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유부남에게 최고의 선물은 부인이 친정에 가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처음에 그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었다. 유부남인 버서커에게 천명국을 꼬드길 방법에 대해 물어보고 얻어 낸 대답이 저거였으니까.
난 진짜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버서커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 말대로 해 봐라. 내 말이 틀리면 날 쳐도 좋다.’
…태도가 재수 없어서 결과와 상관없이 한 대 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 완고하던 천명국이 고민은 짧고 결정은 신속하게 내렸다.
평소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유부남을 설득할 수 있는 만능 키워드다.]버서커 녀석, 얕볼 수 없군. 그래도 한 건 했으니 살살 쳐 줘야겠다.
아무튼 천명국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다음 날, 나는 곧바로 천명국의 기프트 탐색을 하기로 결정했다.
“살살, 살살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누가 보면 내가 잡아먹는 줄 알겠다. 내가 그렇게 믿음을 주지 못했나? 그냥 심장 옆에 작은 구멍 하나 뚫는 것뿐이다. 회복제를 사용하면 흉터도 거의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상처 자국만 남는다.
그때 옆에서 다소 어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나는 이러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목소리의 주인공은 대통령이었다. 그의 손에는 회복제가 들려 있었다.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습니다.”
“그건 그러네만, 이런 걸 해 본 적이 없어서 어색하군.”
“잘하실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네, 천 실장. 너무 겁먹지 말고.”
“…예, 예에.”
천명국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니, 심장 근처에 손가락 마디 하나만 넣는 게 뭐가 무섭다고 저러는 거지?
기프트 복사할 때는 심장을 조물딱해야 한다고 하면 기절하겠군.
“제가 손가락을 뽑을 때 뿌려 주시면 됩니다.”
“알겠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
“말씀하시죠.”
“심장 옆에 구멍을 뚫는 건데 마취를 하면 되지 않나?”
“…아!”
“…….”
잠깐 침묵이 맴돌았다.
대통령은 호기심 어린 표정이었고, 천명국은 몰랐던 사실을 깨달은 표정이었다.
나?
당연히 몰랐다. 내 몸에 구멍 나는 게 아니라서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이 옳겠지.
그리고 겨우 이 정도 고통으로?
각성자라면 몸에 구멍 몇 개는 뚫리고 다니는 건 예사다.
천명국도 그 정도는 감수하겠지.
“준비하려면 오래 걸리니 그대로 가죠.”
“자, 잠깐! 그래도 마취를… 헉!”
난 시간을 길게 끌 것 없이 천명국의 가슴에 손가락을 꽂아 넣었다.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촉촉하면서 진한 감촉은 건강한 피라는 증거다. 매일 스트레스를 호소하면서 건강은 멀쩡하구만.
난 미소 지으며 손가락이 충분히 적셔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뽑아 들었다.
“천 실장! 걱정 말게! 제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허둥지둥 회복제를 사용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피를 입으로 가져다 댔다.
천명국이 평생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것이 여기에서 드러났다.
잠재된 기프트가 꽤 많았다.
한 분야에 성과를 향상시켜 주는 ‘일로정진’과 짧은 순간 정보를 조합하고 바로 뒤 상황을 볼 수 있는 ‘예측’, 풍부한 포스량으로 전투력을 지속시킬 수 있는 ‘연투’ 등이 눈에 띄었다.
전부 개방하기 쉽지 않은 기프트다. 세 가지 모두 전투상황에서 빛을 보는 것들이고.
지금은 현장에서 활약하지 않는 천명국에게는 모두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그러다 마지막에 눈에 띈 기프트가 있었다.
“시뮬레이션.”
예측보다 더 상위 기프트이면서 풍부한 공부량과 실전 경험, 실무적인 요소를 파악하지 않으면 발현되기 힘든 기프트다. 예지에 가깝지만 이건 사실 요소를 기반으로 만들어 내니 적중률은 더 높을 거다.
등급으로 따지면 유니크 기프트?
대신 전투 기프트가 아니고, 방대한 정보를 다루다 보니 반동이 만만치 않은 걸로 알려져 있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으로 눈살을 찌푸리던 천명국은 내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이 되었다.
“방금 하신 말씀은…….”
“잠재된 여러 기프트가 있었습니다.”
일로정진과 예측, 연투를 이야기하고 마지막에 시뮬레이션이 언급되자 크게 뜨인 눈이 더 커진다.
자신에게 이렇게 많은 기프트가 있을 줄 몰랐나 보다.
천명국의 선택도 시뮬레이션이었다.
“…시뮬레이션이라, 현재 제게 적합한 기프트인 거 같습니다.”
