대단하단 말이야. 안 그런가?”
“…예. 하지만 상황이 많이 위험합니다.”
“위험하지. 실제로 우리 손등이 베이고 있으니까.”
최준호가 재계에 터뜨린 폭탄은 정계에 불똥이 튀고 말았다.
대영그룹 후계자 진승후가 리그와 협력을 자백하면서 재계와 리그의 가교 역할을 한 게 유중호임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라서다.
여당의 차세대 리더였던 유중호는 리그의 자발적 첩자였고, 그로 인해 여당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등 한차례 내홍을 겪어야만 했다.
유중호의 이름이 다시 언급되는 건 청와대 입장에서 달갑지 않았다.
실제로 정권 지지율과 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곪을 뻔한 상처를 일찍 터뜨려 준 거야. 우리로서는 감사할 일이지. 지지율이 아깝지만 일희일비하면 안 되지.”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도 지지율이 높은 게 좋으니 최준호한테 마물 하나 사냥 해 달라고 할까?”
천명국도 순간, 혹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빠르게 정신을 되찾았다.
“그러다 불똥이 다른 곳으로 튈 수 있습니다.”
“반박할 수 없군. 그래도 이걸로 끝났다는 확신을 얻어서 다행이야.”
“그땐 말렸지만 유중호 의원을 제거한 건 올바른 선택이셨습니다.”
“음.”
유중호에게 정보를 빼낼 당시,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와 대립각을 세웠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잠깐 지지율이 흔들려도 정부에서 보여 준 진심을 시민들도 알고 있다.
오히려 이번 일로 몸통이 뽑혀 나갔다는 확신을 줘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국가는 우리보다 훨씬 심할 테지.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야.”
“핫라인으로 알렸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일 겁니다.”
“우리에게는 최준호가 있지만 저쪽에는 없지. 아마 쉽지 않을 거야.”
대한민국에서 리그 세력은 이보다 더 쉬운 일이 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쉽게 소탕했다.
누가 보면 일개 빌런 조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천명국의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대신 저희는 최준호맛을 보고 있습니다.”
“…음! 그래도 가끔 이런 시원한 맛도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사건 사고가 터지는 걸 보면…….”
“하긴. 우리가 하루 다르게 늙는 게 그 이유도 있지.”
그리 말하던 대통령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무수히 많은 미친놈들을 봐 왔지만 하늘 위에 하늘이 존재한다는 걸 오늘도 깨닫고 있었다.
‘격’이 다르다는 걸 매일매일 보여 주고 있으니.
자신이 생각해도 최준호의 존재는 하이리스크와 하이리턴을 동반하고 있었다.
“재계에서 푸쉬가 들어오고 있겠지?”
“예. 그들은 최대한 조용히 상황을 해결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몇몇 곳은 충분한 성의를 표시할 수 있다고 의사를 밝혔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무려 대영그룹 후계자가 날아간 상황이었다.
진화성이 칼을 뽑아들었는데 다른 재벌들이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조용히 하게 가만히 둔다?
그럼 최준호가 알아서 시끄럽게 만들어 줄 것이다.
“모두 거절해.”
“예.”
“그리고 뭉그적거리면 이렇게 말해. 우리가 직접 나서서 최준호를 출동시킬 거라고. 우리가 말려도 자발적으로 출동할 테지. 어느 게 더 좋을지 결정하는 건 자기들 몫이라고 하고.”
그때가 되면 더 이상 망설일 수 있는 사람이 없겠지.
무책임하지만 이게 최선이다.
“…….”
천명국은 대통령도 최준호를 폭탄취급 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 * *
대영그룹에서 진승후가 내쳐지면서 상황은 깔끔하게 종료되었다.
내가 나설 것도 없는 깔끔한 조치였다. 진화성 회장은 내게 사과를 하면서 제대로 된 후계자를 길러 내겠다고 천명까지 했다.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지만 본인이 의지를 다지는 거니까.
난 절대 강요하지 않았다.
이영문의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거겠지.
마지막에 추한 모습을 보인 진승후는 제주도로 보낼 거란다.
섬이니까 외부로 나오기도 힘들 테니 사실상 유배로군.
진화성이 말하길, 대영그룹에서 본을 보였으니 다른 곳도 잘 알아서 해결할 거란다.
