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주변의 조언도 그렇고, 돌아가는 흐름을 지켜보니 당장 내가 사냥에 나설 이유가 없어 보였다.
내 힘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번 기회에 나 없이 사냥을 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마물 사냥 비중에 내 역할을 줄이려는 사람도 많았다.
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지만 정식으로 사냥할 순번을 부여받은 것이 아스가르드와 사신 길드였기에 지켜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논의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최근 부모님 집 근처로 이사를 오면서도 윤희와 함께 살게 되었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나는 믿을 수 있지만 윤희는 개판으로 살게 뻔하다나.
“그런 것치고 자주 오시던데.”
같은 아파트단지라서 좋은 점은 왕래가 자유로워졌다는 점이고, 단점은 좀 과할 정도로 자주 보는 정도?
그래도 저번 생의 후회를 바로잡을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윤희의 개김성은 성장판이 닫히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될 때가 있었지만.
며칠 만에 돌아온 집은 어수선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이사를 왔는데 윤희가 소파와 혼연일체가 된 건 조금도 바뀌지 않은 상태였다.
누운 채 손만 든 윤희가 반겨줬다. 누가 쟤를 데려갈까. 데려간다는 사람이 생기면 절이라도 해야겠다.
“어서 와, 대체 며칠 동안 어딜 다녀 온 거야?”
“비밀 임무.”
“그렇게 무게 잡고 말하면 내가 감탄할 줄 알았어? 딱 봐도 어디 가서 뒤집고 온 거 같은데.”
눈치는 귀신같은 녀석 같으니라고.
그래도 내가 위기에 빠질 뻔한 부산을 구했는데, 이 녀석은 그걸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남매라서 그러는 게 있으니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해야겠지.
그건 그렇고, 떠나기 전 내준 과제를 어느 정도 했나 확인해야겠다.
“제임스 리드랑 하는 훈련은 어떠냐?”
윤희의 표정이 팍 구겨졌다.
“으, 그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 거잖아.”
평소에도 이랬는데?
내가 팩트를 언급할 틈도 없이 윤희가 하소연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최소 단위로 차근차근 육체 개조를 하는 제임스 리드의 방식은 단련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간을 괴롭힐 수 있는지의 끝을 보여 준다고 한다.
내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군.
“그래도 버틸 만한가 보네.”
“완전 죽어나고 있거든?”
졸라맨이 제대로 일하고 있군. 그래도 멀쩡히 TV 볼 힘이 남아 있으니 더 강도를 높여도 좋다고 해 줘야겠다.
난 윤희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방으로 들어왔다. 전보다 훨씬 크고 깨끗한 방에 들어오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예전에는 이런 곳에 들어오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거 같은데.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내 모습을 보면 새삼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침대에 걸터앉아 남궁기에게 받아온 갈색 환약을 꺼내들었다.
안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은 무협소설에 자주 나오는 독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고독인 거 같은데…….”
독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알기 전에 남궁기를 죽여 버려서다. 나는 환약을 지켜보다가 포스를 불어넣었다.
포스에 반응해서 격렬하게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내 포스에 저항하는 것이다. 난 터지지 않게 포스로 조련을 해 보기 시작했다.
꽤 끈질기게 저항하다가 어느 순간 포스를 받아먹고 있었다.
굴복한 건가 싶어 움직여 보려고 하니 발작을 일으킨다. 아직 굽힌 건 아니군.
이건 좀 더 연구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장우위안한테 뺏어 온 것도 있는데, 이건 어떻게 하지?
* * *
태평문을 지우고 돌아온 건 대외적으로 비밀이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중국 초인과 얽혀 있는 문제라서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기로 했다.
주변이 바쁘게 움직이니 내가 한가한 게 더 실감나는 기분이다.
내가 신성길드에 도착하자 이곳도 한창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희는 예비대로 분류되어서 연락이 오면 바로 출동해야 하거든요. 언제 지원을 갈지 모르니까요.”
