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긴 터널을 지나 주변이 환해지면서 의식이 또렷해졌다. 의식의 바다 밖으로 나온 것이다.
콘스탄티나 저주 때처럼 혈종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난 몸을 가볍게 움직여 보였다. 문제는 없었다.
“유쾌하진 않은데.”
두 기프트 기강을 잡으면서 내 신경은 대부분 혈종을 찾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녀석이 말했던 대로 내용이라면 의식의 바다 한 곳에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녀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밖에 튀어나왔나 싶었는데.
이것도 아니니 남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쥐새끼 같이 다른 곳에 숨었거나, 내가 미숙한 탓이겠지.”
의식의 바다로 가 본 것이 두 번밖에 되지 않으니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아쉬움은 있었다. 뭐든 한번에 되는 일이 별로 없군.
하지만 이걸로 확실해진 것은 기프트에 자아가 존재하는 건 내 착각이 아니라는 점,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기프트와 협력은 중요한 법이니까.
그러다 보니 내 첫 기프트, 혈중섭식에 생각이 미쳤다.
타인의 피에 새겨진 기프트를 복사해 오는 기프트, 혈중섭식은 아직 세상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 없지만 그 위력은 전설급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이 기프트에 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 걸까.
아니, 처음부터 존재했을 것이다.
그럼 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던 걸까.
“기회를 엿봤던 거겠지.”
나는 혈종이 혈중섭식의 자아일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녀석은 주인을 보좌하려는 다른 자아와 다르게 처음부터 내가 칼날을 들이댔다.
“처음부터 미쳐 있던 거지.”
내가 왜 미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시간이 나면 의식의 바다 탐험을 통해 숨어 있는 혈종의 자아를 찾아내야겠다. 녀석을 발견해 내는 순간, 오랫동안 지긋지긋한 악연을 청산할 수 있겠지.
상념을 접은 나는 아까 전부터 문 앞에서 기웃거리는 인기척을 감지하곤 외쳤다.
“누구냐?”
“초, 초인님! 자, 잠깐 시간이 괜찮으십니까?”
“얼쩡거리지 말고 들어와.”
“휴, 휴식을 방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초인님!”
잔뜩 움츠러든 목소리와 함께 십여 명의 무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기겁하면서 몸을 엎드리며 벌벌 떨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일컫길, 류광철의 폭정에 신음하던 사람들이라 말했다.
내가 볼 땐 밑에서 부역한 녀석들 같은데.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동시에 엎드리더니 외쳤다.
“초인님!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싫은데?”
* * *
보위부부장 이룡화는 주석궁이 함락되는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류광철이 신수라고 불리던 흉악한 마물 검치호는 머리가 터져 죽었고, 주석궁을 오가던 무수히 많은 각성자들이 시체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죽었다.
특히 상국이나 다름없던 중국 측 외교부 인원이 몰살당한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사실들도 류광철의 죽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적어도 신평양에서 류광철은 신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류광철이 죽었다!’
이것은 기존 질서가 무너진다는 이야기였다. 이룡화는 빠른 눈치와 처세로 보위부부장 위치에 올랐던 만큼 새로운 권력자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권력자는 남쪽에서 올라온 초인 최준호.
헤드 브레이커라는 이명으로 불리며, 젊은 나이임에도 세계 최강에 근접한 무위를 보유했다고 알려져 있다.
열악한 북쪽에 있지만 상황이 좋지 않기에 오히려 외부의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최준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과 마물이 그의 손에 명을 달리했다. 과장된 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자가 새로운 실세다. 이룡화는 즉시 부하들을 이끌고 최준호를 찾아가 이끌어 달라고 외쳤다.
‘아무리 최악이어도 류광철보다 나을 거다.’
극악무도한 권력자였던 류광철은 인간이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로 최악의 인간이었다.
자기 권력을 위해 수시로 숙청을 자행했으며, 본보기를 세운답시고 희생양이 마물의 먹이가 되는 걸 직접 지켜보게 만듦으로써 공포 정치를 해 왔다.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류광철의 재미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일 수도 있다.
여기에 이해하지 못할 결정을 제멋대로 저지르고, 그 과정에서 실수가 나온 건 부하들을 탓하며 숙청시켰다.
