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뭣이?”
리유철의 눈이 세모꼴로 변했다. 마른 송장 같은 놈이 변화무쌍하군.
곧 송장될 녀석이라 상관없나.
“하여간에 처맞지 않으니 제정신을 못 차리지.”
북한에는 내 이름이 안 알려졌나?
하긴, 언제 이름이 알려지고 아니고를 따지면서 손을 썼다고.
난 망설일 것 없이 손을 뻗었다.
“헉!”
진짜 공격할 줄 몰랐는지 녀석이 기겁하며 뒤로 벌러덩 누웠다.
난 개의치 않고 발에 기뢰를 실어 녀석이 있던 곳을 찼다.
쾅!
하지만 옆으로 데굴데굴 구른 녀석이 가까스로 피하는데 성공했다.
이 녀석이 외무상이라고? 외무상은 외교를 담당하는 거 아닌가.
역시 내가 본 게 정확했다. 이 녀석 제법 쓸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게 딱히 유의미한 건 아니라서.
피하는 것도 처음에나 운이 따랐지, 두어 번 공격 후에 궁지에 몰렸다.
내 발에 실린 기뢰에 적중당한 녀석의 팔이 꺾였다.
우드득!
“끄으으!”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눈을 빛내며 내게 손을 뻗었다. 방심해서 한 방 먹어 주는 건 너무 흔한 클리셰다. 가볍게 잡아채서 손목도 부러뜨려줬다.
퍽!
정강이를 걷어차자, 찰지게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에도 전의를 꺾지 않고 덤벼들어서 양 어깨부터 팔, 다리까지 조각조각 내 줬다.
의지는 쓸 만한데 나한테 그 의지를 발휘해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때, 안으로 일단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리유철을 따라왔던 자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리였다.
그들은 팔다리가 접히고 눈을 까뒤집은 리유철을 보며 내게 달려들었다.
“대통령님!”
경호실장이 재빨리 대통령 곁으로 다가오며 리유철 무리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경계했다.
어차피 저 녀석들의 목표는 난데.
저렇게 뭉쳐 있는 걸 보면 참지 못하겠단 말이지.
난 반사적으로 칼날폭풍을 시전했다.
휘몰아치는 포스 블레이드에 놈들이 경악했지만 칼날폭풍에 휩쓸리는 게 더 빨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기등등하던 각성자들이 포스 블레이드 속에 갇혀 갈가리 찢겨 나갔다.
후두둑!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바닥과 벽에 살점과 피가 뿌려졌다.
“…….”
장내는 침묵에 휩싸였다. 대통령은 커진 눈으로 내가 만들어 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주변 경호원들도 두려움과 경외가 담긴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리유철에게 다가갔다.
“야, 일어나.”
“으으으…….”
녀석은 미약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떨었다.
몇 번 걷어차니 간신히 눈을 뜬다.
고레벨 각성자가 쉽게 죽을 리 없지. 인간은 손쉬울 정도로 쉽게 죽기도 하지만 이래도 버텨 내나 싶을 정도로 질긴 생명력을 보이기도 한다.
“이제부터 묻는 거 하나씩 대답해라.”
“내, 내가 왜… 끄아악!”
콰득!
난 덜렁거리는 손을 잡고 마디 하나를 가루로 만들어 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돼. 부술 곳은 많거든.”
치이익!
“으으으!”
회복제를 뿌려 주자 녀석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류광철 개새끼 해 봐.”
“내가 어떻게 감히 그분을… 끄으읍!”
“해 봐.”
콰드득!
난 개의치 않고 마디 하나씩 부쉈다. 리유철이 이를 꽉 물었지만 인간을 어떻게 괴롭히는지 잘 아는 나한테 우스울 뿐이다.
“이래도 안 해?”
꽈지직!
“말 안 해도 되긴 하는데.”
우직!
“이쯤 되면 어디까지 버틸지 궁금하네.”
“…….”
“계속 버텨 봐. 난 상관없거든.”
리유철과 내 시선이 마주쳤다. 고통에 잠식된 녀석의 눈동자가 방황하더니 이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죽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류광철 개새끼.”
“잘했어.”
“제발 죽여 줘.”
“사실 궁금한 건 네 협조가 필요 없어.”
내 손이 녀석의 머리를 뒤덮었다.
* * *
흐릿하게 풀린 리유철은 입에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
장내는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갑자기 여러 일이 벌어져서 그런 건가.
처리할 게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난 경호실장에게 눈짓하며 살아남은 자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녀석들을 가리켰다.
“저놈들 입을 열게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말은 국가를 지칭했지만 결국 조막만 한 땅을 차지하고 왕국 놀이하는 녀석들이다. 이번 기회에 머릿속에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지 탈탈 털어 내는 게 낫다.
