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버서커를 서울로 데려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몇 번 드나든 경험이 있으니까.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버서커는 공식적으로 수배된 상태였다. 원래대로라면 정체가 드러나는 즉시 추격대가 붙어야 한다.
빌런이 도시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니. 세상 참 좋아졌다.
내가 혈종일 때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특혜였다.
부럽군.
어쩌면 버서커는 빌런의 탈을 썼지만 엄밀히 말해 빌런이 아닌 건 아닐까.
국가의 의뢰를 받는 국가 소속의 빌런 같은.
“꽤 그럴 듯한데?”
생각해본 적 없는 개념이지만 나쁘지 않아보였다. 도시 출입이 자유롭고, 헌터들이 쫓아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빌런이 나을지도?
책임 없이 권리만 누리는 것은 그만큼 달콤하다.
“이래도 되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군.”
나와 함께 도시 안으로 진입한 버서커도 얼떨떨한 기색이었다.
자신이 빌런으로 쫓겨 다녔을 때보다 나와 만난 후 도시 출입이 더 잦아졌다고 하니 할 말 다한 거겠지.
버서커 녀석은 세상 참 좋아진 걸 알아야 한다. 나 때는 암시장만 드나들어도 포위망이 펼쳐졌는데.
그걸 진두지휘한 게 천명국이었다. 이걸 생각하니 휴가 한달 날려버린 게 미안하지 않은 것 같네.
내 뒤를 따라오던 버서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는 거지?”
“내 사무실.”
“너한테 사무실이 있었나?”
“정확히는 날 서포트해주는 팀 사무실이다. 널 거기로 데려가는 거고.”
“…….”
버서커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꼬치꼬치 캐묻지 않으니 좀 편하긴 하군.
역시 주기적으로 두들겨줘서 그런가?
졸라맨도 내가 시킨 대로 척척 하는 거 보면 맞는 거 같기도 하고.
모두에게 적용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좀 아쉽군.
그 사이 안으로 들어온 버서커에게 진세정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버서커님! 저는 진세정이라고 해요!”
“이광진이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커피 한잔을 들었다.
난 곧장 본론에 들어갔다.
“버서커가 빌런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해 진 팀장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버서커님도 바라고 계신 일이죠?”
“음. 그렇다.”
“그럼 가장 방해가 되는 건 그동안 피해를 입었던 헌터들과 붉은 뱀 김영환과 관련된 일이겠네요.”
“후자가 더 문제입니다.”
전자야 어차피 죽일 놈들이었으니 상관없지만 김영환의 경우 초인이었으니.
물론 가져다 댈 핑계는 많다. 하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네요. 초인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이미지는 강력하니까요. 으음, 어떻게 한다.”
진세정이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김영환이 부패한 초인이라고 해도 그건 대중들에게 그건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초인이 마물로부터 도시를 지켜주는데 조금 해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이 김영환의 이미지를 끌어내리는데 방해가 되지만 반대로 적용도 가능하다.
버서커가 국가를 위해 일하는 초인이 된다고 할 때, 그동안 저지른 범죄를 별 거 아닌 일로 치부하게 만들 수 있다.
“일단 정석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겠네요.”
정석적인 접근이 뭐지?
진세정은 버서커의 얼굴을 살피며 웃었다.
“다행인 건 버서커님의 외모도 잘생기셨다는 점이에요. 지적인 교수님 타입의 외모는 수요층이 존재하거든요.”
그게 중요한 건가?
“네, 우선 버서커님의 지지층을 만드는 게 중요하거든요.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비주얼을 활용해서 취향인 사람들을 팬층으로 끌어들이는 거죠.”
…그런 거였군.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아는 척 해야지.
한번 당해본 나는 그렇다 쳐도 처음 접하는 버서커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저 심정, 동감한다. 나도 저렇게 당했었지.
그래도 효과는 확실하다.
진세정이라면 버서커 이미지 세탁도 훌륭하게 해낼 것이다.
절대 나만 맛봐서 그런 게 아니다.
좋은 것은 같이 나눠야지.
“다만 최준호 초인님과 달리 버서커님은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괜찮을까요?”
