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잘 들어, 십대초인은 각성자들의 우상이자 전설이야.”
개인 방송을 마치고 돌아온 집.
난 막심 게데스가 온다는 얘기를 들은 김에 윤희에게 십대초인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그러자 윤희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펴고 일장 연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길게 설명하는 거 싫은데.
하지만 이제와 무르기에는 윤희의 표정에 작정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잘못 걸린 듯 싶었다.
“십대초인은 각성자들 중 정점에 서 있고, 그들이 제시하는 방향에 따라 추구하는 사냥 방식과 훈련 방식이 바뀌어. 각성자들의 아이돌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네.”
각성자들에게 그들은 우상이며 동시에 강자였다.
마물이 등장하고 각성자가 등장하면서 초기에는 정립되지 않은 훈련 방법으로 무수히 많은 재능들이 명멸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에 따라 강함을 발전시켜 왔다. 그걸 정립시킨 것은 ‘천재’라 불리던 부류들로 훗날 십대초인의 초석이 되는 선구자가 훈련 방식 일부를 공개하면서 세계의 표준이 되었다.
“그 정도였군.”
“십대초인에 대해 존경을 표하지 않는 건 오빠밖에 없을걸.”
“그중에 죽일 놈도 있는데?”
“그래 봤자 그 사람들이 거둔 성과가 퇴색되는 건 아니거든.”
항변했지만 돌아오는 건 코웃음이었다.
최윤희, 많이 컸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희는 십대초인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오빠가 훈련했던 것 중 호흡 가다듬기를 생각해 봐. 그거 하면서 엄청 고생했었잖아. 지금은 은퇴했지만 캐나다 출신 십대초인이 공개한 방법이야.”
“…그렇군.”
워낙 오래 돼서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윤희가 말하길, 십대초인은 세계 초능력자 연합의 공인을 받았기에 자신들의 비기를 공개한단다.
“그럼 십대초인은 어떻게 선정되지?”
“당연히 일정한 자격이 주어지겠지? 십대초인이 되기 위해 여러 조건이 있지만 크게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돼.”
첫째는 홀로 유해 8단계 마물을 사냥할 수 있는 실력이다.
요즘 들어 무수히 많은 각성자의 서포트를 받아 초인이 압도적인 무위를 발휘하여 사냥을 성공시키지만 그 전까지는 초인이 홀로 나서는 형태가 빈번했단다.
낮은 레벨의 각성자는 사냥 도중 죽는 경우가 빈번했으니까.
그들이 죽지 않고 경험을 쌓도록 사냥 체계가 정립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사라졌지만 홀로 유해 8단계 마물을 사냥할 수 있는 능력은 십대초인의 증명 조건이 되었다. 증명을 위해 나섰다가 죽는 초인도 발생하면서 비난을 샀지만 방식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왜 안 바뀌지?”
“그보다 더 확실한 건 없으니까? 그리고 변별력을 두기 위함이래. 누구보다 유해 8단계 마물을 자주 접하니 본인 스스로 가늠이 될 거라고. 주제 파악을 못하면 그대로 죽는 거지.”
참 피곤하게도 여러 의미를 부여한다 싶었다.
둘째는 초인급 빌런을 죽여야 한다.
이는 십대초인이 되기 위해서 동급의 초인을 상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증명이었다.
“마물하고 빌런을 죽이면 된다는 거네?”
“그렇지. 여기에 수십 년에 걸쳐 탄탄한 평판을 쌓아야 돼. 전 세계의 존경을 받는 자리인 만큼 그만한 성과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거든.”
레벨 9가 십대초인의 연장선상이 아니던가? 나도 초인급 빌런을 죽인 적 있고, 유해 8단계 마물을 홀로 사냥한 전적도 있으니 조건이 맞다 싶었다.
이미 나에 대한 인식은 십대초인급이었다는 건가.
사실 별 관심도 없는데.
그리고.
“나도 그만큼 존경받고 있다는 건가.”
내가 그 정도로 세상의 존경을 받고 있을 줄이야.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됐군.
