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안나 크리스틴은 스스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지만 주도권을 빼앗겼을 때 틈이 생겨난다.
아마 본인이 주도권을 쥔 채 협상을 진행해 왔기에 모르고 있는 거겠지.
아니, 평범한 사람은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의 표정이나 제스처보다 발산하는 기세로 감지하고 있으니까. 포스에 예민하지 않으면 웬만해서는 감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내 수법이 유일하게 먹히지 않았던 게 정다현이었다.
내가 읽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직감하여 눈치 챘던 듯싶다. 나도 그것과 비슷한 수법으로 상대 의사를 감지하니.
이런 나를 완벽하게 속였던 건 암시장 상인들밖에 없었다. 과거로 돌아와 한참 동안 속았던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니.
지금도 내게 허를 찔린 안나 크리스틴은 표정 관리에 들어갔지만 수상한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신수의 존재를 알고 있었군.
[그런 건 왜 물어봐. 뭐 때문에 그런 건데.]옆에서 청룡이 앵앵거렸지만 난 안나 크리스틴을 빤히 바라보며 답을 재촉했다.
회피가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신수를 만났기 때문이죠? 최근에 북한에 갔으니 백두산일 확률이 높고요.”
“맞아.”
“우선 신수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에요. 당국에서는 마물과 신수는 구분해야 한다는 판단이고요. 신수는 마물과 달라요. 그들은 이성이 존재하고, 인간을 뛰어넘는 통찰력과 판단력이 존재해요.”
[역시 잘 아네. 나더러 마물이라고 하는 누구랑 참 달라.]괜히 물어봤나?
이 용용이 자식이 의기양양한 걸 보니 살짝 후회가 되는데.
“미국에서 신수를 발견한 건 오래 되지 않았어요. 정확히 3년 전이죠.”
안나 크리스틴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신수가 처음 발견된 건 워싱턴주였다. 캐나다와 국경이 밀접한 이곳에 자신의 의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마물이 등장하면서 정부와 의회가 발칵 뒤집혔단다.
정부에서는 즉각 조사대를 파견하였고, 말하는 마물과 교섭에 나섰다.
“그 마물은 스스로를 천둥새(Thunderbird)라고 밝혔어요. 오래 전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던 전설의 새죠.”
실제로 마물의 모습은 천둥새와 흡사했다고 한다. 용용이가 바로 아는 척 끼어든다.
[아, 걔? 엄청 깐깐한 앤데. 성질 엄청 더러워!]너보다 이상하겠냐. 아니, 신수란 것들은 원래 이상한 녀석들일 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먼 미국의 신수도 알고 있다? 그럼 다른 국가에 있을 신수도 어디에 있을지 알 거 같다. 나중에 붙잡아서 추궁해 봐야겠다.
용용이랑 크로스 체크가 되니 정보 검증이 수월하다.
“부딪쳐 봤고?”
“…처음에는 사냥해 보려고 했죠. 그 대가는 처절한 실패였고요.”
안나 크리스틴은 천둥새야말로 세계 최초로 등장한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이 아닐까 했단다.
그렇다면 내가 제시한 게 처음이 아니란 이야기로군.
내가 봤던 것도 투뿔 마물이 아니라 신수였던 건가?
말은 못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뼈아픈 손실을 입고 천둥새 영역을 전부 인정하기로 합의를 봤어요. 미국은 천둥새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천둥새는 자신의 영역에 존재하는 마물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고요.”
일종의 방위 협정이었다. 천둥새와 미 정부는 대화 창구를 열어 두고 필요한 게 있을 때 주고받는 관계라고 한다.
실제로 천둥새의 억지력은 강력해서 워싱턴주와 그 인근 아이다호주와 오리건주, 몬태나주까지 마물 등장 빈도가 줄었다고 한다.
인간 백정인 어느 독재자와 손잡은 자칭 신수랑 참 다르군.
[나도 인간을 위해 협력했거든?]백두산에 틀어박힌 방구석 신수가 변명하네.
“효과적이겠어.”
“네, 효과적이죠. 준호가 본 신수의 이름은 뭔가요?”
