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자신의 속내를 꺼내 든 이찬택은 최준호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결심이 아니다. 이곳에 오기 전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후였다.
‘철심’이라 불리기에 무표정을 내세웠지만 말을 꺼내는 그의 마음은 떨리고 있었다.
최준호, 헤드 브레이커.
한때 운 좋게 성공한 애송이 초인이라 생각했던 녀석은 불과 1년 만에 이견 없이 세계 최강의 초인이라 불리는 자리에 올라섰다.
옆에서 봤기에 안다. 최준호가 오늘의 위명을 얻은 건 우연이 아니다.
‘오랜만이군, 이 떨림은.’
누리를 사냥할 때 보았던 그와 지금의 그는 위상이 하늘과 땅 차이지만 성격이 바뀐 건 없었다. 이찬택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고, 가장 믿음이 가는 부분이기도 했다.
‘나라면 어땠을까?’
위엄을 더하기 위해 표정을 관리하고 기세를 발산하고 다녔을 것이다.
철심 이찬택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젊은 시절, 이찬택에게 주어진 것이라고는 튼튼한 몸뚱어리 하나가 전부였다.
맨몸으로 세상에 부딪치면서 이 세상이 얼마나 잔인하고 살벌한 곳인지 알게 되었다.
자신이 두각을 드러낸다는 이유로 사지에 밀어 넣으려던 선배, 출세를 위해 자신의 공을 가로채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길드 간부, 부하의 몫을 자연스럽게 제 것으로 여기던 길드 마스터.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강해지지 않으면 언제 어느 순간 싸늘한 주검이 되었을지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 속에서 이찬택은 표정을 지우는 법을 배우고 감정을 숨기는 법을 터득했다.
그는 반드시 성공하고 싶었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서 자신을 비웃고 깔보던 녀석들을 보란 듯이 짓밟고 싶었다.
다행히 자신의 재능을 보호하고 갈고닦아 초인이 될 수 있었고, 그때부터 탄탄대로를 걸어 나갔다. 초인이 되었을 때, 모두가 자신을 우러러보고 존경하며 호의를 드러냈다.
아무것도 없던 평범한 각성자 1이던 시절과 다른 대우였다.
‘노력 없이 발전도 없다.’
초인이 된다는 것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이찬택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했다.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길드원들을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한계는 일찍 찾아왔다.
누리를 사냥하던 그 순간, 이찬택은 신입 길드원 시절 무력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이 약했기에 믿고 따르던 길드원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후에 플러스 단계로 기존 유해 8단계보다 높은 단계로 분류되었지만 그렇다고 사냥에 실패한 변명이 되지 않는다.
한 번 등장한 높은 단계 마물은 주류를 형성하고는 했다. 유해 7단계가 그러했고, 그 다음 등장한 유해 8단계가 그러했다. 앞으로 이 마물들이 주류를 이룰 것이 분명했다.
더 강해지고자 훈련 시간을 늘렸지만 강해지는 건 쉽지 않았다.
초인이 된 후 더더욱 그러했다.
그때마다 빈약한 기반에 아쉬움을 느끼고는 했다.
생체 실험이 횡행하던 북한에서 내려온 류광호나 대기업의 저력이 존재하는 신성그룹과 달리 자신은 나아갈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후에 나타난 플러스 단계 마물을 사냥할 때 그 아쉬움은 더 커졌다.
그제야 이찬택은 깨달았다. 자신의 재능으로 이뤄 낼 발전 속도는 마물이 강해지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기프트가 없어서인가?
‘아니.’
그건 너무 구질구질하지 않은가. 자신이 부족할 뿐이다.
기프트가 없어도 십대초인에 든 각성자들은 많았다. 자신의 재능이, 영감이, 실력이 여기까지일 뿐이다.
이걸 놓고 이찬택은 다방면으로 극복 방안을 찾았다. 하지만 자신의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이상 해결 방법은 없었다.
필요한 건 스스로 납득하는 것뿐.
자신의 실력은 더 이상 최상위에서 경쟁할 수 없다.
그렇다면 더 강자의 그늘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최준호를 찾아가 아방가르드 길드 인수 이야기를 꺼냈다.
아방가르드는 이찬택의 인생 그 자체였다.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모든 걸 바쳐 일궈 왔다. 신성, 사신과 함께 3대 길드에 꼽히며, 대한민국에서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건 대외적인 평가일 뿐, 앞으로 다가올 흐름 속에서 경쟁에 뒤처지면 이 평가는 수직 낙하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무엇보다.
최준호가 그 생각을 받아들일지 여부가 더 중요했다.
“제가 왜요?”
…역시나.
예상했던 반응에 이찬택이 쓰게 웃었다.
“인수해 달라는 말에 이렇게 반응하는 건 자네밖에 없을 거야.”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라. 저한테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럴 거라 생각했다. 최준호는 무리를 이루는 걸 싫어하고 불필요한 책임을 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내부에서도 나온 얘기다.
