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나는 청룡을 보며 말했다. 저 모습이 수백 미터에 달하면 징그럽겠지만 손가락 하나 정도 길이니 귀여운 맛이 있군.
그러고 보니 혈종으로 쫓겨 다닐 때 저런 실뱀 몇 마리 잡아서 자주 구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냥 가라.”
[너도 좋으면서 왜 그래.]“안 좋은데.”
[이상하다, 다들 옆에 못 둬서 안달이던데.]청룡은 내 주변을 맴돌며 말했다.
태연한 표정으로 지껄이는 게 보통 강적이 아니었다.
“내가 필요 없다면 돌아갈 거냐?”
[안 가.]청룡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약속 지키는지 봐야 돼. 그리고 넌 너무 위험해. 언제 백두산으로 쳐들어올지 모르고. 나 예전부터 인간 세상이 궁금했으니 옆에서 감시하면서 지켜볼게. 잘 부탁해.]어딜 천연덕스럽게 빌붙으려고? 난 자칭 신수라고 주장하는 마물 녀석과 함께 다닐 생각이 없었다.
“싫은데.”
[좋은 거 줬잖아!]“나더러 미친놈이라 하는 녀석한테 내가 왜?”
[너 미친 거 맞아. 진짜 많이 미쳐 있어. 신수인 내가 장담해. 내가 본 인간 중에 독보적으로 미쳐 있어!]“…….”
짧은 말 몇 마디에 미쳤다는 소리를 몇 번 하는 거지?
이 녀석은 도를 닦았다는 게 남 열 받게 만드는 기술을 말하는 건가.
“내가 가라고 해도 안 갈 거냐?”
[응!]“내 옆에 있고 싶으면 대가를 더 내놓던가.”
[와, 진짜 이 정도로 미쳐 있는 것도 놀라운데 욕심도 엄청나네.]“불만이면 돌아가.”
[알았어, 알았다고. 진짜 인간의 욕심은 최악이야.]궁시렁거리던 녀석은 뭘 줄 수 있는지 생각 좀 해 보겠다고 말했다.
뭐든 뜯어갈 게 있으니 다행이로군.
그리고 내가 미쳤다는 건 녀석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니까.
내 스스로 안 미쳤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 * *
남쪽으로 향하는 길을 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류광철이 살아 있을 때는 협력하던 마물들이 경로를 틀어막고 있었다면 류광철이 죽은 후에는 일시적으로 협력 체제가 풀려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물들이 이동하면서 신평양을 둘러싼 방위 체제가 해제되었다.
그럼에도 신평양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터전을 벗어나지 않았다.
노예보다 못하게 살던 시민들은 풍족하게 배급되는 식량에 굳이 떠날 필요가 없었고, 류광철에게 붙어 있던 각성자들은 마물들이 날뛰고 있는 밖으로 나가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그 빈틈을 파고든 것은 정주호가 이끄는 선봉부대였다.
이미 위성전화기로 연락이 닿았기에 내가 열어놓은 틈을 파고들어 국가전선방위청의 핵심 전력과 삼국의 인원을 차출한 정주호가 신평양 안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역시 믿고 쓰는 정주호!
나날이 모발이 얇아지지만 그래서인지 판단력은 날카롭게 벼려지고 있었다.
난 직접 밖으로 나가 그를 맞이해 줬다.
“평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청장님.”
“내가 너 때문에 평양까지 다 와 보네. 진짜 어디까지 날 데려가려고 이러냐.”
“어차피 출장이라 좋잖아요. 사모님한테 벗어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그거랑 이게 같냐.”
“아니었어요? 사모님에게 연락드려요?”
“…일단 좋은 걸로 하자.”
자유를 갈망하는 유부남이라는 존재는 참 신기하다.
날 상대하는 것보다 집에 들어가는 게 더 무섭다는 버서커도 그렇고.
결국 인정할 거면서 쓸데없이 강한 척을 한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어휴!”
정주호는 화려한 주석궁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화룡점정인 접견실에서 나는 류광철에 대한 내용을 간략하게 말해 주고, 모아놓은 재물들을 보여 주었다.
“저번에는 부산시장의 뇌를 곤죽으로 만들어 버리더니 이번에는 괴뢰국 주석의 목을 땄냐.”
그 말에 이상한 부분이 뭔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의아함을 느껴 정주호를 바라봤지만 말을 더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몰수한 재물 목록을 보면서 혀를 찼다.
“그나저나 이거 금액이 너무 큰데? 진짜 국가에 다 귀속시키겠다고?”
“안 그럼요?”
“부피 작은 건 네가 챙겨도 모를 걸.”
큰일 날 양반이로군.
아니, 자신이 챙기고 싶어서 그런가? 표정을 보면 아닌데.