그때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마물들에 둘러싸인 요새이자 감옥인 신평양은 류광철에게 거역할 수 없는 그만의 영지였다.
그에 반해 최준호는 법과 질서가 정립된 남한에서 올라온 초인.
악명이 자자하다고 하나 류광철보다 심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는 점이 있다.
‘잘 풀리기만 하면 오히려 한몫할 수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최준호도 이곳을 둘러봐서 알 것이다. 류광철이 축재해 놓은 재산과 각종 사치품들을. 이걸 지나친다면 남자가 아닐 것이다.
이룡화는 그것들을 싹 모아 자발적으로 최준호에게 바쳤다.
자신이 보인 성의만큼 신뢰가 주어지길 바라며.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고개를 든 이룡화는 최준호의 얼굴을 본 순간 자신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왜 너희들을 이끄냐고.”
“예?”
콰득!
“끄아악!”
어깨를 밟힌 이룡화가 비명을 질렀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죄송합니다!”
이건 예상과 다른 전개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란 말인가.
이룡화는 두 눈을 굴리다가 최준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숨을 멈췄다. 자신이 잔머리 굴리는 걸 모조리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살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예, 예!”
살기 위해 이룡화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 *
최준호가 북쪽으로 떠났을 무렵, 대한민국 언론은 물론 세계가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플러스 단계 마물 두 마리의 등장.
이것은 그동안 마물을 지배할 수 없다는 공식이 완전히 무너뜨리는 사실이었다.
인류는 마물이 등장하던 순간부터 마물을 부리기 위해 연구를 해 왔다. 하지만 의식 설계부터 뼛속까지 배어든 인류에 대한 적대감은 제거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다.
이를 제거하면 마물은 폭주를 일으킨다. 이 생각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유해 단계가 높은 등급의 마물인데, 그 마물들을 완벽하게 제압하면서 말을 듣도록 설득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마물을 길들일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연구였다. 후원자는 끝없이 나타나 연구가 이어졌지만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테이머’ 류광철의 존재는 귀했다.
비록 마물을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지만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것이 꽤 매력적인 선택지로 보였다.
그러던 중 플러스 단계 마물 둘이 등장한 것이다.
류광철이 기프트를 더 발전시켰거나 여태까지 한 수를 숨겨 온 게 분명했다.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이다.
최준호가 플러스 단계 마물 둘을 사냥했다!
제정신으로 듣고도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실제로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가짜 뉴스라면서 맹비난을 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로 드러났다. 당시 마물이 등장한 곳이 개성이었고, 플러스 단계 마물 두 마리가 등장한 걸 목격한 시민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남아 마물을 상대할 거라 선언하던 최준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결과 다솜과 한울이라 명명된 두 플러스 단계 마물을 완벽하게 사냥했다.
“미친 거 아냐? 이게 가능해?”
“최준호만 있으면 마물 없는 나라도 가능한 거 아냐?”
“말도 안 된다고 말했겠지만 진짜 가능할지도.”
이 사실을 접한 사람들은 전율했다. 그야 말로 인간이라 믿기 힘든 독보적인 무위였다.
하지만 마물 둘을 동시에 상대하고 나서 무사할까?
당장 행방이 묘연해진 게 그 증거였다. 일각에서는 최준호의 사망설을 퍼뜨리면서 무분별하게 동원한 정부의 행태를 비난했다.
이 의견이 힘을 얻는 건 당연했다.
초인 홀로 플러스 단계 마물을 상대하는 것도 놀라운데 둘이나 상대한다? 무사할 거라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정부는 사실무근이라 하면서 화제를 돌리고자 본격적인 북진을 천명했다.
첫 목표는 연백 평야였다.
이곳에서 선봉에 선 것은 신성길드였다. 평야 중심에 자리한 유해 8단계 마물을 제거해야 다른 각성자 전력을 투입할 수 있어서다.
여기에 아스가르드 길드와 사신 길드의 이찬택, 류광호가 다른 곳의 유해 8단계 마물 사냥을 위해 나섰다.
신성길드 사냥에는 신입 헌터 최윤희도 함께 했다.
레벨 4에 도달한 만 20세의 창창한 유망주인 최윤희는 유해 8단계 마물 사냥에 처음 동참했다.
마물을 직접 타격하는 것이 아닌, 주변 동료들을 돕는 보조적인 롤에 불과했음에도 처음 나선 사냥은 새로운 세계에 눈 뜨게 해줬다.
