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진짜아! 이게 맞는 거냐고!”
거칠게 잔을 내려놓은 안나 크리스틴이 한탄을 터뜨렸다. 독한 위스키를 연신 들이켠 그녀는 이미 취기가 올라와 있었다.
제임스 리드가 그녀의 말에 호응하며 위로해 줬다.
“어쩔 수 없다. 그게 최준호니까.”
“내가 이 날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에! 그 노력이 이렇게 허무하게 스러지냐고. 얘 때문에 자존감이 무너지고 있어요.”
그녀의 불만은 타당했다. 탁월한 교섭가이자 협상가인 그녀는 가만있으면 넋을 빼앗겨 간을 빼먹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모를 이용한 설득에 능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최준호에게 성과는 전무했다. 그녀는 성공을 위해 절치부심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물론 그녀 스스로 기준이 너무 높은 거라고 제임스 리드는 생각했다.
“안나의 노력은 최준호에게 미국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 말길.”
“그걸로 만족이 안 되니 그렇죠. 난 걔가 필요하다는 거 탈탈 털어서 다 줬는데!”
신수나 비밀회의 이야기는 극비에 속하는 정보였다. 제임스 리드는 시기가 다소 이르다고 생각했지만 어차피 최준호가 알게 될 정보라 생각했다.
다만, 안나 크리스틴의 연이은 실패로 상부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이건 좋지 않다.
제임스 리드는 최준호를 상대하는 건에 있어서는 안나 크리스틴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 중이다.
“지금은 이게 최선이지.”
“하아.”
한숨을 푹 내쉬니 술 냄새가 진동했다.
“제임스가 한국에 계속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일단 재밌으니까. 최준호가 주는 것들은 미국에서 접하기 힘든 것들이다.”
특히 펜타와 관련된 연구나 곧 넘겨받기로 한 부스트는 미국에서도 손에 넣지 못한 것이다.
“그럼 한국에 계속 있으려고요?”
“내가 필요해?”
“당신의 존재는 언제라도 큰 도움이 되니까요.”
“그건 고마운 말이로군. 하지만 지금은 이곳에 있는 게 나아. 나를 위해서도, 미국을 위해서도.”
그를 보는 안나 크리스틴의 표정은 복잡했다.
“당신이 보기에 어떤 게 최선이죠?”
“강제력으로 최준호를 어찌할 단계는 지났어. 그동안 거둔 성과를 볼 때 최준호는 세계 최강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초인이지.”
“그럴 테죠.”
“이걸 다른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어. 최준호를 노리는 리그도, 저 높으신 분들도.”
“…….”
안나 크리스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갈 때 변치 않고 지지한다는 걸 보여 주기만 하면 돼. 한 번에 모든 걸 취하려고 할수록 최준호는 우리에게서 멀어질 거야.”
“그 말이 옳네요.”
불콰하던 안나 크리스틴의 표정이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길게 봐야 할 일이었죠.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까. 최준호도 제 매력을 알고 있지만 넘어가지 않기 위해 참고 있는 걸 테니까.”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전날, 최준호에게 붙잡혀서 골고루 굴려진 걸 잊어 먹은 건가.
아니, 어쩌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걸지도.
안나 크리스틴이 상처 받을 것을 염려한 제임스 리드는 진실을 조용히 묻어 주기로 결심했다.
* * *
자취를 하다 보면 ‘초파리 자연 발생설’이라는 걸 자기도 모르게 믿게 된다.
방문 단속을 철저하게 했음에도 어느 순간 방 안에 돌아다니는 초파리를 보고 있게 되니까.
그런 것처럼 오늘 하루 내내 돌아다니면서 백 명을 넘게 잡다 보니 ‘빌런 자연 발생설’이 떠오른다.
이 녀석들은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지?
내가 국가수호국일 때 지속적으로 소탕했고, 초인이 된 이후에 정다현이 빌런을 체포했는데 끝도 없이 나타난다.
역시, 북진이 이루어지면서 부족해진 공백이 문제가 되었구나.
