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주변 분위기가 술렁인다.
누가 보면 못할 말이라도 한 거 같군.
옆에서 이세희가 놀란 표정으로 보고 있지만 난 개의치 않고 말을 했던 기자를 바라보았다.
중국 기자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자기들을 모욕이라도 한 것처럼 날 노려봤다.
그러면 어쩔 건데? 어쩔 수나 있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관련 있다면 어쩔 겁니까?”
태평문은 중국을 괴롭힌 조직 아니던가.
내게 질문했던 중국 기자가 분노한 표정으로 외쳤다.
“당연히 사과해야 합니다!”
“왜요?”
“그야 중국 영토에 무단으로 침입하지 않았습니까!”
“대신 태평문이 사라졌는데? 오히려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중화의 자랑스러운 초인 남궁기 대협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건 내가 모르는 일이고요.”
좋은 건 내가 한 거고, 안 좋은 건 내가 안 한 거고.
그게 불만이면 어쩔 건데.
“태평문을 내가 멸문시킨 거면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닌지.”
“…….”
침묵이 맴돌았다.
중국 기자들은 씨근덕거리고 있었고, 한국 기자들은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볼 거 다 봤군.
이제 수습해야겠다.
“농담입니다.”
“그게 무슨…….”
“태평문의 멸문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란 뜻입니다.”
“그럼 방금 전 말은 뭐란 말입니까!”
“중국을 괴롭혀 온 최대 빌런 조직을 없애 준 걸 오히려 취조하듯 물어봐서 장난 좀 친 겁니다.”
난 유감을 담아 어깨를 으쓱여 줬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태평문을 멸문시킨 건 내가 아닙니다.”
“…….”
벙 찐 중국 기자들에게 말을 추가했다.
“보아하니 창천검제께서 큰 결심을 하고 태평문을 토벌한 거 같은데, 그 의기에 존경을 보내는 바입니다. 중국은 큰 별을 잃어 애석하겠으나 태평문이 사라져서 많은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날 위해 아낌없이 퍼 준 나무에게 하는 칭찬인데 못 할 게 또 뭔가.
기사로 내가 제일 존경하는 초인이니 뭐니 하겠지만 상관없다. 죽은 사람을 위해 이 정도쯤이야.
“…….”
중국 기자는 뭐라 더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되겠지.
어차피 내가 했다는 증거도 없으면서 심증만으로 몰아붙인 거였다.
난 중국 기자들을 일별하고 다른 기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더 질문 있으신 분?”
“초인님! 현재 플러스 단계 마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사냥 성과가 지지부진한 대형길드에 조언해 주실 말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말에 대꾸해 주고는 이세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옆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감탄 섞인 눈으로 보는 이세희였다.
“하고 싶은 말 있어?”
“준호 씨가 이렇게 달변이었나 싶어서요.”
“내가 안 했으니 안 했다고 하는 거야.”
“네네, 그러시겠죠.”
전혀 믿는 기색이 아닌데?
“진짜라니까?”
“그런 걸로 해 둘게요.”
“…그래.”
사실 내가 저지른 게 맞는 거니까.
이런 걸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하던가.
* * *
‘와, 초인님은 이제 말씀도 잘하시네.’
고예진은 안으로 들어가는 최준호의 뒷모습을 쫓으며 감탄을 터뜨렸다.
특히 중국 기자의 입을 닫히게 만들었던 언변은 수십 가지 자극적인 타이틀이 생각나게 만들었다.
한 번 필터링을 거쳤지만 어느새 기사를 쓰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기자들이 수군거렸다.
“최준호가 한 거 같지?”
“그러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지 않나? 게다가 태평문이랑 남궁기도 껴 있고.”
“겉으로 보이는 걸로 판단하면 안 돼. 현장에서 최준호는 이미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고 있어. 며칠 연락이 안 된 걸 보면 가능성이 높아.”
“누가 청와대에 끈 없나? 거기만 닿으면 될 거 같은데.”
“없어. 최준호 적대한다고 빨대 다 끊어 버렸잖아.”
“그런다고 끊기는 거였어?”
“최준호에 대한 정보 유출하면 최준호한테 알린다고 하는데 누가 버티겠냐?”
기자들 40%는 최준호가 저지른 거라 생각, 30%는 긴가민가, 30%는 그래도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러 갈래로 나뉘는 생각 중에 한 가지는 분명했다.
최준호라면 일을 저지르고도 남을 거라고.
고예진의 생각도 동일했다.
‘…최준호 초인님이라면 저지르고도 남겠지.’
남들보다 최준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그녀는 최준호가 세계 최강 초인이라고 확신했다. 또한 남다른 행보를 보여도 그게 결국 옳았다는 걸 증명한 것도 안다.
