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1
11화
양쪽 눈이 파란 멍으로 물든 오종엽은 대(大)자로 뻗었다.
처음 보는 곱상한 녀석이 집 앞에 있어서 쫓아내려고 했지만 결과는 눈탱이 밤탱이다.
이 녀석은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절대강자였다. 얼마 전 레벨 2에 도달해서 자신 있었는데. 아직 한참이나 모자랐다.
가벼운 아침 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태연히 손을 터는 모습을 보며 오종엽은 표정을 구겼다.
“네놈이 뭘 원하든 목적은 이룰 수 없을 거다.”
“내가 뭘 원하는 줄 알고?”
“뭘 말하든······.”
“됐고. 내 말부터 들어. 약해 빠진 주제에.”
“크윽!”
나직이 속삭이는 목소리에 깃든 포스에 내부가 진탕되는 걸 느끼며 이를 꽉 물었다.
절대 상대할 수 없는 강적이다.
대체 녀석의 목적인 무엇일까. 안 그래도 동생의 희귀병으로 인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불청객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마저 제지하지 못하자 암담함이 들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난 널 도우러 왔으니까.”
“날 도와? 뭘?”
“동생 병원비로 고생하고 있지?”
“······!”
이 녀석이 그걸 어떻게?
부릅 뜨인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며 녀석이 천천히 말했다.
“난 네 아버지한테 신세를 졌다. 그걸 갚으러 왔고.”
속에서 치미는 분노에 오종엽이 소리쳤다.
“헛소리하지 마!”
“무슨 헛소리?”
“내 아버지는 종수가 태어나자마자 우리 가족을 버리고 도망갔어!”
역시 이 녀석은 다른 목적이 있었다. 대체 뭐지? 인신매매단인가? 아니면 가족을 버린 쓰레기를 찾아온 채권자?
어찌나 눈에 힘을 줬는지 실핏줄이 터져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오종엽은 노려보는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그에 반해 녀석은 태연했다.
“아, 그랬어? 그럼 너희 어머니한테 신세를 진 걸로 하자.”
“이 개자식이!”
“아무튼 널 도우러 왔다는 것만 알아 둬. 그만 날뛰고. 그래서, 병원비는 얼마나 들어?”
“······.”
오종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녀석이 집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내가 네 동생을 병원으로 데려갈까?”
“잠깐!”
“병원비 얼마냐고.”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라고 놀리러 온 거냐!”
오종엽은 절규하며 소리쳤다. 동생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은 자신과 동생을 받아 주지 않았다. 차라리 이 더러운 세상은 부서지는 게 나을지도.
“살다보면 가끔 행운도 오는 법이야. 넌 오늘 오랫동안 고통받아 온 동생을 치료할 기회가 온 거고.”
“······.”
“얼마냐고.”
“25억······.”
한 집안이 파멸하는데 충분한 금액이었다. 레벨 2인 자신이 절대 마련할 수 없는 금액.
쥐어 짜내듯 대답하니 녀석이 만족한 기색을 드러냈다.
“많이 드네. 잠깐 기다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돈이 얼마더라?”
스마트폰을 꺼내 이리저리 조작하던 녀석이 멈칫하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24억 9천 8백만 원이 모자라네.”
“······.”
“조금만 기다려. 금방 올 거니까.”
그 말을 끝으로 녀석은 자리를 벗어났다. 그때까지 쓰러져서 지켜보던 오종엽은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너덜너덜해진 몸을 일으켰다.
대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농락까지 당해야 한단 말인가! 자신과 동생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란 녀석을 미치도록 죽이고 싶었고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로부터 3시간 후.
간신히 분을 삭히고 동생을 보살피고 있던 오종엽은 집 앞에서 들려오는 둔중한 소리에 반사적으로 문을 열었다.
낮에 자신을 농락했던 녀석이 거대한 마물 사체 앞에 서 있었다.
“이거면 30억 정도 되겠지? 칼 좀 갖고 와. 해체하게.”
“······.”
녀석이 잡아온 것은 유해 6단계에 해당하는 네임드 마물, 샤벨 타이거였다.
* * *
“······.”
샤벨 타이거가 해체되고 부산물을 차곡차곡 쌓이는 걸 오종엽은 멍하니 바라봤다.
아직도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자신과 동생을 농락하고 떠난 녀석이다. 분명 온정의 손길이 아닌 조롱일 거라 여겼다. 근데 다시 나타난 녀석은 무려 유해 6단계에 속하는 네임드 마물을 사냥해 왔다.
유해 단계는 해당 레벨의 각성자가 나서야 사냥할 수 있는 등급으로 샤벨 타이거는 레벨 6 이상의 각성자나 레벨 4~5 각성자 다수가 팀을 이뤄야 사냥할 수 있다.
그걸 산책 다녀오듯 잡아오다니. 눈으로 보고 있어도 비현실적이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녀석이 말했던 행운이 자신에게 온 것이다.
