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나는 신수다, 인간. 귀가 멀어 버린 건가.]“…….”
나는 자신을 신수라고 떠드는 마물을 응시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본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청룡이라고 하니까 용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 녀석은 자신이 음험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안개에 감추고 있었다.
“네가 신수라고?”
[그렇다. 네 짧은 인생과 견줄 수 없는 오랜 세월 지혜를 쌓고 육체를 얻어 신수가 되었다.]“네가 신수인 이유는?”
[이 세상의 영험한 기운이 조화되어 태어난 것이 나다. 삿된 다른 것들과 비교를 불허하지. 인간, 너처럼.]그러면서 자칭 청룡은 내게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설명했다.
청룡은 본래 형체가 없는 영체의 존재로, 백두산의 지기와 일치되어 오랫동안 뚜렷한 자아를 갖추지 않고 자연과 어우러져 살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 ‘그 일’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현 상태를 유지했을 거란다.
하지만 마물이 등장하고 이곳 백두산에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밀도 높은 포스를 갖춘 이곳은 마물이 강해질 수 있는 천혜의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백두산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물들을 보며 청룡은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미 스러진 마물들의 시체로 본신의 육체를 구성했다고 한다.
그것이 백두산에 등장한 청룡이었다.
“너와 마물은 무슨 차이지?”
[여태까지 설명하지 않았느냐, 인간.]“그러니까 넌 신성한 존재고 마물은 부정한 존재라고?”
그게 무슨 차이인지 정작 잘 모르겠는데?
[…….]내 말에 청룡이 침묵했다. 스스로도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나.
하긴, 신수라는 녀석이 마물과 차이를 두려 했으면 류광철과 손을 잡지도 않았겠지.
[협력이 아닌 방치였다.]청룡이 원하는 것은 백두산으로 마물들이 접근하지 않는 거였고, 류광철이 원한 건 백두산 쪽으로 중국이 침입하지 않는 거였다.
이런 걸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 건가.
[돌아가라, 인간.]“내가 왜?”
[뭣이?]“눈앞에 탐스러운 먹이가 나타났는데 내가 왜 돌아가냐.”
스스로를 신수라고 하는 것도 본인 주장일 뿐이고.
이 녀석이 류광철에게 정기적으로 인간을 상납 받아 잡아먹었을지 어떻게 아나.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인간은 맛이 없다.]설마 내 생각을 읽은 건가?
[하려면 가능하다. 다시 말하지만 난 다른 마물들과 다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곳의 평화일 뿐, 널 해하지도 다른 인간도 해하고 싶지 않다.]“말은 진심이 느껴지지만 난 네 얼굴을 한번 봐야겠거든?”
자연과 어우러졌다니 심장도 다른 마물보다 훨씬 효율이 좋을 거 같다.
한번 확인해 보고 싶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이로군.]“언제 잘 통했다고.”
[인간, 네가 가진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건 알고 있다. 불길하면서 사악하고 미쳐 있구나. 이토록 삿된 힘은 이 대지와 함께한 나도 처음 보는 것이다.]이 녀석이 또 모함을 해 댄다.
[네 강대한 힘은 주변을 오염시키고 파괴한다. 내가 맞서더라도 남는 건 폐허뿐이겠지. 나는 너를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그걸 결정하는 건 네가 아니라… 나야!”
기회를 엿보던 나는 지면을 박차고 녀석이 있는 안개로 뛰어들었다.
청룡의 존재감은 거대하다. 그걸 쫓으면 녀석이 있는 곳에 도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변수가 있다면 이 안개다.
만독불침이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안개가 안전하단 보장이 없다.
이 자칭 신수의 생각은 뭐지? 이대로 자신이 있는 곳에 도달하게 두려는 건가?
“눈을 가리는 용도라면 좀 거창한데.”
[어리석은 인간.]“불만이면 한판 붙자니까.”
[널 상대하지 않으면 그만이다.]두웅!
뇌리에서 크게 울려 퍼지는 듯한 북소리에 난 멈춰 섰다. 공간이 어딘가 어긋난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때 주변 공간에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데 풍경이 빠르게 바뀌는가 싶더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도달한 것이다.