‘근데 저질렀으면 어쩔 건데?’
중국 기자들은 증거도 없이 몰이를 하고 있었다. 마치 범인을 취조하는 듯해서 욱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자신도 자극적인 기사를 쓰지만 이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내가 할 일이 이거지.’
최준호 개인은 강하다. 하지만 주변이 받쳐 주지 못하면 세상이 그를 빌런으로 만들 수 있다.
이미 그런 시도가 있지 않던가.
최준호가 초인 취임 첫날, 오창문의 팔다리를 꺾어 버리면서 그에 대해 악감정을 갖는 기자는 아직 많았다.
진세정이 했던 말을 고예진은 잊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이 최준호를 인정하고 그를 사회에서 품어 주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다행히 최준호는 다수에게 먹히는 아주아주 잘생긴 외모를 하고 있었다.
“그거 아니면 무서워서 어떻게 따라다니겠어.”
고예진이 히죽 웃었다.
* * *
출장을 다녀오니 1조 5천억이 생겼다.
내가 받은 마물의 심장 평가액이다.
본래 플러스 단계가 아니라 좀 더 낮을 수 있으나 이세희는 해양 마물 특성상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거의 없다며 프리미엄을 쳐 줬다.
나야 돈 더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막판에 국가과학마물연구소에서 매입 의사를 밝혀 왔지만 돈 싸움에서 신성그룹을 이기지 못했다.
연구소장은 섭섭함을 드러냈지만 어쩌겠나, 내가 국가과학마물연구소를 챙겨 줄 이유가 없는 걸.
다음에 얻으면 우선적으로 고려해 보겠다는 말로 달래 줬다.
그러던 중 아스가르드 길드에서 플러스 단계 마물 사냥 성공 소식을 알려 왔다.
무려 일주일에 거친 사냥이었다. 사신 길드도 마무리 중이라고 하니 곧 결과가 나올 것이다.
청와대에 방문했을 때 전해진 소식이라 대통령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제야 한시름 놨군.”
“하지만 피해가 큽니다.”
“어느 정도지?”
“12명이 죽고 20명이 중상, 31명이 경상을 입었습니다. 사신 길드는 더 심각합니다.”
“류광호 초인이 말년에 고생이 많군. 역시 추가 전력 투입을 강하게 권유했어야 했나.”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내가 도움을 주길 바라는 건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필요하다면 나서겠습니다.”
“고맙네. 사신 길드에 한번 물어보도록 하지. 천 실장, 지금 가장 큰 문제점은 뭔가?”
“마물의 방어를 꿰뚫을 공격력의 부재입니다.”
천명국은 무기 공격력 향상이 동반되어야 더 강해질 마물 사냥이 수월해질 수 있을 거라 밝혔다.
이건 나도 동감한다. 마물은 등급이 높아질수록 강력한 포스 방어막을 두르는데, 이걸 부술 수 있는 건 초인들이다. 그마저도 초인들의 포스량에 한계가 있어 무한정 포스를 퍼부어 방어막을 뚫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어려운 문제로군. 국과연에서도 난색을 표하고 있고.”
“하지만 이뤄 내야 하는 과제입니다. 최준호 초인님이라면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나? 뭘 안다는 거지?
대통령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결국 중요한 건 공격력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공격력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예전 사냥 방식을 고수하니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방어력을 늘리는 건 한계가 존재한다. 인간의 육체는 마물과 비교하면 연약하기 그지없어 최대한 마물의 공격에 버텨 내는 걸 목표로 하고, 나머지는 공격력에 집중해야 한다.
나야 강력한 기프트가 있어서 수월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결했더라?
머리를 굴리자 한구석에 잠들어 있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방법이 있네요.”
“어떤 건가?”
“기프트와 관련된 겁니다.”
플러스 단계 마물 등장 이후, 사냥 방식은 철저한 공격력 증가로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면을 타격하는 둔기보다 점을 찌르고 선을 가라는 칼 종류가 선호받기 시작했다. 마물의 방어막을 돌파하기 더 좋아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출력의 상승이 아니라 기프트의 모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무작정 출력을 높이다가 무기 내구력이 낮아지면서 대안으로 기프트 흉내를 낸 거지.
잘하면 이것도 큰 사업이 될 것 같은데?
대략적인 내 구상에 대통령이 감탄한 표정을 짓는다.
“기프트 모방이라, 천 실장이 보기에 어떤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초인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생각해 볼 때 마물 사냥에 특화 된 기프트가 있다면 그걸 흉내 낼 수만 있어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좋군. 투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든 준비해 줄 수 있네.”
대통령이 내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말만 꺼낸 것뿐인데?
