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제임스 리드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그러지 말고 내 말을 들어 봐!”
하도 간절해서 레시피도 받았으니 한번 들어주기로 했다.
“해 봐.”
“그러니까…….”
제임스 리드가 바다 건너 먼 한국으로 온 건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이상 현상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강렬한 포스 반응이 일어났다. 새로운 플러스 단계 마물인가 싶어 캘리포니아에 비상대기령이 떨어지고 각성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무려 수십만이 넘는 마물들이 해당 장소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미국은 비상이 걸렸다.
수십만이 넘는 마물의 웨이브는 단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거대한 재앙이었다.
만약 이 마물들이 일시에 들이닥치면?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가 예상되었다.
일각에서는 선제적 핵 타격을 주장했지만 그것이 도리어 마물을 자극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반대 의견이 우세한 상황이라고 했다.
“…….”
그나마 이성이 살아 있군.
핵을 쐈다면 오히려 최악의 상황이 빨리 닥쳤을 것이다. 상황 진행을 가로막고 있는 잔챙이들을 치워 주는 격이 되니까.
아무래도 졸라맨이 말하는 상황은 내가 예상한 게 맞는 듯했다.
뭐, 그건 그거고.
난 삐딱하게 자리하곤 말했다.
“그래서 그걸 왜 나한테 묻는데?”
“준호는 졸라 똑똑하잖아! 방법이 없을까?”
“그니까 왜 나한테 묻냐고.”
“에이, 다 알면서.”
언제부터 우리가 친했다고 능글맞게 구는 건지 모르겠다, 이 졸라맨은.
일단 이야기나 들어 볼까.
“우리는 이걸 마물의 무덤이라 부르기로 했어.”
제임스 리드의 추측은 정확했다.
마물의 무덤, 미국에서 일어난 이상 현상은 마물의 시체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저번 생의 경험을 떠올렸다.
마물이 등장하고, 각성자가 등장하면서 각자 수준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유해 8단계 마물이 등장하면서 레벨 8 초인이 등장했고, 유해 8단계를 뛰어넘는 플러스 단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류 영역을 절반 이상 장악한 마물의 숫자는 무시무시하다. 잃어버린 영토를 수복하려고 해도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마물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어 각국에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마물이 늘어나는 속도는 빠르고 수준급 각성자를 길러 내는 시간은 오래 걸리니까.
그러다 보니 마물 생태계가 조성되고, 서로 치고받으면서 약육강식 환경 속에서 높은 단계 마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유해 8단계 숫자가 늘어나면서 특정 지역에서 포식자로 군림할 마물끼리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발생했고.
승자는 해당 지역을 차지하고 패자는 쫓겨난다.
무사히 빠져나왔을 때 새로운 영역에 자리 잡을 수 있지만 간혹 부상이 심각한 마물은 이동하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마물의 시체란 거지.”
“맞아.”
제임스 리드가 말한 마물의 무덤은 유해 8단계 마물이 죽으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마물 생태계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유해 8단계 마물의 심장, 달리 코어(Core)라 불리는 포스가 갈무리 되지 않고 폭주하게 된다.
마물들이 모여드는 건 이 코어를 노린 것이다. 코어는 마물에게 있어 강함의 상징이자, 힘의 원천이니 이걸 차지하려 각축전을 벌인다.
온전히 흡수할 경우 새로운 유해 8단계 마물이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표현하니 장보도를 쫓아 몰려다니는 무림인 같군.
“방법을 알지? 응?”
“마물이 죽어서 발생하는 현상인 건 알 텐데.”
“알지!”
“저 코어를 마물이 흡수하면 새로운 유해 8단계 마물이 되는 것도 예상하고 있을 테고.”
“응!”
제임스 리드는 뭔가 엄청난 해법을 기대하고 있나 보다.
그런 게 뚝딱 나오면 세상 살기 얼마나 쉽겠나.
세상은 모름지기 정석이다, 정석.
나도 빠르게 강해지려고 기프트를 이것저것 취하다 미쳐 버리지 않았던가.
“그럼 그냥 둬.”
“왓? 그게 끝?”