리유철이 말할 것과 대조해 보면 대충 윤곽이 나오겠지.
“아, 알겠습니다.”
경호실장이 진압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놈들은 저항 의지가 없는지 순순히 항복했다.
리유철같은 결기는 보여 주지 않는군. 뭔가 아쉽다.
난 입맛을 다시다가 대통령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조금 놀란 거 빼고 괜찮네. 그나저나.”
날 향한 대통령의 눈이 묘했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는 걸 보고 두려움을 느끼거나 경외감을 느끼는 것과 달랐다.
역시 한나라의 대통령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로군.
“왜 사람들이 최준호 초인에게 그 난리인지 알겠어.”
“불편하셨는지?”
“그럴 리가. 이 정도는 웃으면서 넘길 수 있네.”
그렇게 말을 하는 대통령의 팔은 떨리고 있었다.
무리하고 있군.
“저들은 어떻게 할까요? 지금 이 자리에서 정보 뽑아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대통령이 고개를 저었다.
“모든 일에 최준호 초인에 의지해서 쓰나. 회유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유화적으로 처리해 보겠네.”
“알겠습니다.”
나는 뒷일은 대통령에게 맡기기로 한 뒤 주변을 둘러봤다.
피와 살점이 튄 걸 보면 청소하기 힘들겠다.
* * *
그 후 일처리는 일사천리였다.
브레인워싱에 당한 리유철은 자신이 외무상 겸 보위부장 겸 상임위원이라 밝혔다.
지들이 다 해 먹는 구조였던 거다.
레벨 7 각성자가 이렇게 겸직을 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인재풀이 좁다는 의미였다.
사람이 없는 건 확실하군.
“마물 조종이나 류광철에 대한 정보는 거의 얻을 수 없었습니다. 철저한 충성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구조라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쁜 건 기가 막히게 닮는군.”
어느 정도 진정된 대통령이 평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수확이 있다면 이들의 거점은 평양 인근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며, 예전 북한의 인프라 중 무사한 걸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정보 중 하나는 류광철이 술에 취해서 말하길, 자신들 거점을 중심으로 유해 8단계에 해당하는 마물이 열두 마리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걸 자신들은 십이지신(十二支神)이라 칭한단다.
“으음. 많군.”
대통령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천명국은 더 정보를 캐내려고 했지만 리유철이 더 버티지 못하고 죽어 버렸단다.
내가 좀 혹독하게 다뤘나?
그나저나, 유용한 정보가 있긴 하지만 생각보다 양이 많지 않았다. 측근에게도 이토록 감추고 있는 걸 보면 난 놈인 건 맞다 싶었다.
“제가 가서 목을 따 올까요?”
“굳이 마물 밭인 곳을 뛰어들 이유가 있나. 이런 때일수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법이지.”
유해 8단계 12마리란 소리에 대통령은 고심하는 듯했다.
허세든 아니든 간에 류광철이 유해 8단계 마물을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이 고민되게 만드나 보다.
내가 볼 때도 좀 많긴 하다.
하지만 한꺼번에 다룰 수 없을 것이다. 그 정도 숫자를 다룰 수 있으면 욕심 많은 녀석이 바로 남쪽으로 밀고 내려왔겠지.
“포기하실 겁니까.”
“적 전력이 너무 강해. 마물 조종으로 열 마리가 일제히 달려들면 막을 수가 없겠지.”
하긴, 그동안 마물이 동시다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은 있어도 한꺼번에 달려든 케이스는 많지 않다. 대통령은 그 부분을 걱정하고 있었다.
자칫 대한민국의 소중한 전력이 단번에 궤멸할 수 있으니.
음, 근데 나는 왜 조금도 위기감을 못 느끼는 거지?
일거에 상대한다고 몸을 내뺄 수 있어서가 아니다. 어차피 한꺼번에 날 공격하는 것은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한두 마리 죽이고 힘이 소진된다 싶으면 그때 빠지면 된다.
“절 믿으시죠.”
“그래도 되나?”
“예.”
“좋네, 천 실장. 당장 대형길드에 협조를 구해 보게. 대신, 오늘 얻은 정보를 은밀히 공유하도록. 할 사람만 지원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 * *
청와대의 제안에 신성길드가 가장 먼저 응했고, 아스가르드 길드가 그 뒤를 이었다. 사신 길드는 직전 사냥에 큰 피해를 입어 시간이 필요하다며 뒤로 빠졌다.
