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중국 대사가 비틀거리며 돌아갔다.
우리만 남은 자리에서 나는 대통령과 천명국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 내야 했다.
상무위원 죽인 거 때문에 그런 건가.
어차피 한통속인데, 초인을 죽인 건 넘어가고 상무위원은 눈총을 사는 게 의아했다.
“저 말 진짜인가?”
“상무위원을 죽인 거냐면 사실이 맞습니다.”
“……!”
대통령과 천명국의 입이 떡 벌어졌다. 상무위원 하나 죽인 게 저렇게 놀랄 일인가? 나야 죽일 놈을 죽인 거뿐인데.
“대체 왜…….”
“백두산 일을 사주한 게 그 녀석이었습니다.”
백두산을 거점으로 하여 함흥까지 차지, 양강도, 함경남도, 함경북도를 공격하려던 놈의 계획을 설명했다.
여기에 평양의 혼란을 일부러 유도했다고 하니 대통령의 얼굴에 분노의 감정이 떠올랐다.
“잘한 일이로군. 자세한 내막을 몰랐으면 오해할 뻔했어.”
“그렇죠?”
“사실 놀랐을 뿐이고 잘했다는 생각이네. 자네가 죽인 상무위원은 북한을 집어삼키려는 주전파에 속해 있겠지. 주전파가 사라져야 우리가 시간을 벌고 북한 지역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네.”
모든 상무위원이 강경파는 아니란다.
대통령은 외교를 통해 비둘기파와 접촉하고 있으며, 원활한 관계를 이어 나가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감정이 좋지 않아도 중국은 이웃 국가고 큰 시장을 갖고 있다. 육로로 연결된 이상 초인 전력이 부족해진 중국에 대한민국이 취할 이득은 많다.
이미 중국은 북한에 실질적인 전력을 투입할 힘을 잃었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다.
천명국도 이에 동조하는 듯했고.
“문제는 저쪽에서 상무위원을 죽인 사람을 초인님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천명국의 지적에 난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야 뭐, 내가 생각해도 그런 짓을 저지를 사람이 나밖에 없어 보이긴 한다.
하지만 무적의 방패가 있지.
“증거가 없는데요.”
특정될까 싶어 머리를 부수지 않고 심장만 부쉈다.
나를 지목하고 싶으면 확실한 증거라도 가지고 오든가.
“…….”
시선이 마주친 대통령과 천명국이 고개를 저었다. 저 모습을 보니 왠지 나 혼자 사고뭉치가 된 기분이다.
증거 없으면 된 거 아닌가?
설마 알리바이까지 성립해야 하는 건가.
이러면 용용이 녀석의 공간 이동이 더더욱 탐이 나는데. 지금이라도 다시 백두산에 가서 심장 한번 만지게 해 달라고 해야 하나.
뭐, 아무튼 가장 확실한 방법을 내세우면 된다.
“비밀로 하면 됩니다.”
“이걸 다른 곳에 밝히는 거 자체가 문제라네.”
“저도 밝힐 생각 없습니다.”
대통령과 천명국은 협조적이었다. 아니, 비밀을 지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다.
하긴, 내가 상무위원 죽인 걸 누구한테 말할까. 설령 말하더라도 난 발뺌하면 그만이다.
잠자다가 심장이 부서질 수도 있는 거지, 뭐.
문득 대통령이 내게 말한다.
“혹시 내가 뭔가 섭섭하게 만든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게.”
“갑자기요?”
“상무위원을 보니 이 말은 꼭 해야 할 거 같아서 말이야.”
“몇 개 섭섭한 게 있기는 한데. 지금 말해도 될까요?”
“……!”
난 농담이었는데 대통령의 반응이 극적이었다.
음, 대체 내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 건지 모르겠다.
“당연히 농담입니다. 왜 이리 놀라세요.”
“그런가? 다행이군. 허허,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거 같았어. 상대를 심장 마비로 죽이고 싶으면 지금처럼 농담을 해도 돼.”