옆에 있던 대통령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필요한 기프트를 발견해 냈군,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그럼 우리 천 실장이 기프트를 개방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더 열심히 일하면 됩니다.”
“예?”
“응?”
둘이 동시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보면 내가 틀린 말이라도 한 줄 알겠다.
근데 이게 당연한 거 아닌가.
“기프트는 비슷한 상황과 맞물릴 때 자극을 받습니다. 그러니 시뮬레이션이 깨어날 수 있도록 상황과 맞는 업무가 주어지면 됩니다.”
까놓고 말해 그냥 굴리라는 이야기였다.
지금보다 더더욱 강도 높게.
이 말이 의미를 모를 두 사람이 아니었다.
자연히 표정이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자, 잠깐…….”
천명국은 왜 배신당한 표정으로 날 보는 거지?
아, 맞다.
사모님이 친정 가기로 했지.
그럼 혼자 있게 될 테니 외롭지 않을까.
일과 함께라면 덜 외롭겠지.
외로움을 떨쳐 내는 건 산더미 같은 일과 지옥 같은 훈련이니까.
버서커가 유부남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어쩌고 했던 거 같은데 난 유부남이 아니라 모르겠다.
이런 내 말을 대통령이 냉큼 받았다.
“알겠네! 내가 천 실장을 위해 기꺼이 악덕 상사가 되어 보겠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통령에게 떠넘기기 스킬을 발휘한 나는 후퇴를 선택했다.
나머지는 알아서 해 주겠지.
“그럼 전 이만.”
“이 악마야! 빌런! 헤드 브레이커! 버서커 같은 인간!”
…선 넘네? 내가 그 정도로 심한 행동을 한 건가.
나는 절규하는 천명국을 버려두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뮬레이션 이 기프트.
왠지 천명국이 날 몰아내던 대타협의 큰 그림과 일치하는 면이 있는 듯한데.
저번 생에서 뒤늦게 기프트를 각성해서 나한테 사용한 거 아니겠지?
에이, 설마.
괜히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 * *
며칠 후, 내 앞에 류광철에 대한 두 종류 서류가 놓여 있었다.
미국에서 온 것과 정부에서 내어 준 류광철에 대한 정보였다. 나는 두 내용을 대조해 보았다.
“전체적으로 비슷하네.”
류광철은 올해 62세의 나이로, 북한 정권이 건재하던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오던 남자다.
뼛속까지 선민의식으로 가득 차 있으며 자신을 인민의 지도자라 칭하고 있단다.
미국에서 파악하기로 자신만의 왕국을 건국했다고 믿고 있으며, 어느 국가에 기울어진 관계를 절대 원하지 않는다고 밝혀져 있다.
이명은 테이머로 붙였으나 기프트는 그것보다 좀 더 약한 걸로 판단, 류광철의 영역으로 들어가려면 마물의 장막을 지나쳐야 하기에 공략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기프트도 만능은 아닌데, 마물을 조종함에 있어 상당한 제약이 예상된다고 적혀 있었다.
실력이 늘었다면 기프트 효용도도 높아졌을 거라고.
외부 활동을 하지 않기에 그 이상 정보 파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보원들의 이야기였다.
그 뒤로 류광철이 벌인 각종 행각에 나열되어 있었다.
살아남은 주민들을 강제로 납치하고, 강제 노역에, 강제 실험, 반항하는 주민들은 마물의 먹이로 내던지는 행위까지.
읽고 난 소감은 간단했다.
“죽여도 싼 놈이네.”
아니, 이건 빌런 중 빌런인데?
순간 난 반성했다.
혈종이 최악인 줄 알았는데 이 녀석도 다른 의미로 최악이었다.
무턱대고 죽이면 류광호가 앙심을 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서류에 적힌 내용이 사실이라면 눈앞에서 쳐 죽여도 문제가 생길 건 없겠군.
근데 저번 생에서 왜 류광철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을까.
혈종일 때 북쪽으로 가서 압록강을 넘었으니 류광철과 영역이 겹쳤을 텐데.
그 말은 가만 두면 변고가 일어난다는 건데.
이번 생에서 내가 일으킨 변화가 워낙 커서 그대로 진행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게다가 류광철이 보유한 기프트가 내가 생각한 형태와 다른 듯했다.
“마물과 의사소통은 별론데.”
마물을 내 마음대로 부리고 싶은 거지, 마물과 의사소통하고 싶다고 했나.
살아 있어 봤자 백해무익한 마물은 뜻대로 복종하지 않을 거면 죽어서 뼈와 가죽, 심장을 남겨 주는 게 최선이다.