그때, 단호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니거든.”
“뭐?”
“오빠를 레벨 9로 합류시키면 좋겠다고 할 때 가장 반대받은 게 그 요인이었어.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하지만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초인인지는 모르겠다고. 내가 오빠 동생이긴 하지만 솔직히 맞는 말이잖아?”
“…….”
감동이 1초 만에 부서지는군.
그러거나 말거나 윤희가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튼 오빠로 인해 레벨 9가 신설되면 세계 질서가 흔들리지 않을까 말이 많았어.”
“왜?”
“그야 십대초인은 만인이 인정해 주는 느낌이었다면 레벨 9는 오로지 강함만 추구하는 것 같거든. 그러니 힘만 추구하는 시대가 되지는 않을지 여러 사람이 걱정하는 거지.”
별걸 갖고 다 걱정하는군.
그러다 다른 곳에 생각이 미쳤다.
“십대초인이 초인 중 가장 강한 열 명이 아니었나?”
“음, 아마 95% 정도만 사실일걸?”
“왜?”
“그야 제3 세계나 세상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주장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오죽하면 십대초인이 강대국 초인에게 주어지는 트로피라고 하겠어.”
당장 십대초인 중 아홉 명이 강대국이라 불리는 국가 출신이며, 남은 한 명도 무수한 분쟁이 발생하는 발칸 반도에 위치한 알바니아 출신이란다.
증명하기 어려우니 선진국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로군.
“그래서 비판이 많아. 오빠한테 죽은 콘스탄티나 같은 경우가 발생하는 거지. 진즉에 시선이 미쳤다면 리그가 아닌 세계를 위해 일할 수 있었을 텐데.”
대충 뭘 말하고 싶은지 알겠다.
근데 저주를 이용하는 콘스탄티나가 과연 초인으로 대접받았을지 의문이다.
“그 정도로 삐뚤어질 녀석이면 어차피 빌런이 됐을 거다.”
“그건 나도 동감. 사실 지금 체제가 더 마음에 들기도 해.”
“그래?”
“응. 솔직히 선진국 시스템이 믿을 만하잖아. 시민들 의식도 성숙하고. 그래서 지금의 균형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거든. 당장 중국이 십대초인 여럿을 보유했다고 생각해 봐. 주변 국가 닥치는 대로 들쑤시고 다닐걸?”
…일리가 있는 말이다.
뭐, 그래 봤자 내가 목을 비틀어 버렸겠지만.
참고로 중국에도 십대초인이 한 명 존재한다.
단지 그 진위 여부에 이래저래 말이 있을 뿐.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쪽을 견제한다고 알려졌는데 내가 마주할 일이 있을까 싶었다.
“지금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하고?”
“응. 기울어졌어도 불투명하고 야만적인 것보다 투명한 게 낫다고 봐. 강대국이 아니더라도 어렵지만 증명할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고.”
윤희답지 않은 보수적인 스탠스였다.
예전만 해도 강대국의 시스템에 불만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신성길드에 들어가더니 생각이 많은 부분 바뀐 것 같다.
자신이 모르던 세계를 알고 가치관을 바꾸는 경우는 흔한 법이니. 뭐가 옳고 나쁘고를 떠나 자기 생각을 정립해 나가는 것 같아 나쁘지 않았다.
많이 컸다. 이제 좋은 남자만 만나면 좋겠다.
내 공격을 딱 한 번이라도 막을 수 있는 수준이면 좋겠는데.
참고로 이게 최소 조건이다. 어디 그런 남자 없나.
윤희의 남편감을 생각하는데 윤희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래서 초인들이 오빠한테 불만이 많아.”
“난 왜?”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굴 또 죽였나? 혈종이 튀어나온 적은 없는데?
“그동안 자신들에게 한없이 높아 보였던 레벨 9의 자리를 오빠한테 그냥 주려고 하니까. 아, 세간에서는 십대초인이나 레벨 9를 같은 걸로 보고 있어. 여러 가지 복잡한 조건을 충족해야 십대초인이 될 수 있는데 오빠한테 가져다 바치려고 하니 배가 아픈 거지.”
