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누구는 유통 기한 1~2일 지났고 누구는 3년 지났단다.
오늘부로 용용이 녀석은 나한테 신뢰를 잃었다.
[사실을 말해 줘도 자꾸 뭐라 해.]궁시렁거리는 녀석의 말은 살포시 무시하고.
이렇게 찾아왔는데 그냥 지나가면 섭섭하지.
난 버서커와 한판 붙었다. 한가롭게 캠핑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녀석이 가만히 놀고 있는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지.
실제로 이번 대결도 꽤 손맛이 있었다.
하지만 혜광심어가 생겨난 덕분일까. 나는 내 스스로에게 되뇌는 것조차 강한 결속이 되어 힘으로 발현되는 것을 느꼈다.
만독불침과 혜광심어를 얻으면서 버렸던 포스연성과 테더가 사라졌음에도 힘의 수발이 더 자유로워지고 위력은 배가 되었다.
[사악한 인간이 왜 이렇게 강한 거야.]용용이 녀석이 주변을 맴돌며 귀찮게 굴었지만 버서커를 두들겨 주는데 방해가 되진 않았다.
꽤 엉망이 되어서 친히 회복제를 뿌려 줬다.
“야, 괜찮냐?”
“누구한테 두들겨 맞은 후라 괜찮을 리가 없지.”
앓는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킨 녀석은 날 보더니 한숨을 내쉰다.
뭐냐, 왜 그렇게 한심하다는 듯이 보는 거냐.
“설마 내가 너 패러 온 줄 아는 거냐?”
“아니었나?”
“아닌데.”
“그럼 날 찾아온 이유가 뭐지?”
용용이가 널 미친놈으로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물론 그것만은 아니고.
당연히 다른 목적도 갖고 있었다.
이게 버서커를 찾아온 진짜 이유다.
“이제 빌런 노릇 그만할 생각 없냐?”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 빌런 버서커가 아니라 사회인 이광진으로 돌아올 생각 없냐고.”
내가 봤을 때 버서커는 지나치게 자유분방해서 빌런이 되었을 뿐이다.
초인이 된 지금, 그 정도 자유는 충분히 주어져도 무방하다.
애초에 빌런 같지도 않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이로군.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물어봐도 되나?”
“언제까지 이렇게 돌아다녀 봤자 좋을 게 없어 보여서. 일일이 찾아다니기도 귀찮고.”
현재 버서커의 실력은 리그 12궁과 일전을 벌여도 동수를 이뤄 낼 정도라고 한다. 이 정도면 내 밑에 둬서 부려먹기 충분한 수준이지.
[앗! 뒤에 말에 진심이 7배 정도 더 느껴졌어!]“왠지 뒷말이 진심인 거 같군.”
이것들이 쌍으로 내 생각을 눈치챘군.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좋을 대로 생각해.”
“나도 반쯤 억지로 빌런 생활을 하고 있으니 복귀할 수 있다면 좋겠지. 하지만 내 복귀는 불가능하다.”
“왜?”
“대한민국 초인 붉은 뱀 김영환을 죽인 게 나다. 초인을 죽인 빌런이 국가 소속 초인으로 복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무리 세탁을 해도 가능한 게 있고 아닌 게 있다.”
한때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근데 생각해 보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 본다.
“안 될 건 뭔데?”
“뭐?”
굳이 복잡하게 생각할 게 있나?
당장 앞만 보고 지르면 된다.
만약 김영환이 정의로운 초인이었다면 부담이 되었을 테지만 실상은 끝까지 추하게 노욕을 부렸던 노인네고.
“어차피 김영환은 돈만 밝히는 실력도 없는 초인인데 그런 비리 종합 세트 영감 죽였다고 무슨 문제가 생기겠냐?”
“그야 그 녀석과 연관된 녀석들이…….”
“걔들이 네 상대는 되고?”
“당연히 안 된다.”
“앞에서 깐족거리면 싹 다 죽여 버리면 되잖아.”
