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대통령과 진세정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당초 예정되어 있던 다음 스케줄을 취소할 정도였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대통령님을 뵙게 되어 영광이었어요.”
“판을 엎는다는 진 팀장의 발상은 과격하면서도 참신했지. 부디 최준호 초인을 잘 제어해 주시오.”
그 말에 진세정이 고개를 저었다. 대통령의 얼굴에 의아함이 서렸다.
무슨 말을 잘못한 건가.
“제 말이 주제넘을 수도 있지만 초인님을 제어한다고 생각하시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해를 해야죠.”
“이해?”
“네. 이해요. 초인님이 진정으로 바라는 게 어떤 건지, 그걸 이해하는 게 필요해요. 제 의지로 초인님을 휘두르는 게 아닌 초인님의 결정이 최선의 결과가 나오도록 돕는 거예요.”
“돕는다, 어려운 말이로군.”
“하지만 대통령님이시라면 가능하시겠죠?”
“가능하다고 말해야 할 거 같은 분위기입니다만.”
“하실 거라 믿으니까요.”
“진 팀장의 말에 내가 그동안 착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주의하지요.”
“너그러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진세정이 밖으로 나갔다.
“…….”
대통령은 진세정이 돌아가고 나서도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다음 일정을 알려 주기 위해 안으로 들어왔다가 사색이 길어지는 것을 보고 천명국이 걱정을 드러낼 정도였다.
“대통령님?”
“아, 내가 생각이 깊어졌었군. 다음 일정은?”
“취소하셨습니다.”
“그랬었지. 헷갈렸군.”
“진세정 씨와의 대화가 마음에 안 드셨는지?”
“아니, 오히려 상당히 마음에 들었지.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음모와 계략이 횡행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으니까.”
특히 마지막에 들었던 최준호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은 인상이 깊었다.
그동안 몇 줄짜리 자료만으로 이해하려 한 게 전부니까.
인간적으로 유대를 쌓아 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대통령은 살짝 반성했다.
“천 실장은 아이돌에 대해 아나?”
천명국은 고개를 저었다.
“대략적인 것밖에 모릅니다. 당장 아는 아이돌이라고는 20년 전 데뷔한 아이돌이 전부라…….”
“그렇군. 그게 일반적인 인식일 테지.”
“달리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
“오늘 대화를 나눈 진세정 팀장, 상당한 능력자더군.”
“그렇습니까?”
“왜 최준호가 그렇게 이미지 개선에 성공했는지 알 수 있었어. 보는 시야가 굉장히 날카로워. 사건의 본질을 정확하게 보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역량이 있더군. 본인은 겸양을 보이고 있지만. 최준호가 아이돌 전문가라는 걸 알고도 편견을 갖지 않고 포용했기에 이런 성과가 나왔던 거로군.”
천명국은 진세정에게 대통령이 상당한 인상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주얼 아트 디렉터라고 했던가. 아이돌은 아이돌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자신의 편견일 수도 있겠다.
“능력이 있다면 최준호 초인을 잘 유도하도록 친해져야겠습니다.”
“아니, 그걸 바라지 않더군.”
“그럼?”
“지금보다 최준호를 이해하길 바라더군. 최준호가 진짜 바라는 게 뭐일 거 같나? 레벨 9? 아니면 현상 유지? 더 나은 대우?”
“…….”
“어쩌면 우리 입장에서만 생각하려고 해서 거리를 좁힐 수 없던 걸지도 모르겠어.”
“어떤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다행인 건 문제가 터지기 전에 알아차린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에게 깨달음을 준 진세정이 있던 곳에 호기심이 생겼다.
“아무래도 아이돌 세계를 살펴봐야겠어.”
정말 진세정이 말한 대로 그렇게 스펙터클한 세계라면 들여다보고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해 보는 게 어떤가?”
“아, 알겠습니다.”
그에 반해 전혀 생각이 없었던 천명국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 *
대통령이 진세정을 불렀다는 소식을 들은 건 사무실을 방문하면서다.
갑자기 청와대에서? 드디어 청와대가 진세정의 유능함을 알아본 건가 싶었다. 설마 스카웃 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설마 진세정도 이직한다고 말하려나? 연봉을 높여 준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높여 줘야 하는 건가? 하필 이세희가 바쁜 때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머리가 살짝 아파 오는군.
능력 있는 사람을 고용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싶었다.