“내가 한다고 한 적도 없는데 말이 많긴.”
“말이 그렇단 거지.”
“누가 그렇게 지껄이면 내 앞에서 말해 보라고 해.”
“어떻게 하려고?”
“생각을 바꿔 주면 되겠지.”
“…그럼 말하겠냐. 그리고 사람들이 그걸로 생각을 바꾸겠냐고.”
대부분 죽기 싫으면 바꾸던데.
내 대답에 윤희가 기겁했다.
“그건 죽이겠다는 거잖아.”
“말이 그렇게 되나?”
“어! 매우!”
하긴, 그것도 그렇군.
요즘 나를 마주하는 적들이 점점 내 앞에서 아예 반항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
이러면 재미가 없는데.
아, 그렇다고 죽이는 걸 즐기는 건 아니다.
“막심 게데스에 대해 아는 거나 말해 줘.”
“더 라이언이라 불리는 거는 알지?”
“알아.”
한국에서는 사자왕이라 불리고.
입에 착 감긴다나 뭐라나.
실제로 사자를 연상케 하는 외모로 인터넷에서 인기가 많았다.
막심 게데스는 40대 초반의 젊은 초인이자 십대초인으로 미국이 가장 자랑하는 재능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사자왕의 기프트가 세계 최강이라고 하던데?”
“그래?”
“응. 새로운 등급이 없으니 자기들끼리 얼티밋(Ultimate)이라 부르더라.”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었다.
얼마나 좋은 기프트면 그런 말이 나오는 거지?
빨리 가슴을 열어 확인해 보고 싶었다.
“오빠.”
“응?”
“지금 엄청 설렌 표정 짓고 있는 거 알아?”
“그냥, 기대가 되네.”
얼티밋이라 칭하는 기프트라.
대체 얼마나 대단할까.
분명 그만한 페널티도 존재할 텐데.
빨리 구경하고 싶었다.
* * *
“신세를 졌어.”
버서커는 최준호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아직도 한일금융을 생각하면 아찔함을 느꼈다.
강제로 끌고 가다시피 했던 그의 행동이 아니었다면 가족을 잃을 뻔했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게 나을 때가 있어.”
충동적으로 가족을 떠났다. 그리고 시간이 쌓여 나갈수록 다시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가족 문제에서 버서커는 정면 돌파보다 회피를 선택했다. 최준호가 아니었다면 언제 마음을 먹었을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고마웠다. 사랑하는 부인을 다시 만났고, 몰라보게 훌쩍 자란 딸을 보게 되었다.
버서커는 가족이 자신을 원망할 것을 두려워했다. 아니, 용서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김희연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용서해 줬다. 그리고 원망을 드러내던 딸도 조건부로 용서할 뜻을 비춰 줬다.
“나 최준호 초인 굿즈 구해 주면 다 용서할게.”
흔쾌히 구해 주겠다고 말한 순간, 딸의 원망도 눈 녹듯 사라졌다. 이게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가?
그러나 다음에 언급한 ‘최준호와의 만남’을 듣는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좋은 말로 최준호가 바쁘다고 얘기했지만.
“최준호 초인이 방송 때 얘기했는데? 일 없을 땐 한가하다고.”
“…….”
그 자식은 왜 쓸데없는 말을 해서는.
이 만남만큼은 절대 성사시켜서는 안 됐다. 버서커는 그동안 최준호와 만남을 갖고 하나둘씩 미쳐 가던 얼굴들을 떠올렸다. 자신이 없어도 번듯하게 잘 자란 딸이 그 미친놈을 닮게 둘 수 없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해서는 안 될 것은 절대 안 되는 것이다.
“…절대 만나게 해 줄 수 없지.”