가장 좋은 건 브레인워싱 숙달을 통해 복종하게 만드는 건데, 마물의 의식에 심어져 있는 인간에 대한 적대감이 그걸 어렵게 만들었다.
그 사이비 교주 녀석이 언제 자리 잡더라? 지금이라도 찾아서 노하우를 싹 빼 가면 좋을 듯한데 자리 잡지를 않았을 테니 찾는 것도 어렵겠지.
조만간 사람 좀 풀어 봐야겠다.
남궁기한테 뺏은 고독을 사용해볼까 싶어 요즘 부지런히 포스를 먹여 주고 있었다.
생각 난 김에 난 품속에서 갈색 환약을 꺼내 들었다. 복귀 후 틈틈이 포스를 주입했는데, 그때마다 맛있게 받아먹으면서 성장하고 있었다.
지금도 포스를 흘려 넣으니 좋다고 처먹는다.
“한번 써먹어 봐야겠다.”
안 그러면 존재할 가치가 없는 녀석이니까.
“밥값 좀 하자.”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안에서 꿈틀거린다.
포스나 더 내놓으라는 의미였다.
이 녀석,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군.
“그래, 어디 원하는 만큼 처먹어라.”
이런 게 투자라는 건가.
저점 투자라는 게 이런 거겠지?
미래에 대박 날지도 모르니 한 번 속아 주지.
* * *
이런 와중에 예상하지 못한 일도 벌어졌다.
정다현이 국가수호국을 떠나 국가전선방위청으로 옮긴 것이다.
난 계속 빌런전담반을 맡을 줄 알았다.
국가수호국에 있을 때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고, 삼촌인 정주호와 얽히는 걸 상당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서.
모두 내 착각이었군.
“소속을 옮길 줄 몰랐어.”
“아무래도 국가수호국은 마물보다 빌런을 상대하는데 특화되어 있거든요. 주변에 피해를 끼치느니 빠르게 행동하는 게 나아 보여서요.”
“맞는 말이네.”
다만 대마물방위전선국 같은 마물 상대 특화 부서가 아닌 국가전선방위청이라는 점이 특이한 부분이었다.
물론 이곳이 삼국을 총괄하니 움직임의 폭이 넓어 더 좋은 선택이긴 하다,
다만 정다현 입장에서 말이 나올 수 있어서 문제지.
“정 청장님 때문에 옮긴 거지?”
“네, 맞아요.”
“보통 이렇게 옮기는 걸 안 좋아하지 않았나?”
“뭐 어때요.”
응? 내가 아는 정다현의 반응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트집을 잡힐까 싶어 사리는 모습을 보이고는 했는데.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니 정다현이 미소 지었다.
“저도 예전에는 신경을 썼는데요, 훈련에 집중하려니 그런 부분에 신경 쓰는 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깊게 고민하는 걸 포기하기로 했어요.”
“그래?”
“네. 효율적인 방법이 눈앞에 보이는데 제 자존심과 체면, 주변의 시선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죠.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내게 도움이 되는 건가? 꼬박 사흘 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아니다’였어요.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어요. 뻔뻔해지자. 남들이 어떻게 보던 내가 원하는 걸 갖고 난 뒤 생각해 보자, 이렇게요.”
“좋은 생각이야.”
사소한 생각의 변화였지만 생각의 폭이 넓어짐으로써 더 많은 방향으로 가능성을 열어 두게 되었다.
정다현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국가전선방위청은 마물을 사냥하면서 빌런도 잡을 수 있거든요. 청장님은 제게 더 많은 역할을 맡겨 주실 수 있고요.”
“맞는 말이네.”
정주호 그 양반이 머리가 줄어들 뿐이지, 부하들에게는 많은 걸 믿고 맡긴다.
정다현 정도 되는 인재가 자발적으로 오니 당연히 환영할 테지.
다만 팀장 하나가 부서를 옮겼으니 국가수호국은 상당한 출혈을 일으킨 셈이다.
나도 요즘 국가수호국으로 거의 발걸음을 하지 않고 있고, 전화 업무를 맡은 오종수도 조만간 최준호 팀이 있는 사무실로 옮기기로 얘기가 되었다.
“곧 북진에 관한 내용이 나올 거야.”
“네.”
“북쪽은 평야지대에도 마물이 많지. 사냥 기회가 많이 주어질 거야.”
현재 대한민국 영토는 산지를 제외한 곳은 마물이 제어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북한은 수십 년 동안 방치가 되어 영토 전체가 마물 소굴이라 봐도 무방했다.
겁을 먹을 수 있는 말에 정다현의 눈이 오히려 반짝였다.
“기대하고 있어요.”
