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최준호가 돌아가고, 대통령이 천명국을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그의 얼굴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쩌다 보니 천 실장의 휴가를 다 날려 먹게 되었군.”
“저는 괜찮습니다.”
“진짜 괜찮은 건가?”
“…….”
천명국은 침묵으로 빈말이었음을 실토했다. 모처럼 주어졌던 휴가가 허망하게 날아갔으니 그 상실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역시 집에 돌아갔을 때 아무도 없는 건 쓸쓸하다.
그렇게 정신 승리를 해 봤지만 역시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다.
대통령은 그의 마음을 눈치 챘다.
그 또한 유부남이다.
“조만간 내가 파견 기간을 며칠 만들어 주지. 그때 한적한 곳으로 가서 좀 쉬게.”
“예? 하지만…….”
“내 옆에서 충실히 보좌해 줬는데 그 정도는 해 줘야지. 대신 자잘한 업무 몇 개가 있을 테니 빨리 끝내고 푹 쉬게. 휴가가 아니라 출장이야.”
“…감사합니다.”
“부려 먹는 입장에서 이 정도는 해야지.”
대통령과 천명국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역시 유부남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 유부남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현실로 돌아오자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문제는 자금 문제로군.”
“예, 분명 잡음이 나올 것입니다.”
“최준호가 조금 여유 있게 허용해 줬으면 좋겠지만 힘들겠지?”
“그걸 기대하다가 큰 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흠, 나도 같은 생각이란 말이지. 그렇다면 쉽지 않겠어.”
대통령은 정치인도, 기업도 모두 믿지 않았다. 괜히 큰돈을 보고 욕심을 냈다가 그들의 머리가 모조리 터져 버리는 걸 원하지 않았다.
비리라는 게 어디 하지 말라고 안 하게 되던가.
최준호라는 강력한 억지력이 존재하더라도 돈을 눈앞에 두면 언제든지 태도가 바뀔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딜레마로군. 점점 우리가 감당하기 벅차게 흘러가고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심해져서 차라리 떠났으면 하는 마음이 생길 때입니다.”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아야겠지.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니.”
“대책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대통령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아니, 이건 내가 힘을 쓰도록 하지. 아, 자네를 배제하는 게 아닐세. 다른 전문가가 있을 테니 그 전문가를 초청한 뒤 같이 논의하도록 하는 게 낫겠어.”
“예.”
“부디 걱정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늘진 대통령의 표정에 천명국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미국에는 오랫동안 유지된 사교 모임이 존재한다.
폐쇄적이면서 동시에 개방적인 그들은 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를 유지해 온 회원들과 새롭게 강자로 발돋움한 회원들을 받아들여 영향력을 유지해 왔다.
서로 친분을 나누고 혼인 관계를 맺는 등, 공고한 동맹 체계를 구축하여 세계정세를 논의하고 이해관계를 조율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 사고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같은 이름으로 칭해지기도 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모임을 간단하게 ‘파티’라고 불렀다.
평소에는 주로 사업 이야기가 오가지만 그 여파가 전 세계를 휩쓸 때도 있었다.
그들은 각자 개인용 원형 스탠딩 테이블에서 칵테일이나 위스키를 마시며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다.
그중 사자 가면을 쓴 덩치 큰 사내가 가장 중심에 선 하얀 유령 가면 남자에게 물었다.
“리그의 ‘그’는 뭐라고 합니까?”
“현재 삼악은 칩거 중에 있으며, 활동 규모를 극도로 축소시켜 놓은 상황이라고 하더군. 리그 전력도 활동을 멈추고 있는 상황이라 무슨 꿍꿍이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지.”
“그렇다면 리그에 잠입한 의미가 없는 거 아닙니까?”
“아니, 리그는 여전히 위협적인 세력이니 지켜보는 게 맞아. 아르고스는 만만한 녀석이 아니라서 어설픈 움직임이 이쪽의 틈으로 드러날 수 있어.”
“그건 안 좋은데.”
“리그는 우리 눈을 피하고 이만한 세력을 일궈 냈지. 그들을 얕봐서는 곤란해.”
“얕보지 않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지워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고?”
“…….”
사자 가면이 침묵했다.
과하다 못해 광오한 자신감에 유령 가면이 낮게 혀를 찼다.
리그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니 이성적인 처리가 불가능할 때가 많았다.
중간에서 제지하지 않으면 폭주해 버리고.
골치 아픈 녀석이라 생각하면서도 저 실력을 가만히 놓아두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했다.
“리그 문제는 확실한 정보를 얻어내면 그때 움직이도록 하고.”
유령 가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늘 주제는 다른 거니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지.”