“어쩔 수 없지.”
이대로 버서커가 밖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안으로 끌어들이는 게 더 이득이다.
아, 물론 버서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해볼게요.”
* * *
버서커는 눈앞의 진세정을 살폈다.
최준호 말로는 상당한 능력자라고 하던데, 겉모습은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직장인이었다.
물론 겉모습으로 능력을 재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편견을 극복할 만큼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찬찬히 자신을 살피는 눈이 부담스러웠다.
“우선 최준호 초인님이 계셔서 자세히 여쭤보기 어려웠어요.”
“괜찮다. 나도 여기 온 시점에 각오를 했으니까.”
“네, 그럼 사양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진세정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우선 버서커님은 결혼을 하셨고, 딸도 있으셔요.”
“음.”
망설이던 버서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세정이 제대로 조사를 해왔다.
“그 안에 얽힌 이야기에 대해 알고 있나?”
“네, 조사하다 보니 유명한 이야기여서. 불쾌하셨다면 죄송해요.”
“괜찮다.”
옛 기억을 떠올린 버서커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미련이겠지.’
한때의 아픔은 추억이 되어 아물게 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흉터는 가끔 통증을 동반했다.
상념을 밀어둔 버서커가 말했다.
“최준호가 원한 것도 있지만 나도 더 이상 외곽에 돌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복귀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는 상태다.”
“네.”
“최준호에게 듣기로 유능한 인재라 들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면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우선 오늘은 첫날이니까요. 시간이 가지면서 버서커님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지. 그나저나 지금 급한 건 나보다 저 녀석 아닌가?”
자신이야 언제든 시간 날 때 하면 되지만 최준호는 레벨 9 이야기로 핫한 상태였다.
“옆에서 제지하지 않으면 사고가 벌어질 텐데.”
보통 초인이라면 레벨 9를 감사하다고 받아들이겠지만 최준호는 다를 것이다.
진세정도 그걸 부인하지 않았다.
“전 괜찮다고 생각해요.”
“음?”
“초인에게도 첫 이미지가 중요하거든요. 그 점에서 버서커님도 상당한 이점이 있어요. 다소 과격한 행동을 하더라도 대중은 그걸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거든요. 최준호 초인님도 마찬가지고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대중들은 이해하고 받아들일 거란 것에 버서커는 동의했다.
최준호는 여태까지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빌런보다 더 악랄한 손속을 지녔으면서 멀쩡하게 초인으로 대접을 받고 있었으니.
“기대하셔도 좋아요. 최준호 초인님이 어떤 말을 해도 대중은 너그러이 받아줄 테니.”
“음.”
자신만만한 진세정의 말에 버서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사람을 왜 타고난 악플러라고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최준호가 좋은 파트너를 얻었어.”
“감사해요. 버서커님에게도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기대하지.”
진세정과 제법 깊은 이야기를 해서일까.
다시 복귀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물론 사회가 자신을 받아줄 때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사회 경험을 해온 만큼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진세정은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을 테지.
더군다나 레벨 9 문제로 시끄러워질 거고.
“캠핑도 실컷 즐겼으니 시끌벅적한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리고.”
캠핑카를 처분하는 기쁨도 만끽할 수 있을 테고.
후련한 마음으로 밖에 나오니 최준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갈 것이지 왜 기다리고 있는 건지 불안하게 만들었다.
“왔냐?”
“…….”
그러면서 다가오는 모습이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왜 그러는 거지?”
“왔으니 한판 붙어야지.”
“뭐?”
허를 찔린 버서커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최준호가 의아해했다.
“그럼 그냥 가려고 했냐.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거 아니면서 그러네.”
그런 것치고 자주 두들겨 맞는 거 같은데.
물론 최준호와 대결이 실력을 빠르게 늘려주는 길이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달갑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녀석은… 자신을 두들겨 패는 걸 즐기고 있었다.
“가자.”
빌런을 그만두는 선택, 과연 옳은 걸까.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것 같은데.
