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
이룡화는 몸을 덜덜 떨었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단지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평양을 점령한 최준호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개처럼 짖으라면 짖고 죽으라면 죽은 척을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법대로 처벌할 거란 이야기였다.
그럼 자신이 충성한 건 뭐가 되는가.
말로는 처벌을 감수하겠다고 했지만 순순히 협조했던 건 이 모든 것을 면피하기 위해서였다.
“이대로 죽을 수 없어.”
살기 위해 이룡화는 평양을 떠났다. 그리고 도망친 곳에서 자신을 충돌질했던 중국의 초인 왕민을 만났다.
장쯔둥의 뒤를 이어 동북 방면 책임자가 된 그는 이룡화에게 전향하면 중히 쓰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말을 전적으로 믿었다면 거짓이다.
하지만 이룡화에게 선택지가 없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말이 바뀔 것도 각오를 했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말이 바뀌었다.
왕민은 처음부터 자신들을 중용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비롯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잔당을 소모품으로 내세워 북한 영토를 차지할 계획이었다.
최준호와 맞서지 않기 위해 도망쳤던 것인데.
이룡화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우리는 백두산을 기점으로 함흥까지 차지한다.”
양강도와 함경북도, 함경남도 전체를 차지하여 동해를 확보, 태평양 진출로를 얻는다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이룡화로서는 그들이 무슨 짓을 하며 지지고 볶든 상관이 없다.
중국의 영토 야욕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들만 내세우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룡화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왕민을 설득했다.
“최준호가 순순히 지켜보고 있지 않을 겁니다. 이대로 충돌을 일으키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나?”
“예!”
“당 내부에서는 녀석이 오지 않을 거라 판단하고 있다.”
“오고도 남을 녀석입니다. 평양을 점거하고 있는 정주호와 최준호는 각별한 사이입니다. 만약 정주호가 최준호를 부르기라도 한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옆에서 보았기에 잘 안다.
최준호는 종잡을 수 없는 괴물이다. 차라리 류광철은 권력의 화신이기라도 했지, 최준호는 눈이 돌아갈 재물과 권력을 앞에 두고도 무덤덤했다.
아직도 주석궁 내부에 펼쳐졌던 살육의 광경이 기억난다.
왕민이 초인이라고 해도 최준호는 급 자체가 다르다.
이러다 모두 다 죽는 상황만 떠올랐다.
“그만.”
그 말이 심기를 거스른 것일까.
왕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금 네놈이 날 가르치려 드는 것이냐?”
“그,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내 뜻대로 따르도록. 녀석들은 평양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기회가 온다는 거지?”
“…….”
“네놈의 가치는 우리가 어느 정도의 영토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예.”
“당에서 결정을 내리면 고분고분 따를 것이지 딴소리하기는. 이래서 반도 소국 녀석들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건 비하의 의미가 담긴 욕이었다.
“…….”
모욕적이었지만 이룡화는 반박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숙소로 돌아왔다.
“최준호라면 분명 이곳에 올 텐데.”
왕민이 거세게 반발해서 더 말을 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불안감은 커진 상태였다.
보위부 부장에 오른 눈치는 어디 가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자신은 왕민으로 인해 신평양 내 세력에게 반란을 충동질했고 실패했다. 왕민은 그걸로 한국의 시선을 잡아끌 계획이었지만 자신이 잠깐 본 정주호라면 원인을 파악해 대처를 하려고 할 것이다.
정주호가 평양 수성에 집중한다면 이곳으로 올 인원은 초인일 것이고 최준호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최준호 성격상 이곳에 오면 자신은 확실하게 죽을 것이다.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사방에 중국 출신 각성자들이 가득했고, 따라붙은 조선족 각성자들 또한 동지라기보다 경쟁자이자 감시자였다. 이들을 따돌리고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바다도 하늘도 모두 마물의 것이다.
“오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이룡화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임시로 설치된 숙소는 전향자를 향한 대우답게 화려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이곳은 류광철에게 반발해서 숙청되던 반동분자들이 갇힌 수용소만도 못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준호가 오지 않길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난 솔직히 감탄했다.
용용이 이 녀석, 쓸데없는 잔재주만 가득한 말하는 마물인 줄 알았는데, 오늘만큼은 신수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네 능력 장난 아닌데?”
[에헴! 네가 드디어 이 위대한 청룡님의 능력을 알아보는구나. 하긴, 그동안 이 위대함을 눈치 채지 못한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 더 찬양해도 좋아.]내 칭찬에 용용이 녀석의 콧대가 하늘로 치솟는다.
이 녀석, 능력이라고는 강퇴밖에 없는 줄 알았더니 장거리 이동도 가능했다.
그 거리가 무려 50km.
여태까지 봤던 공간 이동 계열 중 획기적인 거리 이동이었다.
[난 분신이라 이거밖에 안 되지만 본신이었으면 바로 백두산으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해!]역시 말하는 마물. 아니, 신수였다. 이만한 기프트라니.
용용이 녀석이 가진 기프트일까? 그럼 녀석의 심장에 기프트가 있겠지? 아니, 청룡이니 내단이려나? 그래도 생명체니 피는 있겠지?