“워낙 배려를 해 주고 계시기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만약 생기더라도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정을 쌓아 두면 좋지 않게 바뀌는 법이야.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주 대화를 나누도록 하지.”
“예.”
왠지 매달리는 느낌이 드는 건 내 착각일까. 상무위원을 죽인 덕에 다른 의미로 대우가 좋아지는 격이 되었군.
더 높은 사람을 제거하면 대우가 더 좋아지려나?
물어보고 싶었지만 대통령이 심장마비 걸릴까 봐 참았다.
대신 다른 내용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버서커에 대해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아, 버서커. 어떤 이야긴가?”
“그러니까…….”
난 앞으로의 버서커 활용 방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
최준호가 돌아가고, 집무실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천명국은 분위기를 풀 요량으로 말을 꺼냈다.
“최준호 초인의 발상은 언제 봐도 놀랍습니다.”
버서커의 활용에 대해 얘기를 꺼낸 거였지만 대통령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상무위원을 죽였다는 말에 놀라지 않았네.”
“예? 아, 아아!”
“최준호라면 미국 대통령도 암살하고 남을 거거든.”
“…수틀리면 그러고도 남을 거 같습니다.”
“그게 진짜 무서운 점이지. 끔찍한 일에 한해서 한계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은 그랬지만 충격은 만만치 않았다.
상무위원이라면 중국 내에서 서열 10위 안에 든다. 웬만한 국가 원수보다 더 막강한 위세를 발휘하는 자리인 것이다.
그런 인물도 최준호의 손을 피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최준호가 마음만 먹으면 그의 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까.
여기에 신수의 존재까지.
최준호는 모종의 수를 써서 신수마저 구워삶는 데 성공했다. 만약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되어서 신수의 힘을 자기 뜻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걷잡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재앙이 세상에 들이닥칠 것이다.
어쩌면 세계는 리그보다 최준호의 위협에 더 노출되어 있는 게 아닐까?
“이럴수록 겸허해져야지. 권력을 가지면 착각할 수 있어. 어떻게 감히 일개 초인이 정치인을 노릴 수 있냐고 말이야. 그 권위적인 태도가 리그라는 괴물을 탄생시켰고.”
대통령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자신은 국민의 선택을 받아 한시적인 권력을 부여받았지만 초인은 본연의 강함을 유지하는 한 평생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버서커 문제도 그렇지. 문제를 삼으려고 하면 하나둘이 아닐 거야.”
“그렇습니다.”
“어떻게 반응할까?”
“우려를 드러낼 것 같습니다.”
“그래.”
최준호가 밝힌 버서커 구제안은 상식적으로 볼 때 말도 안 되는 것이 많았다.
우선 버서커는 초인 김영환을 죽인 빌런이다. 이걸 대중적인 이미지 개선으로 씻어 내겠다는 말은 김영환을 따르던 세력을 모두 적으로 돌리겠다는 의미였다.
물론 초인 하나가 귀한 시대인 만큼 충분히 가능한 조치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최준호는 버서커를 국가 공인 초인이 아닌 개인이 고용하는 형태로 유지하고자 했다.
논란을 최대한 방지하고, 버서커를 자신이 통제하겠다는 의도였다.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최준호에 벌벌 떠는 사람들이 휘하에 버서커를 두는 걸 보고 과연 좋게 평가를 할까?
“초인이 둘이나 뭉쳐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대한민국 전체가 영향권 안에 들 것입니다. 어쩌면 최준호 초인의 의중에 좌지우지될 수도 있습니다.”
“나도 그런 걱정이 들더군. 근데, 지금 우리에게 방법이 없지 않나. 그리고, 원래 초인이 이렇게 다른 초인 휘하에 드는 경우가 있나?”
“여러 국가에 존재하는 케이스지만 모두 느슨한 형태로 이루어진 연합이었습니다. 최준호같이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럴 테지. 초인의 자존심이란 게 존재하니까.”
그 자존심은 돈이나 존경으로 사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지.
가장 큰 문제는 막을 방법이 없는 점이다.