북쪽에 나타난 마물은 황해남도 해주에, 남쪽에 나타난 마물은 경상남도 진주에 모습을 드러냈다.
양쪽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피해만 발생하고 사냥 진도는 지지부진했다.
플러스 단계 마물로 차륜전을 벌이려면 그 시간 동안 고스란히 피해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
이게 이렇게 어렵게 사냥할 일인가?
이세희는 당연한 결과물이라 말했다.
“쉽지 않을 거예요. 당장 저희도 준호 씨가 아니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모르거든요.”
“신성길드는 알아서 잘하던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지만 준호 씨가 옆에 있던 게 큰 힘이 되었죠. 삼촌도 인정하는 부분이고요. 다른 곳은 그게 안 되니 골치가 아플 거예요.”
심리적인 부분이라는 건가.
목숨이 걸린 일이니 미신이 성행하는 건 알고 있다. 내면의 약함을 보완하기 위해 종교에 빠지거나 온갖 징크스를 만들어 낸다.
“이번 사냥 흐름 덕분에 신성길드가 대형길드 중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이것도 준호 씨 덕분이죠.”
“잘됐네.”
“네, 덕분에 이미지 메이킹도 성공했고 구성원들 자부심도 커지고 있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내 덕이라니 그러려니 하면 되겠지.
난 이세희와 본론에 들어갔다.
“그리고 진 팀장 이야기 들었는데 쉬어 가기로 하신 건 잘하셨어요. 이 기회에 준호 씨 없이 얼마나 해낼 수 있는지 깨달을 필요가 있거든요.”
“그렇게 될지 아닐지 지켜봐야겠지.”
“저마다 행복회로를 돌리는 거죠. 준호 씨가 싫은 사람은 준호 씨 없이 충분하다는 걸 어필하고 싶고, 다른 쪽은 한쪽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고, 대형길드는 플러스 단계 마물 사냥 실적을 쌓고요.”
모두의 이해가 일치한다고 하던데 정작 나는 가만히 있음으로써 벌어지는 일이라는 게 신기하긴 했다.
“기존 유해 8단계라면 저마다 자료가 축적되고 노하우를 습득한 상태거든요. 하지만 플러스 단계가 등장하면서 전부 제로베이스로 시작하게 됐죠. 실력이 뛰어난 강자는 더더욱 귀해졌고요.”
이전까지 초인이라면 충분했지만 이제는 최소 자격이 되었으며, 큰 피해 없이 사냥할 수 있는 초인의 몸값이 올랐다는 이야기였다.
그게 바로 나고.
근데 몸값 높아진다고 뭘 받아내야 하지?
“그건 줘야 하는 쪽이 고민해야 할 문제죠.”
“그래?”
“필요한 게 있으시면 넌지시 흘리셔도 되고요.”
“없어.”
몇 번 생각을 더 해 봤지만 필요한 게 진짜 없다.
“아! 너무 제 얘기만 했네요. 제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죠?”
“저번에 8단계 마물의 심장 필요하다고 했던 게 떠올라서.”
“그랬었죠. 설마?”
“한번 살펴볼래?”
“……!”
난 이미 가공을 끝낸 마물의 심장을 꺼내 들었다. 귀국하던 도중 나타난 마물을 사냥한 것이었다.
이제 와서 얘기하지만 해양 마물은 유해 8단계임에도 확실히 까다롭긴 하더라.
정작 심장을 찾으려고 해도 꽤 어려웠고.
이번에는 귀국이 우선이라 빨리 처리했지만 다음에는 제대로 시간을 들여야겠다.
기대감 가득하던 이세희는 마물의 심장을 확인하고는 얼굴에 균열이 일어나더니 경악으로 바뀌었다.
“주, 준, 준호 씨! 이거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출처는 밝히기 좀 그래.”
“그, 그래요? 근데 8단계 마물의 심장이 맞아요. 이걸 저한테 보여 주셨다는 건 저희한테 팔 의향이 있으시다는 거죠?”