설사 딸에게 원망을 듣더라도 만남을 성사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사무실로 출근한 버서커는 최준호 팀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사정을 전해 들었던 팀원들이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그 환대에 버서커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군식구에 불과했던 자신이 이곳에 온전히 속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준호도 모습을 드러냈다. 버서커는 드물게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지만 가족을 다시 만나게 해 준 은인이었다. 밑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억누르고 최준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이 은혜는 평생에 걸쳐 갚을 생각이었다.
“신경 써 줘서 고맙다. 희연이도 고맙다고 전해 달라더군.”
“네 감사야 괜찮은데 형수님도? 내가 힘을 쓴 의미가 있네.”
그 말에도 버서커는 그저 웃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말을 듣고 표정을 굳혔다.
“우리 조카님은?”
“…잘 자랐다.”
“반응이 이상한데. 내 팬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나 만나고 싶다고 했을 수도 있을 텐데.”
“…….”
평소에 눈치 없는 녀석이 이럴 때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했다.
말문이 턱 막힌 버서커를 보던 최준호가 씩 웃는다.
들켰다.
“바쁘긴 해도 조카를 위해서 언제든 시간을 낼 수 있으니 자리만 만들어 달라고. 설마 중간에서 막고 있는 건 아니지?”
“으음!”
“막아도 상관없어. 형수님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니까. 아, 번호 바꿀 생각 같은 건 하지 말고.”
“…….”
“그럼 일 봐라.”
침음을 흘리는 자신에게 손을 흔든 최준호가 멀어졌다. 버서커는 참담함을 느꼈다. 감정을 완전히 숨겨도 모자랄 판에 거기에서 속내를 드러내다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준호만큼은 피했어야 했다. 그걸 알면서도 피하지 못하다니. 암담함을 느낀 버서커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분명 최준호에게 평생에 걸쳐 갚아야 하는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감정을 한 번에 지워 버리는 최준호의 언변도 대단하다 싶었다.
답답한 마음에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뉴스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상단에는 최준호에 대한 기사가 가득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봉인했던 악플러의 피가 들끓었다.
“은혜는 은혜고 원한은 원한이지.”
사실 버서커는 본인이 악플러라 생각하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찬양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을 날카롭게 꼬집는 일침을 가할 뿐.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악플러 취급하는 현실이 통탄스러웠다.
세상은 그걸 악플러라 칭하지만.
버서커가 최준호의 개선해야 할 부분을 댓글로 작성하고 있을 때였다.
“어! 버서커 님이 그 ‘바사칸’ 님이셨어요?”
“……!”
깜짝 놀란 버서커가 고개를 돌렸다. 대체 어떻게? 아무리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해도 자신의 감각을 속이고 접근할 수가 있다고?
버서커는 빼꼼 내민 진세정의 작은 머리를 보며 가슴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들켰다.’
하필 이걸 진세정에게 들키다니.
자신은 악플러라 생각하지 않아도 세상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은 경멸을 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실망을 살 각오를 했지만 돌아온 말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와! 제 뒤를 바짝 쫓는 네임드 중 하나가 버서커 님이실 줄은 몰랐어요. 버서커 님에게 이렇게 엄청난 재능이 있을 줄이야.”
“…뒤를 쫓아?”
“아! 이렇게 된 김에 제 정체를 밝혀야겠네요. 이거 비밀이에요.”
그리 말한 진세정이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인터넷에서 제 닉네임은 국뽕거품초인최준호예요!”
“네가 그 악질?”
이럴 수가, 진세정이 그 최악의 악플러였다고?
도저히 설득이 불가능한 통곡의 벽이자 장판파 장비라 불리는 악플러의 정체는 충격적이었다.
진세정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자부심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네! 맞아요! 버서커 님! 이렇게 뵈니 반갑네요. 우리 참 정겹게 댓글을 주고받았었는데.”
“서로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게 아니고?”
“에이, 저는 안 그랬어요. 주로 버서커 님이 그러셨지.”
“…….”
그건 틀린 말이 아니었다.
국뽕거품초인최준호는 상대 속을 뒤집는데 일가견이 있는 완전체 악플러였지.
“그보다 버서커 님!”
“왜?”