“우선 지켜보도록 하지. 버서커 이미지 개선은 쉽지 않을 테니.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중재해서 국가 소속으로 유도해 볼 수 있고.”
“예. 하지만 최준호 초인도 어떤 준비를 해 놨을 것입니다.”
“그걸 실패하길 기원해야 하나?”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입니다.”
대통령과 천명국은 쓰게 웃었다.
* * *
꽤 난감한 제안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쉽게 승낙받았다.
난 처음부터 버서커를 데려올 때, 내 밑에 둘 생각이었다.
다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국가 소속으로 두는 것보다 내가 개인으로 고용하는 형태가 좋겠다 싶었다. 여러 경로로 이미지를 개선해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올 수 있다고 해도 버서커의 과거는 여전히 그늘져 있다.
나처럼 회귀해서 모든 과거를 청산한 게 아닌 이상 이야기가 나오겠지. 그럴 거면 내가 커버해 줄 수 있는 반경 안에 넣는 게 낫다.
“생각보다 지금 위치가 나쁘지 않고.”
국가 소속 초인이긴 하지만 나는 꽤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허용받을 수 있는 건 내가 시민들을 위해 헌신한다고 생각해서겠지.
실제로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돈에 욕심을 내거나 권력을 탐하지 않는 이상 거슬리는 녀석을 짓밟는 것은 허용 선에 있다.
어쩌다 보니 기득권이 내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골라서 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영역에 속하지 않을 일반 시민들은 날 지지한다.
이 지지를 기반으로 깔고 가는 게 나한테 이득이다. 그럴수록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이 넓어지고, 자유가 부여된다.
집으로 돌아와 준비를 마치고 사무실로 향했을 때였다. 안에는 낯이 익으면서 동시에 낯선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버서커였다.
그런데 외모가 확 바뀌어 있었다. 난잡하던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수염을 깔끔하게 밀었다. 그리고 근육질 몸매가 적당히 드러나는 정장을 차려입으니 잘 단련된 아카데미 학과장 같은 이미지가 물씬 풍겼다.
미친놈이 지적인 이미지라니. 저기에 속아 넘어가면 세상이 말세가 아닐까 싶다.
“버서커 맞냐?”
“…왔군. 잘 왔다.”
버서커 녀석이 날 이렇게 반겨 주는 건 처음인 거 같은데.
딱 봐도 진세정에게 시달렸군.
내가 처음 진세정을 봤을 때 저 느낌이었다. 아니, 내가 더 심했을지도.
내게 아이돌 세계관을 권유했을 때 느낀 충격과 공포는 아직도 생생했다.
“아! 초인님, 오셨어요?”
지쳐 있는 버서커와 달리 진세정의 얼굴에는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저거, 완전 재미 붙였을 때 표정이다.
어떻게 아냐고? 악플 달 때 딱 저 표정이었다.
그럼 뭐 어때, 내 일도 아닌데. 난 구원을 요청하는 버서커의 눈빛을 외면한 뒤 진세정에게 말했다.
“버서커 스타일링을 한 겁니까?”
“네! 잘 어울리죠?”
“아카데미 교수 같은 느낌입니다.”
“제가 제대로 스타일링했네요. 맞아요. 야성적인 매력과 지적인 매력을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특히 버서커 님은 중후한 매력까지 갖추고 계셔서 초인님과 전혀 겹치지 않는 팬층을 형성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이게 얼마나 대단한 점이냐면 기존 초인님 팬층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양측 팬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고…….”
그래, 진세정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정작 버서커는 맥이 빠진 표정으로 내게 항의했다.
“…왜 이런 거라고 말을 안 했지?”
“이미지 세탁이 그럼 쉽게 될 거라 생각했냐? 당연히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야지.”
“…….”
“그리고 이렇게 신경 써 주는 걸 감사해야지 불만을 토로하는 건 무슨 경우냐.”
“역시 절 이렇게 알아주시는 건 초인님뿐이에요.”