“…이게 유해 8단계?”
그야 말로 압도적인 강함이었다.
주공인 백군서가 앞장서서 마물과 맞서 싸우고, 그 주위를 핵심 전력 헌터들이 보좌함에도 전황이 팽팽했다.
신성길드는 대한민국 최강 길드다. 동료들은 내로라하는 천재들에 실전 경험까지 겸비한 실력자들임에도 유해 8단계 마물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자신 같은 레벨 낮은 헌터들은 동료들이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여파를 해소하고, 경로를 터주는 등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마물이 일으키는 힘의 여파에 살갗이 베이고 구멍이 뚫리기도 했다.
“…….”
윤희는 이를 꽉 물었다. 언제고 이런 순간이 다가올 거라 생각했다. 자신도 꽤 재능이 있다고 평가받지만 오빠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했다.
집에서는 나사 몇 개 풀린 모습을 보이지만 오빠는 저런 마물을 홀로 거뜬히 잡는다. 그런 오빠에게 부족한 동생, 모자란 동생이 되고 싶지 않았다.
윤희는 칼바람으로 제대로 뜨기 힘든 눈에 힘을 주며 상황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크지 않더라도 이걸 확실하게 해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캬오오오!
마물의 피어가 퍼져 나가자 자신은 물론 동료들의 팔다리가 덜덜 떨리는 게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압도된다면 발전할 수 없다. 이를 악 물고 이겨 내야 한다.
오빠라면 어떻게 했을까.
오히려 코웃음치며 마물의 머리를 부숴 버렸을 것이다.
“제가 해소할게요!”
동료들이 움직일 수 있는 경로를 개척하고,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옆으로 비켜선다. 머릿속으로 그려 놓은 선명한 그림 속에서 윤희는 지친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힘을 쥐어짰다.
“최윤희!”
“괜찮아요!”
주변 동료들이 걱정 어린 목소리를 냈지만 오히려 윤희가 목소리를 높였다.
신기할 정도로 몸이 가벼웠다.
“좋아…….”
일종의 러너스하이 상태에 접어든 윤희는 무아지경으로 몸을 움직였다.
당장 고갈될 것 같던 육체는 끝없이 에너지를 보급하여 힘이 샘솟듯 솟아났다. 마치 뭐에 홀린 것처럼 사냥의 궂은일 처리를 자처했다. 그럴수록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했던 작은 씨앗이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어느 순간, ‘툭’하는 소리와 함께 균열에서 싹이 돋았다. 흐릿해서 형태조차 존재하지 않던 것이 화려하게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윤희의 사냥 보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완벽한 형태로 바뀌어 갔다.
끼에엑!
6시간 동안 이어진 사냥 끝에 마침내 마물이 쓰러졌다. 다른 동료들이 모두 지쳐서 널브러지는 가운데 윤희만 홀로 팔팔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글쎄요, 저도 모르겠어요.”
주변의 질문 세례에 윤희가 오히려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자신이 언제부터 이런 퍼포먼스를 펼칠 수 있었던 거지?
그때 지친 기색이 역력한 이세희가 다가왔다. 오늘 사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도맡아 마물 사냥에 큰 공을 세웠다.
“윤희는 힘이 넘치네.”
“그러게요. 어?”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말을 하던 윤희가 멈칫했다. 사냥이 끝나고 긴장이 풀리고 나서야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언니… 아니, 팀장님.”
“응?”
윤희는 조금도 지친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 쌩쌩한 얼굴로 말했다.
“저 기프트 개방했어요.”
“뭐? 진짜?”
“네.”
윤희는 이번 사냥으로 기프트 불굴(不屈)을 개방했다.
“축하해!”
이세희를 시작으로 주변의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경사였다. 주변 동료들은 감탄과 기쁨, 가끔 질투를 담아 축하 인사를 건넸다.
사냥을 마치고 말끔한 모습으로 나타난 백군서도 윤희의 기프트 개방 소식을 듣고 격려를 보냈다.
“큰 복이로군. 앞으로 기대하고 있겠다.”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실전이야 말로 발전의 꽃이라더니, 사실이었다.
사냥을 마치고 개성으로 복귀했을 때, 위성전화기로 최준호가 연락을 해 왔다.