잠깐 심장을 만지게 해 달라고 해 볼까? 신수라면 심장 좀 주물럭거려도 큰 문제가 벌어지지 않을 거 같은데.
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손에 넣었다는 걸 깨달았다.
가만 놔두면 계속 황금알을 낳겠지만.
왜 자꾸 배를 가르고 싶을까.
음!
참아야 한다.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용용이가 알아봤자 좋을 게 없으니. 하지만 머릿속을 표류하는 황금알을 가르는 방안은 깊은 잔상을 남겼다.
상념을 털어 내기 위해 아지트가 있는 곳으로 부지런히 이동했다.
평양에서 나를 본 사람이 있으니 첩자가 있다면 저쪽에 소식이 들어가는 건 금방일 것이다.
한 번에 쓸어버려야 하니 그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 전에 기습을 가할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마음껏 존경해도 돼!]한번 콧대가 높아진 용용이 녀석의 잘난 척은 멈출 줄을 몰랐다.
기프트를 손에 넣으면 내 뜻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옆에 두면 저 잘난 척을 계속 들어야 하는 건데.
그냥 배를 갈라 버려?
[응?]한껏 도취되어 있던 용용이 녀석이 몸을 움찔 떤 것도 그때였다.
눈치 챘군, 마물 같은 녀석.
[너 지금 이상한 생각했지?]“아니.”
[거짓말 치지 마! 방금 살기가 느껴졌어!]최대한 조심스럽게 생각해도 감지할 정도인가. 독심술도 이 정도면 좋겠다 싶었다.
아니, 그러다 죽일 놈이 너무 많이 늘어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생각 정도는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겠지.
하지만 딴마음 먹는 녀석을 캐내기에 좋아 보이기도 하고.
난 일단 발뺌했다.
“아니다. 야한 생각 했다.”
[지금 그걸 나더러 믿으라고? 너 야한 거 아예 모르잖아.]“내가 모르긴.”
[웃기시네, 다 차려 놓은 밥상도 마다하던데.]누가 용용이한테 이런 말투 가르쳤지?
“됐고, 트집 그만 잡아라.”
[와, 사악한 인간아. 내가 지혜로운 신수로서 조언해 주는데 너는 거짓말하지 마. 다 티가 나.]“…….”
용용이 녀석, 눈치가 상당히 늘었다.
이런 게 사회화라는 거겠지.
그렇게 투닥거리면서 강행군을 펼친 내가 향한 곳은 아지트가 아닌 백두산 방향이었다.
청룡의 터전이다.
[어? 왜 그리로 가?]“야.”
[응?]처음부터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룡화를 비롯한 류광철 잔당은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백두산 부근에 아지트를 세웠다.
류광철도 알고 있고, 미국도 알고 있는 걸 중국이 모를 리가 없다.
그리고 백두산은 청룡의 영역이다.
그 말은 백두산 근처에 세워진 아지트를 용용이 녀석도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용용이 녀석의 묵인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쟤들이랑 무슨 거래했냐?”
[…….]“대답 안 하냐?”
[자, 잠깐만.]나는 용용이 녀석의 말을 무시하고 백두산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녀석이 결정을 내린 듯 내게 매달렸다.
[알았어, 말할게! 그러니 멈춰 줘!]“말해.”
[그러니까…….]용용이 녀석의 말은 이러했다.
내가 평양에 오기 한참 전, 중국 측에서도 청룡을 찾아왔단다.
그들은 청룡의 존재를 인정하겠다면서 백두산을 청룡의 영역으로 내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대신 백두산 근처에 거점을 마련하는 걸 부탁했다.
미국에서 천둥새에게 마물 방위선을 맡긴 것과 비슷했다. 중국에도 정보망이 있을 테니 신수의 영역 근처에 마물이 출몰하지 않는 걸 눈치 챘겠지.
내가 방문하려는 곳은 얼마 전에 생긴 곳이 아니라 류광철이 살아 있을 때부터 존재하던 거점이라고 한다.
날 속이고 양다리 걸친 건 아니었군.
하지만 괘씸한 건 변함이 없다.
“왜 나한테 말 안 했냐?”
[나한테 아무 의미 없는 약속이었어.]“무감각했다는 건가.”
[맞아.]“그 말을 믿으라고?”
[믿어 줘, 진짜야.]“…….”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용용이를 잠시 바라보았다.
녀석처럼 독심술은 하지는 못하지만 진실을 말하는 건지 거짓을 말하는 건지 가늠하는 건 가능했다.
더 숨기는 건 없는 거 같군.
이걸로 뭘 좀 얻어 낼까 하다가 한 번 참기로 했다. 날 속인 걸 자책하고 있으니 조만간 기회가 생기겠지.
“그럼 저길 날려도 상관없지?”
[없어. 어차피 저 인간들도 약속 지킬 생각 없었을걸. 류광철한테 대안이 있다는 걸 보여 주려고 했을 뿐이야.]제법 머리를 잘 굴리는군.
그 대안이 나라는 거 같고.
“앞으론 미리 말해라.”
[알았어.]더 몰아붙이기도 뭐해서 나는 확답을 받고 아지트로 향했다.