이권을 죽어라 챙기던 영감과 상종하던 사람이라면 죽일 놈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사람들하고 안 얽히면 그만이고. 지금 말하는 건 국가에 소속돼서 나랑 일하자는 이야기다.”
“…….”
[와, 사악한 인간이 입도 잘 터네.]용용이 자식이 뭐라고 하건 말건 나는 버서커의 대답을 기다렸다.
처음에는 심각하던 녀석이 납득이 되었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듣고 보니 그렇군. 틀린 말이 없어.”
“당장 결정하라는 거 아냐. 천천히 생각해 봐.”
“알았다. 근데 넌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게 있군.”
“뭔데?”
“너와 일하는 게 빌런 생활보다 더 끔찍할 수 있다는걸.”
[와! 정답!]“…….”
지금 한판 더 붙자는 건가.
내 눈빛이 살벌하다는 걸 느꼈는지 버서커가 말을 보탰다.
“물론 겪어 보지 않아서 모르는 일이지. 지금보다 더 나을 확률도 높고. 네 제안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그래, 좋은 대답 기대하지. 그럼 난 간다.”
여기 온 목적도 다 이뤘고. 용용이 녀석이 나한테 사악한 인간이니 미쳤느니 하는 것도 전부 엉터리라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면 되겠다.
[나 진짜로 실체를 보고 말하는 거라니까? 너 유통 기한 5년 지난 걸로 해 주려다가 줄여 준 거야.]* * *
-사냥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오빠가 조언해 준 거 매일 되새기면서요.
정다현은 순항하고 있다. 헬하운드 팀에 소속되어 제 몫을 해내기 벅차다고 하면서도 마물을 상대하는 것에 빠른 속도로 적응하는 중이란다.
뭐든 최선을 다하니 발전 속도가 빠르고. 무엇보다 마물의 모성애를 이용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았던 것에서 가능성을 엿봤다.
정다현의 사냥 실력은 일취월장할 것이다.
“잘해 봐. 기대하고 있으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편하게 연락하고.”
-네, 감사해요!
정다현도 그렇고 이세희나 윤희도 모두 자기 영역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
개성 쪽 사냥은 상당한 진척이 있어서 현재 길드들이 연계하여 평양으로 향하는 길을 개척하고 있단다. 어찌 보면 정주호가 고립되어 있는 형국인데 이 부분도 조만간 해결이 되겠군.
통화를 마친 나는 제임스 리드가 있는 연구실로 향했다.
“준호! 어서 와! 졸라 오랜만!”
“연구는 잘 되어 가냐.”
“안 그래도 성과가 있어서 졸라 연락하려고 했어! 잠깐만 기다려!”
제임스 리드는 연구실 한편에 놓인 병을 내게 들고 왔다.
“펜타 개량형이야! 마약 성분을 제거하고 각성 능력을 살리는 데 성공했어.”
“그래?”
효과가 얼마나 좋은지 한번 확인해 볼까?
나는 병을 받아 들어 뚜껑을 열고 곧장 만독불침을 발동했다.
치이익!
만독불침 발동과 동시에 내용물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건 마약 성분이 남아 있다는 증거였다.
직접 복용하지 않아도 성분 분석이 가능하군.
새로운 사용 방법 하나를 확인했다.
만독불침이 내게 칭찬해 달라는 듯 꿈틀거렸다.
“마약 성분 남아 있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전보다 성분은 약해졌어. 하지만 약효는 남아 있고.”
“아, 졸라 망했네!”
망연한 표정이 된 제임스 리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빠르게 개량한 것이긴 했다. 좀 더 기다리면 내가 원하는 형태가 나오긴 하겠군.
“그래도 열심히 했으니 부스트는 주지.”
“진짜? 땡큐!”
“대신 단독으로 연구하게 줄 순 없고, 신성길드 연구소랑 공유할 거야.”
“난 상관없어! 이걸로도 졸라 만족해!”
참 소박한 녀석이로군. 저 왕성한 호기심과 뛰어난 두뇌가 결합되어 지금의 마초맨을 만든 건가.