“기대해도 좋아.”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바로 목이 날아갈 사냥이 시작될 테니까.
마물을 상대로 하는 정다현이 얼마나 성장할지 기대가 되었다.
* * *
정부는 북진을 위한 거점으로 개성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연백 평야 바로 동쪽에 위치한 곳이며, 교통이 발달하여 북진을 책임진 당사자가 유연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방어에 적합한 지형이 아니란 단점이 있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 방어 체계를 구축하면서 현 대한민국이 점유한 영토 중 가장 유용한 최북단 거점이자 요새였다.
북진 정책의 첫 목표는 연백 평야를 손에 넣는 것이고, 나아가 재령 평야와 평양 평야를 손에 넣는 것이 전략적 목표다.
북한의 3대 평야라 불리는 이곳을 안정화 시킬 수 있다면 식량 생산의 증대를 노려볼 수 있고, 북한 곳곳에 흩어진 사람들을 결집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평양의 경우 현재 마물의 집결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숫자의 마물이 모여 있었다.
“마물이 많기에 류광철의 거점일 확률이 높습니다.”
정부는 이곳 평양에 류광철이 자기 영지를 구축했을 거라 추측하는 중이다.
가장 알짜배기 땅을 꿀꺽했군.
정부에서는 이 세 평야를 차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선언하고 여러 대기업과 대형길드와 접촉하는 중이다.
한 차례 리그 파동이 휩쓸고 지나간 대기업에서는 새로운 투자처를 확보하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준비했고, 대형길드에서도 이권 확보를 하기 위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차곡차곡 북쪽에 전력을 증강할 때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손님이 개성에 방문, 서울로 향했다.
그들은 자신을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상’이라 칭했다.
청와대 반응은 격렬했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로군.”
“북진을 예측하고 먼저 움직인 거 같습니다.”
“우리를 살피러 온 건가?”
“예. 아마 허장성세를 통해 착각을 유도하고 협박을 해 올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봤자 약소한 세력에 불과하지. 예전이라면 그 전력도 혹했겠지만 지금은 아니거든.”
그러면서 대통령이 내 얼굴을 본다. 뭐 묻었나.
“확실한 보험이 있으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이젠 보험 취급도 받아본다. 옆에서 동조하는 천명국이 오늘따라 얄미워 보이는군.
“우선 북한 측이 무슨 말을 할지 들어 보세.”
“예.”
북한 측 일행이 청와대에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뭐 가진 것도 쥐뿔 없으면서 들어오면서 위풍당당한 자세를 유지한다.
선두에 선 것은 뼈대에 가죽을 뒤집어 씌워놓은 인상의 마른 남자였다. 두 눈은 날카로웠고 기세는 잘 정돈되어 있었다.
마물 소굴에서 살아남은 가락이 있다는 건가.
대통령이 앞으로 나서서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난 대한민국의 대통령 전한철입니다.”
“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무상 리유철입니다.”
외무상이라는데 실력은 상당한데?
이쪽에서 평가하는 걸 보면 레벨 7 정도로 평가할 수 있겠다.
처음 대화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리유철은 서로 원하는 걸 주고받아 관계를 개선해 나가자고 말했고, 대통령도 이에 호응했다.
북한에서 내놓을 수 있는 건 마물의 심장과 부산물이었다. 대신 식량과 각성자의 장비 등을 원했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요구하길, 준비하고 있는 북진을 멈추라 요청했다.
이에 대통령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차지하지 못한 영토를 손에 넣을 것입니다.”
“그 영토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요청한 우리 영토입니다.”
“당장 손에 넣지 못하는 걸 억지로 주장할 겁니까?”
“지금 그 말은 우리 영토를 탐내고 있다는 말로 들어야 합니까?”
“…….”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처음부터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던 자리였다.
대통령은 자신들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세력 후예를 자처하는 류광철의 생각을 가늠해 보려 한 걸 테고, 리유철은 우리가 어디까지 원하는지 파악해 보려 했을 것이다.
결과는 생각의 차이만 드러났다.
대통령이나 리유철이나 누구도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우리를 막을 힘이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만.”
“있다.”
생각처럼 말도 짧아지기 시작했다.
리유철은 단호한 표정으로 대통령에게 선언했다.
“남조선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우리 공화국의 영토에 발을 들이면 개성은 물론 서울까지도 백만 마물에 짓밟힐 수 있는 걸 알아야 한다.”
식량과 무기를 구걸하러 온 주제에 단어 선정이 거창하군.
난 그 개소리를 듣다가 한마디했다.
“네 머리통에 불벼락이 떨어져 조각조각 해체될 건 생각하지 않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