이세희는 잦은 연봉 상승이 결코 좋지 않다고 말했고, 팀 내 인원 화합과 케미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로 복귀한 진세정은 내 걱정이 기우라는 걸 알려 주기라도 하듯 청와대 방문 소감을 밝혔다.
“재밌었어요.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분이시라 권력의 정점에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TV에서 볼 땐 인상 좋은 분이신 거 같았는데.”
“청와대에서 스카웃 한 게 아니었습니까?”
“청와대가 저를요? 에이, 말도 안 돼요.”
“그럼 다행입니다.”
“걱정 마세요. 저는 지금이 더 좋거든요. 세상이 모르는 초인님의 모습을 아는 것도 재밌고.”
왠지 저 말은 무섭게 들리는데, 착각인가.
날 위해서 악플을 다는 거겠지. 설마 진심이겠는가.
“이미지가 좋았나 봅니다.”
“네. 새로운 세상을 엿본 기분? 근데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레벨 9 신설에 대한 이야기 들으셨어요?”
“들었습니다.”
그 소식이 알려지기 무섭게 내 스마트폰에 불이 나는데 모를 리가 있나.
그나저나 레벨 9라, 솔직히 내게 별로 감흥이 없던 내용이다.
현재 레벨 8이고 얼마 후에 레벨 9가 되면 나한테 달라지는 게 뭘까.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귀찮은 일만 늘어날 거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왜 내가 할 것처럼 생각하는 걸까.
내가 과거로 돌아와 공무원 헌터를 하다가 초인까지 해 보면서 드는 생각인데 권리라는 것은 많을수록 좋고 의무는 적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강자는 기본적으로 더 많은 권리를 누린다.
하지만 국가에서는 그 꼴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다.
합법이라는 테두리에 가둬 버린 뒤 권리를 누리기 위해 더 많은 의무를 이행하게 만든다.
초인이 되면서 상당 부분 벗어나게 됐지만 보이지 않는 무형의 압박은 존재한다.
의무가 늘어나는 것, 별로 좋지 않다.
눈앞에 빌런이 보이면 때려잡는 것과 숨어 있는 빌런을 샅샅이 찾아다니는 것은 차이가 클 수밖에 없으니.
놀고먹으면 마물을 사냥하라고 떠밀겠지.
국가 스케일에서 세계 스케일로 넓어질 뿐이다.
실질적인 혜택은 없고.
그런데 굳이 할 이유가 있나.
“초인님의 생각 맞춰 볼까요?”
“굳이?”
“에이, 재밌잖아요. 아마 초인님은 레벨 9 같은 거 안중에도 없으실걸요? 오히려 귀찮은 일만 늘어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으세요?”
“…….”
역시 진세정은 귀신이다.
이 정도 재능이 있어야 내 정신을 뒤흔들 악플러가 될 수 있는 건가.
“저는 초인님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해요.”
“진심입니까?”
“그럼요. 레벨 9라는 거 딱 봐도 말장난인데요. 왜 레벨 9를 신설하면서 세계 초능력자 연합 같은 걸 끼워 넣었겠어요. 국가 소속이라는 틀을 벗어나 세계를 위해 희생하라는 이야기죠. 아마 귀찮은 일만 잔뜩 더 늘어날 거예요.”
놀라울 정도로 나와 생각이 일치했다.
진세정은 그게 빛 좋은 개살구라 칭했다.
“초인님이 거창한 대의명분을 위해 내 한몸 불살라 보겠다, 이런 게 아니라면 지금 상태가 훨씬 좋다고 생각해요.”
“비슷한 생각입니다.”
“역시. 다만 주의하셔야 할 건! 주변에서 막 떠밀려고 할 거예요. 초인님이 여기에 휘말려서는 안 돼요! 어차피 휘말릴 성격이 아니시라 걱정도 하지 않지만요.”
“주의하겠습니다.”
근데 그거만 주의하면 되는 건가?
난 진세정이 더 당부할 게 있나 싶어 바라봤지만 추가로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어차피 제 할 일은 초인님을 보좌하는 거라서요.”
“제가 레벨 9가 된다고 해도 말입니까?”
“그럼 그거대로 보좌를 해야죠. 그에 따른 방법이 또 있거든요. 세계를 구할 영웅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면 되죠!”
믿음직하군. 특히 날 휘두르려고 하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어느 정도 친분을 쌓다 보면 내 힘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건 진세정이나 정다현 정도?
“네! 나머지는 초인님 방식대로 해결하시면 돼요. 제가 커버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야.