난 감각을 확장시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느껴지던 청룡의 존재감은 씻은 듯 지워져 있었다. 혜광심어를 발동하여 마물언어를 써 보니 전혀 엉뚱한 것들이 걸려들었다.
“…그러니까 여긴.”
백두산이 아닌 건 분명했다.
대체 어떻게?
청룡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녀석이 날 상대할 자신이 있건 없건 자신의 터전이 부서지는 걸 막겠다고 선언했다.
그 말의 의미는…….
“재밌는 수법을 쓰는군.”
난 청룡에게 강퇴당하고 말았다.
* * *
청룡이 날 이동시킨 곳은 신평양 인근이었다.
녀석이 무슨 수를 쓴 건지 몰라도 날 포함한 공간을 멀리 날려 버렸다. 난 다시 백두산을 갈까 하다가 생각을 정리할 겸 주석궁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재밌는 광경을 목격했다.
내가 모아 놓으라고 지시한 류광철의 재산을 향한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몇 명이 안으로 침입한 것이다. 하긴, 내가 여길 떠나 며칠 동안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으니 의심과 욕심이 생겨나고 행동으로 옮기기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데 훔쳐 갈 거면 빨리 움직이던가, 하필 나한테 걸리다니.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세요!”
“내가 왜?”
난 싹싹 비는 녀석들의 목을 모조리 비틀어 버렸다. 뒤늦게 들어온 이룡화는 죽은 시체들을 보고 하얗게 질려서 바닥에 엎드렸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을 잘못 다루는 바람에…….”
“사람의 욕심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지. 네 잘못이 아니다. 일단 이것들 좀 치워.”
“예, 예!”
눈치 빠르고 목숨을 위해 욕심을 제어할 수 있으니까, 쓸모가 있었다.
말을 들어 보니 며칠 동안 제어해 보려고 했던 거 같고.
이룡화의 부름에 안으로 들어왔던 부하들은 너 얼굴을 보고 핼쓱하게 질리고, 죽은 동료들을 보고 다시 한번 창백해졌다.
죽은 놈들은 행동이 앞섰던 거고, 산 놈들은 신중해서 살아남은 거지.
“난 신경 쓰지 않으니 하던 대로 계속 해. 못 하겠으면 도망쳐도 좋고.”
“아닙니다, 더 철저히 관리하겠습니다. 실망하시지 않도록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삶에 대한 집착이 상상을 초월하는군.
그래서 살려 두고 있긴 하지만.
이룡화는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한해서 쓸모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럼 미끼를 던져 줘야지.
“한국으로 돌아가고 네 죗값을 치르겠다면 죽이지 않고 살려 주겠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보좌하겠습니다!”
“질리면 그만 둬도 상관없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녀석을 보니 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거 같다.
난 다시 한번 청룡이 있는 백두산으로 떠났다.
* * *
“…열 받네.”
네 번째로 청룡에게 강퇴 당한 나는 미간을 모았다. 녀석의 기프트가 뭔지 모르겠지만 내 의사와 별개로 강제로 적용되는 건 분명했다. 그걸 만독불침과 혜광심어로 해석하려고 했지만 워낙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지는 거라 쉽지 않았다.
한번 시원하게 붙으면 좋겠는데 녀석은 철저하게 전투를 회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볼 때마다 나를 사악하고 미쳐 있으며, 부정한 것으로 취급받는데 상당히 약이 올랐다.
“이 정도면 머리를 한번 부숴 줘야 할 거 같은데.”
문제는 녀석의 철저한 무시였다. 여러 도발을 해 봤지만 나와 어울리려고 들지 않았다.
“내 주변 공간에 장난질을 치는 거 같은데.”
내게 적용되는 거라면 충분히 대응이 가능했다. 네 번이나 당하면서 녀석이 발동하는 기프트는 내가 아닌, 내가 있는 공간 그 자체인 거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있는 곳과 아닌 곳을 비틀어야 한다. 내 기프트인 전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방법이 생길지 모른다.
음, 이제 와서 얘기하면 청룡을 꼭 죽여야겠다는 살의 같은 건 없었다.