[말하지 마, 귀찮아져.]누구 마음대로.
“청룡이라고 하던데.”
[내 말 안 들려?]“청룡, 멋지네요. 영어로 하면 블루 드래곤, 강해 보여요.”
[내가 강한 건 잘 아네. 이 인간 여자, 마음에 드는데?]콧대 높이기는. 한판 붙자고 할 땐 상대하지 않으려고 공간을 밀어 버린 주제에.
[난 원래 미친 거랑 상종 안 하거든!]불만이면 천둥새처럼 정면으로 맞서 보든가.
[싫은데?]거기다 생각을 읽고 해맑게 말하기까지.
참 거추장스러운 녀석이었다.
“말하는 걸 보면 미국은 백두산에 신수가 있는 걸 짐작한 거 같은데, 아닌가?”
“맞아요. 대화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향인 거 같아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어요. 실제로 류광철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었고.”
“그놈이?”
“네, 류광철은 언제고 청룡을 길들이겠다고 호언했거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누가 길들여져!]용용이가 몸을 꿈틀거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긴 했군.
근데 미국에서 어떻게 봤나가 궁금했다.
“그게 가능해 보였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류광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 신수와 타협을 끌어낼 수 있다고 봤어요.”
[제대로 봤네.]실제로 류광철과 용용이는 타협을 보긴 했으니.
그걸 믿고 호가호위하려다가 나한테 죽은 거고.
“현재까지 파악해 둔 신수 숫자는 얼마나 되지?”
“짐작만 할 뿐이라 정확하지 않아요.”
안나 크리스틴은 그 숫자가 열을 넘지 않을 거라 말했다. 그마저도 실물을 확인한 건 천둥새가 유일했다고.
다른 신수들은 인간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린단다.
그중에는 영역 안에 드는 족족 모조리 죽여 버리는 신수도 있다고.
찌질한 청룡도 있으니 성향이 제각각이겠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겠… 잠깐, 나 안 찌질해.]희소성에 의기양양하다가 바로 반응하기는. 으스대는 꼴이 눈에 거슬렸다.
“답이 되었으면 제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말해.”
“우선 준호는 앞으로 귀찮아질 확률이 상당히 높아요.”
“갑자기?”
“그동안 보여 준 활약이 워낙 말이 안 되는 거니까요. 사실 알게 모르게 견제를 받고 있었잖아요?”
그랬었나?
소소한 태클 정도만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다른 인간들은 견제했는데 네가 다 죽이고 다닌 거 아냐?]이 용용이 녀석은 내가 수틀리면 죽이고 보는 줄 아나 보다.
…그래도 가끔은 살려 뒀다.
“그 말을 꺼낸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혹시 음모론 좋아하세요?”
“딱히.”
뒤에서 뭘 궁시렁거리는 녀석만 보면 머리를 부숴 놓고 싶다.
아니, 이미 부쉈나?
“그 음모론에 나올 법한 단체 이야기예요.”
“계속해 봐.”
“세계의 정세를 결정하는 힘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죠. 미국 대통령조차 사실을 밝히기보다 타협을 선택할 정도의.”
그들은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단체가 아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세계정세를 주도할 힘을 지녔으며, 자신의 의도에 가깝도록 여론을 조장해 왔다.
마물 등장 이후, 그 세력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막후 실력자로 행사하는 중이라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힘 있는 분들의 사교 모임으로 보이죠.”
“어떻게 알았는데?”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사람으로 섭외가 들어왔거든요. 제가 또 한 미모 하잖아요.”
“그래, 그렇다 치고.”
“…반응이 마음에 안 드는데요. 아무튼 제안이 왔지만 거절했어요.”
“왜?”
“방식이 유치해서요. 그리고 떳떳하지 못한 건 질색이라.”
하긴, 나도 정체를 감추고 있는 녀석들이 접근했다면 우선 팔다리부터 부러뜨렸을 것이다.
비밀을 갖고 있는 녀석들치고 딴생각 없는 녀석이 드물었다.
“그래서 귀찮아진다는 건 뭐지?”
“그들 입장에서 준호는 큰 변수거든요. 높으신 분들이 그리고 있는 세계정세에 준호의 존재가 방해가 된다는 거죠.”
