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회의가 깊은 밤까지 이어져도 지지부진하자 류광철이 먼저 종료를 선언했다.
“오늘은 시간 늦었으니 이만 하시지요. 편한 곳을 준비해 놨습니다.”
“…내일 뵙시다, 류 주석.”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일어난 왕시안이 자리를 벗어나고, 류광철은 의자에 몸을 묻었다.
조금 전까지 얼굴에 떠올랐던 호의는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하여간에 떼놈들은 곧 죽어도 말이야, 자존심을 굽힐 줄 몰라. 자기들이 지금 똥줄 타고 있는 걸 누가 모를 줄 아나?”
“계속 자존심을 부릴 수 있습니다.”
“못 부려. 그나저나 거슬리게 구는군.”
부하가 한 말을 류광철이 단호하게 잘랐다. 가늘게 뜬 눈동자와 마주친 부하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난 용서할 수 있다만 저 녀석은 아닌 거 같은데?”
“히익!”
어느새 옆에 다가온 검치호를 보며 부하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짐승의 짙은 숨결이 마치 자신을 맛있는 식사취급을 하는 듯했다.
명백한 위협이었다.
얼마 전, 검치호가 산 채로 반역자들을 씹어 먹었던 것이 떠올랐다. 온몸이 갈가리 찢겨진 채 숨이 끊길 때까지 뜯겨 먹는 신세가 되었다.
절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검치호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저 날카로운 어금니가 목덜미를 파고들 것 같았다.
“그만.”
크르르!
“그거 먹는 거 아니다.”
그 말이 있고 나서야 검치호가 입맛을 다시며 물러났다. 간신히 마물의 위협에서 벗어난 부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직언이라는 건 분위기를 보고 하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제발 용서를.”
“알았으면 나가.”
“예에.”
고개를 처박듯 숙인 부하가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
“쯧!”
그 모습을 보며 류광철은 혀를 찼다. 제법 똘똘한 녀석이라 요직에 앉혔건만 안온함에 젖어 겁에 질린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조만간 마물의 먹이로 던져 줘야겠어.”
인사가 만사이거늘 작은 것에 만족해 버리는 놈들이 너무 많다.
자신이 세울 국가에 저런 머저리는 필요 없다.
그렇게 부하의 처우를 결정한 류광철은 앞으로 일정을 가늠했다.
“손해 보는 장사긴 하지만 떼놈들이 안달 나게 만들려면 성과로 보여 줘야겠지.”
힘들게 재건한 개성이 쑥대밭이 되면 남쪽 녀석들은 물론 떼놈도 빳빳한 고개를 숙이게 되리라.
제 놈들이 아무리 체면을 차린다고 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 법이다.
자신의 존재가 있는 한, 마물의 장벽을 뚫고 이곳까지 도달할 녀석은 없을 테고. 저들은 결코 자신을 저버리지 못하리라.
남쪽에 있는 멍청한 형도 알게 되겠지.
이곳에 남아 있겠다던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류광철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 *
개성에 유해 8단계 마물 두 마리가 동시에 등장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정부는 그야 말로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화들짝 놀란 대통령은 천명국을 시작으로 정부 고위관료를 소집했다.
경악한 그들도 아우성이었다.
“당장 초인을 파견해야 합니다.”
“두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려면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합니다!”
“세 초인의 협조를 구하는 한편, 최준호 초인을 보내야 합니다!”
어지럽게 난무하는 의견은 좀처럼 하나로 합쳐질 줄 몰랐다.
그 가운데, 천명국이 말했다.
“현재 최준호 초인이 개성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행 중 다행입니다.”
각성부 차관이 안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위기는 아직 지나간 게 아니었다.
“하지만 두 마리가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왜 하필 두 마리나 등장한 건지!”
“그게 이상하긴 하군. 류광철의 소행인가?”
“…….”
누군가가 분통을 터뜨린 말에 대통령이 조용해졌다.
자신이 파견한 외교단의 소식이 끊겼으니 그에 대한 무력시위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고 해도 플러스 단계 마물 두 마리를 보내다니.
이건 예상 이상이다.
이 정도 전력이 동원 가능한데 왜 여태까지 평양 북부에 틀어박혀 있었단 말인가.
대통령이 천명국을 보며 물었다.
“최준호 혼자라면 힘들겠지?”
“한 마리라면 모르겠지만 플러스 단계 마물이 두 마리입니다. 최준호 초인이라고 해도 무리일 것입니다.”