“어.”
“이거면 무기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서 길드원들한테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게 되고, 여러 소재 연구도 할 수 있고, 출력 상승도… 으흐흐!”
“…….”
자기만의 상상에 빠진 이세희가 눈을 번뜩이며 기괴한 웃음을 지었다.
괜찮은 거겠지?
* * *
대한민국이 갑작스레 등장한 두 마리 플러스 단계 마물로 시끌벅적할 때 세계를 강타한 소식이 하나 있었다.
동아시아 최대 빌런 조직이자, 중국을 골치 아프게 만들던 태평문의 멸문 소식이었다.
여기에 중국 초인인 창천검제 남궁기의 시체가 함께 발견되어 의아함을 자아냈다.
남궁기와 함께 발견된 중국 측 각성자 숫자는 불과 열 명.
그에 반해 태평문은 태평문주 장우위안과 새로운 초인, 암운을 비롯해 삼백 명이 넘는 태평문도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남궁기가 해낼 수 없는 성과를 이뤄 낸 것이다.
세계 언론도 이를 대서특필하면서 남궁기와 소수정예 각성자로는 태평문을 멸문시킬 수 없다면서 의문을 드러냈다.
이에 대한 가장 그럴싸한 내용은 역시 하나였다.
리그가 태평문을 멸문 시켰다!
하지만 여기에도 여러 의문점이 존재했다.
리그는 태평문을 멸문시킬 대상이 아닌 협력할 대상으로 여겼다.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해도 그게 태평문을 지울 이유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북미와 유럽에 상당한 전력이 주둔하고 있는 리그 전력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동아시아까지 전력을 옮겨 왔다?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결정적으로 중국 소속 초인인 남궁기는 왜 그곳에 있었을까?
그러던 중, 조사를 하던 중국에서 알음알음 태평문의 멸문 이유에 대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헤드 브레이커가 태평문을 멸문시키고 중국 초인을 죽였다!
갑자기 사람들의 시선이 한국으로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누구도 믿지 않았으나, 태평문의 멸문이 벌어진 상황을 대입해 보면서 조금씩 그럴 듯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소수 정예로 그만한 혈겁을 일으키려면 십대초인급 초인이어야 한다는 점과.
다수를 상대하는데 효과적인 기프트를 가져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동안 마물 사냥에 앞장서던 것과 달리 현재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도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의심을 자아냈다.
마지막으로 중국 남부 섬에서 최준호와 닮은 남자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전체 모습이 담긴 건 아니지만 얼핏 보면 닮아 있어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 것이다.
의혹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음에도 최준호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대한 인터넷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와! 갑자기 어디 갔나 했더니 태평문을 혼자 박살내고 있던 거였어? ㄷㄷㄷ
-미쳤다, 태평문이면 동아시아 최대 조직인데. 초인이 둘이나 있고 각성자도 전투 경험이 풍부해서 절대 만만한 조직이 아님.
-걸어다니는 전략무기다, 진짜. 터지면 다 죽는 거야.
-근데 왜 태평문을 멸문시킨 거지? 접점이 아예 없지 않나.
-들리는 말로 중국이 태평문에 사주해서 부산 공격한다는 말이 있었음. 최준호가 선빵 갈긴 거고.
-진짜냐? 레알 미쳤네.
-안 그래도 마물 대응으로 전력 긁어가서 텅텅 비었는데 공격받았으면, 와! 진짜 미친 놈들이네.
-그래서 남궁기가 저기 가 있던 건가?
-잔머리 굴리다가 초인 전력 하나 잃은 거네? 쌤통이다 ㅋㅋ
-중국은 초인이 귀한 게 지킬 곳은 많고 초인이 감당할 전선은 개넓음 ㅋㅋ 내가 중국 초인이면 진즉에 도망갔을 걸.