이런 반응도 예상했다.
참 특이한 녀석이다. 남들은 세력을 더 크게 키우지 못해서 안달인데 관심조차 없는 걸 보면.
‘자기 실력에 대한 자신감일지도.’
그거면 모든 게 설명되긴 한다. 홀로 마물 사냥이 가능하다는 건 길드 전체가 덤벼도 상대가 가능하다는 의미였으니.
일본에서 초인 셋을 상대로 압도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하지만 탐나지 않나? 눈에 차지 않더라도 아방가르드 길드의 가치는 50조가 넘지. 계열사들까지 포함하면 두 배가 넘고.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야.”
“제가 돈 욕심 없는 걸 알면서 그러십니까?”
“이 정도면 욕심이 생길 줄 알았는데, 혹시 금액이 모자란 건가?”
“필요 없습니다. 본론을 말씀하시죠.”
“알겠네.”
간 보는 건 여기까지.
최준호가 제일 싫어하는 행동이 이것이다. 그나마도 안면 있는 사이라 넘어갔지, 모르는 사이였다면 손부터 날아왔을 것이다.
이찬택은 속내를 밝혔다.
“내 능력에 한계를 느꼈네.”
“…….”
“마물 사냥할 때 버겁더군. 사냥에 성공하더라도 동고동락하던 길드원들을 잃었지. 성공을 갈망하지만 나만 그러길 바라는 게 아니야. 난 모두와 함께 성공을 누리고 싶지, 모두가 죽고 나 홀로 성과를 차지하고 싶지 않아.”
“기프트를 개방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합니까?”
“아니.”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숙고한 끝에 그 생각을 털어 냈다.
기프트가 초인 자체를 휘두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내 부족함을 기프트를 개방하지 못한 걸로 치부하고 싶지 않더군. 평생에 걸쳐 노력해 온 걸 부정하게 되니까.”
모든 걸 잃지 않기 위해 모든 걸 바치는 걸 선택했다.
최준호라면 승자의 아량을 기대할 수 있을 테니까.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존심을 굽히는 거군요.”
“생존보다 더 중요한 건 없으니까.”
“가장 고집부릴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내 이미지가 그렇게 보일 수 있지.”
“흠.”
최준호가 고민에 잠긴다. 이찬택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신의 삶이 저 한마디에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이 허망했지만 이것이 각성자의 삶이다.
수십 년을 노력해 온 고레벨 각성자도 순식간에 치고 올라온 신예에게 목을 잃는 것이 이 세계다.
지금 최준호와 자신의 처지가 이 말에 잘 어울렸다.
“역시 별로입니다.”
“음…….”
“그래도 감명 깊었던 건 사실입니다. 철심의 다른 모습을 보았달까.”
“내 이미지가 어떻기에?”
“꽉 막힌 꼰대?”
“…….”
부하들에게 절대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고.
“대신 성장의 기회를 드리죠.”
“어떻게?”
“기프트 개방이요.”
“그게 가능하다고?”
“네. 보여 드리죠.”
“……!”
별안간 가슴을 파고드는 손길에 이찬택이 눈을 부릅떴다. 옷 속이 아니라 진짜 가슴 안을 꿰뚫고 들어왔다. 최준호의 손이 심장을 감싸 쥐는 게 느껴졌다.
들어 본 적 있다. 최준호에게 기프트를 개발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가슴을 휘젓던 손이 빠져나갔다. 피가 묻은 손을 입가로 가져간다. 이찬택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입술에 번져 가는 붉은 피.
잠시 침묵하던 최준호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열심히 훈련했네요? 피가 신선해요.”
“…….”
하지만 이찬택은 대답할 수 없었다.
꿰뚫린 가슴에서 여전히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제아무리 초인이라도 피를 무한정 쏟아 내고 제정신을 유지할 수는 없다.
“아, 회복제. 깜빡했네요.”
그제야 최준호는 품속에서 회복제를 꺼내 가슴에 부어 줬다.
* * *
난 오랫동안 혈중섭식을 사용해 왔지만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여러 차례 사용하면서 기능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모든 것에 확신을 갖지 않는다.
이 기프트가 워낙 희귀해서 말이지.
만독불침 같은 것도 정보가 존재하는 건 이 기프트를 보유한 사람이 있어서인데, 혈중섭식은 기프트 종류를 정리해 놓은 기프트 도감에서도 비슷한 걸 본 적이 없다.
피를 섭취하면 기프트를 복사할 수 있고, 잠재된 기프트도 볼 수 있다. 나는 그것이 심장에 새겨진 지문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각성자가 쌓아 온 것들이 씨앗의 형태로 잠들어 있는 것이다.