“하긴,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란 걸 테지.”
초인이 홀로 플러스 단계 마물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무위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해도 해주와 경상남도 진주에서 나타난 플러스 단계 마물 둘을 떠올렸다.
잠시 잊고 있었다.
플러스 단계 마물은 국가를 멸망시킬 수 있는 존재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대통령이 천명국에게 지시했다.
“신성 길드에 연락해 보게. 최준호 일이라면 그쪽이 먼저 움직이겠지. 급행료는 얼마든지 낼 테니 최준호를 무사히 구출해오기만 해달라고…….”
그때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대통령님! 개성에서 온 급보입니다!”
“이 무슨 무례인가?”
“당장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고…….”
“그만.”
대노한 고위관료들이 소리치자 대통령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말해 보게.”
“최준호, 최준호 초인이 개성에 등장한 마물 둘을 모두 처리했다고 합니다.”
“……!”
“뭐라고?”
믿기지 않는 소식에 대통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천명국도 마찬가지였다.
초인 둘을 상대하는 게 아닌 무려 플러스 단계 마물 둘이다.
초인이 포함된 대형 길드가 사냥할 때마다 극심한 전력 소모를 걱정해야 하는 그 무시무시한 마물이 동시에 둘이나 등장했는데 전부 사냥했다고?
“어떻게 된 건지 말해보게.”
“예, 예! 최준호 초인은 독수리 형태 다솜과 멧돼지 형태 마물 한울을 동시에 맞이했습니다. 그중 다솜의 날개에 타격을 주어 기동력을 약화시킨 뒤 한울에 집중, 머리를 부숴 버려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뒤늦게 다솜이 상처를 회복하고 달려들었지만 양 날개를 찢어 놓고 머리를 터뜨려 사냥을 성공하셨습니다.”
결론은 둘 다 머리를 터뜨렸다는 거다.
요약을 해서인지 플러스 단계 마물을 쉽게 사냥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과정은 절대 그렇지 않겠지.
플러스 단계 마물을 얕보던 이들도 지난 등장 당시 얼마나 지독하게 강한지 체감했다.
“…….”
상상을 초월한 결과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믿기지 않는 성과에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입만 벙긋거렸다.
그 사이 보고가 이어졌다.
“피해는 한울의 돌격으로 방어선이 대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피가 빨랐던 탓에 인명피해는 없습니다.”
“듣던 중 다행이군. 정말 다행이야. 이번만큼은 무사히 넘어가지 못할 줄 알았는데.”
자리에 앉은 대통령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개성이 무사해서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지만 발생하지 않은 인명피해보다 최준호가 무사한 것에 감사했다.
만약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대통령님.”
“그래, 후속조치를 취해야겠지.”
온몸에 힘이 풀렸지만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놀라움이 사라지자 남은 건 분노였다. 류광철을 이대로 둘 수 없었다.
“총력전을 준비하게. 최소한의 방비 전력을 남긴 뒤 응징에 들어가지.”
“예.”
모두 결연한 표정으로 외쳤다.
* * *
온몸이 욱신거리는 느낌이다.
마물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확실히 쉽지 않았다.
원래 이렇게 무리할 생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전력을 발휘한 여파는 꽤 컸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플러스 단계 마물 둘을 상대하는 건 버거웠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 녀석이 새대가리라서 빈틈을 공략해 잠깐이지만 무력화를 시킬 수 있었고, 그 사이 하나를 해치울 수 있었다.
맷돼지도 행동 패턴이 의외로 뻔한 녀석이라. 초반 노림수가 먹혀 속전속결이 통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장기전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여기서 장기전이 벌어졌다면 기껏 재건한 개성이 초토화되었겠지.
내 스스로도 신기했다. 왜 이렇게 무리를 한 걸까?
예전의 나였다면 약간의 피해도 감수하기 싫다는 생각에 몸을 뺐을 것이다. 그리고 틈을 봐 마물 공략에 나섰을 테지.
그게 더 효율적이고 더 확실한 방법이라는 걸 지금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난 무모함을 감수했다.
“내가 바뀌었다는 증거겠지.”
결코 좋지 않다. 자칫 내 생명에 위협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묘한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난 시민들이 피땀 흘려 일궈 놓은 개성이 온전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왜 그랬냐고?
생각해 보니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다 부서지면 귀찮아지니까.”