“마물 사냥이나 고민할 것이지, 쓸데없는 데 힘 빼기는.”
“동감이에요.”
“날 제거할 수는 있고?”
“제거는 안 하죠. 대신 귀찮게 굴 뿐.”
그러면 내가 먼저 녀석들을 제거하면 그만이다.
그냥 음모를 꾸미기 전에 찾아가서 싹 지워 놓을까?
[또 나쁜 생각한다!]나쁘기는. 이런 걸 선제적 조치라고 말하는 거다, 용용아.
“조만간 움직일 거예요. 모르고 당하면 기분이 더럽잖아요? 알면 대응을 할 수 있을 테고.”
“다 죽여 달라는 거지?”
“…….”
“농담이야. 유용한 정보니까 알아 두지.”
“준호는 농담이 진담 같아서 문제예요.”
[얘 방금 진담으로 말했어!]“그런가. 주의해야겠어.”
[거짓말! 진짜로 죽일 생각이었으면서!]옆에서 용용이가 열심히 진실을 보도했지만 어쩌겠는가, 안나 크리스틴에게는 안 들리는데.
“어때요, 저 상당히 도움이 되죠?”
“그래.”
난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떠먹었다. 깊고 구수한 맛. 요즘 너무 즐겨서 청국장으로 종목을 변경할까 했던 걸 반성하게 만드는 맛이다.
“이 가게를 알아 온 것도 큰 도움이고.”
“그럼 저도 대가를 받고 싶어요.”
“대가?”
“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본다.
서로 필요한 걸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었던가. 갑자기 뭘 달라고 하니 상당히 당혹스럽군. 뭘 줄 수 있나 생각을 하다가 그녀의 몸을 살펴보고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 당장 급한 게 보여.”
“어떤 건가요?”
“자리를 옮길까.”
“네? 네!”
의아한 표정을 짓던 안나 크리스틴이 이내 야릇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어? 쟤 야한 생각한다!]그래? 번지수 잘못 짚었군.
내가 안나 크리스틴을 데려간 곳은 훈련장이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 준호? 내가 예상하던 거랑 다른 곳인데…….”
“제대로 왔어. 요즘 제대로 훈련 안 했지?”
“네?”
“미용에 집중한 나머지 근육이 흐트러져 있어.”
각성자는 언제든 빌런이나 마물을 상대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안나 크리스틴은 미모를 열심히 가꾸는 데 집중한 나머지 각성자로서 적합하지 않은 몸 상태가 되어 있었다.
내게 도움을 줬는데 이걸 그냥 넘어갈 수 없지.
“바로 잡아 줄 테니 옷 갈아입고 와.”
“자, 잠깐만요.”
“그 상태로 하겠다고? 움직임이 불편할 텐데.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발버둥 치기 좋아. 악을 쓰면 고통을 참아 내는 데 도움이 되거든.”
지금부터 할 훈련은 근육을 바로잡는 과정이라 매우 아프다.
아, 참고로 거부권은 없다.
내 호의에는 강제성이 있거든.
“아, 알았어요. 기다려요.”
풀 죽은 표정이 된 안나 크리스틴이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청룡이 날 보며 감탄한다.
[너 진짜 대단한 인간이야.]뭐가?
* * *
안나 크리스틴의 비명을 BGM 삼아 뒤틀린 근육을 바로잡아 준 뒤 나는 청룡과 거리로 나왔다.
과거로 돌아와 제정신으로 살다 보니 참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싶었다.
전혀 몰랐던 신수의 존재를 알게 되기도 하고, 마물 천국인 줄 알았던 북한에 류광철이 지배하는 도시가 있는 걸 보기도 하고.
어쩌면 내가 혈종일 때 류광철이 사라졌던 건 청룡의 분노를 사서가 아닐까?
미래에 벌어졌을 일이니 상상일 수밖에 없다.
사실 마물하고 신수의 차이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고.
[마물하고 신수는 엄연히 다른 존재야.]청룡이 말하길, 신수는 각종 신화와 전설이 쌓여 형성된 영성이 육신을 얻은 거라고 말했다. 마물은 순수한 악의가 기반이 되어 탄생했는데, 그 안에는 오직 파괴 욕구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태생부터 다르다는 건가.