감격하는 진세정과 달리 버서커의 표정은 썩어 갔다. 이 좋은 걸 나만 당하고 있을 수 없지. 원래 좋은 건 나눠야 기쁨이 두 배인 법이다.
“여기에서 고민인 건 버서커 님의 이미지 개선 작업으로 어떤 컨텐츠를 설정하는 게 좋을지 정하는 거예요.”
“어떤 걸 생각하고 계십니까?”
“우선 이미지가 확 바뀐 봉사 컨텐츠나 재능 기부가 일반적인데 밋밋한 느낌이어서요. 획기적인 게 뭐 없을까요?”
“…….”
버서커 녀석도 떨떠름해 보였다. 둘 다 녀석의 취향은 아니지. 이미지 개선이 필요하긴 하지만 내키지 않는 걸 계속 하라는 것도 못할 짓이다.
그럼 녀석이 좋아하는 걸로 이미지 개선을 꾀해야 하는 건데 뭐가 있더라.
…역시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떠오르는 건 없다.
대신 진세정이 했던 말 하나가 기억났다.
“동정심 유발 작전은 어떻습니까?”
“가장 좋은 방법이죠! 하지만 동정심 억지 유발이면 부작용도 심한지라…….”
“억지가 아닙니다. 순도 100% 진심입니다.”
“그런 게 있나요?”
진세정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하긴, 각성자 세계는 진세정이 있던 아이돌 세계와 다르니까.
난 내가 생각하고 있던 걸 털어놓았다.
“버서커가 저와 대련하는 컨텐츠입니다.”
“……!”
“죄송해요, 초인님. 그게 왜 동정심 유발이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계속 두들겨 맞을 테니까요.”
말 그대로 피와 살이 튀기는 대련 컨텐츠다. 버서커 녀석이 열심히 반항하겠지만 나한테 두들겨 맞는 게 컨텐츠의 주된 내용이 된다.
시청자 중 상당수는 버서커에 반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녀석이 나한테 얻어맞고 또 얻어맞으면 어떻게 될까.
“부, 불쌍한 느낌이 들 테지만 그럼 버서커 님이 크게 다치실 텐데…….”
“저 녀석, 튼튼합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괜찮지?”
“정말 괜찮으세요?”
“…….”
버서커 녀석, 표정 관리 안 한다.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며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고 있어서 혜광심어로 경고했다.
[왜 빨리 대답 안 하냐? 나랑 대련하면 너도 실력 빨리 늘고 이미지도 개선되고 좋잖아. 설마 스타일링 좀 받았다고 점잔 빼려는 거냐? 안 보이는 곳에서 제대로 붙어? 참고로 안 보이는 곳에서 대련은 두 배 더 길게 두 배 더 많이 할 거다.]“…하겠다.”
결국 받아들일 거면서 튕기기는.
중간에 있는 내막을 모르는 진세정의 표정이 환해졌다.
“다행이네요. 그, 버서커 님 맷집은 괜찮으신가요?”
“좋은 편이다.”
“그럼 최대한 발버둥 칠 수 있는 구도로 짜 볼게요. 그래야 불쌍함이 극대화되거든요!”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그냥 두들겨 패면 될 줄 알았는데.
“네! 하도 사건 사고 치는 연예인이 많잖아요? 어떻게 하면 불쌍하게 보일지 구도를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죠. 초인님에게 당하는 버서커 님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게 묘사해 볼게요.”
역시 믿고 쓰는 찐세정. 난 한 번도 그 능력을 의심한 적 없다.
* * *
미쳤다, 이곳은 미쳐 돌아가고 있다.
버서커는 두 광기 사이에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걸 느꼈다.
자신도 한때 미쳐 있는 걸로 두려움을 샀던 빌런이다.
그래서 이명도 버서커였고.
하지만 진짜 앞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불쌍함을 연출하겠다며 대놓고 피와 살이 튀기는 대련을 계획하고 협박하는 최준호나, 그걸 더 극대화할 방법을 내놓는 진세정이나.
둘 다 미쳤다.
“…미친년놈들.”
버서커는 진지하게 캠핑카 재구매 충동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