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확실히 빠르다.
배를 몇 번 타 본 적 있지만 지금처럼 빠르게 이동한 적 없는 거 같다. 가는 내내 세밀하게 체크를 하고, 속도도 함부로 높이지 못했었지.
그에 비해 해적들의 이동 속도는 몇 배 빨랐다.
자기들만의 항로가 있는 건가, 그렇다면 정부에서 잡지 못하는 이유가 설명된다.
“설사 마물을 만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바로 앞에서 마주한 게 아니라면 전속력으로 이탈할 때 다른 마물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거든요. 그럼 더 쫓아오지 못합니다.”
내 옆에서 설명을 보태는 건 조타수였던 조선족 출신 김철남이었다.
나와 말이 통한다는 이유로 은연중 보스로 인정받은 건가.
놈은 내 옆에서 살랑거리며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정부에서는 같은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저희야 잃을 거 없는 이판사판인 인생이지만 저쪽은 지켜야 할 게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 모험을 하지 못하는 것이죠. 좀 쫓다가 돌아가는 게 대부분입니다.”
지킬 게 많은 놈들의 침묵이라는 건가. 실제로 도망치다 실패해서 마물의 밥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100% 통용되는 것도 아니군.
내가 모르는 바다의 질서라는 것도 꽤 흥미진진했다.
인류가 육지에서 마물을 몰살시킨다고 해도 그것은 10%의 극복이라던 대통령의 말이 떠오른다.
궁극적으로 인류가 옛 성세를 되찾으려면 항로를 개척해야 한다고 했던가.
하긴, 육지보다 바다가 더 넓고 넓은 만큼 더 강한 마물들도 많을 것이다. 지금 고전하는 플러스 단계를 뛰어넘은 투뿔 단계 마물은 이미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쏴아아아!
내가 더 손을 쓰지 않으니 선원들도 조용히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편안한 항해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별안간 배가 멈췄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잠시 후, 김철남이 쭈뼛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저, 그, 초인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왜?”
“중국 순시선입니다.”
“피해 가면 되지.”
바다는 넓지 않은가. 먼저 인지했으면 피해 가면 그만 아닌가?
김철남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따돌리면 되겠지만 목적지까지 굉장히 오해 걸리게 됩니다.”
“얼마나?”
“최소 2배입니다.”
그리 좋은 선택지는 아니로군.
시간에 쫓길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느긋하게 처리할 일도 아니다.
얘들이 본거지에 연락했을 가능성이 99.9%거든.
적의 함정에 뛰어드는 격이 될 수 있는데 굳이 장단에 맞춰 줄 이유는 없겠지.
그렇다고 저들이 내게 맞춰 이대로 돌아갈 리도 없으니 결국 치워야 한다는 소리로군.
가급적 건드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안 되겠다.
어차피 중국은 태평문이 부산을 침공하도록 방치 혹은 물밑에서 도움을 줬다고 볼 수 있으니 내 정체만 들키지 않으면 되겠지.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결하고 올 테니 지나가고 있어.”
“예? 하지만 순시선이 곧 저희를 감지할 겁니다.”
“곧 움직이지 못하게 될 거야. 가고 있어.”
난 김철남의 대답을 듣지 않고 허공을 밟아 하늘로 중국 순시선이 있는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과연, 서서히 날이 밝아오는데 저 멀리서 중국 순시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부지런도 하다. 하긴, 자기나라 바다를 지키는 일인데 게을리해서는 곤란하지.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그것이 오늘의 사달을 일으키게 되었지만.
나는 순시선의 뒤로 접근해서 엔진이 있을 곳을 향해 칼날 폭풍을 시전했다.
쾅! 콰과광!
요란한 폭음과 함께 배의 속도가 점점 줄어든다. 그러다 굼벵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느려지더니 이내 멈춰 섰다.
제대로 타격을 준 것이다. 그런데 배가 좀 기울어지는 거 같은데? 방금 공격이 좀 과했나?
어차피 멈춰 세웠으니 침몰하던 아니던 알아서 하겠지.
선박 위에서 중국어로 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어차피 나와 관련 없는 일이니 뒷수습은 알아서 하도록 두고 바다 속으로 입수해서 순시선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허공을 박차고 위로 올라가니 부지런히 가는 해적선이 보인다. 그런데 내가 탑승했을 때보다 속도가 더 빠른 거 같다. 내 착각인가? 설마 내가 처리하는 틈을 타 도망치려고 하는 건가.
나는 어렵지 않게 따라잡아 갑판 위에 착지했다.
“히, 히익!”
하늘 위에서 떨어진 나를 보고 선원들이 기겁했다.
도망치려 한 게 맞나 보다.
다 죽여야 하나?
잠깐 그 생각이 들었지만 주변에 다른 해적도 없고, 죽여 봤자 상황이 해결되는 게 아니니 잠깐 자비를 베풀어 줘야겠다.
어차피 기회는 많다.
“내 의자는?”
“가, 가져오겠습니다!”
선원 하나가 내가 앉던 의자를 가져왔다. 힘 좀 썼다고 앉으니 편했다. 잠시 후, 사색이 된 김철남이 다가왔다.