파티 호스트인 유령 가면의 목소리에 장내 분위기가 정리되었다.
오늘 파티 주제는 리그에 관한 내용이 아닌 한 사람에 관한 것이다.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파티에서 고작 한 사람을 주제로 올려놓은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그는 오늘 모임을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불과 1년 동안 보여 준 행보는 세계정세를 바꿔 버릴 정도로 강력한 파급력을 지녔다.
“다들 알다시피 ‘최준호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를 놓고 얘기하지. 좋은 의견이 있다면 자유롭게 개진해 보게.”
보통이라면 한 사람의 이름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준호의 활약은 그들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을 만큼 대단했다.
특히 북한 지역으로 쳐들어가기 전, 플러스 단계 마물 둘을 동시에 사냥한 것이나, 류광철 정권을 붕괴시킨 것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저곳은 리그조차 공략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자신들조차 회유하려던 게 전부였다.
누구도 힘으로 이만한 성과를 낼 거라 생각지 못했다.
세간에서 최준호는 이미 세계 최강이라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질주하는 중이다.
지금이라도 제어하지 않으면 미래에 큰 우환이 되어 나타날 것이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탄생한 게 리그였던 것처럼.
사자 가면이 말했다.
“녀석은 큰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홀로 강해 봤자 독불장군일 뿐이니 고립되도록 유도하고 기회를 엿보다가 제거하면 됩니다.”
“회유도 안 해 보고 제거를 한다고?”
사자 가면의 말에 유령 가면이 마뜩잖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어차피 회유가 안 될 녀석인 건 의장도 잘 알지 않습니까? 그래서 리그를 동원해서 놈을 제거하려고 했던 거고. 놈들도 결국 실패했지만.”
“…….”
실제로 최준호를 제어하기 위해 리그도, 중국도 움직였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제 동아시아 지역에서 최준호를 견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불가. 제거하려면 우리도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킁!”
사자 가면이 마뜩잖은 기색을 풍겼지만 유령 가면은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저 녀석 말대로 해야 된다면 세계 절반을 불살라도 모자랐다.
“제어할 수 없다면 더 키우는 건 어떨까요?”
고양이 가면을 쓴 여인의 말이었다. 얼굴을 가리고 있음에도 음색과 몸매만으로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유령 가면이 흥미를 드러냈다.
“어떻게 키운다는 거지?”
“최준호를 대한민국이 감당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거죠.”
“체급을 높인다?”
“네.”
“방법은?”
“여러 가지예요. 우선 사자 가면이 아는 척하면서 제거하자고 말했지만 최준호는 자체적으로 이미지를 관리하고 있죠. 그래서 대한민국의 기득권은 최준호를 싫어하지만 시민들의 지지는 높아요. 이걸 단기간에 꺾어 낼 수 없을 거예요. 그러니 사자 가면이 원하는 상황이 만들어지지도 않을 테고.”
“킁!”
사자 가면이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고양이 가면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 대한민국이 감당하기 어렵게 만드는 거죠.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관대한 면이 있어서 주변에서 띄워 주면 금방 제 주제를 망각하곤 해요. 아직 어리고 초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최준호는 이 부분을 놓고 정부, 기득권과 많은 충돌을 일으킬 거고요. 당연히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최준호의 요구가 많아질수록 부담을 느낄 테고 차라리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겠죠.”
“나는 방법을 물었다.”
“급하시기는.”
유령 가면의 재촉에 고양이 가면도 더 이상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거를 꼽아 보자면.”
말을 멈춘 고양이 가면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걸렸다.
“세계정세를 흔들어 볼 겸, 새롭게 레벨 9를 만들어 최준호도 포함시킨다면 어떨까요?”
* * *
사람이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 날이었다.
빌런을 상대할 때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나는 내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그것이 천명국의 휴가를 앗아 가는 결과를 낳을 줄이야.
한 달을 미끼로 내세워 놓고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한 감이 있었다.
[그런 것치고 하나도 안 미안해하는 거 같은데?]덤으로 이 용용이 녀석이 깐족대는 거만 보게 되었고.
“됐고, 넌 나랑 얘기 좀 하자.”
[뭔데? 사악한 인간아.]“저번에 이거 사용법을 얘기하려다 말았지?”
난 용용이가 줬던 마물의 심장을 꺼내 들며 말했다.
[어, 그, 그랬나?]급속도로 어색해지는 목소리. 용용이의 눈알이 좌우로 굴러가는 게 다 보였다.
“발뺌할 생각하지 마라.”