연구소에 틀어박혀 있다고 알려졌는데 저 근육이 여전한 걸 보면 보통 집념이 아니다.
“그리고 준호, 지금 정세가 심상치 않아.”
“마물 위협이 하루 이틀이냐.”
“그런 게 아냐.”
“그럼?”
“이걸 말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졸라맨, 미국에서 뭔가 전해 들은 게 분명하다.
“미국에서 뭔가 준비하고 있어. 그게 준호에게 졸라 귀찮은 일이 될 수도 있고.”
“미국이 뭘 결정한다고 내가 귀찮아질 게 있나?”
“있어. 미국이니까.”
내가 볼 때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좀 과한 거 같은데. 미국이 현존하는 최강대국이지만 느슨한 체계에서 내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강제력이 아니야. 강제로 준호를 움직일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내가 말하는 건 문화적인 면을 말하는 거야.”
미국이 곧 표준이 된다는 그런 의미인가 보다.
약간 유행 같은 건데, 내가 굳이 안 따르면 그만이다.
가끔 생각하는데, 뭔가 내가 시류에 편승할 거라 생각하는 녀석이 많았다.
“참고하지.”
“준호는 태평해서 문제야.”
알겠다고 해도 궁시렁거리고 별 신경을 안 써도 궁시렁거리고 어디에 장단을 맞추란 건지.
“그리고 크리스틴 말인데.”
“안나 크리스틴?”
“자기가 준호한테 어필을 전혀 못했다고 졸라 실망하고 있어. 한번 찾아가서 위로해 주면 안 돼?”
대충 어느 포인트에서 실망했다는 건지 알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왜 내가 위로를 해 줘야 하는 이야기로 흘러가는 건지 모르겠다.
난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내가 왜?”
“엉?”
“내가 애인도 아닌데 위로를 왜 하냐고.”
무슨 사탕 뺏긴 어린아이 위로해 주는 것도 아니고.
“…….”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은 스스로 딛고 일어나야 더 강해지는 법이야. 너도 더 신경 쓰지 말고 조용히 지켜봐.”
사람이 자기 스스로 상처를 극복하는 맛이 있어야지.
“아, 알았어.”
제임스 리드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진세정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청와대에 올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순간이 저도 모르는 사이 훨씬 빠르게 찾아왔다.
“어휴, 떨려라.”
자신을 부른 사람이 무려 대통령이었다.
상사인 최준호가 대통령과 자주 만난다고 해서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막상 혼자 만나려니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세게 뛰는 기분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딱딱한 격식이 역시 국가 원수가 머무는 곳다운 느낌이었다.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간 진세정은 마침내 대통령을 볼 수 있었다.
막상 처음 본 대통령은 뭐라고 해야 할까, 친근한 옆집 할아버지 같았다. 아니, 자기 아버지보다 큰형님뻘이니 큰아버지라고 해야 되나.
굳어 있는 진세정을 향해 대통령이 미소 지어 보였다.
“반갑습니다, 진세정 팀장. 전한철입니다.”
“네, 넵! 처음 뵙겠습니다! 진세정입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히 앉아요.”
“넵!”
겉모습과 달리 감히 범접하기 힘든 위엄이 있었다. 역시 대통령이다.
“요즘 일하는 건 어떻습니까? 전혀 다른 분야던데.”
“최준호 초인님께서 존중해 주셔서 즐겁게 일할 수 있습니다.”
“그거 다행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자신을 부른 이유가 뭘까?
궁금함을 느낄 무렵, 대통령이 말했다.
“내가 오늘 진 팀장을 부른 건 재밌는 방법으로 최준호 초인을 서포트하고 있어서입니다.”
어떻게 안 걸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잘못한 걸까?
진세정은 본능적으로 목을 움츠리며 눈치를 보았다.
“혹시 문제가 되는 걸까요?”
“어딜 가나 선을 아슬아슬하게 침범하는 건 발생할 수 있지요. 진 팀장의 방법을 터치할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넵, 감사합니다.”
“다른 건 아니고 진 팀장에게 조언을 듣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떤 걸까요?”