“낮은 단계 마물이 코어를 흡수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미국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유해 8단계 코어가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
무수히 많이 모여든 마물 중 하나가 코어를 흡수한다고 해도 보통 힘의 폭주를 이겨 내지 못하고 폭발해 버린다.
“하지만 만약에 흡수를 성공하기라도 하면…….”
“그땐 유해 8단계 마물이 되는 거지.”
“졸라 무책임한 말이잖아, 준호!”
이런 게 기도메타인 줄 알았는데 별론가.
“무책임은 된장찌개에 홍합 넣으면 그게 지중해 레시피라고 말한 뒤 튄 너고.”
“…….”
“이 경우는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코어를 흡수한 마물이 자폭하는 걸 기대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소수 결사대를 꾸려서 코어를 파괴하는 거지.”
그러면 코어의 힘에 이끌린 마물은 알아서 흩어질 것이다.
오히려 뒤죽박죽 뒤섞인 마물들이 자중지란을 일으켜 획기적으로 숫자를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는 미국도 이미 알고 있을 거다.
날 찔러본 건 기상천외한 방법이 없는지 혹시나 한 걸 테고.
그래도 선택지를 정해 놓을 수 있는 게 나쁘진 않을 거다.
제임스 리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는 건가.”
“없어. 용건 끝났으면 가라.”
그래도 새로운 레시피를 준비한 성의를 봐서 봐줘야겠지.
뉴욕식 된장찌개라, 뭔가 뉴요커 감성이 느껴지는군.
제임스 리드는 내가 미국에 와 주길 바라는 눈치인데 얼마 전에 일본에 다녀와서 갈 생각이 없다.
윤희 기프트 개방도 시켜 줘야 하고 펜타 각성 성분 추출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얼마 후에 벌어질 ‘습격’도 대비를 해야 한다.
내가 알기로 남쪽과 북쪽에서 플러스 단계 마물이 동시에 출몰하고, 그 틈을 타 습격해 오는 세력도 있는 걸로 아니까.
이만 불청객을 쫓아내나 싶었는데, 예상 밖의 대답을 들었다.
“나 안 가.”
“뭐?”
“앞으로 한국에 머물기로 했어! 졸라 오래 머물 예정! 그러니 잘 부탁해!”
제임스 리드가 씩 웃으며 말했다.
강제 출국은 안 되나?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천명국을 보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리드 초인께서는 주한미국대사 책임자로 오셨습니다.”
“…….”
초인이 그런 게 가능한 거였나?
골치 아픈 녀석이 한국에 머물게 되었군.
* * *
제임스 리드가 최준호와 함께 밖으로 나가고, 둘만 남게 된 대통령과 천명국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이상 현상은 정부 입장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물의 무덤이라 듣는 것만으로 골치가 아프군.”
“작년 2월에 북한에서 일어난 현상과 동일합니다.”
“자료에 없던 유해 8단계 마물이 튀어나왔지.”
“예.”
당시 정부는 유해 8단계 마물의 등장이라 판단, 발칵 뒤집혔던 적이 있다.
자칫 마물이 남하하면 주변 마물도 같이 밀고 내려올 가능성이 있던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최전선 도시는 개성이다.
수복한 지 얼마 안 된 도시였기에 방어 강화를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쓰느냐를 놓고 왈가왈부했다.
여기에 사냥에 나서지 않으려고 발을 빼던 김영환과 대형길드의 몸값 높이기 행동들로 정부가 겪은 어려움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다행히 새로 탄생한 마물이 중국으로 향했다. 대한민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면 중국은 난리가 났었다. 장쯔둥은 이걸 놓고 한국이 마물을 북쪽으로 몰았다고 우기면서 한동안 사이가 안 좋았었지.
지금 와서 보면 제임스 리드가 설명한 현상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이런 현상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고 쳐. 다만.”
말을 멈춘 대통령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마초맨이 한국에 머물 정도라는 게 놀랍군. 미국에서 평가하는 최준호의 가치가 우리가 생각하는 거보다 훨씬 높나 보군.”
“계속해서 평가가 올라가는 중이긴 합니다. 직접 일해 봐야 할 텐데…….”