오종엽은 심장을 꺼내들고 손바닥에 묻은 샤벨 타이거의 피를 맛보며 미소 짓는 녀석에게 물었다.
“대체 목적이 뭡니까?”
“말했잖아. 네 삼촌한테 신세를 졌다고. 그거 갚으러 왔어.”
“아깐 어머니라며?”
“아, 그랬나? 그럼 삼촌으로 하자.”
“······.”
도대체가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녀석이었다.
“마석을 빼도 치료비로 충분하겠지. 부족할 것 같냐?”
“오히려 차고도 남아.”
“그럼 남은 돈으로 잘 챙겨 먹어. 치료를 받아도 영양 보충이 더 중요하니까.”
그리 말한 녀석이 손을 내밀었다.
“뭐?”
“폰 내놔. 신성 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게 도와줄 테니까.”
“신성 병원······.”
“거기 아는 사람 있어. 부탁하면 들어주겠지. 도와주려나?”
방금 오종엽은 들었다. 녀석이 “죽이려고 했지만 죽이지는 않았으니까.”라고 중얼거린 걸.
설마, 자기가 죽이려고 했던 사람에게 부탁하려는 건가?
그 사이 번호 입력을 마친 녀석이 스마트폰을 건네줬다.
“부산물은 소문 안 나게 잘 처분해 둬. 그 정도는 알아서 하겠지.”
“당연히, 아니, 당연하죠. 정말 감사합니다.”
“전생에 공을 잘 쌓았다고 생각해.”
뭐라 말하든 현물이 손에 쥐어졌으니 마음이 든든했다.
“아, 그리고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예, 말씀하시죠.”
“빅텐이라는 조직, 알고 있지?”
“······.”
그 말을 듣는 순간 오종엽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빅텐은 안산에 암약하는 빌런 조직으로 동생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던 자신에게 접근한 곳이다.
오늘 있던 호의가 아니었다면 녀석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전 빅텐과 아무상관 없습니다.”
“제안 온 건 알아. 위치만 말해.”
“예.”
속을 꿰뚫는 눈길에 오종엽은 알고 있는 정보를 낱낱이 털어놓았다.
“가봐야겠어.”
마치 유령에게 홀린 기분이 된 오종엽이 물었다.
“대체 정체가 뭡니까?”
“9급 공무원 헌터.”
그 말을 남긴 녀석이 자취를 감추었다.
“······.”
멍한 시선으로 지켜보던 오종엽이 정신을 차렸다.
마이페이스에 거짓말투성이였지만 녀석이 자신에게 베푼 호의는 현실이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호의를 베푼 걸까.
머릿속이 뒤죽박죽 헝클어졌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오종엽은 잠든 동생, 오종수를 바라봤다. 늘 일그러져 있던 동생의 얼굴이 오늘만큼은 편안했다.
“찾아간다. 그리고 내 방식으로 은혜를 갚는다.”
* * *
솔직히 말하면 오종엽과 만남은 생각했던 것보다 무덤덤했다.
날 끝까지 도와줬던 친구였지만 오늘 녀석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오종엽은 내가 알던 슬래쉬 오종엽이 아니다.
헌터들에게 쫓기며 우의를 다졌던 것이 나와 녀석 사이에 없었다. 녀석에게 나는 오늘 초면인 남인 것이다.
내게 있어 오종엽의 동생 치료비를 마련한 것은 저번 생의 인연에 기반한 호의였지만 녀석에게는 말 그대로 처음 본 녀석이 베푼, 뜻밖의 행운이었다.
그래서 처음 생각했던 공무원 헌터가 되라는 말도 굳이 하지 않았다. 동생이 치료되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능력 정도는 되니까. 굳이 내가 나서서 녀석의 진로를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
내 손으로 죽였던 친구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호의였다.
“···빨리 처리하고 가야겠지.”
그리고 나는 지금 빌런 조직 빅텐의 본거지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은 안산에서 암약하지만 약 10년 뒤 경기도 남부 전역으로 세력을 넓힌다. 인신매매를 중심으로 마약 유통, 밀무역을 펼치는 녀석들은 외곽에 사는 각성자들을 끌어들이는데, 가족들을 인질로 삼거나 마약 중독자로 만드는 등 온갖 지저분한 수법을 동원한다.
녀석들이 이렇게 클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등장했기 때문.
당시 미쳐버렸던 나는 부모님이 계시던 청주와 정반대인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날 체포하기 위한 공무원 조직의 이목이 북쪽에 몰린 틈을 타 성장했다.
저번 생에는 그 대가를 치르지 못했으니 이번에 대가를 치러야겠지.
어차피 지금까지 저지른 죄만 보더라도 죽음만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녀석들이다. 내 계획은 본거지를 쓸어버린 뒤 녀석들을 ‘실종’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럼 수사에 혼선이 일어나 내가 용의선상에 오르는 걸 배제할 수 있다. 게다가 실종이면 사망이 아니라서 시체를 찾아야 하고.