헌터가 빌런과 자기들은 다르다고 말하는 거랑 비슷하다.
범죄 한 스푼만 더해지면 헌터가 빌런이 되는 건데.
“영성을 빼면 마물과 비슷하다는 거네?”
[…어떻게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거야!]반박하지 못하니 앵앵거리는군.
근데 일리 있는 말 아닌가. 일단 마물과 차별화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잘 알겠다.
난 품속에 든 마물의 심장을 매만지며 말했다.
“나한테 준 이거. 강했다며?”
[응. 엄청 강했어. 잘못했으면 내가 졌을걸?]자칭 신수가 그 정도로 말할 정도였으면 어느 수준이었을까.
투뿔 단계쯤 되는 마물이었으려나.
청룡이 말한 것도 있고, 내가 느끼기로도 마물의 심장 자체에 깃든 힘이 달랐다. 이걸 이대로 팔아 치우는 건 내키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걸 어디다 쓴다…….”
[그야 당연히… 헙!]“뭔데?”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무시해! 헛소리 나온 거니까!]듣는 것만으로도 수상한 말이로군. 무슨 말을 하려던 거지?
[와아, 도시가 너무 예쁘다.]내 시선을 슬슬 피하던 녀석이 대놓고 도시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붙잡아서 더 추궁해 보고 싶은데, 교묘하게 도망치는 걸 보면 약삭빠른 녀석이다 싶었다.
나중에 물어보기로 하고 길을 걸었다.
북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도시 전체가 묘한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래서일까, 요즘에는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던 페이크 페이스를 뒤집어쓴 녀석들도 활보하고 있었다.
난 길을 걷던 남자의 얼굴 가죽을 대놓고 잡아 뜯어 버렸다.
“어억!”
찌익!
평범하던 남자의 얼굴 가죽이 벗겨지고 흉터로 가득한 험상궂은 얼굴이 드러났다.
외모만 봐도 뻔했다.
“빌런이네.”
우드득!
난 망설이지 않고 놈의 팔을 부러뜨리고 다리를 걷어차 엎어지게 만들었다.
“끄아악!”
각성자 전력이 대거 빠져나가서인가. 길거리에 빌런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수상한 녀석들이 쫙 깔려 있다.
한번 대청소를 해야겠는데?
[저기 도망간다!]난 주변을 훑다 도망치는 녀석에게 손을 뻗었다. 기뢰가 공간을 가로질러 두 다리를 수수깡처럼 부러뜨렸다.
사람으로 붐비던 거리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용용아, 더 없냐.”
[있어!]그때부터 청룡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쟤는 네가 쓰러뜨린 녀석과 같은 가루를 가지고 있는데?] [쟤도 얼굴에 이상한 걸 뒤집어쓰고 있어!] [어? 얘는 이상한 신호를 주고받는데?]그렇게 제압한 빌런의 숫자가 열 명이 넘었다. 나는 체포하러 올 각성자를 부른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상한 녀석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와! 이 인간들은 밥도 제대로 못 먹겠네, 불쌍해. 어쩌다 이런 사악한 인간에게 걸려서…….]“됐고.”
난 몰랐는데 이 녀석, 상당히 괜찮은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아본 거냐?”
[나? 원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어.]이거 완전 걸어 다니는 빌런 탐지기로군.
생각보다 쓸모가 있는데?
“왜 말 안 했냐?”
[너 같은 인간도 당당하게 활보해서 쟤들도 괜찮은 애들인 줄 알았지.]“…….”
이 용용이 자식이.
“앞으로 길 가다 빌런이다 싶은 녀석 있으면 눈빛 보내. 알았어?”
[귀찮은데.]“백두산으로 돌려보내 줘?”
[알았어. 할게.]그러면서 날 빤히 바라본다.
“…….”
[…….]왜 안 움직이지?
“뭘 보냐?”
[빌런이다 싶은 사람 있으면 눈빛 보내라며.]“헛소리 그만하고 앞장서라.”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