“우리 합작으로 세상을 뒤집어 보지 않겠어요?”
악플로 그게 가능하다고?
* * *
구석에 처박혀 있던 버서커는 갑자기 진세정과 의기투합하더니 자기들끼리 할 말이 있다며 밖으로 나갔다.
진세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역대급 콜라보가 될 거라던데 지켜보는 내가 불안할 정도였다. 사고나 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뭐, 오늘 내가 나온 것도 진세정에게 용건이 있어서가 아니니까.
세계 최강의 기프트를 보유했다고 알려진 막심 게데스가 방문하기로 했다.
친분이 있다더니 제임스 리드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사자 갈기 같은 금발의 사자 머리가 인상적인 외모였다. 겉모습만 봐도 야성적인 느낌이 풀풀 풍기는군.
“막심 게데스다. 위명이 자자한 헤드 브레이커를 이렇게 보게 되어 영광이다.”
외워 온 듯 한국어로 먼저 말한 뒤 영어로 소개하는 모습에 제임스 리드의 말과 달리 경우가 있는 녀석으로 보였다.
성의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는 듯하군.
“최준호다.”
우리는 악수를 나눈 뒤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거창하게 풀어내듯 얘기하는 것은 결국 레벨 9를 신설하는 의도였다. 세계 평화니 세상을 더 정의롭게 만드느니 얘기를 하는데 전부 내가 관심 없는 분야였다.
지켜보는 졸라맨은 그걸 눈치 챘는지 막심 게데스에게 눈짓을 했지만 들은 척도 안 했다.
자기 주관이 확고하게 박힌 사춘기 소년같달까. 하나에 매몰되면 주변이 보이지 않는 법이지. 막심 게데스는 대의를 위해 사람들이 나설 수 있다고 보는 타입인가 보다.
나와 정반대로군. 난 악은 부지런하며 사람은 누구나 타협할 자세가 되어 있어 물들다 보면 악이 된다고 본다.
생각의 차이가 크다. 이걸 좁힐 수 있다고 안 보고.
이럴 때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말귀가 트일 때까지 두들겨 패면 된다.
막심 게데스가 답답한 듯 소리쳤다.
“헤드 브레이커! 난 진심으로 리그를 없애고 싶다. 네가 힘을 빌려준다면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본다. 리그만 사라지면 세계는 더 건강하게 경쟁해서 성장하고 한마음으로 마물을 상대할 수 있어. 큰마음 큰 뜻으로 우리를 도와주지 않겠어?”
“싫은데.”
“어?”
“생각 없다고.”
“…하! 사실 내가 말해도 설득이 안 될 거라 생각했어. 이 정도로 설득될 거면 내 제안에 진작 응했겠지. 그래서 다른 방법을 준비했어.”
“뭔데?”
막심 게데스가 씩 웃는다. 졸라맨이 그걸 보고 말리려 했다.
“잠깐…….”
“무력행사.”
무력행사? 지금 나한테 한 말인가?
요즘 나한테 반항하는 녀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참 신선한 말이다.
“…….”
옆에서 졸라맨은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골칫거리가 사고를 쳤을 때 저런 모습이었지.
난 막심 게데스가 한 말을 곱씹으며 말했다.
“한판 붙어 보자는 거지?”
“남자는 원래 몸을 부대끼면서 친해지니까. 내 대의를 준호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전에 네놈의 목이 먼저 꺾일 거라 생각하는데.
하지만 막심 게데스가 제시한 방법은 나쁘지 않았다.
서로 의견이 충돌할 때 붙어 보는 건 의견 차이를 좁힐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증명할 방법은 있고?”
“한번 붙어 보면 알 수 있을 거다.”
“그래?”
녀석의 기프트가 어느 정도기에 얼티밋이라 칭하는지 마침 궁금한 참이었다.
그 최강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기프트,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해 볼까?
“네 대의가 얼마나 굳건한지 기대하지.”
과연 십대초인이며 고상한 척하는 녀석도 끝까지 자신의 말을 바꾸지 않을지 궁금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