“그런 것도 있지만 그마저도 감수할 수 있는 요소라 생각할 수 있는 거겠지. 기상천외한 행동을 일삼는 초인들이 워낙 많으니. 천 실장은 어떻게 생각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걸 미국에서 알고 있을 가능성은?”
“높습니다.”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이로군.”
“…….”
천명국은 침묵으로 긍정을 표했다.
최준호의 가치는 더 이상 평가가 무의미할 정도였다.
타국의 초인 다섯과 바꾸자고 해도 최준호를 선택할 만큼 모든 가치에서 최상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젊고, 강하고, 계산적이지 않으며, 한 번 결정하면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얼마 전 발표된 초인 몸값 중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다만 대놓고 폭탄(Bomb)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다루기 어렵다는 평가였다.
이게 유일하게 몸값을 떨어뜨리는 요소였다. 다른 부분은 모두 최상위를 달리면서 최준호의 가치를 증명해 주었다.
제임스 리드의 행동은 여러 상상을 자극했지만 천명국은 당장 눈앞에 놓인 상황을 언급했다.
“지금 문제는 제임스 리드입니다.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이 믿을 수 있는 국가라고 광고할 수 있으나…….”
“대놓고 염탐이 걱정되겠지.”
“예.”
스탠퍼드에서 박사 과정까지 마친 제임스 리드는 초인 중에서 손에 꼽히는 두뇌파였다.
같은 걸 봐도 많은 걸 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할 건 그게 아니지 않나.”
“그럼?”
“제임스 리드의 목숨을 걱정해야지.”
“아…….”
제임스 리드가 최준호와 친하다고 하나 그 관계가 언제 뒤틀릴지 알 수 없다.
만약 죽기라도 한다면?
대통령이 위로하듯 말해 주었다.
“그래도 요즘 경우를 차리니 기대를 걸어 봐야겠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천명국은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말했다.
* * *
제임스 리드, 이 녀석이 한국에 머문다고 했을 때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순진한 척 컨셉을 잡고 있지만 속은 새까만 녀석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날 따라 청와대 밖으로 나온 녀석이 눈치를 살살 살피더니 슬그머니 다가와 부탁을 해 왔다.
“준호! 버서커 좀 소개시켜 줘.”
“버서커는 왜?”
“디버퍼를 죽인 빌런을 보고 싶거든.”
“빌런을 왜 나한테 찾냐.”
“준호가 버서커랑 졸라 친한 거 잘 알거든!”
“…….”
한 대 칠까?
누가 그런 미친놈하고 친하다고.
그냥 생각날 때 부려먹기 좋은 녀석일 뿐인데.
그래, 일방적인 비즈니스 관계라고 하면 딱이다.
그것과 별개로 내가 버서커와 교류하는 걸 알고 있다니.
이게 미국의 정보력이란 건가.
“싫은데.”
난 거절했다. 내가 버서커랑 알고 지낸다고 녀석에게 소개시켜 줄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러자 제임스 리드가 다른 방향으로 어필을 해 왔다.
“준호! 내가 매번 졸라 레시피 잘 만들어 오는 게 신기하지 않아? 나한테 방법이 있어!”
그러면서 언급한 게 분자요리였다.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새로운 형태 혹은 식감을 만들어 내는 분야였다.
“…….”
내가 이 정도로 넘어갈 줄 알았다니 오산이군.
…물론 궁금하긴 하다.
하지만 넘어갈 정도는 아니다.
애초에 녀석에게 뽑아먹을 게 있기도 했고.
“다른 걸로 지불해. 승낙하면 버서커를 소개시켜 주지.”
“뭔데? 필요한 거 말해 봐!”
“너 박사라며?”
“…하하! 시험 다 찍었는데 졸라 우연히 딴 거야. 나, 잘 몰라요!”
멍청한 척 해 봤자 속지 않는다.
녀석이 나에 대해 조사한 것처럼 나도 녀석에 대해 조사한 게 있다.
철저하게 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자기 몸을 개조한 초인. 지금의 제임스 리드는 계산의 산물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다.