버서커는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
* * *
[레벨 9는 초인들에게 새로운 목표이자, 이상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경지를 향해 끝없이 정진해야 합니다. 도전하십시오! 그리고 증명하십시오! 레벨 9는 인류가 도달해야 할 새로운 목표가 될 것입니다!]TV에서는 이번에 레벨 9 창설을 주장하는 ‘The Lion’ 막심 게데스가 연설을 하고 있었다.
미국의 초인이자 십대초인의 일원인 그는 세계 최강을 논하는 초인 중 한 사람이며, 폭발적인 에너지와 왕성한 활동으로 한국에서는 사자왕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풍성하게 기른 금발이 사자 갈기 같다더니 진짜 사자같았다.
전투할 때도 짐승을 방불케 한다던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긴 했다.
풍성한 모발을 보니 괜히 정주호가 생각나기도 하고.
저 머리 스타일을 보면 부러워할까?
[저는 모두가 도전할 벽이 될 것입니다!]일단, 저 녀석이 주장하는 레벨 9 주장이 얼마나 얼토당토 한 것인지 알 거 같았다.
말이 레벨 9였지, 사실상 자기들만의 특권을 재조정하는 것이다.
간판만 바꿔 단다고 내용물이 어디 바뀌나.
“저 말에 넘어가는 녀석이 있나.”
“있을 걸?”
내 옆에는 소파에 늘어지게 앉은 윤희가 앉아 있었다. 모처럼 휴가를 받고 온 녀석은 편안한 차림으로 소파와 혼연일체가 되어 있었다.
“왜?”
“그동안 레벨 8이 늘어나면서 희소성이 약해졌잖아. 그 전까지만 해도 레벨 8의 초인이라는 건 진짜 인간을 초월한 이미지였는데.”
윤희가 말하길, 초기에 레벨 8 초인의 숫자는 스무 명 내외였단다.
그러다 인류가 체계적인 각성자 육성방식과 효율적인 사냥방법을 정착시키면서 초인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초인 수가 200여 명에 다다르자 초인이란 이름값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실제 무위가 아닌 이미지 측면에서다.
이번 레벨 9 신설은 기존 초인 이미지를 끌어올리기 위한 방법이라며 윤희가 설명을 마쳤다.
하여간에 자기 포장할 방법들은 기가 막히게 찾는군.
“오빠 이야기 나오는데?”
“나?”
TV로 시선을 옮기니 막심 게데스가 날 언급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영광된 자리에 대한민국의 초인, 최준호도 초대할 것입니다.]제멋대로 내 이름을 팔아대는군.
예상에 벗어나지 않아서 상대하기는 쉽겠다 싶었다.
“오빠.”
날 보는 윤희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오빠도 레벨 9 되는 거야?”
“글쎄다.”
“왜? 생각 없어?”
“넌 어떤데?”
그러고 보니 동생의 생각을 들어보지 않았군.
“아무 생각 없는데?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하기 싫으면 안하는 거지.”
“그게 끝이냐?”
“응.”
“…….”
해맑은 녀석의 모습에 오히려 내가 할 말을 잃었다.
하긴, 이 녀석이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오히려 내가 의심했을 거다.
이게 정상이겠지.
여기에 쐐기를 박았다.
“어차피 내가 말한다고 들을 인간도 아니잖아.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얘 천잰데?
사실 윤희가 뭐라고 하던 내가 정해놓은 대로 할 생각이었다.
아무튼, 막심 게데스의 발언으로 대한민국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 *
실제로 십대초인을 포함하여 최준호가 레벨 9 초인의 자격을 부여받았다는 말에 인터넷 뉴스 댓글란은 폭발할 것처럼 달아올랐다.
다른 누구도 아닌 십대초인인 사자왕의 발언이었다.
프란츠가 방문한 적 있지만 그는 과거의 초인이었기에 현 시점에서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막심 게데스의 말이 더 강력한 반응을 일으켰다.
-진짜 최준호 지명 실화냐?
-레벨 9라니 ㄷㄷ 언제고 나올 거라 생각했지만 초대박이네.
-매번 십대초인이라고 하면서 자기들끼리 띄워주는 거 꼴보기 싫었는데 막상 우리나라 출신이 포함되니 기분이 색다르네.
-사자왕이다! 사자왕이다! 사자왕이다! 어흥!