저번 생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사명감이 내게 있었다.
이곳이 파괴되면 어디서 먹고 잘 수 있겠는가. 혈종의 경험으로 노숙을 싫어하는 내게 있어 개성은 현재로서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무사히 개성을 지켜 낸 것 외에 또 다른 성과가 있었다.
“류광철이 보낸 녀석이 맞군.”
두 마물은 본능에 휩싸여 공격한 것이 아닌 누군가의 의지가 작용하여 이곳까지 왔다. 머리를 부수면서 마물과 북쪽의 누군가와 이어진 끈을 발견했다.
일전에 사냥한 유해 8단계 마물에게서도 느꼈던 연결점이다.
그것이 마물과 의사소통을 하는 창구라 생각했다. 녀석은 마물을 이용하여 개성을 초토화 할 생각이었지만 내게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려 주는 단서가 되었다.
무엇보다, 마물로 촘촘하던 경계망에 틈이 드러났다.
자신의 본진으로 가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가기 전에 좀 쉴까.”
도시를 지키기 위해 오랜만에 무리를 했다. 나는 당장 떠나려던 뜻을 접고 하루 휴식을 취하고 이동하기로 했다.
다음 날, 나는 새벽이 되기 무섭게 올라온 천명국을 맞이했다.
“이거, 편히 쉬셔야 할 텐데 자꾸 사건이 터지네요.”
“그럴 시기가 아닌 건 알고 있습니다.”
담담하게 말하니 더 미안해지는군. 유부남에게 모처럼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버서커가 신신당부하던데.
“고생하셨습니다. 대통령님께서 휴식 중이란 말을 듣고 방해하지 말고 일어나시면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그렇군요.”
“최준호 초인님 덕분에 사람들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됐습니다. 어차피 제 할 일을 했을 뿐인 거라.”
쓸데없는 공치사는 그걸로 됐다.
그보다 내 용건을 말해야겠다.
“저는 이 길로 류광철을 처리하러 가 보려고 합니다.”
“예?”
“녀석이 조종하는 마물을 추적하다 보니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됐습니다.”
“아, 그렇다면…….”
“마물을 죽여서 길을 열어 놨으니 녀석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기 가장 좋은 시기죠.”
“…….”
천명국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북쪽의 소수 세력은 류광철의 카리스마로 유지되는 조직이다.
놈이 죽으면 붕괴될 수밖에 없는 구조일 것이다.
아니면 다시 기회를 노리면 되는 거고.
날 보는 천명국의 얼굴에 걱정이 서렸다.
“그런데 류광철이 죽으면 마물들은…….”
“통제가 풀리겠죠?”
그게 걱정이 되나?
이제껏 한통속이던 녀석들이 통제가 풀린 후에 사이가 좋아질 만큼 마물들은 머리가 좋지 않다.
“서로 상잔하던 달려들던 그건 그때 가서 지켜보죠.”
“…일단 보고는 해 놓겠습니다.”
“나중에 연락드리죠.”
난 천명국에게 통보하고 북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나는 북쪽으로 올라가며 나는 갈색 환약을 매만졌다. 남궁기에게 빼앗은 이 고독은 그동안 양심도 버리고 내 포스를 줄기차게 빨아먹은 주범이다.
난 이 고독을 어떻게 사용할지 오래 전부터 고민해 왔다.
이걸로 남을 조종할 생각은 없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독으로 마물을 조종할 수 없는 걸까?
한 번 해 보기로 했다.
마음을 먹은 뒤 나는 계속 북쪽으로 향했다. 수십 년 동안 방치된 북한은 멸망한 문명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무너진 건물 파편이 바닥을 뒹굴고 있고, 그 틈으로 식물들이 파고들었다. 인류가 멸망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폐허 잔해를 지나자 조금씩 인간의 흔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개판이군. 그러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이 살 만한 흔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도권 외곽의 빈민촌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마저도 안으로 들어갈수록 괜찮아졌으나 이건 사람이 아니라 거지가 사는 환경에 가까웠다.
“쯧.”
마음에 들지 않는 광경이라 빠르게 지나쳤다. 그러자 잠시 후, 내 눈에 보인 것은 엉망인 도시와 전혀 다른 화려한 궁전이었다.
딱 봐도 류광철이 있는 곳이다. 나는 주석궁 근처로 다가갔다. 지키고 있는 각성자들의 수준은 제법 높았지만 포스를 이용한 경계망은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어렵지 않게 안으로 진입한 나는 널찍한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는 호랑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언제고 한 번 본 검치호랑이를 닮았다.