평가는 12궁과 대적할 수 있거나 한 수 아래 정도, 십대초인보다 낮게 평가된다.
이 정도면 그냥 뛰어난 초인이겠지만 남들이 갖지 못한 두뇌를 지녔다.
현장과 연구소 상황을 동시에 파악하고 있는 인재란 이야기다.
내가 필요한 건 녀석의 뇌다.
아, 물론 직접 머리를 열어서 뇌를 꺼내 가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연구하고 있는 게 있는데 협력하면 버서커를 소개시켜 주지.”
“너무 일방적이잖아.”
“싫으면 하지 말고.”
“으으!”
제임스 리드가 고민에 휩싸인 표정을 짓는다.
이미 다 들켰는데 끝가지 컨셉을 유지하는 걸 보면 경이롭기까지 했다.
“알았어! 할게!”
“좋아.”
걸려들었군.
녀석에게 한국이 공돌이를 어떻게 갈아 버리는지 알려 줘야겠다.
약속을 받은 나는 이틀 뒤, 제임스 리드와 버서커가 만나는 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처음에는 톡을 읽씹하던 버서커도 마초맨 제임스 리드가 만나보고 싶다고 하니 미끼를 물었다.
내 연락 씹은 대가는 나중에 치르도록 해 줘야겠군.
그렇게 미친놈과 이상한놈이 만나게 되었다.
“여기는 마초맨 제임스 리드. 잔머리가 잘 돌아가고 겉과 속이 다른 녀석이야.”
“준호! 말이 졸라 심하잖아.”
“심하기는 무슨.”
오히려 좋게 말해 준 건데.
먹튀에 교활하다는 평가는 특별히 빼 준 걸 녀석은 모르고 있다.
못들은 척하고 버서커를 소개했다.
“버서커는 알지? 미친놈이야. 정상적으로 대화가 안 된다고 보면 돼.”
“늘 그렇지만 네놈한테 그런 말을 들으면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느껴지는군.”
“응, 넌 빌런.”
그리고 난 국가 소속 초인이다.
불만이면 너도 과거로 돌아와 공무원 헌터가 되던가.
아무튼 내 소개에 둘은 인사를 나눴다.
“…….”
처음부터 불꽃이 튀는군.
미친놈과 이상한놈 사이에서 정상인인 내가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쉽지 않아 보였다.
워낙 개성이 두드러지는 녀석들이라.
아무튼 내 역할은 둘을 만나게 해 주는 걸로 끝났다.
딱 봐도 제임스 리드의 목적은 뻔했고.
일본에 이어 미국인가. 버서커가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그럼 편하게 대화 나눠.”
괜히 귀찮아질 거 같아 내 선택은 어색한 자리에서 탈출이었다.
* * *
최준호가 밖으로 나가자 제임스 리드의 눈이 번뜩였다.
버서커는 오래 전부터 이름을 들어왔던 빌런이다.
미쳤다고 생각하기 좋은 이명이지만 미국에서 평가하는 버서커는 의외로 후했다.
악보다 중도 악에 속하는 성향으로 만약 미국이었다면 빌런이 아닌 독특한 개성을 가진 초인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물론 그 기준이 아슬아슬하긴 했다.
하지만 최준호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허용선이 무한대에 가깝게 늘어났다.
리그 소속과 최준호 성격만 아니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달까.
“할 얘기가 있나?”
“있지.”
어떤 방식으로 미국에 오라고 얘기를 해야 할까.
그리 고민하는 제임스 리드의 귀로 버서커의 스산한 음성이 파고들었다.
“일단 한 판 붙고 할까.”
“어?”
“원래 한 번 어울려야 진솔한 얘기가 오가는 법이지. 걱정은 마라. 가볍게 뼈가 부러지는 정도고 심하더라도 팔다리 한두 개만 날아갈 테니까. 빠르게 응급조치를 취하면 붙일 수 있다.”
“…….”
제임스 리드는 할 말을 잃었다.
최준호가 나가서 잠깐 방심했다.
‘이 새끼도 졸라 미친놈이잖아!’
미친놈 옆에 미친놈이 있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