갑자기 생겨난 재미있는 목표 정도?
녀석이 마물이어도 상관없고 신수여도 상관없다. 죽이는 거보다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을 한번 확인하고 싶은 것에 가까웠다.
난 다시 백두산으로 향했다. 익숙한 안개가 날 다섯 번째 맞이해 줬다.
[또 왔나.]청룡도 이제 질린 듯했다. 여길 다섯 번이나 찾아온 나도 질린다.
“불만이면 한 판 붙던가.”
[나는 한낱 피조물인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긴 세월을 살아온 신수다. 인간의 저급한 도발에 넘어갈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그럼 내가 직접 네 얼굴을 확인하는 수밖에 없겠네.”
[다섯 번째 듣는 말이로군.]난 다시 한번 녀석의 공간 안으로 파고들었다. 뿌연 안개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전과 같은 전개였다. 녀석은 공간 자체를 뒤틀어 날 튕겨 내는 걸로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청룡이 튕겨 내는 공간 밖으로 나가면 녀석은 날 쫓아낼 수 없다. 그걸 대응하는 방법 중 하나가 전이였다.
문제는 그 타이밍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인데.
이것도 세 번째 당할 때 방법을 떠올렸다. 공간 전체가 공허한 기류에 휩싸일 때 희미한 이질적인 흐름이 발생한다. 본래 공간과 내가 있는 공간이 괴리되는 상황이겠지.
이때 벗어나야 한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돌을 던지며 전이를 시전했다.
내 체온과 포스가 담긴 돌로 전이하는 것은 한 걸음 앞으로 점프하는 격이지만 청룡이 밀어내는 공간이 사이에 있을 때는 전혀 다른 결과가 만들어졌다.
찌직! 찌이익!
억지로 뒤틀린 공간을 뚫고 전이를 마치니 조금 전과 같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내가 서 있던 곳은 달랐다. 마치 블록 하나가 제거 된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검은 우주 같은 공간이 빛을 빨아들였다.
잠시 후, 그 빈틈이 채워졌다. 공간 전체를 튕겨 내서 나를 날려 버리던 게 맞았나보다.
그로 인해 옷이 갈가리 찢겨 나간 상태였지만 의도가 맞아떨어졌다. 기분이 나쁘지 않군.
하지만 청룡의 모습은 여전히 볼 수 없었다. 이중 삼중으로 방어태세를 갖춰 놓았던 건가.
이 녀석도 강적이군.
“이쯤이면 얼굴 보일 때도 되지 않았냐.”
[옷이나 입어라, 무례한 인간.]“그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더 숨겨 둔 수가 있나?”
[대체 왜 나를 이렇게 괴롭히려 드는 것이냐.]“마물이니까.”
[네가 말하는 마물은 남을 해하고 파괴하는 것 아닌가? 나는 내가 나고 자란 터전을 지킨 게 전부다.]그 속에 실린 억울함이 전해진다.
사실 나도 이제는 별 악감정은 없어서. 마물과 이렇게 대화 나누는 게 꽤 재밌기도 하고. 녀석 덕분에 공간을 튕겨 내는 것과 이를 대응하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공간 계열 기프트로 깝죽거리는 녀석의 머리를 부숴 놓기 딱 좋은 대응책이다.
“내가 침입자란 건가.”
별 감흥은 없는데. 어차피 마물 입장에서 인류나 인류 입장에서 마물이나 비슷비슷하다.
녀석은 더 이상 설득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방법을 바꿨다.
[날 쫓지 않는다면 네게 선물을 주겠다.]“선물?”
이 신수는 이제 회유까지 하는군.
어떤 걸 꺼내드는지 이야기나 들어 봐야겠다.
[네가 마물이라 부르는 생명체의 심장이다. 내가 여태까지 상대한 생명체 중 가장 강한 녀석의 것이지.]“마물하고 붙어 봤으면 실력도 강하다는 거 아니냐? 차라리 나랑 한 판 붙고 날 죽이지?”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뿐더러 내 터전이 파괴되는 것이 싫다. 너와 다투면 이곳이 네 사악한 기운에 전부 오염될 것이다.]지금 날 설득하는 건지 싸우자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다른 곳에서 싸우면 되잖아.”