글쎄? 그건 지켜봐야 할 일이고.
일처리를 할 때 최정상에 선 이들은 제대로 본을 보인다면 그 밑은 뭉개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하긴,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그때 나서도 된다.
어차피 내가 가만히 있어도 잘 해결될 테고.
재벌 그룹도 하나의 정글인 이상 반대파는 존재하기 마련이고, 리그와 연관된 이 호재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일단 블랙리스트에 있던 녀석 하나는 처리했군. 그러니 평소에 착하게 살아야 한다.
오히려 내 신경은 다른 곳에 쏠렸는데, 진승열이 갖고 있던 마약이었다.
“펜타(Penta).”
현재 이 마약에 붙여진 이름으로, 각성자들의 마약이라 불린다.
리그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기프트를 개방할 수 있는 각성제라고 소개했다.
구매자들은 이 소개에 모두 코웃음을 친단다. 하긴, 마약 투여로 기프트를 개방할 수 있다면 각성자들 상당수가 리그에 투신했을 테지.
그들이 이 마약을 투여하는 건 부작용과 의존도에 비해 효과가 뛰어나고 오랫동안 각성 상태를 유지시켜 줬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이게 ‘감각이 날카로워져서 기프트도 개방할 수 있는 마약’으로 우스운 이미지가 되었지만 내가 볼 때 일리가 있는 주장이었다.
펜타는 기프트 개방에 도움이 된다.
“잠재된 기프트가 어떤 건지 알아 둘 필요가 있지만.”
자신이 개방할 수 있는 기프트 종류를 알고 펜타를 투여하면 각성 상태가 유지되면서 감각이 날카로워진다. 온전히 확장된 집중력이 기프트라는 미지의 영역을 샅샅이 탐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목적지가 확실한 방향으로 훈련을 한다면?
극적인 효과가 나타날 거라 확신할 수 있다.
결국 기프트라는 게 선천적으로 타고나 개방하는 게 아니면 후천적으로 결합된 몇 가지 요소로 개방된다는데 일반적인 견해였다.
효율을 높여 줄 수 있다는 건 기프트 개방 속도를 앞당길 수 있다는 의미고.
물론 100%는 아니다. 하지만 해 봐서 나쁠 건 없다.
문제는 이걸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점이다.
마약 효과는 줄이고 각성 효과만 뽑아낼 수 없을까?
그럼 한 명은 확실하게 기프트를 개방시킬 텐데.
가장 먼저 생각난 게 윤희인데 여동생에게 마약으로 분류된 걸 사용할 수 없으니까.
“이세희한테 부탁해 봐야겠다.”
어쩌면 이게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일지도.
기프트를 개방할 수 있다면 각성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다.
그때 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약을 그렇게 애절한 눈으로 보면 의심을 받을 수 있어요.”
오늘 훈련을 봐주기로 한 정다현이었다.
내 연락에 와 줬으니 신세를 갚는 것이다.
조만간 실전을 위해 빌런 조직도 같이 소탕하기로 약속했다.
“왔어?”
“무슨 고민하셨어요?”
“이거.”
난 펜타를 들어보였다.
“마약 성분은 제거하고 각성 효과만 얻을 수 없을까 생각했거든.”
“그건 왜요?”
정다현도 펜타로 기프트 개방이 가능하다는 걸 안 믿나 보다.
하긴, 요령보다 정석에 충실한 타입이니.
묵묵히 자기 길만 걷는 걸 보면 정다현답다 싶었다.
“기프트 개방에 도움이 될 수 있어 보여서.”
“진짜요?”
정다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
“리그에서 말하는 게 사실일 줄은.”
“걔네들은 진짜 이런 효과가 있는지 모를 걸.”
“근데 저항이 클 거예요. 펜타는 세계 각지에서 골칫거리라.”
“하긴.”
만약이라는 인식이 그렇긴 하지.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아쉬움은 있었다. 강해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데. 내가 정당한 수련 방법을 고집할 때 다른 사람들은 빠르게 강해지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나만 해도 강해지려고 남의 피를 섭취하지 않던가.
인식을 생각해서 사용하지 않는 건 아쉬운데.