[안 돼! 오지 마!]내가 손을 뻗자 기겁하며 뒤로 피하는 용용이. 녀석은 허공을 배회하며 내 눈을 피하려고 했지만 끝끝내 나와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진짜 들어야 해?]“물건 줘 놓고 사용법을 알려 주지 않는 건 어느 나라 수법이냐?”
[입단속을 했어야 했는데…….]우울한 표정으로 웅얼거리던 녀석은 몇 번이나 머뭇거리더니 내게 말했다.
[저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순하고 빠른 수복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그래서?”
[여기까지 말했는데 모르겠어?]“계속 말해 봐.”
[그러니까 네가 포스를 다 써도 저 심장만 있으면 자유자재로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다는 이야기야.]그렇단 말이지?
대충 어떤 원리인지 알겠다.
내 포스가 텅텅 비어도 이것만 있으면 추가로 포스를 더 사용할 수 있다는 거로군.
그럼 내 포스 보유량이 투뿔 마물급으로 늘어나게 되는 건가.
포스량은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많아서 나쁠 건 없지.
“일종의 보조 배터리란 말이로군.”
[와, 그렇게 비교한다고?]“보조 배터리가 뭔지나 아냐?”
[아니, 몰라! 근데 네가 비유하는 거니까 안 좋은 거겠지!]이상한 데에서 정확한 부분이 있는 녀석이다.
아무튼 다른 걸로 활용하지 않고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효용이 있다는 건 알겠다.
“그래서.”
[응?]“여기 있는 포스를 어떻게 빼내는 건데?”
[그것도 알려 줘야 돼?]“자꾸 밑장 빼기를 하네?”
나는 한참 동안 용용이를 괴롭힌 끝에 마물의 심장과 연결해서 내 힘처럼 활용할 수 있는 ‘링크’라는 수법을 알게 되었다.
* * *
나는 개인적으로 사악한 인간이라는 용용이의 평가에 동감하지 않는다.
산속에 틀어박혀서 류광철과 협력하던 녀석이 나더러 사악한 인간이라느니, 미친 인간이라느니 이런저런 소리를 떠들다니. 그 말을 믿고 영향을 받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녀석이 이래저래 쓸모가 있는 건 사실이다.
[으와아악! 이딴 걸 왜 먹어!]아울보어 된장 전골을 보고 경악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비주얼은 이상할 수 있어도 맛은 굉장히 훌륭한 걸 녀석만 모르고 있다.
그러더니.
[이건 괜찮은뎅? 톡 쏘는 맛이 일품이야.]70도가 넘는 보드카를 보고 눈을 번뜩이더니 맛있다며 활개를 친다.
그때부터 독한 술에 눈독을 들이는데, 이걸 미끼로 길들이니 고분고분해지는 것이 나쁘지 않다 싶었다.
근데 신수도 술 마시면 취하나?
[안 취해!]녀석이 그렇다고 하니 그렇다 쳐 주고.
일정이 비어 있는 나는 용용이의 실력을 확인해 볼 겸 버서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자칭 신수가 버서커를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했다.
녀석은 강원도 영월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어디냐 묻는 내 연락에 당당하게 읽씹을 했다.
누가 보면 악플 달고 잠수라도 한 줄 알겠다.
읽씹은 혹독한 체벌로 다스려 줘야지.
어차피 숨어 있어 봤자 위치 추적 앞에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한가롭게 캠핑을 즐기던 녀석은 차에서 내리는 날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긴 또 어떻게 알고 온 거지?”
“다 방법이 있어.”
“위치 추적기라도 붙여 놓은 건가.”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위치 추적기는 네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오는 걸 참아 냈다.
근데 이쯤 되면 스마트폰이 문제라는 걸 알 때도 되지 않았나.
저 정도면 컨셉이 아닐까 싶은데.
“잘 지냈냐.”
“여느 때와 같았다. 돌아다니다가 빌런이 보이면 잡고 마물도 사냥하고.”
충실하게 보냈군. 별거 아닌 거처럼 얘기하지만 나를 향해 칼을 갈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용건을 봐야겠군.
용용이.
[응?]쟤는 얼마나 미쳐 있냐?
세상에 저렇게 미친 인간이 또 있나 싶어 까무러칠지도 모르겠군.
[안 미쳤는데?]응? 지금 무슨 소리지?
[안 미쳤다고.]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얘는 네 냉장고에 있는 걸로 따지면 유통 기한 하루이틀 지난 음식 있지? 아직 먹을 수는 있는 거! 그런 거야.]그럼 나는?
[너는 유통 기한 3년 정도 지난 거야! 그건 절대 먹을 수 없잖아! 먹으면 죽으니까! 이렇게 비교하니 딱이네! 나 좀 대단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