마침 빌런 감별기도 생겼으니 오랜만에 힘 좀 쓰고 있었다.
하지만 빌런을 쥐 잡듯 잡다 보니 사소한 문제가 하나 생겨났다.
“회복제가 부족한데?”
평소보다 많은 체포로 인해 발생한 문제였다. 회복제가 부족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용량을 반으로 줄였지만 그것대로 문제가 발생했다.
“아악!”
체포하러 온 각성자가 빌런을 잡아끌자 붙었던 팔다리가 다시 부러진 것이다. 역시 정량을 사용하지 않으면 효과가 급감하는군.
“이, 이게 무슨…….”
각성자가 당황한 얼굴로 나와 빌런을 바라봐서 난 모른 척했다. 결국 각성자가 부주의해서 부러진 걸로 되었는데 살짝 양심이 찔렸다.
이세희한테 회복제를 농축액으로 만들어 달라고 해 볼까?
[미친 인간아, 이제 그만하자. 이제 약도 없어.]용용이 녀석은 한 바퀴 둘러보더니 말했다.
“주변에 눈에 띄는 녀석은 더 없고?”
[네가 쥐 잡듯이 다 잡아서 이제 없어.]“그럼 여기까지인가.”
좀 더 구석구석 둘러볼까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회복제를 보충하고 틈틈이 주변을 둘러보면 된다.
“수고했다. 쓸모 있네.”
[위대한 신수를 이렇게 하찮은 일에 써먹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이 용용이는 지나치게 자부심이 높았다. 저 콧대를 살짝 꺾어 놓고 싶은데, 천천히 방법을 찾아봐야겠군.
“너, 사람 정신이 이상한 걸 알아볼 수 있다고 했지?”
[응, 너 이상한 거 바로 알아봤잖아.]나는 어딘가에 숨어 있는 혈종이나 만득이, 광심이가 있어서 그런 거고. 버서커한테 데려가서 반응을 봐야겠다.
설마 놀라서 기절하는 건 아니겠지.
빌런 체포를 멈춘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윤희가 개성에 있어 오랫동안 비워진 집 안에는 싸늘함이 맴돌고 있었다.
엄마가 일주일에 한 번 들른다고 해도 사람 온기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인가 보다.
“천둥새 말인데.”
[걔는 왜?]“세냐?”
[설마 잡으러 가려고? 어려울걸. 걔는 초음속으로 이동할 수 있어. 인간의 속도로는 못 잡아.]“무슨 신수라는 녀석들이 싸울 생각은 없고 도망치는 기술만 대단하냐?”
청룡은 공간을 잘라 강퇴시키더니 천둥새는 초음속으로 도망치는군.
이래서는 사냥하기 어렵잖아.
오히려 용용이 녀석이 날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신수만 보면 싸우려고 하는 사람이 더 이상하잖아. 그리고 싸울 땐 과감하게 싸우지만 인간 너랑은 절대 안 싸우려고 할걸.]“왜?”
[넌 너무 사악해서 너랑 접촉하는 것만으로 오염이 된단 말이야. 신수라는 건 오랫동안 영기를 갈고닦은 존재인데 사악한 존재랑 어울리는 거 자체가 큰 손해야. 잔잔한 호수에 바위 하나 집어 던지는 거랑 같은 이치야!]용용이 자식, 선 넘는군.
날 무슨 아예 보균자 취급을 하는데.
보균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한번 맛을 보여 줘야 하나? 대뜸 손을 뻗어 용용이를 거머쥐었다. 실체가 없어 안 잡히다가 손에 포스를 실으니 잡힌다.
[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나 오염된다고! 안 돼! 살려 줘!]버둥거리면서 벗어나려고 하길래 살짝 놔줬다.
근데 신기하게도 용용이 몸에서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던 건가.
그럼 내가 사악한 거라고?
용용이 자식이 다른 걸로 꼬아서 말한 거겠지.