일단 해결되지 않는 고민은 거기까지 하기로 하고, 정다현과 볼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막히거나 어려웠던 점은 없어?”
“오히려 놀랄 정도로 수월해서 문제에요.”
“그래?”
정다현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세상 일이 이렇게 수월할 리 없을 텐데?
“네. 가령…….”
정다현이 돌연 손을 뻗어 내 눈을 노렸다. 그걸 왼손으로 잡아내고 오른손을 뻗자, 기다렸다는 듯 몸을 뒤틀면서 회피한다.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면서 싱긋 웃는다.
“이런 흐름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본인은 직감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내 생각은 달랐다.
“좋지 않아.”
“네?”
“이건 이기는 흐름이 아니잖아. 불필요한 포스가 소모와 기프트 남발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지.”
“아!”
“그러다 금방 퍼져서 서 있지도 못할 걸.”
“…….”
난 애정 어린 조언을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 동 레벨 각성자를 만날 텐데 그 상태를 바로 알아차릴 거야. 그들을 상대로 체력적 열세를 겪는다고 생각해 봐.”
“끔찍해요.”
“신이 났던 거지. 그 상태에서 각성자들이 가장 많이 죽어.”
“…반성하고 있어요.”
“그러니 이제부터 집중할 건 기프트 활용의 완급조절이야. 유리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때 과감하게 끄는 거지. 그리고 퍼즐 조각을 찾아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보는 거야.”
물론 쉽지 않을 거다.
날 상대로 퍼즐 한 조각도 찾기 쉽지 않을 테고.
하지만 그 정도 어려움은 있어야 발전을 꾀할 수 있다.
“해 볼게요.”
“좋아.”
* * *
펜타에 대해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윤희를 보니 다시 펜타가 생각났다.
최근 열심히 훈련하고 있는 걸 보면 계기만 있으면 바로 각성할 거 같은데. 기로에 서 있는 상태인 거 같아서 더 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윤희가 미간을 모으더니 바로 반응했다.
“왜 그렇게 봐?”
“뭐가?”
“눈빛이 마음에 안 들어. 또 이상한 생각하고 있지?”
“아니.”
“딱 보면 알거든?”
이젠 별 걸로 다 시비를 건다.
…근데 어떻게 알았지?
윤희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화두였다.
펜타를 보고 고민에 휩싸일 만큼 윤희의 기프트 개방 속도는 느렸다.
물론 내 기준에서.
이세희나 정다현은 결코 늦지 않다고 말하더라.
물론 내 기대치가 높을 뿐 윤희의 재능이 부족한 건 아니다. 본인 나이대에서 매우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신성 길드 소속이라는 점, 선배들의 리드에 실전 경험을 쌓아 나가고 있는 점이 큰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볼 때 모자랐다.
적어도 자기 몸 지킬 수 있는 실력 정도는 갖춰야지.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딱 지금 정다현 정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드니.
음, 내 기대가 과한 건가?
아무튼 좀 더 빠르게 성장하길 바라는 게 내 마음이다.
절대 윤희를 더 굴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고.
내 진심은 과거로 돌아와 동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증명해 줄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윤희가 훈련 도움을 요청해 왔다.
“나 좀 도와줘.”
“평소에는 경기를 일으키더니?”
“그, 감이 오고 있거든.”
“그래?”
“응. 평소라면 지쳐서 나가 떨어져야 하는데, 갑자기 힘이 솟곤 해. 오빠 말대로 내가 얻을 기프트가 불굴이면 그거와 관련이 있는 거 같아.”
윤희가 제대로 봤다. 불굴은 언제 어느 순간이던 자신의 실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기프트였다.
굴려 달라니 굴려줘야지.
“나 굴릴 생각하니 그렇게 좋냐?”
“아니?”
“근데 왜 웃냐?”
…표정 관리에 실패했군.
아닌 척 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면 대놓고 웃어 주마.
결과부터 말하자면 윤희의 기프트 개방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기미는 보이고 있었다. 기프트 개방이라는 것은 어느 순간 확 얻기도 하지만 차근차근 쌓아온 결과물이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낼 때도 있다.
마물 한가운데에 던져 놓으면 생존본능이 극한으로 발휘돼서 바로 개방할 거 같은데.
극약처방이지만 한번 시도해 볼까?