정주호는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거 국가에 다 귀속시켜 봤자 네가 원하는 방향대로 안 쓰일 거다. 나랏돈 되면 다 남의 돈 되는 거야. 엄한 놈들이 빨대 꼽아서 자기 돈처럼 쓸 수 있고. 네가 실망만 할 수 있어.”
그러느니 차라리 나더러 어느 정도 챙기라는 것이 정주호의 말이었다.
공무원 헌터의 표본과도 같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참 묘한 느낌이다.
그만큼 실망이 쌓여 있다는 거겠지. 어느 조직이든 100% 완벽하게 돌아가는 곳이 없으니. 특히 방대한 조직은 더더욱 그러했다.
“공무원인 분이 그런 말해도 됩니까?”
“이런 말 하는 게 편해 보이냐?”
“딱히 그런 건 아니고요. 대충 압니다. 나랏돈 제 마음대로 쓰는 거 정도는.”
“그런데 덜컥 맡긴다고?”
“어차피 장난질을 해도 한계가 있어서요. 이해관계가 일치해야 엄한데 쓸 수 있지, 이해관계에 자유로운 사람이 있으면 쓰기도 어려워요.”
“다른 생각이라도 있냐?”
“돈 쓰는 내역을 제가 들여다볼 겁니다.”
“…이 돈 100% 잘 쓰이겠군.”
어차피 이걸 가져간다고 해도 처분하고, 현금화하고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근데 그걸 해서 정작 내가 쓸 곳이 없다. 돈이라는 건 필요한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불법을 저지르면서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난 지금 돈이 많다.
“이 돈은 여길 재건하는데 쓰자고 하려고요.”
“그걸 들을까?”
“듣게 만들면 되겠죠?”
그래도 내가 찾은 돈이니까. 적당히 언론 플레이를 하고, 내가 쓰이는 걸 들여다보겠다고 하면 샛길로 새는 건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대통령에게도 얘기해 놓고.
내 나름대로 취해 본 조치였다.
정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지 않으려면 정직하게 쓸 수밖에 없긴 하겠어.”
“왜 그렇게 입맛을 다셔요.”
“나도 욕심 생길 만큼 큰돈이라 그렇다. 불만 있냐?”
“그럼 챙겨 가요.”
“그럴까?”
“네, 대신 신고는 할 겁니다.”
“됐다, 안 가져가.”
어차피 가져 갈 생각도 없었으면서.
시선이 마주친 나와 정주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까지 와준 것만으로도 난 큰 도움을 받은 거라서.
부산에서 작전을 벌일 당시 내가 내부를 휩쓸고 정주호가 와서 마무리했던 게 떠오른다.
“근데 밖에서 불안해하고 있는 녀석들은 뭐냐?”
“류광철 부하들입니다. 처벌 받고 새 사람 되겠다던데요.”
“새 사람? 살 길 찾아서 방황하다 새로운 숙주를 너로 정했나보군.”
정주호가 코웃음쳤다.
“류광철한테 부역한 녀석들이면 죄를 씻지 못할 녀석들도 있을 거다.”
“그 녀석들은 죽이면 되죠.”
“엉?”
내 말이 예상과 달랐나?
정주호가 착각했나 보다. 저 녀석들은 나한테 아무 의미가 없다.
“미련 없거든요. 청장님에게 모든 처분을 맡길게요.”
다 죽여도 상관없다는 말에 정주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남쪽으로 가고 싶다던 이룡화의 말이 떠오른다.
난 녀석이 저지른 죄를 모른다. 그건 앞으로 조사가 이루어지고 한국 법정에서 선고가 내려지겠지.
만약 죄질이 심각하게 안 좋아서 사형이 선고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사형 당하고 살아남으면 뭐, 평범한 삶을 살면 되겠지.
* * *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등장, 베일에 감춰져 있던 신평양의 존재.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히게 만들기 좋은 소재들이었다.
플러스 단계 마물 둘의 이해하지 못할 움직임으로 인해 류광철의 존재는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를 막아낸 최준호의 위상이 상승하는 것도.
북진을 시작하면서 신성길드를 선두로 연백 평야에 진입했다는 소식도, 다른 길드들의 활약도 시선을 분산시킬 거란 기대가 있었지만 신평양이 대한민국 수중에 들어오면서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해일이 되었다.
“사방이 난리로군. 기념비적인 성과야.”
“예.”
“8단계 마물 열이 넘는 걸 뚫고 단신으로 적국의 수도를 함락시켰다. 단기필마(單騎匹馬)의 위용에 대해 듣긴 했지만 그게 우리 사람일 줄은 몰랐지.”
가끔 배가 든든하다 못해 터져 버릴 것 같은 포만감을 느끼곤 한다.