조만간 기회가 생길 때 내 방식대로 해결하면 되겠다.
“그리고 하나 더 의뢰할 게 있는데요.”
“네? 어떤 건가요?”
“좀 어려울 수 있는 일입니다.”
“에이, 저와 초인님 사이에 뭘 망설이세요.”
돈 많이 주는 고용인과 악플 잘 다는 피고용인 아닌가?
더 깊게 들어가면 수렁에 빠질 거 같아 본론을 언급했다.
“빌런을 사회로 끌어 들이는 일입니다.”
“빌런이라면 설마, 버서커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습니다.”
녀석 앞에서는 가능하다고 얘기했지만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
“할 수 있어요! 맡겨 주세요!”
“…….”
이렇게 쉽게?
“버서커님에 대해서는 저도 조사한 게 있거든요. 근데 이게 참 재미있어요. 잘 커버하면 오히려 여론에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거든요. 믿고 맡겨 주세요!”
말을 하는 진세정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걸렸다.
무척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는데 나쁘지 않다 싶었다.
좋군, 이 악플 나 혼자 맛보기에는 아깝지.
지켜보던 청룡이 한마디 했다.
[얘는 일이랑 관련되면 유통기한이 한 달 정도 지난 사람이 되는 거 같아. 어떻게 네 주변에 정상인 사람이 없어?]“…….”
사실 나도 놀라는 중이었다.
* * *
…진세정은 주변 분위기를 경고했지만 신기할 정도로 나를 떠밀려는 사람이 없었다.
기우였나?
어차피 들을 생각이 없긴 했지만 뭔가 기분이 묘했다.
용용이 말대로 다들 살짝 맛이 가 있어서 그런가.
[내가 볼 땐 너한테 씨알도 안 먹힐 거 같아서 그런 거 같은데.]뭐든 나쁘게 해석하는 청룡의 말은 참고할 필요가 없다.
[오랜 세월 지혜를 쌓아 와 통찰을 얻은 내 말을 무시한다고?]버서커가 미치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데 그럼 믿음이 가겠냐.
[유통기한 지났다니까? 왜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거야.]쫑알거리는 녀석의 말은 흘려버리고.
주변에서 부추기는 사람도 없으니 내 마음대로 하면 되겠다 싶었다.
나는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했다. 좋은 곳에서 좋은 것만 보여 드리고 좋은 것만 대접해 드리니 저번 생에 내가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는 것 같아 좋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근심거리는 생겨나는 법. 나는 부모님에게 물어보았다.
“귀찮게 하는 사람이 있거나 거슬리게 하는 일 같은 건 없으세요?”
[말하면 안 돼! 얘는 다 죽일 거야. 으와악!]나는 청룡을 잡아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입을 막고는 부모님의 대답을 기다렸다.
“없다. 이 정도는 사소한 일들이지. 아들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
“친척들이 돈 빌려 달라고 하던 건요?”
“내가 적당한 선에서 입막음했다. 불만이 있어 보이지만 어쩌겠냐, 부스러기라도 받아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나는 몰랐는데 내가 유해 8단계 마물을 사냥한 이후, 사돈의 팔촌까지 달라붙어 부모님을 귀찮게 굴었단다.
이 기회에 정리를 할까 싶었는데 아버지가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하셔서 신경을 끄고 지냈다.
여태까지 별말이 없는 걸 보면 내가 신경 쓸 것까지 없나 보다.
“경호원이랑 다니는 건 불편하지 않으시고요?”
“처음엔 좀 그랬지만 지금은 오히려 편하다. 말동무할 사람도 있어서 좋고.”
“나도 좋아. 이제 와서 마음 맞는 사람 찾는 것도 어렵잖니. 차라리 날 지켜 주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게 낫지.”
부모님을 서울로 모시면서 각별히 신경 쓴 게 안전 문제였다.
당장 이 아파트도 상류층들이 모여 살면서 자체적으로 각성자 출신 경호원을 쓰고 최첨단 방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별개로 부모님을 경호할 경호원을 고용하여 함께 다니고 계셨다.
불편할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다니 다행이로군.
“그리고 이번에 레벨 9로 제안이 들어올 거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나는 내부적으로 정해 놓았지만 부모님의 생각도 궁금했다.
“솔직히 말하면 안 했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말씀은 예상 밖이었다. 아들이 레벨 9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여기 오면서 듣는 게 많지 않느냐. 난 미국이나 초능력자 연합 같은 곳이 순수한 의도로 제안을 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잘 모를 땐 거절하고 지켜보는 게 최선이지.”