기후, 날씨, 토양이 맞아떨어지면 기프트가 싹을 틔운다. 그 조건을 알아낼 수 있는 게 내게 주어진 능력이다.
그 부분에서 볼 때 이찬택은 기프트를 개방하지 못했지만 좋은 기프트 후보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개방에 성공하면 충분히 한 단계 높은 수준에 오를 수 있는 것들이지.
“이런 게 호구인가?”
내가 이찬택에게 기프트 후보를 알려 준 것은 변덕이었다. 높은 자리에 올랐음에도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준다는 것. 결코 쉽지 않은 결정임을 알았기에 꽤 감명 깊었다.
“잘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뭐, 그 과정에서 가슴에 뚫린 구멍에 회복제를 늦게 부어 주는 등 사소한 실수는 있었으니까. 이찬택이 내게 감사를 표하면서 아방가르드 지분 일부를 준다고 했는데 그 태도가 하도 집요해서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자기 돈이 아까우면 알아서 포기하겠지.
그냥 해프닝이라 생각하던 나는 예상치 못한 일로 청와대에 불려 갔다.
정다현과 관련된 일이었다. 정다현이면 상사는 정주호인데 왜 날 찾는 거지? 학부모가 없으니 삼촌이 대신 불려 가는 그런 건가.
“정다현 각성자의 사냥 방식 말인데, 최준호 초인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게 맞나?”
“예. 제가 가르쳤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발생했습니까?”
얼마 전에 연락했을 때 유해 7단계를 사냥했다고 들었는데?
정부 소속 사냥팀으로 고무적인 성과였고, 정다현 개인으로서도 마물 사냥에 빠르게 적응했다는 증거였다.
대형 길드와 비교할 때 처우 문제로 정부 소속 사냥팀 구성원의 실력은 늘 뒤처져 있었다.
정부에서 여러 조치를 통해 당근을 제시해도 대형 길드와 비교하면 미흡한 게 현실이었고.
“문제라면 아주 큰 문제지.”
정다현이 문제를 일으킬 성격은 아닌 거 같은데.
난 조용히 대통령의 말을 경청했다.
“이틀 전에 헬하운드팀이 유해 7단계 마물을 사냥하는 데 또 성공했네. 이번에는 무려 둘이나 동시에 해치웠지.”
“대단하네요.”
불과 며칠 전에 한 마리를 사냥했는데 두 마리를? 나야 워낙 특이 케이스였지, 정다현이 해낸 것은 엄청난 성과였다.
아, 헬하운드팀의 성과라고 하자.
그런데 대통령의 표정이 심각했다.
“사냥 과정에 문제가 좀 많네.”
“어떤 문제입니까?”
“사냥 보고서네. 읽어 보게.”
굳이 이런 것까지?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어, 나는 대통령이 건넨 보고서에 시선을 옮겼다.
보고서 내용은 헬하운드팀의 사냥 과정에 대해 적혀 있었다.
마물의 흔적을 쫓던 그들은 예상보다 일찍 마물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목표로 했던 유해 7단계 마물은 없었다. 대신 새끼 마물이 자리에 있었다.
헬하운드팀은 즉시 사냥에 나서려고 했다. 새끼 마물이 크면 결국 유해 7단계 마물로 성장하기 때문. 그때 막고 나선 것이 정다현이었다.
그 자리에서 사냥하는 대신 미끼로 삼을 것을 권유했고, 마물의 날개를 자르고 다리에 상처를 입혀 기동력을 상실시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대기하다가 먹이를 물고 돌아온 마물 사냥에 나섰다.
다친 새끼로 인해 부모 마물은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움직이지 못한 걸 제외하고 새끼 마물은 멀쩡했던 것이다. 새끼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은 부모의 움직임 반경을 극단적으로 제한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시종일관 새끼를 노리는 한중석으로 인해 신경이 분산되었고, 그 틈을 노린 정다현에게 치명상을 입었다.
결국 부모 마물은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새끼 마물을 지켜 내는 데 성공했다. 딱 거기까지만. 그리고 숨이 끊어지자, 정다현은 새끼 마물도 처리했다.
이것이 유해 7단계 마물 둘을 동시에 사냥한 내막이었다.
“…….”
마물의 습성을 이렇게 잘 활용하다니.
다 컸다는 말이 나왔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내가 보고서를 내려놓자 대통령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다 읽었나?”
“예.”
“그럼 사안의 심각성을 느꼈겠…….”
“대단하네요.”
“응?”
“이런 게 재능의 차이군요.”
모차르트를 본 살리에리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난 완벽한 사냥을 해낸 정다현에게 재능의 벽을 느꼈다.
“…….”
대통령과 천명국의 표정은 왜 저러지? 정다현을 잘 키운 나를 칭찬하려고 부른 거 아닌가?
하긴, 이 정도면 극찬을 들어도 모자라지 않지.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기대하던 칭찬은 들려오지 않았다.