최준호 덕분이다.
“최준호 초인은 북한 상황에 더 이상 상황에 간섭하지 않고 손을 떼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본인이 다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손을 떼겠다고?”
“전문가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전해 왔습니다.”
“이래서 좋아할 수밖에 없어.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고. 우리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얼마나 실망하겠나.”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도 열심히 해야겠지. 우리 잘해 보자고.”
“예.”
잠시 의욕을 불태우는 시간을 가진 뒤, 대통령은 화제를 전환했다.
“주변 반응은 어떻나?”
“미국과 일본은 축하 인사를 건네 왔습니다. 둘 모두 투자 의사를 밝혀 왔는데, 일본의 경우 식량 수출 의사를 타진해 왔습니다.”
“아직 평야를 확보한 것도 아닌데 너무 빠른 거 아닌가.”
“리그로 인해 피해가 커서 식량 확보에 집중하는 중입니다.”
“일단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하고, 미국 측 요구는?”
“기존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고 교역 규모 확대입니다.”
“미국에서 얻는 이익이 없지 않나?”
“한반도를 향한 영향력 확대를 꾀하려는 거 같습니다.”
“예전처럼 다루지 않겠다는 이야기였군.”
한국의 존재가 한 단계 높게 격상되었으니 나쁘지 않은 흐름이다.
“중국은 어떻지?”
“격렬하게 반발 중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천명국은 현재 압록강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했다.
류광철이 죽고 날뛰던 마물 상당수가 북상했는데, 그로 인해 압록강을 넘으려던 중국 측 각성자 부대가 황급히 철수했다고 한다.
“상황이 자기들 손을 떠났다는 걸 직감하고 있는 듯합니다.”
중국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 그 말은 자신들의 의지로 행동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최준호가 확보한 재물의 가치는 어느 정도 되나?”
“최소 수십조 원입니다.”
“그걸 북한 지역 복구에 전액 사용할 것, 나라고 해도 눈이 뒤집힐 거 같은데 액수인데 과연 최준호답다고 해야 하나.”
다른 누구도 아닌 최준호의 요구였다.
만약 김영환이었다면 그 안에 깃든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을 것이다.
김영환과 연관된 회사를 연결시켜 돈을 챙겨 줘야 했을 테니까.
최준호는 돈 문제에 있어서 어떤 의심도 필요 없었다.
“물욕이 없는 건 큰 축복입니다.”
“맞아, 큰 축복이지.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욕심을 경계해야 하고. 요청을 감사히 받아들인다고 전하게.”
“예.”
“그리고 이에 불만을 갖는 자들이 생겨날 거야.”
최준호가 북한에서 확보한 돈을 눈먼 돈이라 생각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그들의 존재를 가만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처음부터 쓸어버려야 하니 예의주시하게. 이건 우리 돈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그마저도 실망을 안겨 줄 수 있으니 속전속결로 처리하지. 지금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천명국을 보며 대통령은 손으로 가볍게 탁자를 두드렸다.
담담한 척 했지만 ‘통일’을 이뤄 냈다는 위업은 전율을 휩싸이게 만들었다.
“내 소원을 이렇게 이루게 될 줄 몰랐군.”
앞으로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일 것임에도 대통령은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 * *
정주호에게 신평양을 맡긴 뒤 나는 곧장 개성으로 복귀했다. 북진의 거점 역할을 하는 개성은 내가 떠날 때와 달리 엄청난 숫자로 바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복귀 신고를 한 뒤 말끔하게 씻고 신성길드가 머무는 호텔로 향했다. 그곳에서 윤희를 만났다.
“오빠!”
“어, 살아있냐?”
“내가 할 말이거든? 어떻게 다짜고짜 가서 연락도 안 해? 엄마아빠가 얼마나 걱정하는데!”
부모님이 걱정을?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진짠가.
“진짜 걱정하시냐?”
“당연히 거짓말이지.”
뻔뻔하게 거짓말 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나날이 느는 건 거짓말인 거 같다.
어이없음을 담아 바라보니 윤희가 씩 웃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나 기프트 개방했어. 날 찬양하라!”
“찬양은 무슨. 기프트는 어때?”
“완전 좋아. 내 의지로 계속 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건 꿈에서 나올 법한 설정이잖아.”
불굴을 개방한 윤희는 그동안 억눌렀던 게 터졌던 것처럼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다 금방 레벨 5에 도달할 듯싶었다.
그동안 쌓아 온 노력은 굉장했으니까. 올바른 방향으로 차곡차곡 쌓았으니 기프트 개방이라는 계기를 만나 전력질주하고 있었다.
신이 난 윤희는 내게 불굴의 장점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본 적 있는 기프트고, 위력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직접 들으니 새삼 대단하다 싶었다.