대통령이 자신에게?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표정이 싹 바뀌었다.
“최준호 초인에 관한 겁니다.”
“…웬만한 건 대답해 드릴 수 있지만 민감한 내용이라면 말씀드리지 못할 거 같아요.”
“그건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통령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안에서 다급한 걸음으로 비서관이 들어오더니 귓속말로 속삭였다.
“…….”
대통령의 표정이 굳자 진세정도 덩달아 긴장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터진 듯했다.
“죄송합니다. 급한 보고가 올라와서. 아무래도 이건 진 팀장이 알아 둬야 할 일이군요.”
“제가요?”
비서관이 들고 온 서류를 보고 나서 의문이 풀리게 되었다.
미국과 세계 초능력자 연합에서 레벨 9를 새롭게 신설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 * *
‘좋지 않군.’
대통령은 속으로 혀를 찼다.
마침내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미국과 세계 초능력자 연합은 한통속이라 봐도 무방했다.
당장 레벨 9 승급 대상으로 십대초인과 최준호가 포함되어 있는 게 그걸 증명했다.
이런 일이 발생할 것 같아 진세정을 불렀는데 미국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다.
대통령은 진세정에게 자료를 공유했다.
“사실 진 팀장의 힘을 빌리려고 했던 게 이 부분입니다.”
진세정, 아이돌 전문가. 뛰어난 비주얼 아트 디렉터인 그녀가 최준호를 담당하게 된 게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거둔 성과는 눈부셨다.
최준호의 사회적 평판은 진세정의 영입 전과 영입 후로 나뉠 만큼 그녀의 활약은 굉장했다.
고작 아이돌 전문가를 청와대로 부른다며 참모들은 반대했지만 대통령은 진세정의 능력을 믿었다.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겠네요.”
서류 내용을 다 읽은 진세정이 한탄했다.
“우리가 걱정하던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네, 말씀대로 문제가 생길 거예요. 이건 일종의 명예직이라 보거든요. 보통의 경우라면 거절하기 힘들죠. 아이돌 케이스로 바꿔 보면 기존 팬과 신규 팬의 갈등을 일으키는 방식이고요.”
“아이돌?”
“네, 아이돌이요. 자기만의 소중한 아이돌이 최고가 되어 가는 것, 분명 기쁜 일이죠. 하지만 점점 내 손을 벗어나는 거 같아 불안감과 박탈감을 느낄 수 있어요. 이 마음을 단단히 붙잡지 않으면 방치당한다고 생각해서 실망한 팬들은 떠날 수 있고요.”
진세정이 말하길, 여기에서 기존 팬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했다.
신규 팬은 외국 팬이고.
일단 비유는 그럴 듯했다.
“계속 말씀해 보십시오.”
“레벨 9가 명예직에 가까운 만큼 최준호 초인님이 레벨 9가 된다면 지금보다 대의를 추구하도록 강요받을 거예요. 이건 우리 초인님과 어울리지 않죠. 자연히 더 많은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요. 만약 초인님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 외국에서는 비난 여론을 조성할 거예요.”
“음!”
흥미로운 설명이었다.
그 반응에 탄력받은 진세정이 신나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타돌 팬덤에서는 경쟁 관계에 놓인 그룹을 분열시키기 위해 기존 팬과 신규 팬들이 섞이지 못하도록 분란을 조장해요. 이게 심해지면 그룹 내 멤버들에게 영향을 끼쳐서 팀이 깨지기도 하죠.”
여기에서 깨지는 건 최준호와 대한민국의 관계고.
진세정이 서류를 툭툭 두드렸다.
“이 레벨 9라는 건 최준호 초인님을 대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가 볼 땐 목줄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보이네요.”
판단이 날카롭다.
대통령은 진세정을 초청한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레벨 9라는 먹음직스러운 미끼 앞에서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있을까.
“대처 방법이 있겠습니까?”
“네, 당연히 있죠.”
“정말입니까?”
“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엎어 버리면 되거든요. 아이돌 세계에 비하면 이 정도 음모는 귀엽네요.”
진세정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