늘 말리던 포지션의 천명국조차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표하고 있었다.
“사실 이번 건도 그렇고, 신성그룹과 가까운 걸 말리지 않지만 국가에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어.”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국가와 최준호가 강하게 결속될수록 서로 안심할 수 있을 테니까.”
“…….”
“자네의 행동은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침범할 때가 많아. 그럴 때 커버해 줄 수 있는 건 길드보다 국가가 더 유리하지. 국가는 최준호 초인이란 존재를 적극 케어해야 하지만 자네에게 주어지는 의무는 기존과 동일하지. 우리를 이용한다고 생각하게. 그럼 이용할 게 꽤 많이 보일 거야.”
이렇게 생각해 줄 줄 몰랐군. 아마 이게 진세정이 말했던 내 몸값이라는 건가.
이번 사냥으로 내 몸값이 더 상승했나 보다.
“준비해서 갖고 오겠습니다.”
“기대하겠네. 아, 그리고.”
대통령의 말에 내가 멈칫했다. 할 말이 따로 있나?
“태평문을 멸문시킨 건 절대 인정하지 말게.”
“알겠습니다.”
* * *
높은 위치에 올라간 사람은 본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는 용인술도 중요한 법이다.
지금 난 그걸 체감하는 중이다.
내 앞에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는 제임스 리드가 서 있었다.
“완성하느라 졸라 힘들었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제임스 리드는 그간의 자료를 토대로 절단 부위를 붙여 주는 회복제를 완성했다.
신성그룹에서 대부분 진행해 놓았지만 마무리를 지은 건 제임스 리드의 능력이었다.
역시 졸라맨, 능력은 있군.
“대신 약점이 있어.”
제임스 리드가 말하길, 포션은 신체부위를 붙여 주기만 할 뿐 안쪽 상처가 아무는 건 아니란다.
그러니까 겉만 붙여 준다는 거지?
딱 내가 바란 효과다.
다만 완성한 당사자는 마음에 차지 않나 보다.
“이게 상업성이 있을까?”
워낙 외과 수술이 발달하기도 하고, 각성자의 세포는 포스 활성화로 신체 부위가 잘린 지 오래 되어도 붙이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원한 건 그 자리에서 붙이는 것이다.
완성품은 그 기능에 충실했다.
“빨리 붙여 놓으면 좋잖아.”
“…….”
제임스 리드가 황당함이 담긴 시선으로 날 바라봤다.
그런 시선을 보내도 난 아무래도 좋았다. 이것만 있다면 잘라 놓아도 붙여 놓기만 하면 감쪽같아질 테니까.
형태조차 남기지 못하는 칼날폭풍은 좀 자제해야겠다.
기왕이면 잘린 자국도 말끔하게 지울 수 있으면 좋겠는데.
“효과는 어떻게 확인한 거야?”
직접 잘라서 붙여 본 건가?
그러기에는 제임스 리드는 멀쩡해 보였다.
“실험용 동물로 해 봤어!”
아, 그게 있었군.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다.
“왜 내 목을 봐?”
“그냥. 일단 동물까지는 확실하다는 거지?”
“응. 인간한테는 아직 기회가 없어서. 그래도 확실할 거야! 나 못 믿어?”
그럼 널 믿겠냐.
물론 머리 좋은 건 인정한다.
“준비된 거 줘 봐.”
나는 제임스 리드에게 약을 받아 들었다. 빌런을 상대하다보면 쓸 일이 생기겠지.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나올 무렵이었다.
난 의식 너머로 슬금슬금 침범해 오는 녀석의 존재를 깨닫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미친 기프트가 또…….”
근데 만득이가 아니네?
신입의 환영 행사를 열어 줘야겠군.
* * *
혜광심어는 며칠 동안 조용히 눈치를 살폈다.
주인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래서 상황을 살피며 자신의 의지를 전달할 시기를 가늠했다.
오랜 관찰 끝에 주인은 이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딘가 심각하게 뒤틀린 상태가 유지된 채 폭주하고 있다.
인내하고 지켜보는 것도 미덕이지만 더 늦으면 큰일 날 수 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혜광심어는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힘들다.
그래서 혜광심어는 같은 공간을 쓰는 동료에게 도움을 청했다.
함께 주인을 바로잡자고.
그것이 주인을 보좌하는 우리의 역할이라고.
그런 혜광심어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비웃음이었다. 그 속에서 절망과 분노, 자조를 느꼈다.
냉정한 거절에 혜광심어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동료가 돕지 않는다면 혼자라도 할 것이다.
비록 가능성이 높지 않더라도 주인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는가.
주인이라면 자신의 진심을 알아 줄 것이다.
그렇게 굳은 각오로 혜광심어는 주인의 정신세계로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