크기는 그리 크지 않지만 느껴지는 힘은 유해 8단계다.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할까, 바짝 날이 서 있는 본능이 느껴지지 않았다.
야생성이 사라진 느낌.
“제압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난 품속의 고독이 떠올랐다. 딱 봐도 류광철과 링크가 닿은 거 같은데 한번 시험해 봐야겠다.
* * *
이 넓은 궁전은 검치호에게 놀이동산이었다.
사방에 득실거리던 경쟁자들은 없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인간 주인을 맞이했지만 정확히 말해 주종관계라기보다 서로 필요한 걸 주고받는 관계였다.
검치호는 이곳이 좋았다.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지 않아도 되고 주인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풍족한 먹이를 제공받을 수 있다.
바깥은 생존지옥이다.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마물들이 즐비했고, 특히 백두산의 ‘그것’은 세상이 좁다하며 날뛴 자신조차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 마물이었다.
오늘 같은 경우, 중간에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 있어 죽여 버리려 했지만 주인이 말렸다. 인간은 각별한 별미인데. 조만간 먹이를 따로 챙겨 주겠다는 말에 참았다.
하지만 한번 느낀 허기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 인간을 잡아먹으면 되지 않을까? 꾀죄죄하지만 주인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거 같던데.
그때, 검치호의 감각으로 이상한 것이 걸려들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린 검치호는 상대가 벌써 다가온 걸 보았다.
너무 늦게 파악했다. 야생에 벗어나니 반응이 늦은 게 탈이었다.
퍽!
상대 공격이 벌써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기습 공격을 허용한 검치호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이 미친 인간은 무서울 정도로 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끼이잉!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인간에게 벗어나기 위해 검치호는 우선 저항 대신 거리를 두려고 했다.
하지만 인간의 손은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인간은 괴물인가.
결국 꼼짝없이 붙들리는 신세가 되었다.
검치호의 눈이 흔들렸다.
이대로 소리를 치면 자신을 구해 줄까? 오히려 쓸모없다고 버려지면 어떡하지?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춥고 배고픈 혹독한 생존경쟁에 내던져지고 싶지 않았다.
“아프지? 자, 입 벌리고, 약 먹자.”
그리고 강제로 입을 벌리더니 뭔가를 넣었다.
검치호는 죽기 싫어서 그걸 삼켰다. 인간에게 자신은 쓸모가 많았으니까. 말을 듣는 척만 하면 살려 줄 거라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뭔지 몰랐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온 무언가가 꿈틀거리더니 머릿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의식이 뿌옇게 변했다. 검치호는 육체의 통제권을 빼앗긴 채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자신을 보았다. 자신에게 먹이를 주던 인간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눈인사를 주고받던 경비원의 몸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 그리고 복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물고 터뜨리길 반복했다.
이건 주인과 맺은 계약 위반이다.
검치호는 자신의 육체를 제멋대로 움직이려는 명령과 맞섰다.
하지만 육체를 차지한 벌레 녀석도 강력했다. 검치호의 육체에서 두 가지 의지가 대립하며 서로 맞섰다.
그러자 자꾸 머리가 아파 왔다. 이 침투한 녀석을 몰아내야 하는데 만만치 않았다.
이대로 더 물러서지 않겠다. 검치호가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달려들자, 녀석도 물러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왔다.
팽팽하게 맞서던 힘은 걷잡을 수 없이 부풀더니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퍽!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검치호의 의식이 멀어졌다.
* * *
난 머리가 터진 채 널브러진 검치호를 바라봤다.
고독을 먹인 녀석은 내 뜻대로 움직였다.
그 결과가 불바다가 된 주석궁이었다. 놈은 주석궁에서 친숙한 존재였는지 날뛰어 줘서 안쪽까지 쉽게 파고들 수 있었다.
그나저나 고독이 조종하는데 효과가 있었군.
저항하는 바람에 고독이 버텨 내지 못했지만.
좀 더 포스를 많이 넣어 줄 걸 그랬나? 그랬다면 좀 더 오래 조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는 가성비가 맞지 않는 거 같았지만.
고독이 처먹은 포스량이 많긴 했다.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는 건가.
“중국산이라 그런가.”
잘 좀 만들지.
난 혀를 차며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