탐이 나는군.
나도 저 기프트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한번 말해 볼까? 아니다. 괜히 욕만 먹을 거 같다.
잠시 고민에 잠겨 있으니 윤희가 날 기괴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징그럽게 봐.”
“뭐?”
“할 말 있으면 직접 말해.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들어줄 수 있으니까.”
“네 기프트 말인데.”
“응.”
기분이 좋은 상태니까 흔쾌히 허락하지 않을까?
난 슬그머니 치미는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말했다.
“내가 복사해 가면 안 되냐?”
“복사? 기프트도 복사가 가능해?”
“그동안 말 안 했는데 내 능력이 기프트 복사다.”
“진짜? 아! 그래서 기프트를 여러 개 가지고 있었던 거구나!”
“어.”
“그럼 내 기프트도 복사가 가능하다는 거네?”
“불굴은 좋은 기프트니까.”
다만 나는 특이한 경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할게.”
“진짜?”
“응. 오빠가 도와준 게 얼만데 이 정도도 못 해 주겠어?”
얘가 어떻게 복사하는지 모르니까 막 지르는 거 같다.
“내가 어떻게 하면 돼?”
“가만히 있으면 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면 되거든.”
눈 딱 감고 있으면 심장의 피에 새겨진 기프트 정보를 바로 복사할 수 있다.
“뭐, 뭐? 내 심장을?”
“따끔하고 끝날 거야.”
난 위로의 말을 꺼내듯 말했으나.
“그게 되겠냐, 이 미친놈아! 절대 안 돼!”
안 되는 거였군.
입맛을 다신 나는 다음 기회를 노려보기로 했다.
* * *
내 서울 복귀는 조용히 이루어졌다.
신평양을 수복한 과정 등이 알려지면서 소란스럽다는 천명국의 말을 들어서다.
이제 시작인데 편하게 쉬려면 조용히 움직이는 게 낫겠지.
그나저나.
[와! 인간의 문명, 이렇게 찬란하게 바뀔 줄은!]옆에서 쫑알거리는 자칭 신수 녀석은 도시를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다.
거리를 대놓고 활보하는데 녀석의 모습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청룡이 다가와서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너만 연결되어 있어 다른 사람이 날 알아볼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별로 나한테 안 좋아 보이는데.
내가 뭐라고 해도 들어먹을 녀석도 아니고, 결국 나는 반쯤 방치해 둔 채 걸음을 옮겼다.
그때, 날렵한 스포츠카가 미끄러지듯 내 옆에 멈춰 섰다.
창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얼굴의 미녀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거기 멋진 분, 저랑 뜨끈한 된장찌개 하나 하러 가지 않을래요?”
당연히 가야지.
“그럼 출발할게요.”
나는 옆좌석에 탑승하자 입꼬리를 말아 올린 안나 크리스틴이 악셀을 밟는다.
[자, 잠깐! 어디 가! 나 버리지 마!]청룡이 놀랐지만 알게 뭐냐. 난 녀석을 버려두고 안나 크리스틴과 인근 한정식집으로 이동했다.
메인메뉴가 무려 장인이 만든 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 구성이라니.
안나 크리스틴, 방심할 수 없는 적으로 성장했군.
꽤 오랜만에 본 안나 크리스틴은 예전보다 더 아름다워져 있었다.
현상 유지만 해도 보통 노력이 들어가는 게 아닐 텐데 미모를 향한 여자들의 집념은 가끔 혈종의 광기조차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오랜만이에요, 준호! 그동안 잘 지냈죠?”
“나야 매일 똑같지.”
“똑같기는요. 그동안 준호가 일으킨 사건만 해도 책 한 권이 넘어가는데.”
그 정도나 된다고?
믿기 힘들군.
“진짠데.”
내가 믿지 않는 듯하자 안나 크리스틴은 사실이라며 중얼거렸다.
[금방 찾아왔지롱.]버려졌던 저 녀석은 무슨 수로 이렇게 빨리 찾아왔는지 모르겠다.
[너만큼 미친 사람이 몇 없어서 찾기 쉬워.]속을 긁는 건 월드클래스다.
난 잠시 청룡을 바라보다가 안나 크리스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분명 목적이 있어서 찾아온 거겠지.
그럼 나도 사양하지 않고 정보 몇 개를 빼내 볼까.
“미국도 알고 있어?”
“네? 어떤 걸요?”
“마물 중에 신수(imaginary creature)가 존재한다는 걸.”
“……!”
경악이 번진 안나 크리스틴의 표정으로 대답은 충분했다.
“아는 거 털어놔 봐.”
그래야 우리의 대화가 시작될 테니까.
한숨을 푹 내쉰 안나 크리스틴이 신수에 대한 정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