그런데 전화를 건 대상이 여동생인 자신이 아닌 이세희였다.
“왜 내가 아니라 세희 언니냐!”
-네 번호, 기억 안 나더라.
“아놔!”
기프트를 개방한 기쁨을 알릴 틈도 없이 열받게 만드는 재주가 용하다 싶었다.
* * *
내가 류광철 부하들을 대하는 방식은 간단했다.
딴 생각이 있는 녀석은 죽이고, 철저하게 머리를 조아리는 녀석은 살려 둔다. 그중에 이룡화 이 녀석은 죽지 않기 위해 필사의 몸짓을 펼쳐서 죽이지는 않았다.
귀찮은 일을 대신 해 줄 손발은 필요 했으니까.
우선 내가 시킨 것은 류광철의 재물과 자료들을 긁어모으는 것이다.
갖고 와도 끝없이 쌓이는 재물들은 어이없다 못해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류광철 이 녀석, 많이도 긁어모았군. 솔직히 재물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부에서 이걸 접수하면 내 몫으로 떨어지나? 아니면 국고에 귀속? 별 생각은 없지만 이게 세금으로 쓰인다면 어떻게 쓰일지 알아두는 건 필요하겠지.
오히려 내 관심을 끈 것은 류광철이 타국과 주고받은 문서였다.
나중에 증거로 삼을 생각인지 원본 외에 사본도 몇 개를 만들어 뒀더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등 아주 다양한 국가와 외교랍시고 이것저것 교류를 해 댔다.
“난 놈은 난 놈이군.”
왜 국가를 건국하겠다는 꿈을 꿨는지 알겠다. 아주 복잡한 외교 관계를 구축하고 자신의 입지를 절묘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특히 자신의 역량을 적절하게 드러내고 감춤으로써 상대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이런 녀석이 내가 혈종일 땐 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내가 여러 조치를 취하는 동안 신평양에 거주하는 몇몇 사람들은 재산을 챙겨 들고 도시를 벗어났다.
난 밖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마물들로 둘러싸인 감옥을 벗어날 수 있으면 벗어나라지. 한국이나 중국으로 무사히 갈 수 있다면 그것도 자기 능력인 것이다.
그 외에 비축해 둔 식량을 대대적으로 풀어서 굶주린 사람들의 배를 채우도록 했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 나는 주석궁을 나왔다.
이곳에서 얻은 기프트를 활용하던 중 신기한 상황과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혜광심어를 통해 마물언어를 사용했다.
류광철처럼 오랫동안 활용한 게 아니라서 마물과 의사소통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 기프트는 예상치 못한 효과 하나를 가져다주었다.
바로 마물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건 써먹을 데가 많겠어.”
마물 언어는 내 의사가 전달되면 마물이 답을 하는 형태인데, 그걸 통해 마물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이 기프트의 범위는 굉장히 넓었는데, 이룡화가 말하길 류광철이 구축해 놓은 인프라가 있단다. 그게 뭔지는 이룡화도 구체적으로 몰랐는데, 나도 해보니까 신평양을 중심으로 황해도와 평안도, 백두산까지 영역이 닿았다.
그리고 백두산 부근에서 나는 이상 기류를 감지할 수 있었다.
내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읽씹 당하고 있던 것이다.
다른 마물은 아예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지만 이 마물은 내 말을 이해하고 무시하는 걸로 보였다.
그래서 직접 가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신평양을 벗어나 백두산으로 향한 나는 전방이 뿌연 안개에 휩싸이는 것을 보았다.
내 시선을 잡아끈 것은 그 앞에 있는 것이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거대한 존재감이 전해지고 있었다.
[어리석은 인간은 죽음을 맞이했는가. 주제에 맞지 않는 욕심을 부렸으니 합당한 죽음이로군.]그러면서 안개 속 시선이 내게 향한다. 바로 앞에 있는 듯하면서 한없이 멀게 느껴졌다.
[사악한 인간, 나는 너와 충돌할 생각이 없다. 돌아가라.]마물이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던 거였나.
난 녀석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며 되물었다.
“너 정체가 뭐냐. 마물 아니냐?”
그에 대한 답이 돌아왔다.
[나는 신수 청룡이다.]“마물이네.”
[…….]그것도 말하는 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