[진짜 미친 인간 감시하기 위해 내가 이런 수모를 감수해야 하다니.]그냥 사람 손 타면 저러는 거 아닌가?
다른 녀석에게 한 번 시켜 봐야겠다.
* * *
최준호팀의 존재 의의는 최준호가 잘되도록 돕는 것이다.
그중 첫 번째 목표가 바로 최준호의 이미지 개선이었다.
팀이 결성되기 전, 최준호에 대한 인터넷 여론은 그리 좋지 못했다.
과감하다 못해 잔인한 손속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했던 것이다.
특히 빌런과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겠다며 맹폭을 가하는 기자들로 인해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 진세정이 합류했다.
그녀는 최준호의 잘생긴 외모를 최전선에 내세우고, 아이돌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세계관 구축으로 탄탄한 팬덤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한 번 구축된 팬덤은 일당백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최준호가 일으키는 무수한 풍파 속에서도 고지전을 벌일 수 있는 이유였다.
“팀장님! 최준호 초인님에 대한 손속 논란 기사가 떴습니다.”
“바로 링크 공유하세요.”
오늘도 최준호를 향한 우려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백 명이 넘는 빌런들을 현장에서 즉결 심판하면서 과잉 진압을 했다는 논조의 기사였다.
링크를 클릭하고 기사에 접속한 진세정의 눈에 들어온 것은 최준호에 대한 옹호였다.
북진으로 인해 치안이 소홀해진 틈을 타 빌런들이 활개 치던 것을 제압한 게 뭐가 문제냐는 내용이었다.
“제대로 장작을 넣어 줘야지.”
혀로 입술을 축인 진세정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 내면의 ‘악질’ 본능을 끌어 올려 댓글을 작성했다.
국뽕거품초인최준호
-하여간에 최준호 빠들은 주장하는 게 천박하다니까. 지금 같은 현대사회에 저런 개백정 같은 과잉진압이 말이 되냐? 빌런이나 할 짓이지. 딱 봐도 최준호는 자기 스트레스 풀려고 조지는 거야. 속에 있는 빌런 본능을 억누르지 못한 거지. 조만간 거하게 실수 저지르고 빌런으로 전향할 거라 확신한다. ㅉㅉㅉ 최준호 팬들은 최준호 망신 자기들이 다 시키는 거 알아라. ㅋ
댓글을 달기 무섭게 찍히는 찬성과 반대.
그중 반대가 늘어나는 속도는 무시무시하다는 말로 모자랄 정도였다.
“페이스 좋은데?”
이렇게 악질이 까 줘야 반발심을 느낀 측이 옹호해야 할 이유를 찾아낸다.
흐뭇한 미소를 지은 진세정이 대댓글을 확인했다.
└얘 또 등장했네. 최준호 기사마다 매번 악플 달더라.
└너 그러다 최준호한테 걸리면 뼈도 못 추려.
└빌런 잡는 빌런이면 오히려 환영. 그 전에 너부터 잡힐 거 같다만.
└최준호는 빌런은 잘 때려잡으면서 왜 악플러는 안 잡는 거지?
└크크, 누군지 몰라도 최준호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어 보는군…!
악질이 등장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지 반대가 늘어나는 숫자와 대댓글 숫자가 폭발하기 직전이다.
진세정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기사를 찾아가 댓글을 달았다.
‘국뽕거품초인최준호’가 등장할 때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팀장님! 모든 댓글 수정 완료했습니다.”
“수고했어요. 어뷰징 기사 올라오는 거 확인해 줘요.”
“예!”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을 보며 진세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초인님한테 악플 달았다고 자랑해야지.”
그럴 때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최준호를 보는 것이 진세정의 낙 중 하나였다.
* * *
평양에서 정주호를 만난 당시, 정다현이 오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국가전선방위청 소속이라 함께 올 줄 알았더니 마물 사냥 실력의 부족함을 실감하고 정부 소속 사냥팀에 지원했단다. 늘 앞으로 나아가려는 정다현의 태도를 무척 높게 샀다.