일단 삼대 길드 중 둘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세희가 날 찾았다. 조신한 옷차림이었는데, 나한테 잘 보여야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정부가 물러나지 않고 북진을 강행하겠다는 건 준호 씨가 자신감을 보였기 때문이죠.”
…얘도 귀신인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난 해 볼 만하다고 보거든.”
“네, 저는 준호 씨의 자신감에 배팅하려고요.”
“실패하면 리스크가 큰 건 알지?”
살짝 겁을 줘 봤지만 돌아온 건 의기양양한 코웃음이었다.
“알죠. 하지만 이건 질 수 없는 배팅이거든요. 준호 씨만 있으면 큰 피해를 입지 않을 거고요.”
날 향한 믿음이 확고하군. 이렇게 말하니 뭐라 더 말하기 어렵다.
하긴, 나도 되지도 않는 겸손함은 필요 없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선택할 때가 되었지.
“이번 사냥에 윤희도 포함시켜 줘.”
“네? 하지만 그건 준호 씨가 망설이던 부분 아닌가요?”
이세희가 말하는 걱정은 타당하다. 신성길드가 윤희를 내세워서 내 덜미를 잡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나도 윤희를 챙겨 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날 배려하고 윤희를 배려한 말인 건 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 없다.
이럴 때 정다현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래서 어쩌라는 마인드.
주변 눈치 보느라 중요한 기회를 붙잡지 못한다면 결국 큰 손해로 이어진다.
“내 눈치 보느라 길드의 중요한 행사에 빠지면 안 되지. 얘도 더 굴러야 돼. 하나만 분명히 하자. 윤희가 불필요한 전력이야?”
“아니요.”
이세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윤희는 신성길드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전력이자 미래에요. 저는 윤희가 미래에 초인이 될 재목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강해질 수 있는 모든 걸 지원해 주고 싶어요. 그런데 준호 씨가 개의치 않겠다고 하시니 저희도 눈치 볼 거 없이 움직일게요. 신성 길드 관계자로서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그래서 얼마나 동원하려고?”
이세희가 씩 웃었다.
“전부 다요!”
통이 크군.
* * *
본의 아니게 신성길드 전원 참전을 끌어낸 나는 정찰 겸 정다현의 훈련을 위해 개성으로 향했다.
내 적토마가 사망하는 바람에 얼마 전에 준중형 자동차를 다시 뽑았다. 붉은색이 아닌 흰색을 골라 페가수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변치 않은 만족스러운 승차감이다.
옆자리에 앉은 정다현은 오늘 휴가를 냈다고 하는데, 휴가 내고 훈련을 하러가는 걸 보면 얘도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 생에서는 올곧고 정의로웠는데. 날 만나서 이상해진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내가 정상인데 영향을 받은 정다현이 이상해질 리 없지.
만약 이상해졌다면 그건 정주호의 탓일 확률이 높다. 나한테 난리 치는 거 보면 탈모 히스테리가 생각보다 심한 거 같더라.
“세희가 큰 결정을 했네요.”
“큰 결정이지.”
“윤희도 간다고요?”
“몰랐는데 꽤 믿음을 받고 있더라고.”
내 눈에는 영락없는 어린 아이인데.
정다현이 미소 지었다.
“오빠 눈에 어릴지 몰라도 제 몫 하는 훌륭한 헌터에요. 오빠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해 매일 열심히 훈련하고 있고요.”
“그럼 다행이고.”
“윤희를 좀 더 믿어 줄 필요가 있어요.”
그런가. 내 눈에 매일 보이는 건 소파와 혼연일체가 된 모습뿐이라서.
“아니에요. 진짜 열심히 한다니까요?”
그때부터 윤희의 노력을 알아 줘야 한다며 10여 분간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괜히 얘기했다.
난 화제를 돌렸다.
“신성길드는 왜 전체 전력을 동원한 걸까.”
“오빠를 믿어서요.”
“날?”
“사실 오빠만큼 믿을 수 있는 초인은 없죠.”
“그래?”
귀신같군.
이세희가 내 자신감에 배팅한다는 말이랑 일치했다.
사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신뢰의 아이콘이 되었던 건가?
“목표했던 걸 한 번도 실패한 적 없고 과정은 신속하면서 확실하죠. 짧은 시간이지만 오빠가 쌓아 온 성과는 결코 적지 않아요. 그동안 완벽하게 해낸 만큼 주변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게 된 거죠. 당장 저도요.”
누군가의 신뢰를 받는 건 여전히 어색한 감이 있다. 워낙 주변의 믿음이란 걸 받아 본 적이 없어서. 그게 싫은 건 아니다. 오히려 좋지.
하지만 그걸로 책임감에 얽매여야 한다면 사양하고 싶다.