오종엽이 알려준 위치에 도착하자 을씨년스러운 공장 지대에 험상궂게 생긴 놈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많은 놈들이 모여든 곳으로 향했다.
날 발견한 녀석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멈춰! 넌 누구냐?”
“나? 공무원 헌터.”
“뭐······.”
대답을 듣기 전 내 손아귀에 녀석의 머리가 쥐어졌다. 기뢰로 머리를 터뜨린 나는 녀석의 손에 쥐어졌던 검을 뽑아들었다.
“빨리 끝내자.”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이가 듬성듬성 나간 낡은 칼이었다. 그 검에 기프트를 발현하는 순간, 끈적한 핏빛 기류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오종엽의 기프트 슬래쉬였다.
닿는 모든 것을 베어 버리던 기프트. 사용자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이거나 비슷한 등급의 기프트가 아니면 대적하기 까다로운 유니크 기프트다.
섬뜩한 핏빛 검기가 대기를 가르자 빌런들의 몸이 조각났다. 바닥을 적시는 피의 양이 많아질수록 검에 서린 핏빛이 점점 더 진해졌다.
총을 쏘는 세 놈을 베어 버린 뒤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바깥 상황의 이변을 감지하고 있었다.
“적이다!”
요란한 알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빌런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 숫자만 50이 넘어 보였다.
왜 이렇게 모여 있는 건지 몰랐지만 입구 방향을 점유한 뒤 빌런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촤아악!
핏빛 포스가 검을 타고 발산되는 순간 다섯이 넘는 빌런의 몸이 두 동강 났다.
대상에 직접 손이 닿아야 하는 기뢰와 달리 슬래쉬는 손맛이 떨어져도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데 최적화 되어 있었다.
당장 다섯이 넘는 동료가 목숨을 잃자 빌런들의 기세가 주춤한 게 느껴졌다.
난 개의치 않고 검을 휘둘러 하나씩 죽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입구로 향하는 놈들이 최우선 목표였다. 목을 자르기도 하고 상하체를 분리하다가 세로로 갈라 버리기도 했다.
빌런들의 피로 갈증을 적셔나가며 하나씩 확실하게 베어 나갔다.
불과 5분 사이 40명이 넘는 빌런이 죽었다.
“괴, 괴물!”
“우리가 상대 못해!”
“도망쳐!”
남은 빌런들마저 처리하려고 다가갈 때였다.
엄폐물 사이로 희끗한 인영이 튀어나오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게 쇄도했다.
푸캉!
반사적으로 검을 들었지만 낡은 검은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
그 사이로 강맹한 힘이 실린 왼 주먹이 파고들었다. 내가 반만 남은 검으로 튕겨 내자 오른 주먹이 연계되어 쇄도했다.
하지만 슬래쉬로 간단하게 오른팔을 날려 버렸고.
“이익!”
이를 꽉 문 녀석이 휘두른 왼팔도 잘라 버렸다.
퍽!
하얗게 질린 녀석의 안색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목까지 날려 버렸다. 슬래쉬 스킬에 휘말린 머리가 산산조각 났다.
“아, 머슬 캣(Muscle Cat).”
바닥에 뒹구는 머리를 보고 나서야 녀석의 정체가 떠올랐다.
머슬 캣은 현상금 5억원이 넘는 빌런이다. 신체가 건장한 남자를 노려 수십 명 넘게 죽이는 걸로 유명한 빌런인데 몸놀림도 날래고 레벨도 추정 5에 해당돼서 발견하면 즉시 보고하라고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그것보다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지만.
“머리만 들고 가면 되려나? 아니면 인증샷을 찍어 둬?”
가끔 빌런들이 무기명으로 현상금을 수령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오늘 이곳에 있던 일을 밝힐 생각이 없었기에 포기하기로 했다.
입맛을 다신 나는 바닥에 뒹굴고 있는 검을 주워 빌런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안쪽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할 때 두 사람이 튀어나왔다.
“항복! 항복하겠다! 내가 빅텐의 보스다.”
들을 것도 없이 녀석의 목을 잘랐다.
내 시선이 옆에 서 있는 마른 체구의 60대 초반 남자에게 향했다.
“나, 난 안산 부시장······.”
“어쩌라고.”
거기까지 말을 듣고 녀석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공장에 더 이상 아무도 숨 쉬지 않을 때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아.”
처참하게 잘려 나간 육신의 잔해와 살점과 피가 질퍽하게 바닥과 벽에 들러붙어 있었다.
무려 오십이 넘는 시체가 뒹굴고 있는 대학살의 풍경은 내가 미쳐 있을 때 자주 보던 풍경이다.
손에 엉겨 붙은 피의 찐득한 느낌이 옛 기억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이 죽였다.
나는 머리가 차가워지는 걸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언제 다 치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