[날 끌어내려 하지 마라.]도발도 걸려들지 않네.
난 입맛을 다셨다. 기어이 찾아볼까 싶기도 했지만 목적도 이뤘고 마물의 심장도 준다고 하니 그만 괴롭힐까 싶었다.
“한 판 붙고 싶었는데.”
[이걸 받고 돌아가는 걸 추천하고 싶다. 너나 내게 이게 최선이다.]어쩔 수 없군.
“내가 널 믿어도 되나?”
[청룡의 신성을 걸고 맹세하겠다.]나도 갖고 있지 않은 걸로 맹세는 잘할 수 있는데. 하지만 끝까지 전의를 드러내지 않으니 김이 빠졌다.
“겁쟁이 자식 같으니라고. 알았다.”
[그나마 마지막 이성은 살아있군. 현명한 판단이다.]“그래서 대가는 어떻게 지급하려고?”
[네가 돌아가면 내 분신이 찾아갈 것이다. 그때 건네주도록 하지.]“대가는 잊지 말고.”
[너야 말로.]난 고개를 끄덕이곤 녀석에게 말했다.
“돌려보내 주기나 해.”
[알았다.]또 사용할 수 있던 거였나? 만약 사용할 수 없다고 했으면 손을 쓸 생각이었는데 역시 숨겨 둔 한 수가 있었군.
기껏 녀석의 한 수를 파훼했지만 결국 내 뜻을 이루기 어렵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난 다시 청룡에 의해 신평양으로 강퇴되었다.
* * *
나는 주석궁으로 복귀해서 휴식을 취했다.
청룡과 신경전은 꽤 피곤했다. 백두산에 머무는 신수라, 그 말은 청룡뿐만 아니라 다른 신수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다른 녀석들은 어떨까.
내가 본 청룡은 여태까지 본 마물들과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상대하기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자아를 가지고 있고 의사판단이 자유로워 적으로 만나면 쉽지 않을 것이다.
한번 붙어 보고 싶긴 한데, 청룡 이 녀석은 미꾸라지 같아서 쉽지 않을 거 같다.
다른 신수가 있나 찾아봐야 하나?
다음 날, 나는 쫑알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일어나!]내 눈앞에는 검지손가락 하나 길이 정도의 청룡이 날 보고 있었다.
[왜 이리 오래 자? 이 잠꾸러기야!]“청룡이냐.”
[맞아. 약속한 거 지키러 왔어!]녀석은 내 주변을 빙빙 돌며 쫑알거렸다.
백두산에서 볼 수 없던 귀염뽀작 느낌이로군.
손에 넣고 힘을 주면 터질 거 같다. 한번 해 볼까?
“선물이나 내놔.”
[그 전에 약속해. 나쁜 의도로 백두산에 오지 않겠다고.]“내가 약속하면 믿을 수는 있고?”
[청룡과 약속은 신성한 거야! 어기면 손해를 볼 걸!]“그래?”
[시험해 봐도 돼! 아주 화끈해!]그러면서 청룡이 히죽 웃었다.
난 녀석에게 물건부터 받아들었다. 어린 아이 주먹 크기의 심장은 다른 마물의 심장보다 크기가 작았다.
하지만 안에서 느껴지는 힘은 어마어마했다. 내가 여태까지 취한 마물의 심장과 비교도 안 되는 크기였다.
투뿔 단계 마물인가?
[거래는 성사됐어!]그러면서 기대감 담긴 눈으로 날 본다.
내가 약속을 안 지키길 바라는 거로군.
“수고했다.”
[에? 어? 벌써 끝난 거야?]“약속했으니 지켜야지.”
[이게 아닌데?]청룡이 당황한 표정으로 내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정신 사납게 구는군.
“볼일 다 봤으면 가라.”
[나 네 옆에 있을 건데?]“왜?”
[너 미쳐 있잖아. 이대로 두면 세상을 불살라 버릴 걸? 내가 정화 기능이 있어서 옆에 있으면 네가 정신을 차리는데 도움이 될 거야!]청룡 이 자식 해맑은 표정으로 선을 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