책임감이라는 건 여전히 내게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개성에 도착한 우리는 좀 더 위로 향했다. 그러다 더 이상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려 마물을 찾아 이동했다.
1시간여 동안 주변을 탐색한 끝에 내가 원하는 수준의 마물을 찾는데 성공했다.
“오늘은 첫날이니 살살 가자.”
본래 계획은 정다현을 유해 7단계 마물 앞에 떨궈 놓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물에 익숙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생각을 바꿔 유해 6단계로 낮췄다.
정다현이 결연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물을 사냥할 때 노려야 할 건 목이야. 가장 좋은 건 심장이나 뇌를 꿰뚫는 거고.”
그중에서 뇌가 제일 좋다. 몸통이 기괴한 마물들은 심장을 찾기 힘든 경우가 많지만 뇌는 어디쯤 있을지 찾기 어렵지 않으니까.
간혹 뇌가 작은 녀석들이 이상한 짓을 벌이기는 한다.
이게 중대한 변수가 되곤 하지.
“자, 이제 혼자 사냥해 봐.”
“네?”
“뭘 그리 놀래?”
난 오히려 정다현이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을 지었다. 마물이 우릴 감지하고 다가오는데 해이한 모습이라니. 이건 감점이다.
“뭐해, 빨리 경계해야지.”
“네!”
“그럼 힘껏 부딪쳐 봐. 방심하지 말고. 안 그럼 죽어.”
난 따뜻한 조언을 남겨 준 뒤 뒤로 물러났다.
어디 실력 한번 구경해 볼까.
* * *
“30점.”
“…….”
최준호의 선고에 정다현이 고개를 떨궜다.
치열한 접전 끝에 마물을 사냥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스스로조차도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할 만큼 졸전의 연속이었다.
“마물은 인간보다 이성적이지 못한 대신 본능적이지. 하지만 지능이 떨어질 뿐, 살기 위한 전투에서 수작을 못 부리는 게 아냐.”
“네.”
유해 6단계 마물을 상대하면서 정다현은 세 번이나 죽을 뻔했다. 직감을 활용하여 가까스로 피했지만 마물의 발톱이 조금 더 길었거나 움직임이 원활한 상태였다면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뼈가 되고 살이 되었다. 막연하게 느껴졌던 최준호의 조언이 이번 사냥을 치르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확실히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따끔한 말이 오히려 고마웠다.
“다음은 유해 7단계야. 힘들면 말해.”
“해 볼게요.”
“그래야 정다현이지. 일단 쉬고 있어.”
정다현은 몸을 돌리는 최준호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 가세요?”
“온 김에 몸 좀 풀려고.”
설마 사냥을 가려는 건가?
“기다리고 있어.”
그 말이 사실이라는 듯, 최준호가 빠른 속도로 멀어지더니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약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정다현은 저 멀리 위치한 산속에 금빛 뇌전이 여러 차례 내리치는 것이 보였다.
우르릉! 꽈과광! 꽝!
마치 천지가 뒤집어지는 것 같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정다현은 그 광경을 홀린 것처럼 바라보았다.
“…이게 마물 사냥.”
왜 이세희가 사냥의 꽃은 빌런 사냥이 아닌 마물 사냥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스케일이 달랐다. 빌런과 대결은 사람 대 사람으로 붙지만 마물은 종(種) 자체가 달랐다.
1시간 넘게 이어지던 굉음은 어느 순간 잠잠해졌다. 그리고 1시간이 더 지났을 무렵, 최준호의 모습이 희끗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체력 좀 회복했어?”
“네. 저는 괜찮아요. 근데 오빠는…….”
최준호의 양손 도마뱀이 끌려왔다. 하나는 3m 정도, 다른 하나는 무려 10m에 달했다.
“얘는 새끼고, 얘는 8단계 마물. 독으로 귀찮게 좀 굴더라.”
그러면서 대수롭지 않게 앞에 던져 놓았다.
“수컷이라 근처에 암컷도 있는 거 같아서 기다렸는데 안 오더라고.”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최준호.
“…….”
마물을 사냥할 때 일가족을 몰살시켜야 하는 거구나.
하긴, 살아남아서 복수하겠다면 골치 아프겠다.
씨를 말릴 수 있을 때 말리는 게 최선일지도.
깨달음을 얻은 정다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새끼를 죽이지 않고 살릴 수 있는 희망을 줬다면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생존본능보다 모성본능이 앞설 수 있으니까.
그 말에 최준호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정다현은 자기가 너무 앞서 나갔나 싶어 사과부터 했다.
“너무 앞서 나갔죠? 죄송해요.”
“아니.”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최준호가 감탄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너, 재능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