이게 다 윤희를 위해서 하는 거다.
“이상한 생각하지 마라. 죽는다.”
…혹시 독심술을 얻어 놓고 못 얻은 척 하는 게 아닐까?
그래도 본인이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한번 봐줘야겠다.
* * *
진화성이 본을 보이면서 재계 내 리그 협력자 색출은 빨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룹 후계자였던 진승후가 쫓겨나는 걸 본 재계 그룹에서 관련자들을 모조리 제주도로 내려보낸 것이다.
이렇게 보니 제주도가 무슨 핫플레이스라도 된 거 같다.
이러다 밖에 나오면 재계 사람들끼리 만나게 되는 거 아닌가.
유배 개념으로 보낼 거면 울릉도 같은 곳도 나빠 보이지 않는데.
대한민국이 한바탕 떠들썩한 사이, 세계 각지도 사건사고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발트 3국 중 에스토니아가 사실상 친 리그 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러면서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 동유럽은 현재 리그와 러시아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중국의 빌런 조직 태평문에서는 새로운 초인이 등장했음을 선언했고, 중동에서는 플러스 단계 마물 데저트 드래곤으로 인해 초인 한 명이 전사하고 천 명이 넘는 각성자가 실종되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새로운 이상 현상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이상 현상이라면 이맘때쯤 벌어지는 일이었던가?
하루가 조용할 날이 없군.
여느 때처럼 청와대에 도착한 나는 예상하지 못한 얼굴을 마주했다.
“하이! 준호! 졸라 반가워!”
미국의 초인, 제임스 리드가 와 있었다.
이 졸라맨, 대체 무슨 배짱으로 내 앞에 나타난 거지?
난 녀석에게 성큼 다가갔다.
“너 잘 왔다.”
“응?”
“지중해 레시피 알려 준다고 하고 홍합 잔뜩 넣어 준 거 생각 안 나냐?”
“왓?! 말이 너무 빨라효! 나 한국말 미숙해요!”
헛소리하네, 이 졸라맨이.
이미 녀석이 머리 좋은 걸 난 눈치채고 있었다.
지 불리할 때만 한국어 약한 척 하고.
내가 없으면 한국인 못지않게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할지 모른다.
여태까지 날 속여 먹은 놈들 중에 살아남은 놈들은… 암시장 상인들이 있구나. 걔들은 저번 생에서 사기 친 거라서 어쩔 수 없는 거고.
이 졸라맨을 가만히 둘 생각이 없었다.
녀석이 서류 하나를 내밀기 전까지는.
“하하! 그럴 줄 알고 내가 뉴요커 레시피를 가지고 왔어. 이거 완전 죽여! 둘이 먹다 졸라 다 뒤져!”
…한번 믿어 볼까?
녀석이 내민 레시피가 맛없었던 적은 없으니까.
내가 손을 뻗자 녀석이 슬쩍 뒤로 뺀다.
“내놔.”
“나중에 주면 안 돼?”
“내가 한번 당하지 두 번 당할 거 같냐? 빨리 내놔.”
“졸라 깐깐해!”
툴툴거리던 제임스 리드는 한글로 적힌 레시피 서류를 내게 넘겼다. 글씨를 한국인인 나보다 더 잘 쓰는 거 같군.
설마 레시피에 장난을 치진 않았겠지.
수상함을 느꼈지만 관대하게 넘어가 주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지금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레시피 공유를 원한다면 해 줘야겠군.
일본에서 묵은 원한을 풀었으니 찾아온 용건을 들을 때다.
“그래서 무슨 일로 왔어?”
“미국과 한국은 오래 전부터 졸라 끈끈한 우방이었잖아!”
“그게 뭐?”
“그만큼 졸라 오래된 동맹이란 이야기지! 서로 돕고 돕는!”
“핵심만 추려서 말해. 바라는 거 있지?”
“응. 지금 미국이 졸라 위험해!”
굉장히 핵심만 이야기했군.
최근 미국에 이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더니 그거였나.
어떤 말을 하는 건지 알겠다.
“알았어, 잘 막아 봐.”
“잠깐! 준호! 도와줘야지!”
“내가 왜?”
“준호! 졸라 야박하네!”
제임스 리드가 대놓고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