“아들이 유명해졌으면 좋겠지만 지금도 충분하니까. 난 준호 판단을 믿을게.”
[왜 너는 미쳤는데 부모님은 정상이셔? 신기하다.]“…….”
용용이 녀석이 간만에 맞는 말을 한다.
[나 원래 맞는 말만 해.]처맞는 말도 같이 해서 문제지.
아무튼.
부모님도 이렇게 내게 신뢰를 보내 주시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네, 그럴게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고요.”
“필요한 거? 당연히 있지.”
어머니가 눈을 빛내셨다.
뭐지?
“나는 우리 준호가 참한 여자 데리고 와서 결혼하면 좋겠는데…….”
여기서 갑자기?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헷갈려 하는 순간, 아버지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웬 주책이야. 바랄 걸 바라야지.”
“힘들겠죠?”
“당연한 말을.”
“…….”
난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불효자가 되고 말았다.
왜 얘기가 이렇게 흘러가는 거지?
* * *
레벨 9가 신설된다는 소식은 세계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에 머물고 있는 제임스 리드도 이 소식을 접했다.
‘별론데.’
그는 진즉에 최준호를 옭아맬 계략인 걸 눈치 챘지만 과연 그게 효과가 있을까 의문이었다.
다른 각성자라면 ‘세계 최강’을 의미하는 레벨 9라는 타이틀에 환장하고 달려들겠지만 자신이 본 최준호는 그럴 거 같지 않았다.
안나 크리스틴도 이에 대해 혹평하며 독한 위스키를 들이켰다.
“멍청한 짓이에요. 최준호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전형적인 자기중심적인 결정이죠.”
“역시.”
“자기들이 세계를 움직인다고 생각하니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 오만함이 리그라는 괴물을 낳았고요.”
“리그.”
제임스 리드의 표정이 굳었다. 안나 크리스틴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위스키병을 건네줬다.
단숨에 들이켜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리그는 괴물이에요, 제임스.”
“알아.”
“지금은 참아야 할 때고요.”
“그것도 알아.”
“참기 힘드세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헬 마스터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이를 꽉 문 음성에서 위스키와 섞인 피 냄새가 풍겼다.
“안나…….”
리그의 준동 당시 죽었던 제임스 리드의 약혼녀다.
당시 제임스 리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력함이 그를 일깨웠고, 지금의 마초맨을 만들었다.
하지만 죽임을 당한 약혼녀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하필 그 여자 이름도 안나일 게 뭐람.”
안나 크리스틴은 불만스럽게 툴툴거렸지만 복수를 위해 제임스 리드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알고 있기에 더 말하지 않았다.
잠깐 감정을 식히는 시간을 가진 뒤, 제임스 리드가 물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최준호를 레벨 9로 만들려는 계획은 결국 미국을 위해서다. 제임스 리드나 안나 크리스틴은 미국을 위해 움직이는 인물들. 실패할 게 뻔해 보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하루라도 빨리 전력을 모아 리그를 지워야 하는데, 자꾸 행보가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돼요.”
“때를 기다리자고?”
“네, 우리가 나서서 의견을 표출하면 실패했을 때 오히려 우리 탓을 할 걸요?”
“하지만 우리 의견도 졸라 물어볼 텐데. 나야 연구를 핑계로 댈 수 있지만 안나는 어떻게 하려고?”
“이번 기회에 좀 쉬죠.”
“뭐?”
제임스 리드가 놀랐다. 안나 크리스틴은 빠르게 위로 올라가기 위해 휴식기를 거의 갖지 않는 걸로 유명했다.
그런 그녀가 쉰다고?
“급하게 움직인다고 빨리 승진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이 기회에 쉬면서 돌아가는 상황 좀 지켜보게요.”
“어차피 그들 뜻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보시나요?”
“다른 생각인가?”
“아뇨,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안나의 말이 옳다.
하지만 전력으로 질주해도 모자랄 시기에 의도적으로 손을 놓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게 최선인 게 졸라 답답하네.”
“제임스도 많이 바뀌었네요.”
“뭐가?”
“예전에는 스마트한 느낌이었는데 이제 영어로 대화해도 졸라가 나오잖아요. 컨셉에 잡아먹히는 거 아니죠?”
“아…….”
분위기를 풀기 위한 장난스러운 말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한국어에 적응하고 있었나보다.
의표를 찔린 제임스 리드는 탄식과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네. 졸라 짱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