-근데 저 정도 규모 조직을 최준호 혼자서 몰살시키는 게 말이 돼?
-진짜, 저 정도는 리그 삼악이라고 해도 감당 못할 거 같은데.
-ㄹㅇ;;
-크크, 여기 최준호 그놈의 힘을 모르는 녀석들 천지로군. 녀석에게 저 정도 규모 조직을 몰살시키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숨어있는 걸 찾아내는 걸 귀찮아하지, 모여 있으면 오히려 감사 인사를 했을 테지. 녀석의 잔악함을 말할 것 같으면…….
처음에는 의심하던 이들도 태평문의 규모를 보고 이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정말 최준호가 태평문을 멸문시킨 걸까?
초인이 둘이나 있고, 실전에 단련된 각성자가 수백 명인데?
여러 생각에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최준호가 신성그룹 신제품 런칭 행사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 * *
사방에서 난리다.
태평문이 이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 곳인지 미처 모르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그냥 중국에 있는 큰 빌런 조직 정도로 알던데.
이렇게 반응할 일인가?
이런 내 의아함을 이세희가 풀어 주었다.
“중국이 난리 쳐서 그래요. 다른 초인도 아닌 남궁기라서 그렇거든요. 초인으로서 평가는 별로지만 남부 지방의 큰 파벌을 이끄는 실세에요.”
중국은 워낙 거대한 대륙이라 지방 곳곳이 유력자의 영역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궁기는 초인임과 동시에 남부의 실세로 인정받는단다.
그런 녀석이 태평문과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거로군.
이세희는 중국 측에서 태평문 멸문 소식을 조용히 해결하려 했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은 하나로 똘똘 뭉친 세력이 아니다. 저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며, 이번에 내 이름을 언급한 쪽은 나를 연관시켜 이득을 취하려는 부류 같다고 밝혔다.
“…….”
음, 그런데.
이세희는 왜 내가 태평문을 멸문시킨 거라고 확신하는 거 같지?
대외적으로 나는 태평문 멸문에 대해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았다.
즉, 내가 멸문시킨 게 아니란 이야기다.
조사하는 쪽에서 정보를 얻으려고 해도 말소자 때처럼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교란 기류를 살포해 두는 건 기본 중 기본이니까.
어째 확신을 하고 있는 거 같지만 모르는 척 넘어가자.
“아마 기자들이 끈질기게 달라붙을 거예요.”
내 대답 하나가 기사로서 가치가 크기 때문이란다.
“불편하시면 마주치지 않으셔도 돼요. 사람을 동원하면 되니까…….”
“굳이 그럴 이유가 있나?”
내가 뭐 잘못한 것도 아니고.
빌런을 죽였기에 난 떳떳했다.
죽일 놈 죽인 거 가지고 유난 떨기는.
사실을 밝히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된다. 결정적으로 증거가 없다.
“피하면 더 귀찮아질 거야. 차라리 한 자리에 모아 줘. 한 번에 해결하자.”
“네.”
잠시 후, 행사장에 도착한 나는 갑작스러운 기자회견을 열게 되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지만 외국어로 얘기하는 기자들도 많았다.
태평문 멸문 소식에 이렇게 관심들이 많을 줄 몰랐군.
“현재 플러스 단계 마물의 위협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모두 훌륭한 분들이시기에 큰 어려움 없이 사냥할 거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무난한 질문으로 시작이 되었다.
그러다 질문권을 얻은 기자가 중국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한국말로 다시길 바랍니다.”
“…….”
“못하면 다음 분.”
질문한 기자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다음 질문을 받았다.
기회를 상실한 기자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지만 조금도 불쌍하지 않았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어로 말해야지.
그렇게 여러 번 순번이 돌고, 이번에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중국 기자가 질문을 했다.
“최준호 초인! 이번 태평문 멸문 사태가 본인과 관련이 있습니까?”
난 의아함이 담긴 시선으로 기자를 보며 말했다.
“있다면 어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