확실히 백두산과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다.
용용이가 공격하지 않을 걸 확신하지 않았으면 이런 곳에 머물지 않겠지.
시설이 꽤 오래된 걸로 보면 용용이 말이 틀리지 않았다.
“숫자가 꽤 많은데?”
[그러게. 나한테 얘기한 거랑 숫자가 다르잖아!]“인간을 믿냐?”
순진한 용용이 같으니라고.
나도 인간을 안 믿는데 신수라는 녀석이 인간을 믿고 있다.
[다 죽일 생각이야?]“반대하냐?”
[아니, 너 혼자 죽이기에 너무 많아 보여서.]“그럼 너도 옆에서 돕든가.”
[알았어. 진짜 바라는 게 너무 많아. 다 자기 좋자고 하는 거면서. 물론 나도 조금 좋아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너무 많이 부려 먹는다, 칫.]난 용용이 녀석이 쫑알거리는 걸 흘려버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행군의 효과인가.
내가 오는 걸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알았으면 저렇게 느슨하게 경계를 서지 않았겠지. 말이 경계였지, 내부에 있는 사람을 오히려 감시하는 체계에 가까웠다.
저기 있는 녀석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있지 않은, 느슨한 연합 체제임을 의미하는 모습이었다.
내부로 진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지트에 머무는 숫자는 약 2백여 명이나 되었다.
그중 30여 명은 익숙한 기세였다. 이룡화를 비롯한 보위부 각성자들이다.
기껏 도망쳤는데 여기에서 감시당하는 신세가 되었군. 갈 곳도 없고 숫자도 적으니 이런 대우는 예견된 상태였다.
난 곧장 숙소 안으로 잠입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이룡화가 인기척을 감지하고 몸을 일으키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앉아라, 얘기 좀 하자.”
* * *
“…….”
최준호를 보는 순간 이룡화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왕민 개자식, 누구도 침입할 수 없을 거라고 하더니 최준호는 이곳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고 있었다.
애써 태연한 척하려 했지만 이룡화의 몸은 저승사자를 만난 것처럼 덜덜 떨렸다.
“잘 먹고 잘 지내나 보네.”
“사, 살려 주십시오.”
“안 죽여. 누가 죽인데? 죽일 생각이면 바로 머리부터 부쉈겠지.”
그 말이 더 무서웠다.
“몇 개 궁금한 게 있는데.”
“마, 말씀하십시오.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삶에 대한 의지가 느껴져. 아주 좋아.”
최준호 미소를 보며 이룡화는 마른 침을 연신 삼켰다.
하지만 마음속에 의문이 남아 있었다. 과연 자신을 살려 줄까?
“제대로 말하면 죽이지 않아. 숨겨 둔 여자랑 아이도 생각해야지?”
이룡화는 경악했다.
“그, 그걸 어떻게?”
보위부 부장이던 시절에도 철저하게 감췄던 비밀이었다.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사실이었는데 그걸 최준호가 어떻게?
“다 아는 법이 있어.”
최준호 앞에서 비밀은 없다.
이룡화는 모든 걸 솔직하게 말하기로 맹세했다.
“중국 녀석들이 꾸미고 있는 거 털어놔 봐.”
“아, 알겠습니다.”
장쯔둥을 대신해서 새로운 초인인 왕민이 책임자로 파견되어 있는 것과 백두산과 함흥을 잇는 양강도, 함경북도, 함경남도를 차지할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 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왕민이 아닌 공산당 최상부인 것까지도.
평양에서 신경 쓰지 못하도록 내부 혼란을 획책한 것까지 털어놓으며 이룡화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잘못했습니다. 제, 제발 살려 주십시오.”
“이게 전부라고? 좀 미흡한데.”
“그, 그것도 있었습니다. 왕민이 조만간 백두산의 청룡을 사냥할 전력이 모일 것이고,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전력이 증원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 숫자만 무려 천 명이었다.
솔직히 이룡화는 사냥 계획도 부정적이었다.
다른 마물도 아닌 신수라 불리는 존재였다.
그걸 머릿수만 채운다고 해서 사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자세한 내막까지 알지 못했다.
그저 정보 하나라도 더 실토하면 살 수 있을까 싶어 마지막 정보 하나까지 쥐어짜서 최준호에게 털어놓았다.
“이게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살려 주십시오.”
“그렇단 말이지.”
생각에 잠긴 최준호가 이렇다 할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 침묵이 불안함에 휩싸이게 했지만 동시에 희망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평양에 있을 때 목숨에 대한 집착은 진짜였지. 살기 위해서 욕심도 제어할 줄 알았고.”
살 수 있는 건가.
삶에 대한 희망이 조금씩 생겨날 때, 최준호의 손이 머리를 덮어 왔다.
대체 무슨 짓을?
“어, 어어?”
꼼짝없이 붙들려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네가 말한 게 사실인지 재확인만 하는 거니까.”
대체 어떤 방식으로?
“앞으로 근심 걱정 잊고 편하게 살 수 있을 거야. 요즘 시대에 이게 어디냐.”
그걸로 기억의 단절.
이룡화의 의식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