알아보니 정부 소속 최정예팀 중 하나인 헬하운드에 들어갔단다. 나도 기억에 있는 팀이다. 늘 위험을 감수하면서 필요 이상의 성과를 거두려 하다 보니 종종 초인콜을 보내는 곳이지.
그곳에서 정다현이 많은 걸 얻어 오면 좋겠다.
청와대에 도착하니 대통령이 직접 마중을 나와 있었다. 주변에 기자들이 잔뜩 자리를 잡은 상태였는데 차에서 내린 내게 다가와 포옹과 함께 손을 굳게 잡았다.
“정말 고생이 많았네. 최준호 초인이 있어서 기념비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어.”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네.”
아무래도 사진을 찍어야 하다 보니 미소가 환한 감이 있군. 나는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청와대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한 번 고생이 많았네. 정말 대단한 성과였어.”
“운이 좋았습니다.”
과거로 돌아왔다고 해서 내가 모든 걸 다 아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집무실에 도착하니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자리한 천명국이 서 있었다. 북진으로 인해 연일 서류 폭탄이 밀려와서 간신히 숨만 쉬고 있단다.
“그래도 정주호 청장에게 인계해서 큰일은 덜어 놓은 상황입니다. 현지 주민들도 협조적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난 신수에 대한 내용을 전달할까 하다가 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류광철을 죽인 과정부터 시작해서 자발적으로 보낼 녀석들은 보내 주고, 협조를 선택한 녀석들과 함께 치안을 유지한 걸 알려 줬다.
[신수의 존재를 마음대로 발설하려 하다니. 그러다 저주를 받을 수도 있을걸?]…저렇게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더 입이 근질거렸지만 참아 주지.
“이룡화가 협조한 덕택에 수월하다는 말을 듣긴 했습니다.”
죽지 않기 위해 열심히 협조하나 보다. 판결 문제는 전적으로 법원이 정할 문제라 난 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약삭빠른 녀석이니 뭔가 사법 거래를 했을 수도 있고.
“최준호 초인의 공이 너무 커서 뭘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군. 바라는 게 있나?”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환수된 돈이 재투자되길 바랍니다. 투명한 집행이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그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지.”
쓴웃음을 지은 대통령의 대답이다.
이해가 안 된다.
그냥 자기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주어진 돈으로 최대한 효율을 낼 수 있도록 고민하면 되는 거 아닌가?
“욕심 안 내고 필요한 것에만 돈을 쓰는데요?”
“눈앞에 어마어마한 자금이 있는데 욕심이 안 생길 리가 없지.”
“제게 감사 권한을 주시면 됩니다. 부정이 일어나면 사후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사후조치라는 게 죽인 다음 조치를 취하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죠.”
설마 내가 사자성어도 모를까 봐.
[네 이미지가 그런가 봐. 저 늙은 인간이 네 사악함을 제대로 꿰뚫어 보고 있… 아악!]옆에서 깐족대는 용용이 녀석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조물딱거리면서 피로가 아예 얼굴에 내려앉은 천명국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직도 많이 바쁘십니까?”
“이제 바쁜 일은 끝나 갑니다. 오늘 일 처리만 마치면 한시름 놓을 수 있습니다.”
정주호가 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한다. 하긴, 나도 정주호가 평양에 와서 다 떠넘기고 돌아올 수 있었다.
“아…….”
나는 천명국을 보다가 그가 기프트 탐색의 대가로 휴가를 부여받았다는 걸 떠올렸다.
쉬어야 할 시기에 일거리를 떠넘겨 준 격이 되었군.
이제 좀 편해진다니 자기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
난 그에게 휴식을 권했다.
“다행이네요. 이번 기회에 휴가를 즐기는 게 어떠신지.”
“내일 마누라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입니다.”
“어?”
“한 달이 다 지났다는 의미입니다.”
“…….”
시간이 벌써?
그제야 천명국의 얼굴에 왜 꿈도 희망도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괜찮으신 거죠?”
“안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