-이 기회에 사자왕이랑도 친해지는 거야! 쟤는 진짜 전투광이니 최준호랑 붙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할 듯.
-그리고 최준호에게 참교육 받기?
-원래 초인은 싸우면서 성장하는 거야.
-근데 왜 사자왕이 진다고 생각하냐? 둘이 대결해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는 법임.
-아직도 최준호를 모르는 뉴비가 있네 ㅋㅋ 최준호는 이미 비공식 세계최강 초인임. 사자가 팬더 되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입 닫고 있어라.
-솔직히 사자왕이 지는 거 상상이 안되긴 함.
-최준호는 상상되냐?
-그러네 ㅋㅋ
-이 와중에 일본하고 중국은 애써 비하하느라 바빠 죽음 ㅋㅋ
-아, 이게 국뽕이라는 건가? 쉴 틈 없이 국뽕이 충전되네.
-근데 레벨 9라는 게 실질적인 이득은 있나?
-당연히 있음 ㅇㅇ
-뭔데?
-우리들의 자부심?
-엌ㅋㅋㅋㅋㅋ 그래, 자부심. 대단하다, 대단해!
-최준호가 세상을 구하러 가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는 거임?
-ㄹㅇ 저거 좋다고 박수칠 때가 아니다.
-실제로 이게 어떤 부분에서 이득인지 생각해볼 문제기는 함.
-최준호가 저걸 받을까? 왠지 거절할 거 같은데.
-그러게, 최준호를 성장인 범주에서 생각하면 안됨.
그렇게 여러 의견이 활발하게 오가고 있을 때.
한 가지 소식이 그들을 강타했다.
-어? 세계 초능력자 연합에서 최준호 찾아간다.
-어제 사자왕이 떠들었는데 벌써 입국했다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나봄.
-생방 중이다. 빨리 ㄱㄱ
-실화냐? 지금 바로 보러간다.
댓글을 달던 네티즌들이 방송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 * *
일부러 요란법석을 떨면서 입국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 부담을 주려는 의도로 보였다.
자꾸 잔머리를 굴리는 걸 보아하니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군.
굳이 내 의사를 묻고자 했다면 서면으로 보내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쇼맨쉽을 곁들이는 것 자체가 내 결정을 압박하겠다는 의도겠지.
그렇게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정도인가?
난 모르겠다.
진실은 간단한 법이니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의미겠지.
내게 레벨 9 자리를 제안하기 위해 찾아온 것은 세계 초능력자 연합의 동아시아 대사 앤드류 황이다.
“최준호 초인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카메라까지 대동해서 찾아온 이유가 수상한데.
나와 시선을 마주한 앤드류 황이 미소 짓는다. 꿍꿍이가 느껴지는 얼굴이다.
“오늘은 최준호 초인님에게 권유를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뭡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니 앤드류 황이 멈칫하다가 다시 미소를 그린다.
“현재 세계는 여러 위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정부를 불신하고 전복시키려는 빌런들부터 시작하여 언제든 소중한 터전을 파괴할 수 있는 마물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 치고.
“이런 때일수록 상위의 초인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니 각성자가 아니라 정치인을 보는 듯했다.
무슨 말이냐고?
한 대 치고 싶다는 의미였다.
“최준호 초인님.”
반질반질한 얼굴로 날 본다.
저 얼굴, 본 적 있다.
내가 혈종일 때 날 몰이사냥해서 힘을 빼놓았다고 자신만만해하던 왕주열과 비슷하다.
결과는? 머리가 터졌지.
자꾸 머리 굴리는 거만 보면 손이 근질거린다.
“세계만민의 평화와 대의를 위해 레벨 9의 중임을 맡아주시겠습니까?”
카메라맨은 내 모든 걸 놓치지 않겠다는 듯 카메라를 들이댔다.
저 너머로 보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기대감을 갖고 있을까.
어차피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나저나, 대놓고 평화와 대의를 운운하는군.
저 숭고한 희생이나 대의는 저들만의 해석으로 의미가 바뀔 것이다.
그 장단에 어울려줄 이유가 없지.
“싫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