“오, 오셨군요. 초인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절대 생각하시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전속력으로 튀는 거 같던데.”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순시선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지원을 불러 따라붙으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쳐 주지. 날 보며 안절부절 못하던 김철남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 순시선은……?”
“엔진을 건드려 놨어. 쫓아오지 못할 거야.”
“아, 다행입니다.”
순시선이 어지간히 무서운 존재였나 보다.
그때였다.
쾅! 꽈르릉! 꽈과광!
무시무시한 폭음이 울려 퍼지며 저 멀리서 폭발 구름과 불꽃이 번쩍였다.
저기는 순시선이 있던 곳인데.
내가 힘을 과하게 썼나?
김철남의 얼굴은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저거, 혹시 침몰한 게 아닐지…….”
“작은 오작동이겠지.”
안 믿으면 말고.
내가 더 말하지 않자 김철남도 침묵했다.
* * *
태평문주(太平門主) 장우위안.
장우위안은 중국에서 최악의 악이라 불리는 태평문의 문주다.
한때 중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초인이자, 충성스러운 초인이던 그는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당과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추격을 피해 도망친 장우위안은 추종자들을 이끌고 태평문을 개파하고 점 조직을 꾸려 중국 내 최악의 악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빌런이 될 당시, 추격전에서 중국 측 초인 두 명의 협공을 두 시간 넘게 대등하게 맞선 건 전설적인 이야기였다.
나날이 커져 가는 태평문의 세력으로 인해 중국에서는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며 대대적인 소탕을 선언, 대 마물 전선을 무너뜨리고 각성자를 투입하니 태평문은 대부분의 근거지를 잃고 섬으로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세력이 한풀 꺾였지만 장우위안을 끝내 잡지 못하면서 그 명성은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태평문의 본거지를 남중국해 작은 섬으로 옮긴 그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로베르토입니다. 반갑습니다, 장 문주님.”
“반갑소, 컬렉터, 로베르토 공.”
컬렉터 로베르토는 이탈리아 출신의 초인이자 리그 소속 12궁의 일원이다.
세계적인 부호이자 강자인 그는 리그 사절로 장우위안을 찾았다.
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본론에 접어들자 주변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지기 시작했다.
“리그에서는 장 문주님의 행적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변방에서 홀로 힘을 기르기보다 함께 힘을 합쳐 가능성을 높여 보는 게 어떻습니까?”
“리그의 제안은 굉장히 매력적이지. 솔직한 마음으로 당장 그 제안을 받고 싶을 정도요.”
“좋게 생각해 줘서 다행입니다.”
“다만.”
장우위안은 로베르토의 푸른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여태까지 이런 방법으로 리그는 군소 조직들을 많이 먹어 치웠더군. 그리고 초라한 꼴로 내팽개쳐졌지. 우리 입장에서 그 부분을 우려할 수밖에 없소.”
“걱정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뭔가를 얻으려면 내어 주는 게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목적을 이룬 시점에서 리그의 공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었습니다.”
“우리도 그리 될 수 있다고 보는 건가. 그리 유쾌한 말은 아니군.”
“교언영색이라, 진실을 마주해야 서로 원하는 걸 합쳐 나갈 수 있습니다.”
“…….”
장우위안의 입이 닫혔다. 현재 태평문의 상황은 어려웠고, 리그는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는 상황이다. 로베르토의 말은 이를 제대로 파악하라는 것과 같았다.
그의 말마따나 태평문 홀로 중국을 도모할 수 없다. 하지만 세계와 전쟁을 벌이는 리그의 힘이 더해진다면 가능성은 높아진다.
“중국은 기회의 땅입니다. 장 문주님은 물론 무수히 많은 재능 있는 인재들이 태평문에 모여 있습니다. 그들이 중국을 통치한다고 생각해 보시길.”
“간판은 리그로 갈아타야 하고.”
“그게 조건이라 힘을 빌려 드리는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장우위안이 화제를 돌렸다.
“긍정적으로 검토하지. 그 전에 한국을 공격해 달라고?”
“현재 한국의 상태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대략적으로. 장쯔둥이 한국 초인에게 죽었다더군. 멍청한 놈, 교만한 성격을 고치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장우위안이 혀를 차자, 로베르토가 미소 지었다.
“이름은 최준호라고 하고 헤드 브레이커라는 이명이 붙어 있습니다. 실력은 십대초인급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정도라고?”
“힘을 빼놓지 않으면 이웃인 중국도 힘들어질 겁니다.”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나와 상관은 없어 보이는군. 녀석을 찾아갈 수도 없고.”
“그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장 문주님이라면 어렵지 않게 해낼 거라 생각합니다.”
로베르토가 잘생긴 얼굴로 미소를 짓자, 장우위안이 미간을 모았다.
“왜 컬렉터라 불리는지 알겠어. 혀놀림이 예사롭지 않아.”
“칭찬 감사합니다. 이번 제안은 양측 모두 손해는 아닐 겁니다. 제 기프트가 그리 얘기했으니 믿으셔도 좋습니다.”
“으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지.”
“이건 제가 준비한 선물입니다.”
로베르토는 품속에서 작은 약병을 내밀었다.
“리그에서 개발한 부스트입니다. 일신의 힘을 증폭시키는 약물입니다.”
“이런 게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무슨 부작용이 있을 줄 알고 내게 내미는 거지?”
“무슨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혹여나 위급한 상황에 사용하시라고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부작용은 힘을 끌어다 쓴 피로가 몰려오는 정도입니다.”
“감사히 받도록 하지.”
장우위안이 부스트를 챙겨 들었다. 하지만 이런 기물이 있으면 머릿속에 잔상이 남는 터라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 둘 생각이다.
“그럼 일어나 보겠습니다. 그리고 중국과 인연도 결정을 내리는 게 좋을 겁니다.”
“무슨 인연을 건가.”
“창천검제 남궁기.”
“…….”
“각자 선만 안 넘으면 장 문주도, 리그도 모두 만족스러운 거래가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로베르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모습을 지켜보는 장우위안의 귓가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거할까?
장우위안이 고개를 저었다.
[지켜보기만 해라. 여기서 제거하면 귀찮은 일만 벌어져.]-알았어.
그 말을 끝으로 조용해졌다.
홀로 남은 장우위안이 혀를 찼다.
“언제까지 오만할지 지켜보마.”
* * *
밖으로 나온 로베르토는 호화로운 요트에 올라섰다.
편안하게 자리에 앉은 그는 조금 전 만난 장우위안에 대해 떠올렸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부류로군.”
마땅한 패가 없어 선택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유용하지도 않다.
실력에 비해 야망이 지나치게 크다.
홀로 중국을 먹겠다고? 코웃음이 절로 쳐지는 야망이었다.
본래 로베르토는 태평문에 대해 무관심을 주장했다. 이대로 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질 곳이었다. 좀 더 상황이 안 좋아질 때 선심 베풀 듯 손을 내밀면 모든 것이 수월해질 것이다.
하지만 아르고스의 생각이 달랐다.
일본 리그 지부가 소멸한 지금, 태평문을 끌어들여 견제 장치를 만들어 놓아야 한단다.
경계 대상은 헤드 브레이커, 최준호였다.
“헤드 브레이커를 그렇게 경계해야 할 정도인가?”
콘스탄티나 스타닐라가 헤드 브레이커에게 목숨을 잃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다. 로베르토는 과장된 소문으로 인해 헤드 브레이커를 견제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힘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부호이자, 12궁의 일원인 그는 리그가 패권을 잡기 위해서는 북미와 유럽을 손에 넣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특별한 거점이 없는 동북아시아에 신경을 쓰는 아르고스의 결정에 아쉬움을 느꼈다.
그때 부하가 다가왔다.
“보스.”
“무슨 일이지?”
“멀리서 배가 한 척 다가오고 있습니다. 비정상 항로입니다. 목적지는 태평문인 거 같습니다만, 정보에 없는 배입니다. 격침할까요?”
“…….”
평소대로면 제거를 지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손을 들어 제지했다.
“기다려.”
로베르토는 품속에서 낡은 종이를 꺼내들었다. 컬렉터의 이명으로 불리지만 리퍼비시(Refurbish) 기프트를 가진 그는 신화와 전설이 담긴 옛 보물의 능력 일부를 사용할 수 있다.
옛 페르시아 제국의 점성술 보물을 손에 넣은 그는 간단한 길흉화복을 점칠 수 있다.
점괘의 결과는 대흉이었다.
로베르토의 표정이 굳었다.
“…항로를 튼다. 마주치지 말고 지나치도록.”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기 무섭게 로베르토가 탄 호화 요트는 비정상적인 움직임으로 항로를 이탈했다.
로베르토는 멀리 점으로 바뀌어가는 태평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불운이 날 피해 태평문으로 향하는군.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겠어.”
* * *
저 멀리 섬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 옆으로 다가온 김철남이 주위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섬에 곧 도착 예정입니다.”
“저기가 태평문?”
“예. 태평문의 본거지입니다. 그런데 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빨리 할 것이지.
머뭇거리는 게 오히려 거슬리기 시작했다.
“말해.”
“태평문에 무슨 일로 방문하시는 건지?”
“내가 왜 그걸 말해 줘야 하지?”
“죄, 죄송합니다.”
김철남이 사색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보고했을 텐데,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한가?”
“그건……!”
“왜, 아니라고?”
“…….”
창백하게 질린 김철남이 고개를 숙이며 내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난 주위를 둘러봤다.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해서인지 삶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게 보였다.
돌아가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원래 다들 이렇게 희망을 갖고 사는 법이지.
“여기까지 데려다 주느라 수고했다.”
“아, 아닙니다. 오히려 강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뻗댄 저희 잘못입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죽기 전에 자기 잘못을 깨달아서 다행이긴 하군.
나는 녀석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갑판을 박찼다.
포스를 실어 높게 점프한 나는 섬을 향해 몇 발자국 내딛다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내가 타고 온 배를 향해 칼날폭풍을 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